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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조회수 :
4,656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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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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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연심(戀心) (3)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진웅과 주진, 팽가영과 장전일 네 사람은 모처럼 여유로운 저녁을 만끽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명주로 출발했어야 하나 포수경이 탐라로 배를 보내줄 지 여부를 무주에서 전갈로 확인하기로 했기에 무주에서 삼일을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중삼이 네 사람을 위해 자리를 잡아 놓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팽가영이 중삼을 붙잡았다.


"소협, 왜 같이 드시지 않고?"


소협이라는 단어에 중삼은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 같은 것이 어찌 나으리들과..."


그때 주진이 옆에 있던 탁자의 의자 하나를 가지고 오더니 의자를 두드리며 말했다.


"중삼이 너도 앉거라."


"네? 저는 괜찮습니다, 나으리. 따로 먹겠습니다."


"밖에 비도 오는데 뭘 혼자 나가서 먹는단 말이냐?"


"그래도..."


"여기 네가 앉는 걸 뭐라할 사람 하나도 없다. 같이 들자꾸나."


그러자 팽가영이 중삼을 보며 말했다.


"소협, 앉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소협께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었는데 주대협께서 자리를 마련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자 중삼이 진웅과 장전일을 바라봤고, 두 사람 역시 빨리 앉으라는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중삼의 눈시울이 촉촉히 젓더니 자리에 앉아 눈물을 꾹 참는 듯 바닥을 바라보았다. 청월루에서 일한 지 오래됐었으나 일개 점원이었기에 한번도 객잔에서 손님으로 식사한 적이 없던 중삼에게는 네 사람의 단순한 호의가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잠시 후 , 강서를 대표하는 요리, 와관탕(瓦罐汤, 항아리에 담긴 영양탕)을 비롯해 무주 명물인 갑어분피(甲鱼粉皮, 튀긴거북 당면),여천우란(黎川芋糍, 토란만두) 등이 연이어 나왔고, 중삼은 생전 맛보지 못한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었다. 식사가 한창이던 중 일행에게 건장한 남자 하나가 다가오더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일전에 임안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남궁가의 남궁현(南宮玄)이었다.


"두 분 대협을 여기서 뵙게 되다니 반갑습니다. 팽소저까지 함께라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팽가영이 일어나 남궁현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강서의 팽가와 안휘의 남궁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류하고 있었고, 가문의 후기지수였던 두 사람은 이미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여기서 남궁공자를 뵐 줄은 몰랐습니다. 두 분 대협과도 이미 안면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러자 진웅이 대답하며 남궁현을 반겼다.


"첩장을 전달하러 임안으로 가던 길에 만났지요. 여긴 어인 일입니까?"


그러자 눈치 빠른 중삼이 서둘러 자신의 그릇을 비우더니 남궁현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물러났고, 진웅이 빈 자리를 권하자 남궁현이 중삼에게 감사를 표한 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남궁현이 물었다.


"일이 있어 복주로 가는 중인데 일행과 이 곳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두분 대협과 팽소저는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


팽가영은 어차피 곧 무림에 다 알려질 일이었고, 남궁현은 신의가 있는 자였기에 금단파 내부의 분쟁과 팽가의 사정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 했으며, 진웅과 주진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두 분은 문산(文山, 문천상의 호) 대인의 의형제 되십니다."


그러자 남궁현이 놀란 눈을 하고 물었다.


"문대인의 의형제 되신단 말입니까? 제가 귀인들을 몰라 뵀습니다. 저 또한 문대인을 오래 전부터 흠모하여 한번이라도 뵙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분의 의형제들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호남제형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무탈하신지요."


그러자 주진이 대답했다.


"별 일 없으십니다. 산더미 같이 쌓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시지요."


그러자 남궁현이 객잔을 빙 둘러 살피다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은 귀인을 모시고 복주로 가는 길인데 일행과 이 곳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중이지요."


"귀인이라 하면..."


팽가영의 물음에 남궁현은 더욱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여러분들께는 솔직히 털어놔도 되겠죠. 숭의공(崇義公)을 모시는 중입니다."


그러자 팽가영과 장전일의 눈이 놀라 휘둥그레졌고, 진웅과 주진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팽가영이 귓속말로 진웅에게 속삭였다.


"후주(後周)의 황가입니다."


후주에 대해서는 고려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고려가 과거제도를 도입한 것이 바로 빈번히 왕래를 하던 후주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진교의 변 이후 후주 공제 시종훈(柴宗訓, 953~973)은 960년 송태조 조광윤에게 선양하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조광윤은 이에 대합 보답으로 시종훈을 정왕(鄭王)에 봉함과 동시에 일족에게 방주(房州)의 땅을 하사함과 동시에 후손 대대로 숭의공(崇義公)에는 직함을 내려 우대했다.


송태조는 시씨가문에게 무엇보다 반역의 죄가 아닌 이상 죄를 묻지 않는 칙서와 함께 단서철권(丹書鐵券) 부여하며 이왕삼각(二王三恪)의 예를 극진히 다했고, 이후로도 송 인종 때는 시씨 가문의 자손들을 대거 관리로 임명하는 등 송 황실은 대대로 시씨 가문을 우대했다. 시씨 가문 역시 선양한 전 왕조의 가문이 아닌 신하의 예로서 송 황실에 충성을 다하니 훗날 애산전투에 이르기까지 송의 조씨와 후주의 시씨는 명운을 함께 하는 운명이 된다.


숭의공을 모시고 복주로 향하는 길이라는 남궁현의 말에 그 전까지 잠자코 있던 장전일이 물었다.


"임안의 상황이 그리 급박합니까?"


시씨 가문이 임안을 떠나 복주로 향할 정도라면 임안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뜻이고, 이는 몽골군이 장강을 넘어 임안 지척까지 왔다고 소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남궁현이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염려 마십시오. 그건 아닙니다. 황실에서 복주의 거상인 포수경에게 조서를 내리셨는데 사안이 중대하여 숭의공에게 이를 직접 전달하라 부탁하신 모양입니다. 숭의공을 직접 보내는 것 자체가 얼마나 황실에서 예우를 다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남해 일대의 지배자인 포수경을 송나라 쪽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겠지요.


다만 시씨 가문이 직접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고 병졸들이 동요할 수 있는데다 시씨 가문은 예전부터 따로 사병을 거느리고 있지 않으니 숭의공께서 저를 비롯해 몇몇 식객에게 복주까지 호위를 부탁했습니다. 대부분이 명문가의 후기지수지요. 원래라면 뱃길로 가는 것이 빠르나 날씨가 여의치 않아 별수 없이 육로로 가는 중입니다."


장전일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진웅은 문득 포수경이라는 자가 몹시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문천상이 탐라로 가는 배편을 직접 부탁하고, 전대 황가인 시씨 가문의 숭의공이 직접 황제의 조서를 전달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의문은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이 직접 만나며 풀리게 된다.


다음날 오전 무주로 전서가 도착했고, 그 안에는 탐라로 가는 배편이 보름 후 명주항에 입항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서가 적힌 날이 이틀 전이었으니 13일이 남은 셈이었다. 전서를 확인하자 마자 일행은 명주로 떠날 채비를 했는데, 그때 정오가 지나 남궁현이 진웅과 주진을 찾아와 말했다.


"조금 전 숭의공께서 도착하셨는데 문대인의 의형제분들이 여기 묵으신단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나누고파 하십니다. 혹여 오늘 저녁 시간을 내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바쁘시면 사양하셔도 됩니다."


두 사람은 서둘러 탐라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으나 13일이라면 명주까지 가기에는 충분히 넉넉한 시간이었고, 숭의공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 또한 남궁현의 체면을 생각하면 예의가 아닌 지라 일행은 무주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남궁현은 팽가영과 장전일까지 네 사람 모두를 초청했으나, 장전일은 그런 자리에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중삼과 함께 객잔에 남기로 했고, 숭의공의 초청 소식에 팽가영은 포목점으로 가 급한 대로 성인 남자가 입을 만한 명주로 된 의복 두벌을 구해와 두 사람에게 건넸다.


"더 좋은 비단옷을 사드리고 싶었으나 무주를 다 뒤져도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가벼운 저녁 자리라 생각했던 진웅이 팽가영이 건넨 명주옷을 사양하며 말했다.


"그냥 이대로 가면 안 되오? 괜히 소저께 부담을 주고 싶진 않소."


그러자 이미 상의를 걸쳐보며 품이 맞는지 살피던 주진이 말했다.


"딱 맞는구만. 그냥 소저가 주는대로 입게. 그나저나 팽소저, 웅이의 옷이 더 곱고 비싸 보이는 건 내 눈이 잘못되어 그런 것이오?"


"그럼 갈아들 입으셔요."


팽가영의 얼굴이 붉어지며 주진의 물음에 대답 없이 밖으로 나가자 주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농으로 건넨 말인데 진짜인 모양이네...쩝..."


두 사람이 의복을 갈아입고 객잔 밖으로 나가자 중삼이 마차를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입구에서 팽가영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간 팽가영이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노라니 지나가는 여인네들이 하나같이 진웅과 주진 두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고려에 있을 당시부터 절세의 미공자라는 평이 자자했던 데다 숱한 여인을 울린 주진이었기에 오랜만에 제대로 의복을 갖추니 미남자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진웅 또한 주진만큼은 아니었으나 충분히 미남이었던 데다 특유의 정갈하고 기품있는 모습에 주진의 옆에 서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그런 두 사람이 제대로 의복을 갖춰 입고 대로에 서 있으니 눈길을 끄는 것도 당연했다.


잠시 후 의복을 갈아입은 팽가영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꾸미지 않아도 진웅의 눈에는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팽가영이었으나, 남창에서 사 입은 평상복 대신 새하얀 명주옷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팽가영의 모습은 그야말로 선녀가 강림한 듯 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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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웅은 이 여인이 팽가를 이끄는 가주이자, 자신의 연인이며, 한때 금단파의 도사로 몸에 무수한 검상이 있다고 하면 그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진웅은 물론이고 주진을 포함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아름다운 팽가영을 바라봤다. 그 때 팽가영이 진웅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뛰어와 녹을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잘 어울리세요.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옷이 날개지요. 소저 덕분에 오랜만에 사람다운 모습을 하오."


팽가영이 먼저 마차에 오르자 주진이 뭔가 억울한 듯 진웅을 보더니 혀를 차며 속삭였다.


"이런 돌부처 같은 인간이 중화 제일미녀를 얻다니..."


그러자 진웅이 답했다.


"내 인생에 죽기 전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장사에 자네 혼자만 보낸 거네."


"이젠 감추지도 않는구만. 내가 혹여 잘못될까봐 자네 걱정을 얼마나 했는데!"


"그래서 자네에게 제일 감사하다네."


"잘되는 놈은 엎어져도 떡함지라더니 사람 팔자 모를 일일세. 몰라."


말로는 빈정댔지만 주진은 두 사람이 맺어진 것을 흐뭇해 했고, 진웅 역시 적어도 주진 앞에서는 자신의 연심을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그렇게 네 사람은 숭의공이 머무는 무하(撫河) 인근의 이선루(二仙樓)로 향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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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가사도(賈似道) (2) 24.02.21 15 0 10쪽
56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2 0 8쪽
55 해동제일검 (2) 24.02.20 18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1 0 11쪽
53 배후(背後) (5) 24.02.16 22 0 8쪽
52 배후(背後) (4) 24.02.16 24 0 8쪽
51 배후(背後) (3) 23.08.08 44 0 10쪽
50 배후(背後) (2) 23.08.03 3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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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귀환(歸還) (6) 23.08.01 31 0 14쪽
47 귀환(歸還) (5) 23.08.01 36 0 13쪽
46 귀환(歸還) (4) 23.07.31 31 0 11쪽
45 귀환(歸還) (3) 23.07.28 36 0 11쪽
44 귀환(歸還) (2) 23.07.27 37 0 11쪽
43 귀환(歸還) (1) 23.07.26 41 0 11쪽
» 연심(戀心) (3) 23.07.24 36 0 12쪽
41 연심(戀心) (2) 23.07.20 38 0 13쪽
40 연심(戀心) (1) 23.07.18 43 0 12쪽
39 강만리(江萬里) 23.07.13 45 0 9쪽
38 파촉당문(巴蜀唐門) (2) 23.07.12 46 0 10쪽
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5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3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2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0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1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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