퀵바

허란 님의 서재입니다.

사업중독자의 회귀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허란
작품등록일 :
2016.11.01 19:26
최근연재일 :
2017.04.07 20:52
연재수 :
62 회
조회수 :
199,319
추천수 :
3,138
글자수 :
243,041

작성
16.11.30 19:51
조회
2,814
추천
46
글자
10쪽

그의 장례식

DUMMY

레기온 둥지 레이드를 마치고, 나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껴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심리적인 피로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그저 죽은 듯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창 밖으로 해가 뜨고, 또 해가 질 때까지 누워있었다. 그리고 저녁이 지났을 때, 윤형이 어머니에게 문자가 왔다. 그가 죽었다는 문자였다. 죽었구나. 그래. 윤형이가 갔구나. 나는 그제서야 검은 정장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세브란스 병원의 장례식장이었기에 걸어서 가기에 충분한 거리였다. 식장에 도착하니, 윤형이의 어머니는 통곡을 하다가 정신을 잃어, 응급실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두 눈이 퉁퉁 부운 그의 아버지가 나를 식장으로 안내했다.


나는 향을 피우고, 그의 영정 사진 앞에 세 번 절을 했다. 옆에서 있는 상주들이 통곡을 한다. 그 울음소리를 듣고나서야, 나 역시 눌러두었던 울음이 북받쳐 올랐다.


"아이고~ 아이고~"


그들은 나와 함께 곡을 하며, 내가 울음을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겨우 몸을 추스린 나를, 상주들이 식당으로 안내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 허기진 배가, 고소한 육계장의 고추기름 냄새를 맡으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앉아서 육계장을 미친듯이 입에 처 넣었다. 각성자로 살면서, 죽은 사람을 기리며 의례를 지내본 적은 없었다. 죽음은 원래 도처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살다가 가면 그만이다. 그런 삶이었다. 20년 만에 겪는 장례식장에서 나는 인간으로써 감정을 다시 느꼈다. 내가 벌레처럼 언제든 죽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죽으면 주변 사람들이 함께 슬퍼하며 곡을 하는 그런 인간으로써의 삶 말이다. 그런데 인간으로써의 삶은 결고 즐겁거나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슬픔 속에서 산다는 건, 이 또한 나름 지옥이 아닌가.


식사를 마치고 맥주를 한 컵 들이키는데,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 눈에 띄였다. 박아연이다. 그녀도 이 장례식장에 찾아왔던가. 검은 정장을 입고 온 그녀는, 영정 앞에 국화꽃을 올린 후 기도를 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걸어오는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내 앞에 앉았다.


"여기 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두 사람이 친해보였거든요."


나는 말 없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나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박아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함께 장례식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리는 걸어서 신촌의 번화가로 나갔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이화여대 후문을 지나, 번화가로 들어가는 굴다리를 건널 때 까지 30여분 가량을 걸었지만.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가 조용해요."


박아연은 골목 구석에 숨겨진 오래된 까페로 나를 안내했다. 90년대 본 듯한, 촌스러운 디자인에 천정 모서리에는 곰팡이가 핀 흔적이 있는 오래된 까페였다. 그렇게 세련되지도, 커피가 맛있을 것 같지도 않은. 언제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까페였다.


박아연은 커피를 시켰고, 나는 사이다를 한 잔 시켰다.


"몇살이라 그랬죠? 얼굴은 엄청 동안인데."

"21살입니다."

"어머. 생각보다 훨씬 어리네요. 30은 넘었을 줄 알았어요."


처음 봤을 때, 박아연은 주위 사람들을 엄청 경계했다. 아마 뚱보에게 겁탈을 당한 것 처럼, 각성자로 살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다. 그 고난의 시간 만큼, 날카로워진 경계를 내게는 푼 것 같았다.


"각성자가 된지 얼마 안되었죠?"

"어떻게 안거죠?"

"강화신체에 숙련된 사람들은 창 같은 무기를 안써요. 보통은 이강수 같이 너클을 쓰고 타격기술을 쓰죠."


몰랐던 정보다. 각성자로 20년을 살았다고 해봐야, 하위각성자였기 때문에 고위 각성자들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나 역시 이강수의 전투를 보며, 너클과 신발에 마나가 담긴 무구를 사용해 타격기를 펼치는 게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각성자가 된지 얼마나 되었어요?"

"4개월?"


내 말에 박아연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말도 안되.."

"왜죠?"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요. 후보라 불리는 윤형씨도 지금까지 온 데 걸린 시간이 2년이 넘어요."

"그런데 후보라는 건 대체 뭐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박아연은 한 번 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버틀러는 알고 계시죠?"

"그 흑고양이 말인가요."

"네. 그 흑고양이가 버틀러. 집사란 뜻이죠."

"알고 있어요. 누군가의 집사겠죠."

"그렇죠. 버틀러의 주인이 누굴까요?"


나는 문득 버틀러가 내게 '그녀에게 선택 받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중얼거린 것이 생각났다.


"이면세계의 주인이라는 말도 있고, 신이라는 말도 있고, 다양하게 추측하고 있어요."

"신이라면 아마 여신이겠네요."

"네. 버틀러는 가끔씩 그녀라는 말을 쓰니까요."


박아연이 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각성자들은 원래부터 있었어요. 균열에서 새어나오는 괴수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이었죠. 먼 옛날 각성자들은 신화 속 영웅이나, 국가의 지도나나 종교의 성인이거나 그랬어요. 그런데 근래는 각성자들의 통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다수 각성자들이 공무원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기존에 정부가 관리하던 각성자들과 종류가 전혀 다른 각성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꿈을 꿀 때, 이면세계라 불리는 기묘한 세계로 끌려가 이상한 전투를 하고 돌아오죠. 그게 다정씨나 저 같은 각성자들이에요. 저희들은 선천적으로 태어난 기존의 각성자들과 많이 달라요."


패러럴 웹에서는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정보였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패러럴 웹에서 돌아다니는 정보는 진위를 알 수 없는 게 너무 많았고, 깊은 정보는 너무 페쇄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박아연은 말을 잇는다.


"지금까지 1000여명이 넘게 이면세계에서 각성한 사람이 있다고 해요. 이 사람들은 왜 이면세게로 불려다니는 걸까요?"

"라메드 바브니크."

"네. 맞아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아브라함이 찾지 못한 10인의 의인을 뜻하죠."

"그 선택 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싸운다는 건가요?"

"우리는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해요. 그런데 여러 정황상, 버틀러가 '그녀'라 부르는 존재가 선택한 라메드 바브니크가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봅니다."

"그럼 윤형이가 후보라 불린 이유는 라메드 바브니크에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그리고 S급 각성자가 된 사람이 5명 있어요. 그들은 시험을 통과 했다고 보구요."


박아연의 말을 듣고 김설진이 생각났다. 그녀 또한 이 시험을 통과 한 것일까?


"윤형씨는 굉장히 강한 각성자에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는데, 다정씨는 속도가 더 빠르네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죽을 고비만 넘겨와서, 제가 강해진 건지 아닌지 가늠이 안되요."

"그럴 거에요. 버틀러는 딱 극복 할 수 있는 만큼의 시험을 낸다고 알려져 있어요."

"통과 할 때 까지, 계속 이런 지옥 같은 일을 반복해야겠군요."

"A급을 통과하면 괜찮아지실거에요. 그 이후로는 더 강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솔직히 이번 레이드에서도 윤형씨의 경험이 부족해, 이강수에게 당한 거지.. 만약 경험이 조금만 더 풍부했다면 이강수도 저렇게 반동에 성공하진 못했을거라 생각해요."


경험이라.. 상급 각성자가 될 수록, 나 또한 경험 부족이 뼈아프게 느껴졌다. 하위 각성자로 20년을 산 경험은, 상위 각성자의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보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뭘요. 제 생명을 구해주셨는데요."


박아연은 핸드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마정석을 돌려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 같아서, 이걸 가져왔네요."


그녀가 꺼낸 것은 너클과 훈련서였다. 내가 패러럴 마켓에서 확인 했을 때, 시가로 몇 억 이상 했던 고가의 물건들이다.


"제게 도움을 주신 거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작은 거겠지만, 그래도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


마정석을 가져왔다면, 뭔가 기분이 찝찝 했을 것 같았는데 아맇게 아이템을 가져오니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제게 유용 할 것 같아요."

"다정씨가 잘 나갈 것 같으니, 저도 비빌 언덕 하나 만들어 두는 거에요."

"아니, 그건 아닐 것 같구요."

"에이. 겸손해라.."


박아연은 내게 명함을 하나 건냈다. 그 안에는 프리랜서 번역가라 적혀 있었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다정씨도 정부 기관에서 연락이 올거에요. 정부와는 절대 대적하지 마세요. 그들은 각성자를 다룰 줄 알아요."

"명심할게요."

"그리고 정부와 접속하게 되면, 본격적으로 균열을 막는 각성자 부대에 편입되게 될 거에요. 그러면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제게 연락을 주세요. 제가 사람을 잘 안믿지만, 다정씨는 믿을 수 있어요. 지난 레이드에서는 원래 초아를 믿을 수 있었는데.. 죽어버리고 말았네요."


박아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처음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보았다.


'더 강해졌다.'


이면세계에서 목숨을 건 1주일 간의 사투는 내 신체를, 그리고 내 마나를 더욱 강하게 성장시킨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준 버클을 손에 껴보았다. 마나를 운용 할 때 생기는 특유의 푸른빛이 반지에서 뿜어져 나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업중독자의 회귀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2 고은이의 수련 (1) 17.04.07 609 8 8쪽
61 TS 컴퍼니 (2) +3 16.12.26 1,312 33 7쪽
60 TS 컴퍼니 (1) +2 16.12.26 1,415 22 8쪽
59 알비노 (albino) (4) +3 16.12.23 1,476 30 10쪽
58 알비노 (albino) (3) +4 16.12.21 1,502 30 8쪽
57 알비노 (albino) (2) +2 16.12.21 1,408 24 7쪽
56 알비노 (albino) (1) +1 16.12.21 1,603 26 8쪽
55 프랜차이즈로~ (5) +1 16.12.20 1,741 29 11쪽
54 프랜차이즈로~ (4) +5 16.12.20 1,675 27 8쪽
53 프랜차이즈로~ (3) +3 16.12.20 1,684 26 9쪽
52 프랜차이즈로~ (2) +6 16.12.08 2,374 42 9쪽
51 프랜차이즈로~ (1) +2 16.12.07 2,111 38 9쪽
50 윗잔다리 살인사건(5) +1 16.12.07 2,162 46 7쪽
49 윗잔다리 살인사건(4) +2 16.12.06 2,194 40 8쪽
48 윗잔다리 살인사건(3) +1 16.12.06 2,073 38 7쪽
47 윗잔다리 살인사건(2) +1 16.12.06 2,061 38 9쪽
46 윗잔다리 살인사건(1) +7 16.12.05 2,287 41 7쪽
45 각성자도 주말 알바 합니다. +3 16.12.05 2,477 39 9쪽
44 균열에서 +3 16.12.05 2,668 49 11쪽
43 무너지다. +5 16.12.04 2,683 50 7쪽
42 웨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 +1 16.12.04 3,065 43 10쪽
41 카사노바.avi +5 16.12.03 2,865 43 10쪽
40 그의 도발 +3 16.12.02 2,805 41 9쪽
39 각성자는 공무원이다. +2 16.12.02 2,647 44 8쪽
38 탐식 - 스킬을 먹다. +1 16.12.01 2,712 44 8쪽
37 너 나랑 사귈래? +4 16.12.01 2,910 46 15쪽
36 까페를 개업하다. +1 16.12.01 2,702 42 11쪽
35 다시 일상으로 +1 16.12.01 2,765 39 10쪽
» 그의 장례식 +2 16.11.30 2,815 46 10쪽
33 레기온 둥지 레이드 (8) +4 16.11.30 2,801 40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