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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4,655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작성
23.08.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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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배후(背後) (1)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이야기를 들은 진웅은 중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큰 일 해주었다. 우리 모두 네게 목숨을 빚진 셈이다."


"아닙니다. 대협들께서 남아주셨기에 제가 목숨을 건진 것이지요. 아니었다면 제가 먼저 가장 죽은 목숨이었을 텐데요."


"겸손 떨 것 없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으마."


호흡을 가다듬은 주진이 안심할 때가 아니라는 듯 일행에게 말했다.


"노인장께서 앞 뒤로 수적 떼가 물길을 막고 있다 하였는데 아무래도 같은 일당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자 남궁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대로 복주까지 가면 좋으련만. 노인장, 하나 여쭙시다. 강 건너는 어디로 연결되오?"


"숭탄포(嵩滩浦)라는 작은 포구가 있는데 길을 따라 하루 남짓을 남동쪽으로 가면 민후현(闽侯县)이 나오지요. 거기서 복주까지는 걸어서도 두 시간이면 닿고요."


"배를 타면 좋으련만...어쨌든 숭탄포 앞에 우리를 내려주실 수 있겠소?"


"흠... 수적들이 바로 그 아래 있어 위험할 듯 싶은데 어디 한번 가 봅시다."


그때 함선 한 척이 자신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노를 저어오는 것이 보였고, 이런 속도라면 일각이 채 되기 전에 맞닥뜨릴 상황이었다. 주진의 말대로라면 수적이거나 복면의 괴한들과 같은 무리가 분명했다. 남궁현은 급히 노인장에게 소리쳤다.


"빨리 뭍으로 배를 대시오!"


이미 일행 가운데 최고수인 네 사람의 기력이 다한 상황에서 함선 위의 적들을 상대하게 되면 결과는 자명했다. 더군다나 함선이 아예 부딪힐 작정으로 다가온다면 약간의 기회마저도 없을 그런 상황이었다. 그 때 진웅이 다가오는 배를 보더니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깃발에 송(宋)이라 적혀있는 것이 관선(官船)인 듯 합니다!"


다시 보니 진웅의 말대로 관선이 분명했고 일행은 수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럼에도 일행은 거짓으로 올린 깃발일 수 있기에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반각 정도가 지나자 마침내 함선이 일행의 배 옆으로 서더니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남궁현에게 물었다.


"숭의공 합하께서 이 근방에 계시다 하여 찾고 있소. 혹시 합하 일행을 뵌 적 있소?"


그러자 시안이 반가운 얼굴로 나서며 말했다.


"부마수(副馬帥) 아니오? 황궁을 지켜야 할 장군께서 여긴 어인 일이오!"


"합하를 뵙습니다. 여봐라, 어서 합하를 모시거라!"


함선에 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위마군사(侍衛馬軍司)의 부도지휘사(副都指揮使, 속칭 부마수) 유장엽(劉長燁) 삼아(三藏, 남송의 금군) 가운데서도 황궁을 수호하는 핵심 중 하나였다. 시안과 남궁현, 맹순은 반가워 하는 표정이었으나 여전히 나머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고, 이를 본 남궁현이 안심하라며 말했다.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염려 마십시오."


함선에 오른 시안이 유장엽의 두 손을 꼬옥 잡더니 말했다.


"여기서 부마수를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 없소. 복주까지는 어쩐 일이오?"


"위국공(衛國公, 가사도의 작위)께서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시안의 인상이 찌뿌려졌고, 시안의 표정을 읽은 유장엽이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듯 합니다."


"오해라... 죽을 위기를 몇번이나 넘기고 나니 없던 오해도 생길 수 밖에..."


"그렇지 않아도 합하께서 최소 인원만 대동하고 천주로 떠나셨단 소식을 듣고 위국공이 전전사(殿前司, 삼아제군 총사령부)에 호위를 증원하라 명하셨습니다."


시안은 속으로 철두철미한 가사도가 일을 그르칠 것을 염려해 유장엽을 통해 이런 상황을 대비했다 생각했고, 유장엽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사도쪽일 수도 있단 생각에 시안은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간단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화적과 수적 떼를 만나 위태로운 상황을 여러차례 겪었소. 부마수께서 이리 와주셨으니 얼마나 반가운 줄 모르겠소. 헌데 뱃사공에게 듣기로는 수적 떼가 물길을 막고 있다 하던데 오면서 보지 못했소?"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모시는 것이 늦어졌습니다. 합하의 말씀대로 민후현 위에 수적 떼가 자리를 잡고 배들이 오가지 못하도록 횡포를 부리고 있더군요. 합하를 모시는 것이 급해 모두 추포하지는 못했으나, 배는 반파되어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어 놨으니 복주로 가시는 길에 볼 수 있을 겁니다."


유장엽의 말대로 한 시진쯤 강을 타고 내려가자 반파에서 연기가 치솟는 함선 하나가 보였다. 유장엽이 말한 수적의 배였다.


시안과 진웅 일행이 유장엽의 배를 타고 복주로 향하던 즈음, 진웅을 비롯한 네 사람을 공격했던 복면 무리의 수괴가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사내가 싸늘한 미소를 짓더니 다시 물었다.


"지금 나보고 고작 네 놈에게 은전대 3개조가 박살나고, 금전대 절반이 손실을 입었다는 말을 믿으라고?"


"사실입니다."


"그 네 놈이 삼교맹주급이라도 되더냐?"


"그것까지 아니오나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무공의 소유자였습니다."


"네 놈은 그때까지 뭘 했고?"


"출수하려던 찰나 갑자기 일당들이 배를 가지고 나타나는 바람에..."


"헌데 왜 한꺼번에 그냥 돌려보내지 않고 숭의공은 그냥 보내고 네 놈만 남긴 것이냐?"


"네 놈에게 당한 형제들이 너무 많아 그냥 그렇게 보낼 수 없었습니다."


"내가 너에게 뭐라 지시했지?"


"어떻게든 숭의공을 임안으로 돌려 보내라 하셨습니다."


"그때 내가 죽은 형제들의 복수도 하라고 했던가?"


"..."


"멍청한 놈. 물경소사(勿輕小事, 작은 일도 쉽게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주군."


"그럼 당장 배를 가르고 죽던지!"


"예, 주군!"


대답과 함께 복면을 쓴 사내가 바로 검을 꺼내어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었고, 주군이라 불린 사내는 그 모습을 보고 화병을 복면 사내의 머리에 던지더니 소리쳤다.


"꼴보기 싫으니 썩 나가거라."


"예, 주군."


"아... 잠깐. 금전대의 시신은 수습했더냐?"


"바로 태워 없앴습니다."


"흠... 오늘 내일 하는 놈들도 몇 있겠지?"


"그러합니다."


"편히 보내주거라. 시신이 몇 구 필요하니."


"시신 말입니까?"


"그래. 숭의공 일행이 이 곳을 찾으면 우리도 공격당한 것처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증인들이 필요하니 오늘밤 금전대에 어제와 같은 복장을 입히고 내 침소에 다녀가거라. 문지기와 호위 몇을 처리하고 실패한 척 돌아가면 된다."


"그리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가라!"


복면의 사내가 읍을 하고 물러나자 이어 다른 사내가 문 밖에서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사문입니다. 찾으셨다 들었습니다."


"들어오너라."


"무슨 연유로 찾으셨습니까?"


"너도 은전대와 금전대 소식은 들었지?"


"네. 소자에게 맡겨주셨다면 결코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요."


"만의 하나라도 네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어찌할 작정이십니까?"


"황실의 금군까지 끼어들었다고 하니 이번에는 별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아직 때가 안 됐으니 말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거부하시는 이유를 소자는 모르겠습니다."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요구할 테니까."


"차라리 원의 제안을 수락하심이 어떠십니까?"


"아직 이르다. 남송이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고. 좀 더 무르익어야 해."


"그럼 제가 수하들을 이끌로 복주에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이미 늦었다. 받아들일 것이야. 내 직접 복주로 갈 테니 준비하거라."


"직접 말입니까?"


"그래. 계획의 망친 놈들의 얼굴도 직접 볼 겸 말이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벌인 일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가사도를 의심할 텐데 뭐가 위험하단 말이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분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은 바로 천주 최대의 부호이자 남해 일대의 패자, 포수경(蒲壽庚, 1205~1290)과 그의 첫째 포사문(蒲師文)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는 숭의공 시안이 내내 의심했던 가사도가 아닌 바로 천주의 포수경이었던 것이다.


사실 남송 황실에서 제시한 천주시박사라는 관직보다 남해 일대의 무역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은 포수경 입장에서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허나 원과 남송 모두 줄을 대고 있는 데다, 본인이 거느린 천여척의 선박을 통해 시시각각 전황을 전해듣는 포수경은 결국 원나라가 남송을 집어삼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포사문의 말처럼 원나라에 붙기에는 지리적 위치가 문제였다. 복건성, 그 중에서도 제일 남단인 천주와 복주는 사실 전쟁에서 가장 안전한 위치였으나, 이는 다시 말해 마지막까지 남송의 영토로 존재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적긴 하지만 원과 남송이 지리한 전쟁 끝에 화친을 맺을 가능성도 있었고, 그럴 경우 천주는 당연히 남송의 영토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턱대고 원나라에 붙는다면 당장 남송의 남군(南軍)이 쏟아져 들어올 테고, 그 전에 천주의 재산을 모두 재물로 바꿔 원으로 향한다 한들 남송 수군이 이를 두고 볼 리도 없었다.


결국 포수경 입장에서는 남송의 멸망이든 두 나라의 화친이든 결착이 나는 것을 기다려야만 했다. 허나 남송 조정은 포수경이 남해 일대에서 거느린 세력과 선박을 어떻게든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이에 대한 대가로 관직과 특권을 제시해왔다. 처음에는 의향을 떠보는 수준이었으나, 나중에는 점점 강하게 압박해왔고 마침내는 숭의공 시안을 통해 황제의 칙서까지 전달될 참이었다.


결국 포수경은 숭의공 시안이 화적 떼의 습격으로 호위병들을 잃는다면 그대로 다시 임안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수하로 있던 은전대와 금전대를 동원해 화적과 수적을 가장해 숭의공 일행을 공격한 것이었다. 허나 무주에서 남궁현과의 인연으로 일행에 합류한 진웅 일행 때문에 계획은 허사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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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2 0 8쪽
55 해동제일검 (2) 24.02.20 18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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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배후(背後) (4) 24.02.16 24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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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배후(背後) (2) 23.08.03 3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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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귀환(歸還) (3) 23.07.28 3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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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귀환(歸還) (1) 23.07.26 4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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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연심(戀心) (2) 23.07.20 38 0 13쪽
40 연심(戀心) (1) 23.07.18 43 0 12쪽
39 강만리(江萬里) 23.07.13 45 0 9쪽
38 파촉당문(巴蜀唐門) (2) 23.07.12 46 0 10쪽
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5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3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2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0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1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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