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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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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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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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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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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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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가사도(賈似道) (3)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하지만 송나라의 멸망을 목적으로 한 몽골의 지속된 공격 앞에 양양성은 무너졌고, 가사도는 송나라를 살릴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나쁜 소식은 연달아 날아들었다. 바로 유불선의 수장들이 모여 장안의 삼교맹을 만들었고, 그 배후에 몽골이 있으며 장강 이남의 종파들까지 연이어 삼교맹에 합류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사대부를 극진히 대한 송나라이나 그렇다고 삼무일종의 법난처럼 불교를 심하게 탄압하진 않았다. 허나 소림사를 비롯해 유명 사찰들은 대게 화북에 있던 터라 송나라가 금나라에 화북을 상실한 이후로 불교와의 연결고리는 약해져 있었다. 게다가 이미 도교를 대표하는 전진교는 구처기 이후 아예 몽골에 친화적인 기조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렇다 한들 불교와 도교는 도불 결전 이후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간 화북의 유학자들 역시 불교와 도교를 멀리해 왔기에 유불선이 한데 모여 삼교맹을 만들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가사도였다. 일단 유불선 모두와 척을 질 수는 없기에 삼교맹의 설립을 진정하는 수 밖에 없었으나 그 배후에 다름 아닌 몽골, 그것도 주자의 후예인 주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데다, 장강 이남의 문파들까지 합세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가사도는 골머리가 아파왔다.


더 큰 문제는 백련교를 마교라 칭한 것이었다. 송나라는 백련교를 정식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마교나 반란 세력 취급을 하며 토벌을 하지도 않았다. 백련교가 비밀리에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적어도 혹세무민하는 종교는 아니라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점 커지는 백련교의 세력을 유불선은 못마땅해 했고 삼교맹을 창설하며 백련교를 마교라 공포했으니 삼교맹과 백련교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게다가 송나라 또한 삼교맹이 유불선을 대표함을 인정했으니 삼교맹이 마교나 사파를 토벌하겠다며 장강 이남을 넘어올 가능성 또한 있었다. 가사도의 예상대로 몽골이 삼교맹 창설을 적극 지원한 이유 역시 장강 이남에서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함이었다.


가사도는 그 사이 세가들에게도 하나하나 서찰을 보냈으나 나선 세가는 많지 않았다. 훗날 세가(世家)라는 말이 권문세가를 뜻하는 의미로 달라지나, 당시의 세가라 함은 제후나 왕족, 그리고 이왕삼각의 예법에 따라 우대해준 전대의 왕조를 일컫는 말이었다. 즉, 악왕으로 칭해진 악비, 이왕으로 칭해진 맹공의 가문이 그러했고 서촉의 맹씨, 오월의 전씨, 남북의 유씨를 비롯한 오대십국의 왕조들이 이러한 세가들이었다.


송나라는 이들 세가를 극진히 대해주었지만 반대로 이들 세가 자체의 힘이 너무 커지는 것을 그동안 황실에서 막아왔던 터라 군사적, 재정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지역에서 갖는 영향력을 막대했기에 가사도는 세가들이 항몽에 나서주길 바랬으나 송나라 황실을 돕겠다고 나선 세가는 후주의 황성인 시씨 가문을 비롯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숭의공 시안이 무사히 천주에 도착했으며, 황제의 칙서가 포수경에게 전달됐다는 전서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숭의공 일행을 공격하다 물러났으며, 아마도 동송신이 남긴 광매당이라는 조직으로 추정되며 이미 몽골 편에 선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이미 수차례 광매당의 암살 시도를 겪은 적 있던 가사도는 환관이라면 치를 떨었고 그토록 발본색원 하기 위해 그 흔적을 추적했지만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자들이 사전에 정보를 알고 숭의공 시안을 공격했다는 것은 여전히 황궁에 광매당이 세력이 남아있음을 의미했다.


'쓰레기 같은 것들...'


가사도가 이토록 광매당을 비롯해 환관 세력을 증오하는 이유는 명군의 자질의 충분했던 이종 황제가 몽골의 침략이 이어지는 와중에 동송신을 비롯한 환관들이 황제를 주색에 빠지게 만들었고, 몽골의 침략이 이어지는 와중에 정무를 놓은 황제로 인해 송나라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종 황제에게 후사가 없었기에 양자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조기(曺期, 1240~1274)는 이종의 친조카라는 것을 빼면 황제의 자질이 없는 인물이었다. 가사도를 비롯해 여러 대신들이 조기가 황태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음에도 이종은 고집을 피웠고, 결국 국가의 명운이 달린 상황에서 제대로 글도 떼지 못한 반푼이 황제가 즉위하고 만다.


황제는 정무를 볼 능력이 아예 없는 데다 편전에서 이따금 발작과 같은 소동을 일으켰다. 결국 무늬 뿐인 황제를 보필하며 실질적으로 송나라의 대소사를 결정하게 된 것은 가사도였고, 당연히 반대세력을 가사도를 황제를 쥐고 흔드는 간신으로 매도한다.


다만 황제는 귀뚜라미를 무척 좋아해 소동을 벌이다가도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 진정이 됐고, 귀뚜라미 씨름을 보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기에 가사도는 황제를 보필할때면 아예 가슴에 귀뚜라미를 품고 다닐 정도였다. 다만 황제의 장난감이 된 귀뚜라미의 수명은 채 며칠에 불과했으므로, 가사도는 황제에게 바칠 귀뚜라미를 직접 기르고 있었다.


사실 귀뚜라미 씨름은 황제만이 아닌 송나라 백성들도 즐기는 주요 놀이 중에 하나였고, 황제를 위한 귀뚜라미를 직접 기르던 가사도는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여 귀뚜라미를 72가지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자세히 묘사한 촉직경(促織經)이라는 책을 쓰기도 한다.


촉직경을 쓰자 승상이 귀뚜라미 씨름에 미쳐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소문이 반대 세력에 의해 널리 퍼졌지만 가사도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황제가 귀뚜라미에 미쳤다고 소문이 나는 것보다는 나은데다, 가사도 본인도 자신이 진회와 같은 간신으로 남을 지언정, 송나라 황실을 어떻게든 지켜내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스승 맹공의 유지를 잇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사도가 오후에 황제에게 바칠 귀뚜라미를 고르고 있노라니, 어제 호출한 심복 유사용이 가사도를 찾아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러자 가사도는 목함 상자를 시종에게 가져오도록 했다.


"조심히 문산에게 전하게."


"알겠습니다."


유사용은 목함에 무엇이 들었는지 묻지도 않고 물러났다. 가사도가 건넨 목함에는 호국대장군패(護國大將軍牌)와 황제가 하사한 보도, 그리고 서찰이 들어있었는데 이는 척을 진 문천상을 끌어들이기 위한 비장의 수였다. 이 호국대장패를 소유한 자에게는 각성의 병사를 직접 지휘할 수 있었고, 공식적으로 병사를 모집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문천상은 따로 군사를 징집할 권한을 얻는 셈이었다.


스승인 맹공이 이 호국대장패의 주인이었고, 왕견과 하귀에게 이어져 내려오다 일흔이 넘은 하귀가 호국대장패를 군권을 쥔 가사도에게 반납하며 주인이 따로 없는 상태였다. 가사도가 문천상에게 호국대장패를 넘긴 이유는 여전히 문천상이 괘씸했지만 임안이 포위되거나 회서를 잃게 되는 상황에 처하면 각지의 병사들을 끌어모을 만한 명망을 가진 이는 문천상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환관 하나가 황제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황급히 달려와 아뢰자 가사도는 귀뚜라미를 챙겨 황제의 침소로 향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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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도(賈似道) (3) 24.02.28 18 0 8쪽
57 가사도(賈似道) (2) 24.02.21 16 0 10쪽
56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3 0 8쪽
55 해동제일검 (2) 24.02.20 19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2 0 11쪽
53 배후(背後) (5) 24.02.16 23 0 8쪽
52 배후(背後) (4) 24.02.16 24 0 8쪽
51 배후(背後) (3) 23.08.08 44 0 10쪽
50 배후(背後) (2) 23.08.03 31 0 9쪽
49 배후(背後) (1) 23.08.02 35 0 11쪽
48 귀환(歸還) (6) 23.08.01 32 0 14쪽
47 귀환(歸還) (5) 23.08.01 37 0 13쪽
46 귀환(歸還) (4) 23.07.31 32 0 11쪽
45 귀환(歸還) (3) 23.07.28 37 0 11쪽
44 귀환(歸還) (2) 23.07.27 38 0 11쪽
43 귀환(歸還) (1) 23.07.26 41 0 11쪽
42 연심(戀心) (3) 23.07.24 36 0 12쪽
41 연심(戀心) (2) 23.07.20 39 0 13쪽
40 연심(戀心) (1) 23.07.18 44 0 12쪽
39 강만리(江萬里) 23.07.13 46 0 9쪽
38 파촉당문(巴蜀唐門) (2) 23.07.12 46 0 10쪽
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6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4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3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1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2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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