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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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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3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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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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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해동제일검 (2)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순양검을 꺼내든 장전일을 보며 주진이 말했다.


"누굴 가르치는데 큰 재주는 없으나 내 전장에서 여지껏 사지 멀쩡히 살아남은 방법을 전해주고 싶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장도사 역시 사문에서부터 수많은 비무를 치러왔을 거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장도사의 재능을 감안하면 비무는 대부분 승리했을 테고."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사문을 박차고 나와 추적을 피할 때도 늘 익숙한 검법을 상대했을 테지."


"그렇지요."


"그럼 몽골군이나 출신이 다른 무림인들을 실전에서 상대한 적은 있나?"


"몽골군들은 도사들은 손대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실제로 맞딱드린 적도 없고 말이지요. 다른 문파 출신과 비무를 벌인 적은 있습니다만 생사를 두고 결투를 벌인 적은 없습니다."


"화적떼를 상대해 본 적은 있나?"


"화적들을 마주친 적이야 두 번 정도 있지만 제가 나서기도 전에 취암선사께서 정리하셨지요."


"그렇구만. 말이 너무 길었으니 바로 불문곡직(不問曲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고려식 사자성어)하고 일단 검을 맞대어 보세. 자세를 잡게. 내가 선공을 날리면 자네가 방어를 하는 것이네. 자네는 지금부터 나를 몽골 오랑캐나 간악한 화적떼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상대해주게."


"흠... 그리하겠습니다."


그 말에 장전일이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혼원의 기를 모아 순양검을 잡고 선인지로(仙人指路)의 자세를 취하려는 찰나에 주진이 장전일의 무릎을 향해 달려들었고, 놀란 장전일의 자세가 흐트러져 뒤로 주춤하자 주진을 장전일의 무릎을 그대로 잡은 채로 몸을 힘껏 앞으로 기울였다. 난데 없는 주진의 행동에 장전일은 놀라 물었다.


"어찌 이러십니까?"


그러자 장전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웃으며 말했다.


"비겁하다 말게. 내 분명히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하지 않았나? 여기가 전쟁터였으면 이미 자네는 목숨이 위태로웠을 거네. 자네는 지금 몽골 오랑캐나 화적떼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네."


그러자 장전일이 평소답지 않게 약간은 화가 나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자세를 잡았다.


"가르침이 이런 가르침일 줄 몰라 잠시 당황했을 뿐입니다. 같은 수가 두번 통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주진이 웃으며 청룡검을 검집에서 꺼내들다 주춤하더니 다시 검집에 칼을 넣으며 말했다.


"똑똑한 자네라면 응당 그럴 테지. 잠시만 기다리게."


주진은 마침 숙소 밖을 오가는 시종 하나에게 목검을 부탁했고, 잠시 후 시종이 목검 하나를 챙겨오자 주진은 목검을 받아들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어디까지나 방법을 가르쳐주는 거니 나는 이 목검으로 하겠네. 결코 장도사를 무시하거나 내 실력을 과신해서는 아니네. 자네의 순양검은 날이 서있지 않으나 이 검은 쓸데없이 예리하여 자네의 소중한 검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겠네. 생사결도 아닌데 누구 하나라도 다치면 큰 일 아닌가?"


"오히려 주대협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리한 청룡검에 자신의 순양검이 상하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장전일은 목검을 집어든 주진에게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장전일이 자세를 잡자 주진이 조금 전처럼 장전일의 무릎을 향해 쇄도했고, 장전일은 예상한 듯 순양검법 5식 태산압정(泰山壓頂)으로 하단을 방어하며 응수했다. 주진의 검이 막혔다고 생각하는 찰나 주진의 왼손에서 고운 흙이 장전일의 얼굴을 향해 뿌려졌고, 장전일은 놀라서 얼굴을 가리며 탄식했다. 조금 전 시종에게 목검을 부탁하며 고운 흙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후에도 검을 맞댈 때마다 주진의 치졸하기 그지 없는 선공이 이어졌다. 양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려고 하지를 않나, 어느새 입에 머금었는지 작은 나뭇가지를 장전일의 얼굴을 향해 뱉질 않나 말 그대로 도저히 무림인이나 예법을 아는 자라며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격들이 이어졌다.


허나 장전일은 이런 대결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그 동안 늘 전진의 검법으로 전진의 형제들만 상대했던 장전일에게 주진의 이런 치졸한 공격들은 실제로 소중한 가르침이 되었다. 처음에 당황했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주진의 공격이 어떤 식으로 들어올지 오감을 곤두세운 장전일의 모습을 보며 주진은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 짓을 세번 정도 하면 죄다 역성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던데 장도사 자네는 다르군."


"주대협이 저를 골탕 먹이려 이러시는게 아니라 진정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이니까요. 가르침을 주시는데 어찌 제가 주대협께 화를 내겠습니까?"


"사실 장도사는 그간 사문의 검법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데다 비무 이외에 전투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 이전에 부하들을 가르치던 방법을 그대로 써봤네."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순양검을 거둬 검집에 넣는 장전일을 보며 주진이 물었다.


"설마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 고작 자네에게 화적떼 상대하는 방법이나 알려주고자 이리 자네를 붙잡았을 리 없지 않은가?"


"아... 그렇습니까?"


"여태껏 내가 실컷 공격했으니 이제 자네가 공격해 보게. 실전이라 생각하고 가진 실력을 다 보여줘도 되네."


"알겠습니다."


장전일은 자신보다 몇 수 위의 주진에게 이길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실력 차는 분명하지만 자신이 그간 걸어온 검의 길에 자부심도 있었고, 수련 또한 게을리 한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장전일은 태산압정에 이은 봉황점두(鳳凰點頭)의 초식을 펼치며 순식간에 주진을 향해 돌진했다. 주진이 쌍수로 돌진하는 검을 쳐내자 장전일은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연이어 순양검법을 전개해 나갔다.


허나 주진은 외수로 날아오는 검은 번번이 쌍수로 쳐냈고, 장전일이 힘을 다해 양손으로 내려치거나 올려 베는 검은 힘을 빼 자연스레 흘러넘겼다. 주진은 장전일의 검을 쳐내거나 제치거나, 흘릴 뿐 반격은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장전일은 자신의 검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종래에는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주진의 검이 자신의 검에 먼저 찰싹 붙어 검로를 바꾸는 지경에 이르자, 장전일은 더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검법을 멈추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뼈절이게 주진과 자신의 격차를 실감하는 장전일이었다.


"그야말로 천연지차(天淵之差, 하늘과 땅 차이)로군요."


"아닐세. 장도사와 나는 사실 그렇게 많은 실력 차이가 나지 않네. 실전 경험의 차이지. 다만 자네의 검로는 그 성품만큼이나 정직하고 그러니 변초를 구분해 내기 쉽거든. 일전에 자네의 검법을 봐두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 초식이 일정하게 되풀이되는 문제가 있네."


주진의 말처럼 순양검법 안에 자신의 검술이 갇혔다는 것을 최근 들어 느끼고 있는 장전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이전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실전 없이 너무 오래 하나의 검법만 파면 생기는 문제지. 내가 아까 자네의 검은 붓과 같다고 한 말 기억하나?"


"네."


"자네의 그 순양검법을 창안하신 분은 나보다 훨씬 윗줄의 고수일테니 감히 내가 평가하긴 그렇네만 애초에 실전에서 활용할 목적이라기보다는 도교의 이치, 즉 음양오행의 원리를 검법에 담고 있다 보여지네. 그래서 내가 붓과 같다고 한 것이고."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허나 검의 본질은 무엇인가? 정녕 붓으로 쓰기 위함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검 본연의 목적을 물었네."


"음...검이란 원래 무엇인가를 찌르거나 베기 위함이죠."


"맞아. 베고 찌르는 것이지. 순양검법조차도 도교의 원리를 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탐욕과 번뇌 같은 것들을 베고, 찌르기 위함이라 생각하네. 허나 전쟁터에서 베고 찌를 것은 딱 하나 뿐이야. 바로 눈 앞의 적이지."


"..."


"이 베고 찌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막기네. 대결에서 항상 선공을 날릴 수야 없는 노릇이고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야 자신의 공격 또한 적중시킬 수 있으니 말이야. 단, 막는다는 것이 단순히 상대의 검을 자신의 검으로 막는다는 소리는 아니네. 상대의 검을 쳐내고 제치고 흘리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지."


이미 주진의 검을 맞댄 장전일의 이해는 빨랐다.


"주대협처럼 찰검(擦劍)의 경지에 이르면 상대의 검로마저 바꿀 수 있게 되는군요."


"자네의 검에 날이 없고, 목숨이 달린 생사결이 아니니 쉬이 가능했지 실전에서는 그리 쉽지 않네. 나도 완벽히 완성하지 못했고. 그래도 배우고 싶다면 원리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네."


"어찌 마다하겠습니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진웅에게서 진가권을 전수 받은 장전일은 이후 주진으로부터 이름조차 없는 실전 검법을 전수받게 된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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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2 0 8쪽
» 해동제일검 (2) 24.02.20 19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2 0 11쪽
53 배후(背後) (5) 24.02.16 2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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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5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4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2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1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1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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