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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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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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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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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89화 고래의 움직임

DUMMY

489화 고래의 움직임


“저, 정말이십니까?”


상인 강상청이 묻는 말에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다이샨은 가벼이 웃으며 대답했다.


“난 나랏일로 허언하는 놈이 아니다.”

“죄, 죄송합니다.”


다이샨이 이르는 말에 강상청은 곧장 방금 낸 말이 무례하였음을 깨닫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다이샨은 손을 내저었다.


“허면 그리 알고 물러가라. 섭정친왕회며 이리저리 전할 일이 많지 않더냐? 걱정하지 마라. 이 일로 네게 후과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하의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이샨의 장담을 들은 강상청은 불안을 내려놓고 인사를 올렸다.


이윽고 자리에서 강상청이 물러나자 다이샨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했다.


“······전장이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설 일은 없겠지. 성벽을 보며 절망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


여러 군대를 물리치고 여러 성을 깨트린 다이샨은 분명 역전의 장수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작금 그보다 전장에서 더 오래 달린 이는 없을 터이니, 이는 전에 홍타이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확고부동한 사실이 되었다.


한때 사대 버일러 가운데 제일이라 암바 버일러라 불렸고 이제는 청나라 황실에서도 가장 어른이라고 할 사람이다.


아쉽게도 황제며 한이라는 호칭은 칭하지 못하였으나 다이샨은 그리 미련이 없었다.


이미 아버지가 고생하고 동생이 고생하였으며 조카가 고생하는 걸 보고 있다.


또한 그 자리를 위해 여럿이 다투던 꼴을 기억하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다이샨에게 그런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미련이 없는 것은 아니고 연을 끊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다이샨이 이번 조선행을 결심한 것은 여기에 연유함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대청이 수백 년 가게 하기 위한 기반 쌓는 일에 힘쓰고 애쓰는 데 나만 물러나서 구경하기는 좀 그렇지. 적어도 그 시초가 될 일은, 안정하는 것만은 도와야 후대에 떳떳하지. 암.”


노장의 눈에 보이는 것은 굳어져 가는 정세요 앞으로 지난하게 싸울 세월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단번에 끝나게 된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후방이 든든해야 하는 법이니 그는 이번 일을 계기로 후방 다지는 일에 한 손 거들고자 했다.


근래에 황태후 보르지기트 붐부타이가 내각 대학사 범문정과 크게 논하였던 이야기를 생각하면 다이샨이 보기에 그가 대청의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바로 조선행이었다.


“아, 그렇지. 말을 해두어야겠구나.”


어련히 알아서 할까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하여 둠이 낫겠다고 여긴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예?”


돌연 방문하여 뜻을 전한 다이샨에게 범문정은 저도 모르게 황망함을 담아서 되묻고 말았다.


이에 다이샨은 가벼이 웃으며 말을 다시 꺼냈다.


“조선에 내가 가겠소.”


다시금 반복된 말에 범문정은 제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 말고는 다행으로 느껴지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분을 조선에 보낸다?’


온갖 가정과 상상이 범문정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런 와중에 다이샨이 입을 열었다.


“들으니 황태후께서 조금 과한 일을 하려고 하신 모양인데, 이 사람이 가면 여러모로 좋지 않겠소?”

“······그렇겠지요.”


붐부타이가 하려고 하던 일을 기억한 범문정은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일본에서 비가 될 자가 올 터, 붐부타이는 나름대로 친밀함을 보이고 위세를 세워준답시고 그녀가 바다에서 땅에 다리를 대는 순간부터 환영하고자 하는 계획을 거론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범문정은 그 일을 크게 반대했다.


그녀가 시행하고자 하는 것, 그 시작은 청나라 땅이 아니라 조선 땅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붐부타이는 대규모로 무언가 하고자 함은 아니라고 했으나 그만한 일에 격을 맞추자면 필연적으로 수많은 인원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여기에 청나라 사람을 동원하면 조선에서 꺼림칙하게 여길 것이 뻔했고, 반대로 조선 사람들을 동원하여 하자면 대체 또 무엇을 얼마나 내어주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고도 얻은 것은 고작해야 작은 환심이 전부라니, 범문정이 보기에 그만한 손해도 없었다.


결국 붐부타이가 한발 물러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생각하며 궁구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게 범문정 귀에 들리니 그때마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부슈, 아니 보국친왕은 이번에 일을 맡으면 언제나 돌아오오?”

“그거라면 못해도 한 3년은 걸리리라 보고 있습니다. 넉넉잡으면 5년을 보아야 할 수도 있고요.”

“제법 길군.”


길다고 말한 다이샨은 웃는 얼굴로 듣기 무서운 농담을 입에 담았다.


“자칫하면 땅속에, 그것도 조선 땅속에 누워서 보국친왕의 자랑을 듣겠소이다. 하하하!”

“하하, 하하하.”


진심으로 웃기 힘든 다이샨의 말에 어색하게 웃은 범문정은 문득 다른 일을 떠올리며 물었다.


“이번에 가시면 아마도 예친왕께서 위치가 있으시니 조선에서 물을 수도 있습니다.”

“묻는다? 무엇을 말이오?”

“오시는 의도라던가 하는 일이 가장 일반적일 것이고, 그다음은 아마도 조선의 세자 문제일 것입니다.”

“아하.”


다이샨이 반쯤 물러난 것처럼 굴어도 그 지닌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자연스레 이런저런 일들이 중요함에 따라서 그의 귀에도 들렸으니, 최근 들은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선 세자의 귀국 문제였다.


그리고 다이샨은 이에 대해 아주 명쾌한 대답을 품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라지. 대청의 문물을 배워라. 그것이 선대 한께서 보이신 뜻이며 구실이었지. 그런데 그 이유는 조선과 다시 대립할 것을 우려함인데, 작금 조선에 그런 뜻이 어디에 있소이까?”

“없지요. 하지만 그 후대, 그다음으로 가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적어도 다음까지야 얌전할 거 같은데.”


지금 조선왕 다음이라고 하면 응당 조선의 세자이니 다이샨이 보기에 그들은 청나라는 물론이고 사방 어디든 적대하는 걸 싫어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어찌 들릴지 모르나 구태여 말하리이다. 내 보기에 조선은 천하 사방을 향한 욕심이 있기는 하나 우리며 명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다른 방향이라.”


천하를 얻고자 질주하는 청나라며 사방 강역을 도로 되찾고자 하는 명나라와 비하자면 조선은 확실히 그 향하는 방향이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사방으로 뻗어나감은 확실하나 그들은 땅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묻히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니 여러 나라 사람을 오가게 하고 사방에 간섭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했다.


“그런 자들에게 괜한 빌미를 주는 것은 위험하지. 그리고 솔직히 그들이 움직인다고 하여 이제 달라질 일이 있는가 하면 그건 아닌 거 같은데.”

“조선이 달리 마음을 먹으면 여러모로 위태로워질 겁니다.”

“그게 우리만 그런 건 아니잖소?”


청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에 범문정은 다이샨이 명나라를 염두에 두고서 그리 말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범문정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조선도 굳이 싸워서 우리 대청에서 얻은 것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굳이 내려놓고자 하겠소? 이미 얻은 건 많고 그보다 더 얻고자 하면 진짜 우리 위에 올라앉지 않고는 힘들 텐데? 하물며 그렇게 한다고 더 이득인가 하면 그건 아니지.”

“허.”


곰곰히 생각하여 보니 그것이 틀린 말이 아닌지라 범문정은 차분히 생각에 잠겼다.


이내에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본디 홍타이지가 조선을 치고 안정된 후방으로 두고자 함을 넘어서 계승을 위해 어느 정도 밀접하게 엮기를 바란 것이 이유임을 상기하니 범문정은 불현듯 이리 생각했다.


‘조선에서 가까워짐을 경계함이 어제와 같은데 벌써 다시 멀어질 것을 생각하다니, 사람 생각이며 마음이 참으로 우습구나.’


동시에 무작정 피할 일이 아니며 걱정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범문정은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예친왕께서 하신 말씀 덕에 제가 한시름 놓겠습니다.”

“내가 무슨 대단한 말을 했다고 대학사께서 그리 말씀하시오? 나는 여러 동생과 달리 그런 머리는 대단치가 않은 놈이외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제가 보기에 예친왕 전하처럼 제대로 보고 계신 분은 달리 없으신 거 같습니다.”

“이거 참, 이렇게 금칠을 하니 부끄럽구려.”


다이샨은 사람 좋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허면 나는 조선에 가는 걸로 알고 있을 터이니 남은 일은 알아서 하여주시오.”

“예, 남은 일은 제가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범문정이 하는 말을 뒤로 하고 다이샨은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범문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만히 사람을 불렀다.


“여봐라.”

“예, 대학사.”

“조선의 세자에게 사람을 보내라.”

“알겠습니다. 무엇이라고 전할까요?”


되묻는 말에 범문정은 방금 생각하여 결정한 것을 입에 담았다.


“양국에서 주재하는 일을 논하자고 말씀드려라.”



***



“저하, 부르셨다고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우빈객, 어서 오시오.”


우빈객 남이웅이 찾아와 이르는 말에 소현세자는 반가운 얼굴로 그를 안으로 들였다.


이윽고 그가 안으로 들어와 자리하니 소현세자는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 대학사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주재하는 사람을 바꾸는 일에 의견을 논하고자 한다고 하였소이다.”

“주재하는 사람? 아, 슬슬 철원에 두는 친왕을 바꾸고자 하는 겁니까? 그럴 만한 시일이 흐르긴 했지요.”

“시일도 그렇고 보통은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소현세자는 곧 목소리를 낮추어서 제 생각을 입에 담았다.


“헌데 말이 조금 오묘하여 곱씹게 되었소.”

“오묘하다?”

“이르길, ‘양국에서 주재하는 일을 논하자’고 하더이다.”

“······과연.”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인 남이웅은 주변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어쩌면 귀국할 날이 가까우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그런가.”

지난 정축년 이래 심양에 거하여 조선 산천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하다고 하나 평생토록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조선의 세자.


세월이 흐르면 순리에 따라 그가 먼저 가는 불효를 저지르지 않는 한 언제고 조선으로 돌아가야 함은 당연한 순리였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 것은 짐작하더라도 삼가야 할 것이니, 이러한 의미심장한 전언을 들은 순간은 더욱 그러함이 옳았다.


‘녀석은 좋아하려나.’


만약 정말 이번 만남이 그를 위함이라면 소현세자는 심양을 떠나 한양으로 갈 것이며, 그 동생인 봉림대군은 심양에 남아 외조의 일을 돌볼 터였다.


과연 잘할지, 좋아할지 생각하던 소현세자는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괜한 김칫국일지도 모른다고 여긴 것이다.


“후우. 아직 그럴듯한 말이며 하나며 작은 증거도 없는 일이건만 너무 들뜨었소이다. 아무래도 내가 한양 풍경이 생각보다 그리운 모양이오.”

“사람이 고향을 떠나면 하루가 되기도 전에 떠나온 곳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어찌 그것을 이상하다고 하겠습니까? 또한 그리워함은 마땅히 보일 수 있는 사람다움이니 작금 조선에서 유학자라고 한다면 누구나 저하를 이해할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다라.”


남이웅이 한 말을 잠시 되새긴 소현세자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할 수 있다고 하여 용납되는 건 아닌 법이지.”

“저하······.”

“하하, 미안하오. 나만이 기대하는 것은 아닐 텐데, 괜한 기대를 품게 하고는 거기에 물을 뿌리기까지 하였으니 참으로 민망하구려.”

“허나 상정은 해둠이 옳습니다.”


여전히 그 생각을 포기하지 말 것을 이른 남이웅은 근래 조선 사람들, 더 정확히는 심양에 있는 외조 사람들 귀에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아직 확정은 아니나 조선에 주재하는 친왕이 바뀐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저들이 한층 더 나아가고자 할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게 하는 것으로 가장 좋은 수단은, 세자 저하이십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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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7 ageha19
    작성일
    24.02.11 00:09
    No. 1

    하지만 소현세자도 새 친왕이 청나라 황실 큰어른인 건 예상 못했을테니 깜짝 놀라겠군.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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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63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65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72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64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65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76 16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68 16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75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78 16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69 16 13쪽
512 511화 민감한 일 +2 24.03.03 184 13 12쪽
511 510화 노인의 일 +3 24.03.02 190 17 13쪽
510 509화 고귀한 이름 +4 24.03.01 168 15 13쪽
509 508화 부모의 마음 +3 24.02.29 166 16 12쪽
508 507화 파멸이 기다린다고 하여도 +5 24.02.28 180 15 15쪽
507 506화 정사와 부사 +4 24.02.27 177 17 14쪽
506 505화 또 다른 자신 +1 24.02.26 173 13 12쪽
505 504화 천하의 사지(四肢) +3 24.02.25 179 18 15쪽
504 503화 맞는 않는 자리 +2 24.02.24 171 15 12쪽
503 502화 시왕 +2 24.02.23 177 13 14쪽
502 501화 불변 +4 24.02.22 173 16 13쪽
501 500화 살아있는 말 +4 24.02.21 177 22 13쪽
500 499화 삼국분봉 +7 24.02.20 197 14 12쪽
499 498화 귀국한담 +3 24.02.19 176 15 13쪽
498 497화 서방견문 +6 24.02.18 187 15 13쪽
497 496화 유종의 미 +1 24.02.17 181 15 13쪽
496 495화 불빛이 하나라면 아무리 작아도 중요하다 +2 24.02.16 186 14 12쪽
495 494화 포기할 수 없는 일 +2 24.02.15 199 14 12쪽
494 493화 여기에 조선이 있다 +4 24.02.14 221 16 15쪽
493 492화 경험 +3 24.02.13 182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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