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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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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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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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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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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09화 고귀한 이름

DUMMY

509화 고귀한 이름


“일 년에 두 번이다.”

“고작 절반이라니, 째째하네요.”


진심으로 서운함을 비치는 말에 황태후 보르지기트 저르저르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황상의 명으로 네가 죽을 때까지 정식 사절이 일 년에 두 번 일본으로 간다. 오로지 너 하나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적다니, 오히려 이것도 대단하다고 함이 옳다.”

“바란 네 번에 비하면 적지요.”


그러나 정작 그 어미를 움직여서 받고자 했던 아이신기오로 비양고가 보기에 그것은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고작 일 년에 네 번,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저르저르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잠시 정사에 관심을 거두고 있던 그녀와 달리 아들을 위해 내각 대학사 범문정이며 섭정친왕회와, 때로는 북경이며 낙양 그리고 조선에까지 사람을 보내고 의견을 나누던 조카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그 말을 다 들은 저르저르는 이해하였으니, 그녀는 이제 이해한 말을 딸을 상대로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조선에서 수시로 드나들고 있지만 본디 나라 간에 사절이라고 함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보내는 거다. 들으니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도 일 년에 세 번만 오갔다고 하거늘, 너는 개인으로 나라를 대신할 생각이냐?”

“조공이며 하사품이 오가는 일은 아니니 경우가 다르지요.”


경우가 다르다고 하며 고집스럽게 아쉬움을 비치는 딸을 보며 어미는 달래던 얼굴을 바꾸어 엄한 표정을 지었다.


“쯧쯧, 이렇게나 철이 없다니. 이 일은 단지 청나라에서 가고 일본에서 받는 일이 아니다. 그 중간에는 조선이 있으니 응당 그들의 기분을 살펴야 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설마하니 모르고 있다고 하진 않겠지?”


서늘한 눈으로 딸을 바라본 저르저르는 현실을 나지막이 덧붙였다.


“당금 황상의 정통성은 상당수 조선에게 의지하고 있는 형세라는 걸 말이다.”


우습게도 저르저르의 말처럼 순치제 아이신기오로 푸린의 정통성은 홍타이지가 세운 계승 법도로 인해 인정되었다.


다시 말해 조선이 그를 청나라 황제로 인정하였기에 홍타이지의 뒤를 이은 정통성 있는 황제라는 주장이 통하였다는 말이기도 했다.


물론 실질적인 권력 기반은 당연히 황태후 보르지기트 붐부타이와 섭정친왕회 그리고 이 제도가 자리 잡기를 바랐던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로 묶이게 된 명분은 푸린이 홍타이지의 뒤를 이었음을 천명함에 있으니 이에는 조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당장 유언처럼 제정된 계승 법도에서는 조선의 인정을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고로 조선이 어느 날 푸린의, 혹은 푸린이 지명한 후계자에 대한 의문을 내비치면 정통성에 금이 가는 건 순식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일본으로 가려는 생각을 품었지요.”


그러니 적어도 비굴하게 굴지는 않아도 괜한 일로 충돌하는 일은 줄여야 한다는 건 비양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현실이 그녀가 일본행을 희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나는 여전히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부족함이 어디에 있길래 그렇게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고자 하는지 말이다.”


저르저르가 하는 말에 비양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여지껏 낸 적이 없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제는 정하여졌으니 제가 일본으로 가는 일은 변하지 않겠지요?”

“그래. 그것은 이제 네 뜻대로 될 거다.”


비양고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는 한편으로 섭정친왕회의 뜻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저르저르는 살짝 입맛이 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비양고는 그러한 어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저는 말이죠, 높아지고 싶어요.”

“공주보다 높은 사람이 또 어디에 있다고.”

“대청이 본래 계획대로 명나라 땅을 모두 차지하였다면 그렇겠지요.”


눈을 빛내며 말한 비양고는 제 처지를 논했다.


“어머니께서 보시기에 저는 어떤 높음에 있나요?”

“대청의 공주지.”

“그렇지요. 저는 대청의 공주에요. 그러니 얼마든지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정말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는 자리인가요?”

“하지 못하는 일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저르저르가 하는 말에 비양고는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을 잘못했네요. 물론 그렇겠죠. 다만 이 대청에서 저는 어지간한 것들보다 높지 못해요. 제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푸린보다, 아니 실수네요. 아무튼 황상보다는 낮습니다. 어머니보다도 낮고, 작은어머니보다도 낮겠지요.”


저르저르는 자신보다 낮고 붐부타이보다도 낮다는 말에 비양고가 무엇을 보고 이리 행동하기로 작정하였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신기오로라는 이름이 있는 한 분명히 비양고는 귀한 몸이었다.


하지만 천하에 그녀보다 높은 이가 없는가 하면 이 심양에만 하여도 가뿐히 열 손가락을 넘긴다.


“만약 대청이 온전히 하나여서 천하를 쥐었다면 만족하였을 겁니다. 아이신기오로라는 이름이 더없이 높아졌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천하에서 가장 귀하다는 말에는 손색이 있으니, 이십이 아니라 오십을 세어도 제 자리는 없을 거 같아요.”

“······아마도 그렇겠지.”


비양고의 말을 저르저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청나라에서 이십을 찾고 조선에서 한 다섯 내지는 일곱 정도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이미 이것으로 삼십에 달하는 데 일단 청나라와 천하를 두고 겨루는 상대로 명나라가 있음을 생각하면 남은 자리 역시 순식간에 채워질 것이다.


“그러니 저는 일본으로 가서 그러한 자리에 오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청의 도움이 필요하니, 제가 그저 보내어지고 잊히는 게 아니라 긴밀한 관계가 있어서 소외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말할 수 있는 힘이, 발언권이 필요해요.”

“발언권이라. 하긴, 지금 일본국왕은 너보다 나이가 있으니 어린 네 말은 잘 듣지 않겠지. 그리고 후계 역시 있다고 하니 그 자리를 위협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그것도 그렇지만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고귀한 지위에 있는 정사에 개입한 권한을 얻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후계를 얻음이 가장 보편적이고 확실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고를 길은 오로지 하나니, 그녀 스스로 힘이 있음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청나라 황제가 그녀를 잊지 않았고 아끼고 있음을 알아야 했다.


허니 비양고가 보기에 일년에 두 번은 너무 적었다.


물론 처음에는 저들도 공경할 것이고 그것을 계속해서 일깨울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 년에 두 번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도 적어도 반년의 유예를 주는 것으로 보였다.


일본에서 그녀를 적대하고자 하는 이가 있던, 아니면 청나라에서 그녀를 없이 하고자 하는 이가 있던 말이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한 번이라도 취소되면 그 기간은 단번에 일년이 된다.


네 번 가운데 세 번이 온전한 것과 두 번 가운데 한 번이 온전한 것은 그 다가오는 느낌이 완전히 다름을 비양고는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저르저르 역시 이제는 비양고가 어찌하여 이러한 생각을 품었고 무엇을 왜 걱정하고 있는지 알았다.


“결국 필요한 것은 너 자신이 힘이 있음을 드러냄이로구나?”

“단적으로 말하면 그런 셈입니다. 하지만 북경을 얻었다고 한들 아직 달려서 얻을 땅이 많은데 제가 어찌 팔기를 청하겠습니까? 수십으로는 부족하고 수백은 애매하며 수천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숫자를 결혼에 딸려 보냄은 이상한 일이지요. 하물며 제가 그러한 일을 강하게 주장하다고 한들, 그리고 설령 황상께서 받아들이신다고 한들 어느 팔기가 따라오겠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쓰거라.”


한탄하듯 늘어놓은 말에 저르저르가 가벼이 이르니 비양고는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두 눈을 끔벅거렸다.


이에 저르저르는 가벼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소 번거롭게 되겠지만 원한다면 반드시 연락할 수 있게 하여주겠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비양고 역시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면 무엇보다도 만약에 경우 그들이 가장 먼저 당할 것이 뻔히 보였기에 포기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연락할 수 있고 자신의 사정을 알려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부지 그럴 수 있다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 일이 가능함은 말로서도 충분히 가능하니, 비양고는 실제로 휘두르지 못할 칼이며 쏘지 못할 활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저르저르 역시 같았으니 그녀는 조금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


“일 년에 두 번 공식 사절이 간다. 그리고 네게는 연락관을 둘 것이니, 이들은 일 년에 여섯 번 확인을 취할 것이다.”

“연락관? 하지만 그런 이들은 있어도 제압당하면 쓸모가 없습니다.”

“대청을 적대하고자 마음먹으면 언제든 그럴 수 있겠지. 그리고 세상일은 변하기 마련이니, 그도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두 나라를 대적하고자 마음먹는 것은 어렵지.”

“두 나라?”


비양고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리자 저르저르는 아직 그녀가 모르는 사실, 조금 더 정확히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 사실을 입에 담았다.


“일본에는 조선인들이 상주하는 곳이 있다.”

“······아!”


뒤늦게 저르저르가 하는 말을 깨달은 비양고는 기대를 담아서 시선을 보냈다.


딸의 시선에 어미는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입에서 꺼냈다.


“지명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조선 사람들이 뱃길을 위해서 일본에 빌린 땅이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심양에 머무는 유구국 왕제의 고향, 유구로 갈 수도 있지.”

“아주 좋은 땅이네요.”

“그래. 무엇보다도 유구에는 적지만 천우병도 있다. 여차하면 그들을 의지할 수도 있을 거다.”


들으면 들을수록 매력적으로 들리는 말이나 이내에 비양고는 주저하는 얼굴이 되었다.


이에 저르저르는 의아하게 보다가 딸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웃었다.


“조선과 일본이 손을 잡을까 걱정하는 것이냐?”

“세상만사는 변합니다. 과연 그러한 일이 없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지요.”


이해하지 못할 걱정은 아니나 저르저르는 그 걱정이 괜한 걱정이라고 여겼다.


“불가능하다, 아니다만 논하면 네 말이 옳다. 하지만 조선에서 그럴 이유가 없구나.”

“조선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을 부리고, 나라는 언제나 그 극한을 달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다.”


욕심을 부리기에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에 비양고는 살짝 당황했는데, 이에 저르저르는 입꼬리를 올렸다.


“조선은 지금 천하 사방과 교류한다고 하는 자리 자체로 여러 이득을 보고 있다. 그런 나라가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얻고 있던 막대한 이득을 버리고 손을 잡아 병사를 일으킨다고? 그거야말로 욕심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일이다.”

“그것도 다른 종류의 욕심이지요.”

“아니, 그건 욕심이 아니다. 야망은 더욱 아니지.”


저르저르는 확실하게 단정지어 말한 후에 잠시 생각하더니 방금 논한 일에 대해 정의를 지었다.


“그것은 단지 어리석음일 뿐이니,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네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그 지경에 이른다면 조선이고 일본이고 별 볼일이 없는 나라가 될 것이다.”


저르저르가 한 말들을 가만히 곱씹어 본 비양고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과한 생각은 오히려 적이니 그것은 그저 경계만 하고 넘기는 게 가장 현명하겠지요. 알겠습니다. 심양에서 일 년에 두 번, 그리고 일본의 조선인 거주지를 통하여 일 년에 여섯 번. 그것으로 만족하고 떠나겠습니다.”


떠나겠다고 공언하는 딸을 잠시 바라본 저르저르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손을 뻗어 그 뺨에 대었다.


“이제 더는 보지 못할지 모르니 여기서 말하마. 너는 고귀해질 수 있다. 나와 선황의 딸이니 그만한 힘과 재지가 너에게는 전하여졌을 거다. 부디 그 모든 걸 쓸데없이 낭비하지 말거라.”

“예, 어머님.”


이 대담을 끝으로 비양고가 일본으로 가는 일이 빠르게 진행되니 그녀는 달이 지나기 전에 심양을 떠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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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538화 감추는 재미 +2 24.03.30 161 16 12쪽
538 537화 모두가 아는 비밀 +2 24.03.29 151 14 13쪽
537 536화 승부에서 이기는 방법 +4 24.03.28 150 15 12쪽
536 535화 알고도 모른 척하긴 어렵다 +2 24.03.27 153 14 12쪽
535 534화 미룸은 미정이 아니다 +3 24.03.26 163 14 12쪽
534 533화 허황된 이야기 +2 24.03.25 155 14 16쪽
533 532화 덕은 풍성함이 전부가 아니다 +2 24.03.24 165 12 12쪽
532 531화 소망은 성장한다 +4 24.03.23 167 15 15쪽
531 530화 한가함 뒤에 다가오는 것 +2 24.03.22 157 13 12쪽
530 529화 신부 교환 +2 24.03.21 178 14 13쪽
529 528화 어려운 관계 +3 24.03.20 180 13 11쪽
528 527화 친하면 조금이라도 돌아본다 +1 24.03.19 167 15 13쪽
527 526화 연약한 사람 +6 24.03.18 162 18 12쪽
526 525화 물려받은 천성 +1 24.03.17 164 13 12쪽
525 524화 인정받지 못한 아이 +1 24.03.16 188 15 12쪽
524 523화 뜻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2 24.03.15 156 16 13쪽
523 522화 병졸과 역관 +4 24.03.14 164 19 12쪽
522 521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3 24.03.13 173 14 13쪽
521 520화 용기 있는 말 +4 24.03.12 174 16 17쪽
520 519화 정통성 +4 24.03.11 180 19 13쪽
519 518화 그대는 옳다 +3 24.03.10 173 14 11쪽
518 517화 거울 같은 사람 +3 24.03.09 174 14 12쪽
517 516화 우선하여 해결할 일 +2 24.03.08 188 17 13쪽
516 515화 맞수 +3 24.03.07 178 17 14쪽
515 514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7 24.03.06 183 16 13쪽
514 513화 소리는 사람을 모은다 +2 24.03.05 183 15 12쪽
513 512화 비상함은 필요하지 않다 +4 24.03.04 175 17 13쪽
512 511화 민감한 일 +2 24.03.03 190 14 12쪽
511 510화 노인의 일 +3 24.03.02 198 18 13쪽
» 509화 고귀한 이름 +4 24.03.01 175 1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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