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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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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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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남송(南宋) 명주(明州) (1)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긴 했으나 갑자기 섭랑장에 임명되어 남송으로 가는 함선의 부관이 된 된 진웅은 얼떨떨했다. 제언을 할 때만 해도 실제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또 본인이 직접 남송으로 가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비록 함선은 다섯척에 병력은 이백에 불과했지만 승선하는 병력은 삼별초에 내에서도 최정예부대로 편성되었다. 신의군으로만 편성될 것이라는 진웅의 추측과는 달리 좌우별초 가운데 최정예 전력을 비롯해 삼별초 내에서도 화약을 다루는데 능하고,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항마병(승병) 등이 함께 편성되었으며 이외에도 통역 등의 문제로 송나라 말에 능한 남송 출신들이 대거 합류했다.



이렇듯 첩장 하나를 전하는데도 최강의 전력이 편성된 이유는 남송의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처참한 꼴이 아니라 삼별초가 잘 훈련된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원연합군의 침략에도 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흘 뒤 좌승선의 함대는 중산국으로, 진웅이 이끄는 신의군은 남송 명주로 향했다.



자신의 뿌리였던 남송으로 향하는 진웅의 심경은 복잡했다. 자신의 선조가 북송 출신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진웅 스스로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고려인이라고 생각하며 고려 조정에 충성해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뭣보다 남송에는 남아있는 기반도 없었고, 연락을 주고 받던 친척도 없으니 말이다. 다행이라면 자신의 가장 가까운 벗, 주진 역시 이번 사신단에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한 진웅의 속내와는 다르게 뱃길은 무척이나 평탄했다. 순풍을 만나 일본쪽을 향해 가다가 뱃길을 돌려 돌아갔음에도 탐라에서 출발한지 닷새만에 남송 명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명주에 도착한 진웅과 주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신의군은 명주에 도착하자마자 상상하지 못한 최악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바로 지난 수년간 양양성을 지키던 여문환이 결국 몽고에 투항했고, 양양성 공방전은 남송의 패배로 끝났다는 것.



좌승선 유존혁이 중산국에서 남송 상인으로부터 양양성이 건재하단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채 보름이 되지 않았으니, 유존혁이 만난 남송 상인 역시 중산국에 머물 당시에는 양양성이 정복되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불운이 겹쳤고, 이순공과 진웅, 주진 같은 장수들은 물론이고 함께 온 나머지 별장들과 병사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순공과 진웅은 병사들을 이끌고 왔기에 다음날 명주의 지현사(知縣事, 현령)를 찾아가 자신들이 고려군이고 남송 조정에 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왔음을 알렸지만, 지현사는 바쁘다는 이유로 직접 만나주지도 않았다.



간곡한 부탁 끝에 겨우 만난 현위(縣尉)는 지금 고려군을 챙길 여유가 없으니 조정으로의 첩장은 직접 전달하던지, 아니면 조용히 머물다 돌아가라고 문전박대를 했다. 다만 현위는 병사들이 함선에서 하선하지 않는 조건으로 명주항에 보름동안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양양성의 함락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명주의 상권은 유지되고 있었고, 진웅은 중산국으로 보내고 남은 것 중 챙겨온 종이와 삼베를 싼값에 팔아 신의군이 보름 정도 명주에 머물 수 있을 정도의 빠듯한 금전을 마련했다. 그러나 양양성이 함락 당한 마당에 명주에서 보름동안 좌승선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탐라에 빈손으로 다시 돌아가자니 남송과의 화친이라는 계책을 낸 장본인이 자신이기에 진웅에게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그런 고민을 알고 있는지 그날 밤, 주진이 승병을 이끌고 있는 승병장 원희(元禧)와 함게 선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을 보니 진웅을 벌떡 일어나 반갑게 주진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어서 오게. 어서오십시오, 스님."



"나무아미타불."



진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진에게 물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 노릇이란 말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탐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나?"



"당장 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네. 아직 보름의 말미가 남아있지 않나? 그리고 양양성이 함락됐다고는 하나 남송이 멸망한 것도 아니고 말일세."



"병사들은?"



"시무룩한 자들도 있고, 빨리 탐라로 다시 돌아가자는 자들도 있네. 반대로 그간 하루도 발 뻗고 단 잠을 청해보지 못했던지라 당장 전투에 나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는 자들도 있고. 뭣보다 이순공 장군이 계시니 잘 판단하시겠지. 혼자 너무 고민하지 말게."



그러자 진웅이 이번에는 승병장 원희에게 물었다.



"스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승병장 원희는 지눌국사가 창건한 여수현 흥국사 출신의 사장(寺匠)으로 당시 고려의 수많은 사찰들은 도적으로부터 사찰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장하고 절을 지켰는데, 거란이나 여진, 그리고 몽고의 침략에 맞서 최전선에서 가장 격렬히 싸운 것이 바로 이 승병들이었다. 왕권을 농락하는 최씨 정권에 항거하여 가장 많은 반란을 일으킨 것 역시 교종의 사원들이기도 했다.



몽고 침략 당시 흥국사에는 승병을 양성하는 훈련장이 있었고, 또한 진도 삼별초와 호응하여 남해안의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삼별초 항쟁 당시 여몽연합군의 우선 척결대상이 되기도 했는데, 여몽연합군이 진도를 토벌하기 전 후방에서의 위협을 없애기 위해 흥국사를 먼저 공격했고, 이때 흥국사의 삼백여명에 이르는 승병이 끝까지 저항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김방경의 공격으로 흥국사는 불타올랐고, 겨우 살아남은 원희를 비롯해 수십여명의 승병들이 진도로 합류하여 신의군으로 편성되었으며 이후 탐라로의 여정까지 함께 하게 된다.



승병장 원희는 금장저가 달린 대부(大斧, 큰 도끼)를 메고 다녔는데 이러한 도끼는 원희 뿐만이 아니라 승병들이 가장 선호하던 무기였다. 승병들은 원래 산속의 사찰에서 생활하다보니 장작을 패거나 나무를 벨 일이 많았는데 그와 동시에 산적의 습격에서 바로 대응하기에 그만한 무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무게가 있어 체력을 단련하기에도 그만이었다.



일반인들은 두 손으로 휘두르기도 힘든 거대한 도끼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용력의 승병들을 보고 있노라면 금강역사의 화신 그 자체였고, 특히나 그 가운데서도 적진 한복판에서 맹렬히 휘두르는 원희의 도끼술은 가히 고려 최고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일부는 원희를 가리켜 제석천(帝釋天)의 화신이라 했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평소 원희는 지극히 차분한 성격으로 수행에 전념했으며, 남는 시간에는 다른 승병들보다 두 배는 큰 도끼로 나무를 베며 몸을 갈고 닦는데 열중했다.



"목우자(牧牛子, 보조국사 지눌의 자호)께서는 평소 인인지이도자(人因地而倒者) 인지이기(因地而起)라 하셨습니다. 땅에서 넘어졌으면 다시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말씀이지요. 불운함이 원망스럽고 막막하신 마음은 이해하나 명석하신 섭랑장께서는 분명 불운을 딛고 일어날 방법을 찾아내실 겁니다.



너무 많은 걱정과 고민은 번뇌를 가져오는 법, 당장 임안(臨安, 남송의 수도이며 지금의 중국 항저우)이 점령된 것이 아니니 잠시 고민을 내려놓고 쉬시지요. 게다가 거리가 있으니 당장 몽골군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오늘밤만이라도 휴헐(休歇, 마음을 쉬고 또 쉰다는 의미로 지눌의 십절목 가운데 두번째 항목)하심이 어떠신지요."



하긴 매일 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여원연합군 때문에 발 뻗고 편히 잠든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 진웅이었다. 명확한 해답은 나온 것은 아니었으나 주진과 원희의 위로에 조금은 마음의 위안을 얻은 진웅이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히 제 걱정을 옮겨 드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저도 섭랑장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두 사람이 막사를 나가고 진웅은 잠자리를 청했다. 원희의 조언 덕분이었을까? 흔들리는 선상에서 걱정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진웅은 자리에 눕자마자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오랜만에 단잠이었는지 진웅은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 뭔가 분주하게 오가는 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워 밖을 나가보니 함선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병사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가? 어째서 출항 준비를 한단 말인가?"



"장군께서 탐라로 돌아갈 터이니 속히 출항을 준비하라 이르셨습니다."



"뭣이라?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저희 배 뿐만이 아닙니다. 나머지 배들도 정신 없습니다. 아침이 되자마자 장군께서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깨우지 않았나?"



"장군께서 섭랑장을 일부러 깨우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당신에게 오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뒷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던 자신의 배에서 내려 대장선으로 달려갔다. 이미 그 곳에는 주진과 원희도 함께였다.



"장군,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탐라로 돌아간다니요?"



"군사께 따로 지시를 받았네. 명주에 도착하여 상황이 좋지 않거든 바로 귀환하라고 말일세."



"왜 미리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이순공의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며 대답했다.



"자네... 도가 지나치군. 군사에게 직접 따로 받은 지시라고 하질 않았나? 지금 자네는 상관인 내가 자네에게 보고 하지 않았다 문책이라도 할 셈인가?"



"그런 것이 아니오라..."



"더 이상 토 달지 말게. 이미 여기 두 사람의 간청도 들을 만큼 들었으니."



아마도 자신이 없는 동안 주진이나 원희 역시 이렇게 빨리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이순공을 설득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이순공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럼에도 진웅 역시 끝까지 지지 않았다.



"첩장만이라도 전달해야 합니다."



"못 들었는가? 양양성이 함락됐다는 소식을? 남송은 운명은 우리군보다도 더한 위기이네. 자네는 정녕 남송이 우릴 도울 여력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그냥 이렇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말씀입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이 사신단은 삼별초 최정예병들로 이뤄져 있네. 그만큼 탐라의 병력이 부실해졌단 소리지. 그 사이에 몽고놈들과 함께 조정에서 쳐들어오면 어쩔 셈인가? 한시가 급하네."



이순공의 말이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진웅은 어쩔 수 없이 썩은 동앗줄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좌승선께서 명주로 오시다가 엇갈리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 그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네."



"탐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맞네. 그럴 거야. 하지만 자네 말처럼 좌승선이 중산국에서 명주로 오다 엇갈릴 수도 있으니 누군가는 남아서 우리 중에 남아서 누군가 좌승선을 기다려야겠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아무 말도 없는 진웅이 마침내 대답했다.



"제가 남겠습니다."



"자네가?"



"네. 남송으로 첩장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 애초에 저였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요."



"음... 그리 하게. 다만 탐라로 돌라왔을 때 즉각 복귀하지 않은 책임을 물을 수도 있네만..."



"달게 받겠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군사 김혁정이 예상한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애초에 김혁정은 남송의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즉각 귀환하라고 이순공에게 따로 지시를 하달했고, 그와 함께 진웅이 혹 남송에 남고자 하면 내버려 두고 오라는 추가 지시가 있었다.



그간 항파두리성과 환해장성 보수에 탐라인들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하는 것에 신의군 출신들은 지속적으로 불만을 드러냈고, 특히나 노비나 천민 출신으로 삼별초에 가담한 자들의 불만은 더욱 컸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 별장 진웅이었다. 신의군과 탐라인들 사이에서 진웅에 대한 신망이 높아지는 만큼 김통정을 비롯한 다른 장수들에게 진웅은 반대로 점점 껄끄러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좋네. 섭랑장과 잠시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자리 좀 비켜주겠나? 스님도 잠깐 나가 계시지요."




"존명!"




"나무아미타불."



두 사람이 나가자 이순공은 탁자 위에 자물쇠 달린 궤짝 하나와 첩장, 그리고 얼마 전 삼베, 종이와 바꾼 돈주머니를 올려두었다.



"챙기시게."



"이게 다 무엇입니까?"



"보면 모르나? 여비와 진상품, 그리고 첩장이네. 여비는 진상품 일부를 처분하여 탐라에 가져갈 식량을 사고 남은 것이야. 여기 머무는 동안 자네가 쓰고 진상품 나머지는 좌승선께서 도착할 때까지 일단 잘 맡아두게. 혹 좌승선께서 중산국과의 일이 잘 풀려 나와는 다르게 그래도 남송 조정에 첩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 않나?



뭣보다 무슨 사정이 생겨 명주로 오는 것이 더 늦어지면 남은 진상품은 자네들이 돌아올 뱃편을 구할 때 요긴하게 쓸 수도 있고 말일세. 웃돈을 어지간히 주지 않고는 탐라까지 오지 않을 테니 말일세. 함선을 한 척 남기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그럼 수십의 병력이 이 곳에 남아야 하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네."



이순공은 군사 김혁정의 지시에 따르기는 했으나 평소 진웅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본인도 모르게 배제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모든 책임이 진웅에게 향할 것이고 일개 사병으로 강등 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일부러 병력을 남송으로 빼돌리려 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처형을 당할 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하지만 진웅의 성격상 본인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주었다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연히 지겠다며 어떻게든 탐라로 돌아갈 생각부터 할테니 이 이야기는 원희에게 따로 일러둔 이순공이었다.



"목숨을 걸고 잘 지키겠습니다."



"나가 보게."



병사들을 시켜 남송 조정에 진상할 궤짝을 대장선에 내린 진웅은 자신의 선실로 돌아가 옷을 제대로 챙겨 입은 뒤 무기를 챙겨 다시 함선에서 내려왔다. 궤짝을 지키던 병사 뒤로 주진과 원희, 그리고 원희를 따르는 몇몇 승병의 모습이 보였다. 진웅은 자신을 배웅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웅은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미안하네. 죄송합니다, 스님."



"무슨 소린가? 우린 자네와 함께 남을 거라네? 원희 스님을 비롯해 비롯해 여기 다른 스님들도 함께 남겠다고 하셨고."



"그게 무슨 소린가?"



진웅이 짐을 챙겨 배를 옮겨타자마자 진웅과 원희가 다시 이순공을 찾아와 간절히 부탁했다.



"섭랑장만 이리 혼자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도 함께 남겠습니다. 사장(승병장)께서도 그리하겠다고 하셨고요."



이순공은 속으로 군사의 예측에 다시 한번 놀랐다. 진웅이 남겠다고 하면 주진과 원희 또한 남송에 머물겠다고 할 것이니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 군사의 마지막 지시였다. 김통정과 김혁정에게 주진이나 원희는 진웅만큼이나 불편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순공은 군사의 지시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으나, 그럼에도 진웅 혼자가 아닌 주진과 원희가 함께 남는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그럼에도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는 이순공이었다.



"자네까지 대체 왜 그러나?"



그러자 옆에 있던 원희가 대신 답했다.



"장군께서 허하여 주시지요."



"스님도 정녕 남으시겠다는 겁니까?"



"보타산(보타락가산의 줄임말로 오대산, 아미산과 함께 중국 불교 3대 도량)이 코 앞인데 나라의 안위가 급하다고는 하나 어찌 승려된 자로서 관음보살을 뵙지 않고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게다가 두 사람 다 성미가 불 같으니 이런 땡중이라도 같이 있어야 말릴 것이 아닙니까?"



원희의 말에 이순공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다시 점잖게 표정을 고친 이순공이 말했다.



"정 그리하시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별장 주진."



"존명."



"기어코 남겠다고 하니 그 청을 들어주지. 하지만 자네와 섭랑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병사들은 데려갈 수 없네. 그랬다가 죄다 탐라로 돌아가지 않고 남송에 남겠다고 하면 안되니 말일세. 나 혼자 돌아갈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때 원희가 말했다.



"승군(僧軍)은 장군의 통솔을 받지 않고 제 휘하에 있으니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따로 군사의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잠시 이순공은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삼별초에게 숫자로는 큰 병력은 아니었으나 남은 승병은 아주 귀한 전력이었다.



글자를 떼지 못한 자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승병 대부분은 읽고 쓸 줄 알아 명령을 전하거나 서신을 작성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였으며,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위무하며 사기를 북돋아주는 동시에 엄청난 무력을 지닌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김방경이 진도를 정벌하기 전 흥국사부터 공격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승병들이 단체로 원희를 따라 나선다면 당장 탐라로 돌아갈 함선의 병사들은 물론이고 탐라에 남은 병사들도 승병이 모두 떠났다고 하면 자신들을 버린 것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비록 군사의 지시가 있다고는 하나 원희는 승병들의 압도적 신뢰를 받는 승병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이순공의 표정을 보고 무슨 고민인지 알아챈 원희가 덧붙였다.



"모두 데려가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희 셋만으로는 부족한 듯 하니 추가로 셋만 더 추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 만취해 낯선 명주땅에서 싸움이라도 벌이면 저희가 둘씩은 붙어서 뜯어 말려야 겨우 말려지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진웅이나 주진이 성정이 과격하거나 주사가 심한 것은 절대 아니었고 원희는 어디까지나 이순공의 고민을 덜어주고자 농을 덧붙여 한번 더 부탁한 것이었다. 그러자 이순공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그리 하시지요. 셋 뿐이라면 허락해 드려야지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날 정오가 지나자 진웅이 타고 온 함선 다섯 척은 탐라를 향해 출항했고, 진웅과 주진, 원희와 그를 따르는 승병 계심(契心), 혜산(慧山), 운암(雲巖) 셋까지 달랑 여섯 사람이 남송 명주에 남겨졌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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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기연(奇緣) (2) 23.07.10 64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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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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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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