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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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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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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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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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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3쪽

519화 정통성

DUMMY

519화 정통성


그만하여도 되겠다는 말에 허목은 처음에 당황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분노하였으니, 송시열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사람을 놀리시는 겁니까? 송자, 송자 그러더니 인성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제야 알았습니다!”

“놀리다니요. 어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것이 놀리는 것이 아니면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내가 주장하는 바를 존중하며 옳다고 하여 귀를 기울이더니 이제는 그만하라니, 어린아이에게 적당히 맞춰주며 살살 달램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찌나 흥분하고 분노하였는지 허목은 그 얼굴이 시뻘겋게 되었으니 수염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장수가 보았다면 자신과 동류구나 여겼을 정도였다.


“비록 제게 산둥 아문 첨정이니 하는 벼슬도, 그리고 송자니 하는 칭호도 과하다고 여기나 한 가지는 자신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며 사람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니 지금도 그러합니다.”

“이것이 나를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면 칭송하였다고 말씀하실 생각이십니까? 저기 멀리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이들 가운데 누구든 불러와서 물어보십쇼!”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다만 선생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걸 들으니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것이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치 인정하는 거 같은 말에 허목은 눈초리를 세웠다.


“하여 상세히 풀고자 하니, 허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을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되짚어 본다?”


분노는 여전하나 유생으로서 말을 경시할 생각은 없으니 허목은 일단 화를 참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에 송시열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선생께서는 노산군의 후예는 없으니 그 대안으로 문종 대왕 혹은 세종 대왕의 뜻을 이은 분을 세움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당금 성상은 그에 해당하지 않습니까?”

“······그야 세조 대왕의 혈통이시니 그렇지요.”


눈살을 가득 찌푸리며 대답하니 송시열은 이상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지금 말씀을 들으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다음 보위에 오르실 분으로 뜻을 논하며 어찌 당금 성상은 혈통을 논합니까?”

“!”


송시열이 하는 말에 허목은 크게 놀라며 두 눈을 부릅떴다.


“혈통을 논한다면 양쪽 모두 혈통을 기준하며, 뜻을 논한다면 양쪽 모두 뜻을 기준함이 마땅하다고 여기지 않으십니까?”

“그, 그것은······.”


옳은 말이나 차마 시인하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하니, 이 논리의 끝이 어디로 향하게 될지 허목에게는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국통을 논하셨음을 들었습니다. 국통이 누더기와 같음도 주장하셨다고 함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단순히 사람이 바뀌었음을 논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으며 결국은 돌이키는 방법은 새로이 성씨를 세우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것이 가하다면 응당 그래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고 해야 한다라. 좋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저 혈기나 치기로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물어야겠습니다.”


묻겠다고 한 송시열은 마치 한겨울 호수와 같은 청명한 눈으로 허목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서 나오는 기세에 허목은 저도 모르게 주춤하였으나 가슴 한구석에서 일어난 오기가 그를 버티게 했다.


‘나도 당신처럼 기회가 있다면, 그랬다면!’


속으로 악을 쓰며 송시열을 노려본 허목은 각오를 다지며 자세를 바로 했다.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그동안 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예?”

“지금 허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결국 왕조를 새로이 세우자는 것이니, 이는 다시 말에 이백년 넘게 이어져 온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제 다른 나라로 바꾸자는 말입니다.”


조선을 다른 나라로 바꾼다는 말에 허목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이것이 아주 그른 말이 아님을 아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이름은 남을지언정 새로운 체계가 시작될 것인, 늦건 빠르건 태조께서 이름을 바꾼 것이 다시 이루어질 날이 그리 멀다고 하긴 어렵겠지요.”

“말씀하신 대로니, 그것은 필연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사람들은 갈등할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를 반기는 이도 있으며, 있던 나라를 더 원하는 자도 있겠지요.”

“당연한 일을 자꾸 말하시니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그만 본론을 논하라는 재촉에 송시열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이어질 겁니다. 길면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이어지겠지요. 헌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어느 나라에서 살게 됩니까?”

“······각자 살고 싶은 나라에 살 겁니다. 그리고 땅은 그대로며 사람도 그대로니 달라질 것도 없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실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대만 한 사람이 이론에 집착하여 현실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니, 부디 재고하길 긴히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송시열이 하는 말들에는 하나하나 허목으로서는 알 수 없는 무게들이 담겨 있었다.


그걸 고스란히 느낀 허목은 어깨가 무거운 걸 느끼며 물었다.


“현실? 무슨 현실을 말하시는 겁니까?”

“백성에게 나라가 없다는 것은 실로 끔찍하다는 겁니다.”

“나라가 없다니요. 잠시 혼동할 뿐입니다. 외적도 없거늘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저는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그러한 일을 직접 보았다고 하는 말에 허목은 미심쩍은 얼굴로 송시열을 살폈다.


그 시선에 송시열은 이해한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산둥에 대해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산둥을 아느냐는 물음에 허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초야에 묻힌 이라고 하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고, 오히려 관심이 지대한 편이던 허목은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산둥에 대한 이야기는 조정에서 조보에 실어서 보내어 알려주기도 한 바가 있었다.


또한 허목은 그 일을 좋게 여기고 있으니 입에 담기를 거리끼지 않았다.


“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 양국에 요청을 받아 조선이 대신 맡아주게 되었다는 이야기, 실로 훌륭하고 좋았습니다.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음은 분명 그와 같아야 합니다.”

“아마도 조선에 거하는 사대부라면 누구나 선생처럼 훌륭하다, 멋지다, 좋다 그렇게 말하겠지요.”

“송자께서는 그것을 좋게 보시지 않는 모양입니다?”

“송자라는 말은 거두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저 송 모로 충분합니다.”


부담스러움을 드러내는 말에도 허목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고 그저 대답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내기 여념이 없으니 송시열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한차례 고개를 흔들고는 말을 이었다.


“물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산둥 사람들에게는 아닙니다.”

“산둥 사람들에게는 아니라니요? 사방에 전쟁이 이는데 그들은 피해 갔습니다.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가?”

“그 일은 전쟁이 산둥을 피해 간 일이 아닙니다. 오로지 전쟁‘만’ 산둥을 피해 갔다고 해야 할 일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 사람은 보았습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이 당도하기도 전에 화를 당할까 두려워서 미리 도망친 명나라 관리들의 행태를, 그리고 그로 인해 온갖 울타리가 사라져 서로 싸우고 의심하는 걸 말입니다. 또한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하듯 도적들이 관병들이며 법이 사라진 곳을 제멋대로 휘저었습니다.”


입가에 씁쓸함을 가득 담아서 이야기하니 허목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송시열이 말하는 것들이 제가 주장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조선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기색을 어렵지 않게 읽어낸 송시열은 안타까움을 담아서 말을 이었다.


“이제 아신 모양입니다. 우리가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하여 안정된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게 된 곳도 얼마간 있었습니다. 과연 허 선생께서는 사라진 나라를 대신할 질서를, 사람들이 기대어 쉴 울타리를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고작 한 마디, 할 수 없음을 시인하기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거 같은 고통을 감내한 허목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물었다.


“허나 그 고통을 감내하지 못하면 새로운 것은 없고, 바로잡음은 없습니다.”

“바로 잡을 일은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듭니다. 책임은 성상께서 내려오시는 일이 최선입니다.”


허목이 내린 결론에 송시열은 그를 보며 물었다.


“혈통을 기준으로 잡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유학은 혈통이 전부가 아니고 기준으로 삼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이미 이르고 있거늘, 아무래도 주장에 도취하여 눈을 어둡게 하신 모양입니다.”


유학에서 주장하는 것에 혈통이 중하지 않음을 이른 송시열은 허목이 말하기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이를 증명하니, 결국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뜻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혈통은 이미 의미를 잃었으니, 연산으로 인하여 한번 잃었고 광해로 인해 한 번 더 잃었습니다.”


반정으로 인해 쫓겨난 두 임금을 이른 송시열은 이어서 한 가지 예시를 덧붙였다.


“여기에 선조 대왕께서 본디 생부가 직계에서 머심을 생각하면 이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닙니다.”

“으음.”


이렇게 들은 순간 허목은 제가 전에 정원군 추승하는 이에 반대하였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통이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혈연보다 종통이 중요하니, 이를 허 선생도 익히 아실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허면 이제 논하고자 하니, 그 종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종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에 허목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던 허목은 무엇을 깨달았는지 기운이 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들은 아비를 닮기 마련이니, 아비로 인정하여 닮으라.”

“좋은 말씀이군요. 제가 생각한 말보다 더 낫습니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송시열이 하는 말에 허목은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은 허목은 허탈함을 담아서 말했다.


“이미 뜻은 이어가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목은 물음을 가슴에 담아두고 하나하나 생각했다.


뜻을 이었다고 하는 게 무엇인고 하니, 결국은 선대가 생각하던 것을 그대로 하고자 혹은 선대가 바라던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바로 유학에서 말하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의미 작금 임금은 가장 그렇다고 할 수 있으니, 허목은 인정하기 싫은 감정 가운데서 이성으로 그 사실을 마주했다.


‘허가야, 참으로 작구나.’


그간 감정으로 보지 못한 척, 알지 못한 척하던 사실을 이제야 정면으로 마주한 허목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본 성상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정의 기치 그리고 이후 산성에서 저 강대한 이들을 맞아 대항한 것을 생각하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굳건하시니, 정녕 그렇습니다.”


허목은 힘없이 인정한 후에 궐을 향하여 섰다.


그렇게 선 허목은 망설이던 끝에 크게 절을 올렸다.


“과거에 사로잡혀서 죄인은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성상께서는 이 허 모를 용서하지 마십쇼! 성상께서 유학의 근본을 지켜 나라를 이롭게 하고 백성을 위하고자 하시었고, 사방에 덕으로 교류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헌데 이 허 모는 그저 잘못을 주장하여 창호지에 구멍이 난 집을 허물고자 하였으니, 실로 대역죄인이라 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 정통성을 이어가시길 권합니다!”


허목은 말을 하면서 절로는 부족하다고 하듯 그대로 땅에 머리를 찧었다.


“유학의 나라에서 정통성이라고 함은 요순께서 이미 보였듯 혈통이 아니라 유학의 뜻을 숭상하는 것이며 귀한 뜻을 계속하여 따르겠다고 주장함입니다! 하여 제 말은 심히 어리석은 아집임을 알았으니, 이 소인배는 벌하여 잊으시고 가시던 길을 계속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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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1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1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0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3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5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5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67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7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8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0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2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4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88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6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4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4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5 16 17쪽
» 519화 정통성 +4 24.03.11 181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4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5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88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79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4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4 15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76 17 13쪽
512 511화 민감한 일 +2 24.03.03 191 14 12쪽
511 510화 노인의 일 +3 24.03.02 198 18 13쪽
510 509화 고귀한 이름 +4 24.03.01 175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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