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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의 작업실

삼별초, 남송(南宋)에 가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고도일
작품등록일 :
2023.05.19 16:52
최근연재일 :
2024.02.28 16:54
연재수 :
5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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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8
추천수 :
51
글자수 :
293,169

작성
24.02.2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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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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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가사도(賈似道) (1)

해당 소설은 실제 역사와 실존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픽션으로, 특정 종교/단체/인물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DUMMY

숭의공 시안을 비롯해 진웅 일행이 천주에 도착해 포수경을 만나고 있을 시기, 가사도는 창 밖의 후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쩌다 자신이 이자리까지 왔는지, 왜 망해가는 송나라 황실의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까지 올랐는지 지난 세월을 반추해 봤다.


원래 가사도는 총명했으나 관직에 큰 욕심이 없었고 한량처럼 사는 것이 굼이었다. 천하절색을 자랑하는 누이가 명망높은 세가로 시집가기를 바랬으나, 황제의 눈에 들어 가귀비가 되면서 오라비인 자신의 운명 또한 완전히 바뀌기 시작한다. 그러다 맹공의 눈에 들어 그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고, 홀필렬(쿠빌라이)를 물리친 악주의 영웅이 되었으며, 결국에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올랐다.


누이가 황제에 눈에 들지 않았다면, 맹공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면, 황실을 부탁한다는 사부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이제와 쓸데없는 가정을 잠시 했던 가사도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각지에서 올라온 보고와 상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때 문 밖을 지키면 호위 하나가 문을 두드리더니 들어와 가사도에게 보고했다.


"하귀 장군께서 오셨습니다."


"어서 안으로 모시게."


그러자 거구의 노장군이 지팡이를 쥔 채로 가사도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위국공(衛國公)을 뵙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무탈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다 늙어 쓸모가 없어진 이 늙은이를 은퇴조차 못하게 하시니 말입니다."


몽골군이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송나라 최후의 명장이라 평가받는 이왕(利王) 맹공 밑에는 출중한 부하들이 넘쳐났고, 그들 대부분이 맹공 사후 송나라를 지키는 명장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왕견과 이정지, 유정이 맹공의 밑에서 활약했던 부장들이었다.


허나 맹공이 직접 가사도 밑으로 들어가 재능을 펼치라 지시한 이정지를 제외하고는 왕견과 유정은 가사도를 무척이나 못 마땅해 했다. 두 사람은 맹공이 마지막 제자로 들인 것부터 마음에 안 들었으며 가사도의 빠른 출세가 가사도의 재능 때문이 아닌 가귀비의 오라비라서라고 생각했다. 가사도 역시 그릇이 작은 왕견과 자신보다 더 출세 지향적인 유정을 못마땅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오직 이정지만의 자신이 모시던 주군의 명을 받들어 가사도를 지극히 따랐다.


애초에 사이가 좋지 않은 가사도와 왕견이었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충순군(忠順軍) 출신에 악왕을 흠모하며 단평의 입락 당시 맹공 옆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왕견은 조어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몽가가 이 때 입은 부상으로 사망하자 이 참에 북진하여 방어선을 높이자 주장했다.


하지만 가사도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비록 조어성 전투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몽골군이 물러난 것은 몽가의 사망 때문이지 송나라 군대가 몽골군보다 강해서가 아니었다. 되려 몽골과 화친을 맺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거듭된 전쟁으로 전선은 무너져 있었고, 병사들도 지친 상태였다.


방어선을 회복하고 몽골에 대항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일단 황실 곳간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가사도는 사대부와 군부의 반대를 무릎 쓰고 공전법((公田法)과 타산법(打算法)을 시행했다. 공전법은 토지 일부를 조정에서 사들여 공전으로 삼고 그 수입을 국가정책으로 쓰는 만큼 세가를 비롯한 대지주들이 강력히 반대했고, 군대의 모든 경비를 철저하게 조사하는 타산법(打算法)은 군부에 엄청난 저항을 받았다.


결국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권귀(權貴) 세력에게 가사도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지만 당장 제거는 힘들었다. 대신 권귀 세력은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국가의 대소사를 좌지우지하는 가사도가 진회 못지 않은 희대의 간신이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몽골에 비밀리에 화친을 맺고 송나라를 바치려 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럼에도 가사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가사도는 홀필열과 아리크부카가 칸 자리를 두고 다투는 몽골의 당시 상황이 송나라에게 주어진 마지막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했고, 자신이 가진 권력을 동원해 북진을 주장하는 왕견을 비롯한 주전파들을 조정에서 대거 숙청하여 반대파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이 시기 원래 가사도를 못 마땅한 데다 본인을 더욱 중용하지 않는 송나라 황실에도 불만이 가득했던 유정 역시 자신이 다스리던 노주(潞州, 現 산시성 창즈시)를 몽골에 바치고 투항한다. 유정이 몽골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가사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혀를 차며 하늘을 바라보며 맹공을 떠올렸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맞았지요?'


맹공은 살아 생전 관상을 보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고 제자인 가사도에게도 관상학을 전수해 주었다. 총명한 가사도는 빠르게 관상학을 터득했는데 어느날 맹공의 병문안을 온 유정이 떠나자 가사도는 유정에 관해 맹공에게 물었다.


"저 자가 새존효(유정의 별명으로 오대 후당시기 명장 이존효에 버금가는 무위를 보였다하여 붙여짐) 입니까?"


"그렇다. 참으로 용맹한 친구지."


"허나 배신자의 관상입니다."


단도직입적인 가사도의 발언에 맹공이 웃으며 답했다.


"맞다. 이미 금나라를 한 차례 배신했지. 허나 송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했고 또 조정에서 귀이 쓰면 또 배신이야 하겠느냐?"


"한번 배신한 자가 어찌 두 번은 못하겠습니까?"


"몽골은 송에게도 위협이지만 금나라 또한 몽골 손에 망했으니 몽골 편에 서진 않겠지. 너와 또래이니 가까이 하며 잘 챙겨주거라. 향후 네게도 큰 힘이 될 인물이다."


"그리 하겠습니다."


이후 가사도는 탐탁치는 않았으나 스승의 유지에 따라 유정을 중용했고, 그에게 노주 방어를 맡겼으나 결국 결과는 배신으로 돌아왔다. 유정의 몽골 투항은 단순히 일개 장수의 투항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몽골에 바친 노주는 사천 정벌의 전진 기지가 되었다. 또한 항장 출신인 유정은 홀필열을 알현한 자리에서 남송을 완전히 멸망시켜야 진정한 천하통일임을 강하게 주장했고, 유정의 주장을 홀필열이 받아들이며 몽골이 대대적인 남송 토벌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유정은 남송을 완전히 정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양을 함락하고 장강에서 남송을 완전히 몰아내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도원수 아술(阿術, 1234~ 1280)과 함께 유정은 양양 공략의 선봉을 맞게 된다.


유정은 간계를 통해 송나라 조정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송군의 사기를 꺾는 것도 동시에 진행했다. 즉 송나라의 영웅이자 승상인 가사도가 악주 전투 당시 몽골군이 철군하는 대가로 조공을 바치기로 했는데 가사도 당시의 약주화약을 지키지 않아 부득이 하게 송나라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이간지책을 퍼트렸다.


유정이 퍼트린 이간계는 그대로 적중하였고, 그간 가사도 밑에서 숨 죽이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던 권귀들이 다시 가사도의 파면을 주장하며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고, 가사도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마치 진실처럼 번져나갔다.


그럼에도 몽굴의 재침략을 예상했던 가사도는 공전법과 타산법을 통해 확충된 재정을 양양의 방어를 강화하는데 투입했는데, 성벽을 높임과 동시에 정예병을 투입하고, 양양성 안에는 약 6년간 성에서 버틸 수 있는 식량을 비축했다. 남송의 명운을 건 양양 공방전의 시작이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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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들어가며 - 세 가문(家門)의 이야기 23.06.12 130 0 -
58 가사도(賈似道) (3) 24.02.28 17 0 8쪽
57 가사도(賈似道) (2) 24.02.21 16 0 10쪽
» 가사도(賈似道) (1) 24.02.20 23 0 8쪽
55 해동제일검 (2) 24.02.20 19 0 9쪽
54 해동제일검 (1) 24.02.17 22 0 11쪽
53 배후(背後) (5) 24.02.16 23 0 8쪽
52 배후(背後) (4) 24.02.16 24 0 8쪽
51 배후(背後) (3) 23.08.08 44 0 10쪽
50 배후(背後) (2) 23.08.03 31 0 9쪽
49 배후(背後) (1) 23.08.02 35 0 11쪽
48 귀환(歸還) (6) 23.08.01 32 0 14쪽
47 귀환(歸還) (5) 23.08.01 36 0 13쪽
46 귀환(歸還) (4) 23.07.31 31 0 11쪽
45 귀환(歸還) (3) 23.07.28 37 0 11쪽
44 귀환(歸還) (2) 23.07.27 38 0 11쪽
43 귀환(歸還) (1) 23.07.26 41 0 11쪽
42 연심(戀心) (3) 23.07.24 36 0 12쪽
41 연심(戀心) (2) 23.07.20 39 0 13쪽
40 연심(戀心) (1) 23.07.18 43 0 12쪽
39 강만리(江萬里) 23.07.13 46 0 9쪽
38 파촉당문(巴蜀唐門) (2) 23.07.12 46 0 10쪽
37 파촉당문(巴蜀唐門) (1) 23.07.11 66 0 10쪽
36 기연(奇緣) (2) 23.07.10 64 2 13쪽
35 기연(奇緣) (1) 23.07.07 72 2 10쪽
34 옥추보경(玉樞寶經) (6) 23.07.07 53 2 12쪽
33 옥추보경(玉樞寶經) (5) 23.07.06 57 2 12쪽
32 옥추보경(玉樞寶經) (4) 23.07.05 51 0 10쪽
31 옥추보경(玉樞寶經) (3) 23.07.05 52 1 12쪽
30 옥추보경(玉樞寶經) (2) 23.07.04 62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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