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575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06 19:05
조회
156
추천
5
글자
11쪽

2장 첫 번째 수호자(8)

DUMMY

“으음. 이거 재미없는데.”


어지럽다고는 하지만 점점 정리되어가는 대성전을 보며 팔레삭은 마뜩잖은 감정을 드러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아직 물러나도 되는 때인지 확신하지 못한 탓이었다.


후르릉-


고민하던 팔레삭의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돌연 연기가 피어오르며 뭉치는 것이 보였다.


[목적을 달성했다.]


연기는 짧은 문구 하나를 이룬 후 곧 흩어져 버렸지만 팔레삭은 아직도 그 문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하고 웃었다.


“흐흐흐, 퀜달렌님께서 성공하셨군. 그렇다면 여기에 더 머무를 필요가 없지.”


여기에 있는 이들에게 더 고통을 선사해주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나, 굳이 집착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때가 오면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끝날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 선물 하나 정도는 남기고 가는 게 예의이자 정이라는 거 아니겠어.”


팔레삭은 그리 말하고는 진득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가 휘젓는 모양에 따라서 검은 연기가 움직이더니 곧 사방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실컷 즐기라고.”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린 팔레삭은 문자 그대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라진 것이다.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사라진 그를 눈치챈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젠장, 다들 도망쳐!’

“키이익!”


아톨란은 진심을 담아서 외쳤으나 입에서 나오는 건 짐승의 울음소리요, 그 도망치게 한 주체는 정작 그 자신이었으니 모순도 이만한 모순이 없다 싶었다.


벌써 몇이나 되는 시민이 그의 손에 팔이 부러지고 살갗이 찢어졌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도 그저 날뛰는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다였으니, 무력감이 깊게 느껴졌다.


‘이런 꼴을 당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


누군가 그러던가,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라고. 아톨란은 그 말을 깊이 통감하며 눈앞에 보이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때, 그의 눈에 예사롭지 않은 검은 연기가 그를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불길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톨란은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검은 연기를 마주했다.


스윽


연기는 아무런 저지나 저항도 없이 그대로 아톨란의 몸에 스며들었다. 이미 통제력을 잃고 제멋대로 날뛰는 몸으로 무슨 저항을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어서 느껴진 감각에 그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갔다.


쿠웅


‘뭐, 뭐야?’

“키긱, 우오오!”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웃는가 싶더니 크게 포효했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서 전신 구석구석에 지금 이상으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여기서 한층 더라고? 안 돼!’


젊고 경박할 뿐,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라 자부하는 아톨란은 이게 금세 자신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경악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직 그를 제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신전 기사는 없었다. 그러나 강화된 시야는 어렵지 않게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에게 전해주었으니 신전 기사들이 힘써 자신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일이 지지부진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되면 간신히 맞추어지던 균형이 깨질 게 분명했다.


“아톨란!”

‘티칼!? 이 멍청이가 뭐하러......어, 어째서!’


귀에 익은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는 건지 힘이 충문한 몸은 아톨란의 생각처럼 몸을 돌려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보기도 전에 티칼이 있음을 알고 그를 타박하던 아톨란은 친구의 옆에 선 이를 보고 경악했다.


“저게 아톨란이라니, 보고도 믿기가 힘들군.”


그가 때때로 사랑하며, 때때로 싫어하며, 때때로 의지하고, 때때로 귀찮게 여기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 거기에 서 있었다.



***



“아톨란이 맞습니다.”

“그래, 나도 알아.”


티칼의 떨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데일은 이곳으로 오는 길에 챙긴 단봉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데, 데일 형님?”

“넌 물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녀석만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


싸울 자세를 취하자 아톨란 역시 이쪽을 경계하듯 보면서 이리저리 걸음을 움직였다. 마치 동물과도 같은 탐색에 데일은 남몰래 침을 삼켰다.


‘아직 내 솜씨가 멀쩡하길 바라야겠군.’


지금은 신관장 후보로 여겨질 정도로 신관 가운데서 손꼽히게 뛰어난 이로 평가받으나, 본래 데일은 어린 시절 신전 기사 쪽을 꿈꾸고 있었다.


재능이 없지도 않아 제법 괜찮은 실력을 갖췄으나, 가문이 대대로 신관 가문이었던 것에 더해 당시에 낭설로 여기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사실임을 알고 신관으로 길을 잡았다.


현직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나 단련도 몸이 쇠하지 않을 정도로만 한지 꽤 지났으니 이런 상황에서 제 한 몸 건사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장담하기 힘들었다.


“부디 조심하십쇼. 다른 신전 기사들을 보면 이쪽으로 부르겠습니다.”

“손이 남으면이다.”


데일의 마음을 헤아린 티칼은 군말하지 않고 움직였다. 그런 그를 향해 돌아보지도 않고 당부를 남긴 데일은 아직도 자신을 보며 살피기만 하는 아톨란을 보며 웃었다.


이곳에 오기 전만해도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가문의 명예, 아톨란의 미래, 이 일에 대한 뒷감당 등등 온갖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헌데 막상 마주하니 모습이 이상하게 변했음에도 여전히 그가 아는 동생과 같은 면모가 남아있었다.


그걸 확인한 데일은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끼며 도발하듯 입을 열었다.


“여전하구나. 자신이 생길 때까지 재고 또 재는 거.”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톨란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아직은 달려들 생각이 없는지 자세를 잡을 뿐이었다.


“티칼에게 들었다. 네가 주도해서 벌인 일이라고. 너라고 이런 난리를 바란 건 아니겠지만, 책임은 져야지.”

“키끼이!”


설교 비슷한 말이 시작되니 아톨란이 그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걸 보며 얼굴빛을 굳힌 데일은 두 단봉을 세우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형님의 벽이 높다는 걸 알려주마.”



***



“끄, 끝났나?”


대성전에서 도망쳐서 대신전 회랑에서 서성이던 칼뤽은 더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지 않자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으으으, 너무 아파......”

“시, 신관님, 좀 살려주세요.”

“죽지 않을 겁니다. 깨끗이 나을 거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변에서는 대성전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칼뤽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으나 그런 이들보다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한쪽에 모여서 신관들의 치료를 받으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가지 말까?’


부상자들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동시에 움직이던 걸음이 절로 멈추었다. 그러나 걱정하는 마음이 사라진 건 아니었기에 칼뤽은 대성전으로 향하는 곳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친구를 잘 둔 덕에 자신은 소란의 근원들 중 하나와 가까이 있었음에도 다친 곳 하나 없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지금도 저기에 있다.


‘에잇, 이 칼뤽 베레스가 살피러 갈 생각도 못 해서야 면목이 없지!’


고향 사람들과 친구에게는 물론이고 나중에 돌아올 가장 소중한 이들,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서 당당히 말할 수 없다. 특히 이제 새로 세상에 나올 셋째에게 비겁한 아버지라고 자책하고 싶지 않았던 칼뤽은 용기를 내어서 걸음을 옮겼다.


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그를 보고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



“커억!”


조심스럽게, 두려움에 찬 걸음을 애써 움직인 칼뤽이 대성전에 도로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목소리가 괴로움에 찬 신음을 냈다.


“아, 아레타!”

“쿨럭, 쿨럭. 이런 젠장, 넌 또 뭐하러 돌아왔어! 얼른 가!”


칼뤽의 걱정에 벽으로 날려져서 먼지를 뒤집어쓴 아레타는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성을 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곧 칼뤽을 덮치듯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며 다급히 다리를 퉁겼다.


“엎드려!”


퍼억!


아레타의 고함과 동시에 칼뤽이 몸을 웅크리니 그 위로 철봉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지나갔다. 철봉은 그대로 칼뤽의 머리 위로 날았던 호랑이를 쳐냈다.


“히익!”

“후욱, 후욱. 미치겠네. 왜 이렇게 빨라진 거야? 아까 그 연기 때문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조금 전에 상대하던 호랑이에게 스며든 검은 연기를 떠올린 아레타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친구야, 와준 건 고마운데 지금은 좀 그렇다.”

“미, 미안. 나, 나는 걱정이, 그리고 그렇게 있을 수가 없어서......”


덜덜 떨리는 말로 변명하는 칼뤽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산길에서 꼬박 반나절을 기다렸던가.’


다른 건 몰라도 성실함이나 도리 따지는 건 고향 사람들, 아니 어쩌면 그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가 칼뤽일지도 모른다.


“거기서 뒤로 물러나. 내가 잡아끌 테니, 기회 봐서 다시 도망가. 이번에는 돌아오지 마라.”


아레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철봉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바닥을 박찼다.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잘했으니까. 조금 빠르고 강해졌다고 하나, 그것만으로 쓰러질 정도로 자신은 약하지 않다.


그러나 매사 마음대로 돌아가는 게 없던 인생이라고 알려주듯, 새로운 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까아악-

“으, 으앗!? 이, 이건 뭐야!?”

“칼뤽!”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새로운 야수, 까마귀가 칼뤽을 습격하고 있었다.


바닥을 디디며 급히 몸을 돌렸으나, 거리가 이미 멀어져서 제때 도달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가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레타를 비웃듯 옆에서 호랑이의 발톱이 날아들었다.


‘막아야......’


막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철봉을 움직였으나 다가오는 발톱에 비하면 느리게만 느껴졌다. 멀리서 칼뤽에게 다가드는 부리와 발톱이 보였다.


자신은 어느 것도 막지 못한다. 그 당연하고 잔혹한 사실이 현실이었다.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무력함이, 부족함이 너무나도 분했다. 동시에 간절함이 들었다.


‘신이시여, 저희를 도우소서.’


신전 기사로서 평생을 살아온 세월, 그가 절박한 상황에 기대는 건 결국 신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이라 일러도 이상하지 않은 이 순간 신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다.


카앙


따닥


“헛!?”

“내, 내가 멀쩡하네?”


전에 겪었던 것과 같은 감각, 같은 현상이 그에게 일어났다. 아니, 그만이 아니라 칼뤽에게도 일어났다.


그때와 같은 점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게 유일할지도 모른다.


우우웅


“성표?”


동시에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성표가 아레타의 눈앞에 떠 있었다. 메리멀 신관장에게 부탁받아서 이곳으로 그가 가져온 그 성표다. 천천히 손을 내밀어서 성표를 잡으니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촉감이 환상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 언제부터 이렇게 빛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으나 하나는 확실했다.


그에게, 칼뤽에게, 이 장소에 다시 한번 이적이 발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2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1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5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8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