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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4,699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작성
23.07.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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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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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강만리(江萬里)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당중기가 물러나자 주진은 자신이 여기 온 이유이자 부탁하고자 했던 것을 문천상에게 물었다.


"첩장도 조정에 전달했으니 이제 고려로 돌아갈까 합니다. 하지만 명주에서는 도저히 고려로 갈 선박을 구할 수 없어 형님께 부탁을 드리고자 이리 찾아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해운(海雲, 포수경)에게 해동의 병사들을 데려올 함선을 마련해달라는 전갈을 보내두었네. 자네들이 돌아갈 배편도 같이 부탁했지. 아마 빠르면 사나흘 정도 후에 기별이 올 게야."


"감사합니다, 형님."


"모쪼록 고려로 돌아가서 일이 잘 풀려야 할 텐데...황명이 제대로 내려왔을지도 걱정이고."


"저도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칙서 없이 저희쪽 장군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을테니까요."


"확답 없이 해운은 배를 움직이지 않을 거네. 그리고 문제가 또 있어."


"무엇입니까?"


"몽골 조정에도 우리가 심은 간자들이 있어 중요한 소식들을 수집하는 중인데 이미 작년 말 홀필열(忽必烈, 쿠빌라이)이 고려 조정에 조서를 보냈다는 군. 군사들을 모으고 선원들을 선발하라고 말일세. 또한 이미 지난 달에 훈둔(忻都, 힌두)를 토벌 지휘관으로 삼고 고려로 보냈다고 하네."


"시간이 얼마 없군요."


"이런 이야기를 하긴 그렇지만 최악의 경우엔 이미 토벌이 시작되었을 수도 있네."


"..."


"양양이 함락되고 몽골놈들이 바로 장강을 따라 내려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탐라만 정벌하고 나면 일본을 칠 것이라 하네."


"일본 말입니까?"


"그렇다네. 갑자기는 아니야.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지. 원래는 일본을 자기들 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는데 일본이 조공을 거부했다 들었네. 결국 홀필열은 일본 정벌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실제로 정벌에 나설 거란 말씀입니까?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굳이 양양성이 함락된 마당에 어째서..."


"몽골군은 양양성으로 포위하기 위해 유정 그 자를 시켜 수군을 훈련시켰지만 실제로 바다에서 제대로 된 전투를 치른 적이 없거든. 그나마 우리가 몽골보다 나은 것이 수군뿐이기도 하고."


"수군을 훈련시킬 속셈이군요."


"맞아. 그리고 정벌에 앞서 자네들이 차지한 탐라부터 치겠지. 고려를 완전히 복속시켜야 일본 정벌에 나설 수 있을 테니 말일세."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로서는 군을 정비할 시간을 번 셈이지만 아마 일본 정벌에 나설 물자나 병사, 선박을 고려에서 준비해야 할 것일세. 당연히 고려의 백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


"이런 사실을 본진의 장수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속히 알려야 할 터인데..."


"탐라에서 몽골군을 상대로 버티긴 힘들 걸세. 결국 일본 정벌도 진행될 테고... 지금 상황에서는 남은 병력을 데리고 남송으로 건너 오는 것이 최선이야."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진웅 그 친구를 찾는 대로 서둘러 돌아가야겠습니다."


"일단 자네들이 돌아갈 배를 구해 명주로 보낼 테니 진아우를 찾는 즉시 명주로 가서 거기서 기다리게. 청월루로 사람을 보내겠네."


"그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선사께서도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그리 하겠습니다."


"노파심에 이야기해두는 것이네만 내일 당문과 움직일 때 주문공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는 가급적 꺼내지 말게."


"연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역시 모르고 있군. 주문공과 같은 시대에 여정 당중우라는 당문 출신의 고관이 있었네. 그런데 여정이 태주지주 있던 시절 주문공의 탄핵을 받고 쫓겨났다네.


두 분은 사실 그 전부터 오랜 정적이었네. 정학(程學)을 따르는 주문공과 소학(蘇學)을 따르던 여정은 이전부터 사사건건 부딪혔지. 그러다 주문공께서 절동(浙東, 지금의 절강성)의 차염공사(茶鹽公事)로 임명돼 태주(臺州)를 순시하다 태주사람 여럿이 얼마전까지 태주지주로 있었던 여정의 죄를 고하였네.


당시 여정은 재상이던 왕준(王準)과 동향 출신인데다 사돈까지 맺고 있었기에 권력이 하늘을 찔렀는데 주문공께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죄명을 낱낱이 적어 상소를 올렸지.


위법교민(違法擾民),탐오음학(貪污淫虐),축양망명(蓄養亡命),투도관전(偷盜官錢), 촉한최세(促限催稅) 등의 죄가 적혀있었는데 당중우는 모든 죄를 부인하며 반발했고, 주문고잉 증좌를 얻기 위해 잡아들인 관기 엄예(嚴蘂) 역시 모진 고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네.


당시 이 사건을 추가로 조사하던 악림(岳霖, 악비의 아들)은 결국 그녀에게 죄가 없음을 알고 풀어주었지. 그럼에도 주문공은 무려 6차례나 상소를 올리며 여정의 탄핵에 앞장 섰고, 당시 강서제형으로 있던 여정은 결국 파면됐네. 그리고 공석이 된 강서제형은 주문공이 임명됐고 말일세.


자네 조상을 욕 보여 미안하네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당중우를 비롯해 당문의 사람들이 주문공을 끔찍히 싫어했네. 주문공이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하니까.


이미 백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그 후손들끼리 반목할 필요는 없지만 여저히 당문은 자네 가문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네. 그러니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야."


"당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 하군요. 조부께서 그런 이야기는 안 해주셨습니다. 자칫 실수할 뻔 했는데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문천상의 사부이자 호남안무대사(湖南安抚大使)로 문천상의 상관이기도 한 강만리(江萬里, 1198~1275)였다.


"손님이 계셨구나. 선사도 오랜만에 뵙소."


세 사람은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고, 문천상이 강만리에게 주진을 소개했다.


"일전에 말씀드린 해동에서 온 아우입니다."


"주진이라 합니다."


"이야기 많이 들었소. 주문공의 후예라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자 문천상이 주진에게 말했다.


"사부님께서도 백롱동서원(白鹿洞書院) 출신이시라네."


"아, 그렇습니까? 백록동서원이야 고려에서도 유명합니다."


"사부님은 몽곡 임기소(林夔孙, 주희의 제자) 선생의 제자이시기도 하지. 고로 주문공의 사손이시네."


그러자 주진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세상이 참으로 좁습니다."


백록동서원은 중국 최초의 서원으로 남송 조정에서 후진 양성을 위해 직접 운영했으며 주희가 이 곳에 강연하며 백록동서원교칙을 만든 덕에 전국 최고의 서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말씀들 나누시게."


"하실 말씀이 있어서 오신 것 아닙니까?"


"아니다. 그냥 잠깐 얼굴이나 볼까하고 왔는데 봤으니 되었다."


강만리가 나가자 문천상의 낯빛은 어두워지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주진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사부께서는 내겐 아버지와 다름 없네. 그런데 이 제자가 모자라 여전히 사부의 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부께는 편안한 말년을 보내지 못하시니 마음이 편치 않을 수 밖에... 며칠 전에는 사부님을 뵈러 갔더니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치고 계셨네. 그 모습을 보고는 정말 가슴이 미어져 그래도 처소로 돌아와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네."


강만리는 함순 5년(1269년) 좌승상에 오르는데 사미원, 가사도 등 남송 말 재상들이 간신으로 가득한 시절에 청렴함을 지키며 백성을 살필 줄 알고 황제에게 직언을 하는 유일한 재상이었다.


강만리가 좌승상에 오를 당시 가사도는 우승상에서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로 승진하는데 좌우승상보다 높은 자리에 군권까지 쥐게 되었고, 평장군국중사에 오른 가사도는 이후로도 여전히 자신을 승상이라 칭했기에 좌우승상은 허울뿐인 자리로 전락한다.


가사도는 문천상을 끔찍히도 싫어했기에 그의 사부인 강만리 역시 굉장히 못마땅해 했고, 그가 좌승상에 오르자 별의별 꼬투리를 잡아 괴롭혔다. 결국 염증은 느낀 강만리는 고향으로 돌아와 백로주서원을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니 백로주서원은 17명의 장원과 3천명의 진사를 배출한 중국 최고의 서원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러다 결국 양양성이 함락되고 남송이 멸국의 위기에 직면하자 황실에서 그를 호남안무대사로 임명하고 호남 지역을 맡긴 것이었다. 허나 이미 강만리는 일흔을 훌쩍 넘긴 노구의 몸이었고, 총기도 기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다만 수천의 제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똑똑하고 강직하며 그래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애제자 문천상이 가사도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남송 황실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며 조금이나마 제자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안무사로 부임한 것이었고, 실제로 실무는 모두 문천상에게 맡겨둔 상태였다.


덕우(德祐) 2년(1275년) 악주와 양주가 연이어 점령당하고 강만리의 저택까지 원나라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강만리는 포로로 잡히는 것을 거부하고 임안을 향해 절을 한뒤 스스로 연못에 뛰어드니, 그의 절개를 기려 남송 황실은 그를 익국공(益国公)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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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가사도(賈似道) (3) 24.02.28 17 0 8쪽
57 가사도(賈似道) (2) 24.02.21 16 0 10쪽
56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2 0 8쪽
55 해동제일검 (2) 24.02.20 19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2 0 11쪽
53 배후(背後) (5) 24.02.16 23 0 8쪽
52 배후(背後) (4) 24.02.16 24 0 8쪽
51 배후(背後) (3) 23.08.08 44 0 10쪽
50 배후(背後) (2) 23.08.03 31 0 9쪽
49 배후(背後) (1) 23.08.02 35 0 11쪽
48 귀환(歸還) (6) 23.08.01 32 0 14쪽
47 귀환(歸還) (5) 23.08.01 36 0 13쪽
46 귀환(歸還) (4) 23.07.31 31 0 11쪽
45 귀환(歸還) (3) 23.07.28 36 0 11쪽
44 귀환(歸還) (2) 23.07.27 37 0 11쪽
43 귀환(歸還) (1) 23.07.26 41 0 11쪽
42 연심(戀心) (3) 23.07.24 36 0 12쪽
41 연심(戀心) (2) 23.07.20 39 0 13쪽
40 연심(戀心) (1) 23.07.18 43 0 12쪽
» 강만리(江萬里) 23.07.13 46 0 9쪽
38 파촉당문(巴蜀唐門) (2) 23.07.12 46 0 10쪽
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5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4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2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1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1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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