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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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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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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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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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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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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장 노병의 찬가(13)

DUMMY

커헝


몸에 창이 여럿 꼽힌 늑대 마수 하나가 지르는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이제 더 눈에 보이는 마수가 없는 걸 확인한 사다르는 창을 뽑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친 놈도, 죽은 놈도 없군.”


알아보는 거야 쉬웠다. 누군가에게 상황을 파악하라고 물어볼 필요도 없이, 분지에 늘어선 이들을 보면 되는 일이었고, 그거야 거리가 멀더라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사상자가 없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나, 너무 쉬운 거 아닙니까?”


조금 전 같은 대상을 향해 내밀었던 창을 회수한 헤이슨이 슬쩍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그 말에는 사다르도 동감이었다.


그때는 수호자들이 죽어 나갈 정도로 치열하고 갑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감각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수호자 한 사람으로 모든 걸 감당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긴 힘들겠지?”

“형님이 퍽이나 그렇겠수.”


주변을 둘러보며 혹여 남은 마수가 어디 숨어 있지 않나 살피던 콜타스가 툴툴거리며 다가왔다. 그 말에 사다르는 부정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었다.


나이를 먹었어도, 어쩌면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더욱 변하지 않는 습성이라고 하는 게 있다. 사다르의 경우 이런저런 넘겨짚기 혹은 괜한 걱정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점이 그랬다.


“누가 옵니다.”


헤이슨의 말에 사다라와 콜타스는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고, 그가 어딘가를 가리키는 걸 확인하자 다시 그 손가락을 따라서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가 말한 것처럼 말을 탄 이들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가만히 그들을 보던 사다르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입은 갑옷과 지닌 무기가 자신들과 같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렇겠지.”


그들의 시대는 예전에 끝났다. 한 번 더 나서긴 했으나, 이곳 마하난 평원이 그들이 살 곳이며 끝을 맞이할 장소다.


그러니 사다르는 아쉬움을 내버리고 험한 길을 갈 다음 세대를 반갑게 맞이하기로 했다.


부우우-


허리에 도로 걸어둔 나팔을 꺼내 부니 여기저기서 저들 좋을 대로 쉬고 있던 신전병들이 시선을 사다르에게, 이어서 다가오는 이들에게 향했다.


다가오는 이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말을 세우고 그대로 내려서 열을 맞추어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한 사다르는 가슴에 팔을 올리고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대들의 여정에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그러자 다른 이들 역시 사다르와 마찬가지로 예의를 갖추었고, 그들의 인사를 알아본 상대방 역시 같은 방식으로 예의를 갖추었다.


“여정을 마치신 분들에게 평안이 함께하길.”


곧장 돌아온 대답에 사다르는 눈이 뿌옇게 되는 걸 느꼈다. 무어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 모두 두서없는 말이 될 것이 뻔했고,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이라 여긴 사다르는 눈물과 말을 같이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앞에 뛰어내리는 자가 있었다.




“나팔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입니까?”


처음에 의아하게 여기고 그다음에는 넘겼으며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된 이, 새로운 수호자 아레타였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아레타는 곧 다가온 이들 중 가장 앞선 이, 호붼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붼? 여기에는 어떻게?”

“하하, 대신전에 계신 분들이 서두른 덕이죠. 다만......”


고개를 들고 사다르와 그 주변에 있는 이들 그리고 분지 사방에서 이쪽으로 오는 이들을 본 호붼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민망하게도 그럴 필요가 없던 거 같군요.”



***



“용케도 다들 알고 왔군그래.”

“저런 알기 쉬운 표식이 있는데 모르는 놈이 천치지.”

“거기에 젊은 놈들이 기겁해서 마을에 와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은 덕에 바로 알았지.”

“내 영주가 이런 짓 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한 소리 해주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러지 못한 게 아쉽네.”

“그건 나도 동감이야. 허나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으면 나은 편이겠지.”


다른 마을에서 온 늙은 신전병 하나가 안타까운 얼굴로 분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미처 도망치지 못하고 죽은 이들을 확인하고 눈물을 그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전병은 조금 전 자신의 말을 취소하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래, 살았으면 그나마 나은 게지.”


그의 말에는 사다르 역시 동감이었다. 살아있다면 나은 거다. 그 생각을 하고 주변을 보던 중 사다르의 눈에 영주가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만신창이가 된 영주는 무언가를 안고 울고 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본 사다르는 탄식했다.


“허어, 영주도 대가를 치렀나.”


오래전, 백색 교단과 관계한 이들에게 좋은 일은 없었다. 속은 이는 물론이고 욕심을 품고 손을 잡은 이들 역시 그러했다. 가장 나은 길, 나은 삶을 누린 건 대적하여 이긴 자신들이다.


“잊혀지는 건 무서운 법이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말이나 이 자리에 있는 누구 하나 사다르의 말을 곡해하거나 오해하지 않고 제대로 알아듣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만히 시신들과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영주를 보던 중, 사다르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돌린 시야에는 헤이슨과 그 손자 이발트가 서로 안부를 묻는 모습이 보였다.


“허허. 난놈이 하나 있긴 했네.”



***



“선발대?”

“예. 아무래도 홀로 전장에 나가시는 것과 뒤를 받쳐줄 이들이 한줌이라도 있는 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호붼은 아직 신전병 편제가 다 끝나지 않았고, 그들만 우선 준비해서 보냈다는 사실을 아레타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아레타는 대신전에서 얼마나 서둘러 이들을 보냈는지 알거 같았다.


‘다들 엄청 고생했겠네.’


본래라면 지금에야 인원 구성이 끝날 무렵이건만, 갑옷에 창에 훈련까지 속성으로 마치고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을 적은 수나마 보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물론이고 도우는 이들 역시 얼마나 바삐 움직였을지 얼추 상상이 갔다.


“다만 아무래도 사람의 지혜는 하늘의 지혜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실제로 체험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레타도 잘 아는 격언을 읊조린 호붼은 주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신께서 수호자님을 위한 신전병대를 이리도 먼저 준비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온전한 규모의 신전병대를 말입니다.”

“......아!”


호붼의 말에 아레타는 말없이 주변을 보며 곰곰히 생각하다가 놀란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계시를 조금 잘못? 덜? 아무튼 본래 뜻에 미치지 못하게 이해했다는 걸 이제 깨달아서요.”


빨리 출발할수록 저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느꼈던 걸 홀로 가서 빨리 대처하면 된다고 이해했으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계시의 본래 의도는 이미 그곳에 협력해줄 이들이 있으니 그들의 조력을 얻기 가장 좋은 때, 혹은 그들이 멀쩡한 때를 권유한 것이다.


‘만약 내가 며칠 늦었다면 이들은 모두 죽거나 도망쳤겠지.’


주변에 있는 나이 든 신전병들을 보니 아무래도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이들에게 주어진 운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전병만으로는 그저 잘 단련되고 경험 좀 있는, 평범한 노병이다.


수호자의 이적이라는 도움이 없다면 이들은 곧 경험을 앞세워 싸우다 다른 이들을 지키고 죽었을 게 너무나도 눈에 보였다.


“감각에 따른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군.”

“무언가 하나를 얻으신 듯하니 좋군요. 정해두신 행보가 있으십니까?”

“행보? 그거야 대신전으로 돌아가야지요. 이들은 충분히 싸우고 은퇴한 이들, 이제 당신을 비롯한 제 신전병들 전원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웃으며 그리 말한 아레타는 곧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말을 찾았다. 멀찍이 홀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발견한 아레타는 그쪽으로 가서 말을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그 걸음은 잠시 뒤로 미뤄졌다.


“아레타 경, 대신전에서 보낸 건 저희가 끝이 아닙니다.”

“당신들 말고도 다른 거라니, 그게 뭡니까?”

“이겁니다.”


곧 품에서 밀봉된 편지를 하나 꺼낸 호붼은 그걸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그에게 받은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본 아레타는 최근 익숙해진 문양이 찍혀있는 걸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관장님의 인장?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저도 내용은 모릅니다. 언질을 받은 것도 없고요.”


호붼의 말에 아레타는 잠시 편지를 보다가 밀봉을 뜯었다. 차분히 편지를 읽어내리던 중 아레타의 얼굴에 몇번인가 변화가 생겼다. 이윽고 모든 내용을 읽은 아레타는 주머니를 열어서 편지를 잘 넣어두고 호붼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여유롭게 쉬어갈 시간은 없은 듯하군요.”

“말은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아레타의 말에 호붼은 곧장 아레타의 말을 가지러 움직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아레타는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사다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그를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렇게들 보십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도 살고, 가족도 살고, 마을도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다르의 말에 따라서 모든 이가 외치며 고개를 숙였다. 과한 예라는 생각에 아레타는 난색을 보이며 그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도움을 받은 건 오히려 접니다. 당신들이 제시간에 오지 않았으면 마수들이 마을로 향했을 거고, 그러면 전 대단히 오랜 시간 싸워야 했을 겁니다.”

“허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레타의 말에 사다르가 입을 열었으나 그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호붼이 말을 데리고 오면서 끼어든 탓이었다. 어느새 선발 신전병들 역시 준비를 마치고 옆에 도열해 있는 걸 본 아레타는 곧 말에 올랐다.


“읏차. 그러면 그대들에게 평온이 있기를.”

“수호자님과 따르는 이들에게 인도와 가호가 있기를.”


사다르의 말을 끝으로 말머리를 돌리려는 그때, 말에 올라서 시야가 높아진 덕인가, 분지 아래쪽이 아레타의 눈에 들어왔다.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에 더해 영주가 망연히 허공을 바라보는 것이 아레타의 눈에 보였다.


절로 안타까움이 드는 모습이었으나 아레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사다르를 포함한 이들에게 남기는 인사말을 그에게도 속으로 전할 뿐이었다.


‘부디 그대에게도 평온이 있기를.’


작은 위안이나 되려나 싶은 말을 속으로 읊조린 아레타는 그대로 말을 달렸고, 대신전에서 온 이들 역시 그를 따라서 말을 달렸다.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던 사다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광과 찬양, 그대의 굽어살피심이 있기를~.”


투박하지만 확실하게 담긴 음정은 분명히 노래였다. 그가 현역이던 시절, 밤에 잠들기 전 전우들과 부르던 노래이자 전장에 나서기 전 동행하던 신관들의 선창으로 항상 부르던 노래였다.


당연히 다른 이들 역시 그가 부르는 노래를 잘 알고 있었고, 하나둘 목소리 높여서 따라부르기 시작했다.


“가는 곳에는 정의가, 돌아오는 곳에는 평온이~.”

“언제나 신께서 보살피시니, 두려워할 필요 없노라~.”


이윽고 노래는 합창이 되었고 그 소리 커져서 분지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고 말을 타고 멀어져가는 이들의 귀에 간간이 들렸다.


앞으로 나아갈 이들을 축복하기 위해 불러주는 노래, 노병들의 찬가는 한동안 그치지 않았다.



***



저들이 불러주는 찬가는 신전병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신전에 가면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래다. 그러니 식상할 법도 하건만, 아레타를 시작으로 누구 하나 그렇게 생각지 않았고 입에서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좋은 배웅이네요.”

“고마운 일입니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비밀로 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요.”


호붼의 말에 아레타는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더니 다른 이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우리가 갈 곳은 아비톨람, 시작의 땅입니다!”


작가의말

이번 편으로 3장은 끝입니다.

막간 후 4장 시작의 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즐거운 금요일 저녁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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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91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91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90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90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9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7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7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4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9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10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3 4 12쪽
27 막간 22.04.09 147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5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3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8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7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6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5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5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9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9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22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5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1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4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3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6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90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303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4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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