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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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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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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9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1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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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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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3장 노병의 찬가(1)

DUMMY

“날은 좋은데 사람이 없군.”


견뎌낸 세월이 적지 않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노인, 사다르는 그가 거주하는 방앗간 앞에서 주변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사는 방앗간은 언덕배기에 자리 잡아 주변을 오가는 이들이 잘 보였고, 그런 이들을 관찰하는 일은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얼마 없는 낙이었다.


일이라도 많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방앗간을 찾는 사람이 많을 시기도 아니라 이런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다 보니 이렇게 통행이 없는 날은 영 심심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애들을 보자니 이미 다 커서 저들끼리 일가를 이루었으니 그런 일도 없다. 손주들 보는 재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자식들이 사는 마을은 같은 마하난 평원 근방이라도 제법 거리가 있었다.


부인이 있으면 이 지루함도 조금 덜어질지 모르나, 안타깝게도 그의 부인은 벌써 20년도 전에 하늘에 부름을 받았다. 뭐 그리 급했는지, 아니면 그 곱게 참한 성품이 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를 일이나 사다르는 후자에 내심 무게를 두고 있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은 전장에서, 그 후에는 개간을 위해 살던 무식쟁이에겐 아까울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나팔이랑 갑옷 손질한 지도 꽤 됐는데......”


젊은 시절 그가 쓰던 물건들을 손본 지 오래되었다 생각한 사다르는 오지도 않을 방문객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들어가서 그거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나 고민이 들었다.


‘아니지, 오랜만에 헤이슨 그 녀석이나 찾아가 봐?’


친구는 아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래도록 사귄 이들이 저 아래, 라렉시안 마을에는 아직 많았다.


매해 조금씩 아는 이들이 줄어가는 마당이니 이런 남는 시간일수록 함께 할 시간을 늘리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그치들이라도 찾아가서 옛날이야기나 해볼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언덕 아래에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호오.”


조금 더 있자니 사람 그림자가 조금 더 자세히 보였다. 말에 올라탄 이의 몸이 조금씩 빛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괜찮은 갑옷이라도 하나 걸친 모양이었다.


“순례자이신가. 이거 오랜만에 이야기할 사람이 찾아오는군.”


즐거운 얼굴로 다가오는 이를 기다리니 과연 생각하던 대로였다. 몸을 여행용 겉옷으로 가리긴 했으나 그 안에 있는 순백의 빛은 그가 익히 아는 신전 기사의 갑옷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복색에 사다르는 살짝 반가움을 느끼며 다가온 이를 향해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청년, 반갑소.”

“반갑습니다.”


사다르의 갑작스러운 인사에도 상대는 당황하지 않고 말에서 내리더니 마주 인사했다. 상당히 예의 바른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이라는 생각이 든 사다르는 기꺼워하며 다시 말을 건넸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라렉시안 마을이라는 곳으로 갑니다.”

“그러면 제대로 찾아왔군. 이 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라렉시안 마을이오.”

“그렇습니까.”


사다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싶던 청년은 무슨 생각인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사다르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 같은데, 괜찮으면 나라도 들어드리리다.”

“아, 감사합니다. 헌데 고민은 아니고, 그 뭐라고 해야 할까.......”


말을 고르듯 입을 열었다 닫더니 이내에 어렵게 말을 꺼내었다.


“마을이나 근방에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야수로 인한 피해라거나요.”

“야수? 이 근방에 사는 동물은 소나 양 같은 게 다인데? 위험한 걸로 치면 뱀이 좀 있긴 한데, 독은 없는 종이 대부분이지.”

“그렇습니까.”


사다르의 말에 청년은 복잡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올랐다.


“감사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다시 뵙죠.”

“혹시 라렉시안 락번 경의 묘지에도 가시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는 사다르의 물음에 곧장 경계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사다르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신전 기사라는 거 알아보는 게 무에 어럽다고. 그리고 거긴 자네와 같은 목적으로 수년에 한번, 사람들이 찾는 곳이야. 뭐, 자네와 같이 아예 연고가 없는 곳에서 오는 이는 드물지만.”

“허, 연고가 없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기 근방을 개척하고 마을을 세우는 데 한 손 거든 게 나일세. 그러니 이 지방 토박이는 거진 알지. 그리고 무기가 전투 망치가 아니지 않나. 보아하니 로앙인 거 같은데, 내직이신가?”

“......아는 게 많은 어르신이시군요. 아닙니다.”

“젋은 나이에 고생이 많겠군. 그런 자네에게 선물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하나 좋은 걸 하나 알려주지.”


정말로 즐거운 듯이 웃은 사다르는 몸을 일으키고는 한쪽 손을 펴서 길 끝을 가리켰다.


“라렉시안 마을로 가면 헤이슨이라는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이 있네. 음식도 괜찮고 숙박업도 함께 하는데 이것도 제법이지. 내 소개로 왔다고 하면 제법 잘 해줄 테니 거기 묵는 걸 추천하네.”

“감사합니다.”

“뭐, 그놈이라면 자네가 신전 기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해주겠지만. 나도, 그 녀석도 예전에 신세를 많이 졌거든.”

“예?”


무언가 궁금하게 만드는 화법에 청년은 되물었으나 사다르는 추억에 잠긴 듯 두 눈을 감고 더 말하지 않았다. 어색하게 머뭇거리던 그는 곧 말을 몰아서 라렉시안 마을을 향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군. 음?”


이미 상당히 멀어진 후에야 그 사실을 떠올린 사다르는 아쉬운 듯 라렉시안 마을로 향하는 신전 기사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어떤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그립고, 어려웠던 느낌이 들던 그 순간 바람이 세차게 불며 신전 기사의 겉옷이 세차게 휘날렸다. 동시에 팔 부분이 드러났는데, 그곳에 새겨진 문양 반쪽이 멀리 있음에도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바로 생각할 정도로 익숙했다.


“어디서 보았더라?”


그러나 나이 먹음이 원인인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멀찍이서 대충 보아서 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던 사다르는 고개를 흔들더니 곧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생각나지 않으니 대단한 것이 아니겠지, 하는 흔한 생각이었다.


“시간이 남으니 손질이라도 해야겠군.”


신전 기사가 오기 전에 할까 했던 일을 떠올린 사다르는 걸음을 옮겨서 옛 물건을 찾았다.


“콜록, 콜록.”


창고를 뒤지니 그간 방치한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먼지가 가득 피어올랐다. 한껏 피어오른 먼지에 마른기침을 한 사다르는 오래전 부인이 하던 말이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매번 정리 좀 하라고 했었지.’


그리움이 물드는 얼굴을 하면서도 손을 놀리던 그는 오래지 않아서 찾던 것을 찾아내고 끄집어냈다.


“분명히 내 나팔이......아, 여기에 있, 허?”


오래 전 쓰던 나팔에 새겨진 문양. 나팔을 쥔 손에 가려진 문양은 분명 조금 전에 그가 떠올리지 못하고 넘겼던 것과 닮아있었다.


멍하니 그 문양을 보던 사다르는 이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고는 급히 나갔다. 그리고 조금 전 보았던 신전 기사를 찾았으나 이미 가버린 이가 보일 턱이 없었다.


“허어, 허허, 허. 설마 다시? 아니면 내가 헛것이라도 보았던가?”


잠시 중얼거리던 사다르는 곧 나귀를 매어둔 곳으로 가서 달구지와 나귀를 끌어왔다.


“물어봐야겠어.”


그가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가 헛것을 보았다면, 혹은 그의 조언에 따르지 않았다면 어렵겠지만 전자라면 모를까 후자는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전 기사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 하나, 라렉시안 마을에 숙박할 수 있는 가게는 헤이슨의 술집 하나뿐이다.



***



“조용한데.”


사다르가 쫓아나선 청년, 아레타는 그가 쫓아오는 줄도 모르고 라렉시안 마을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가벼이 말을 몰아서 마을을 둘러보니 호기심을 느낀 이들의 시선이 몇 느껴지긴 했으나 다가오는 이는 없었다.


아마도 이런 곳 특유의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발한 것이라 여긴 아레타는 곧 사다르가 말했던 술집 앞에 말을 멈췄다.


“여기군.”


말에서 내려 적당히 묶어 놓고 문을 손을 올리고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니 술집임에도 상당히 깨끗했다. 술꾼끼리의 다툼으로 인한 손상도 변변히 없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아레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그런 꼴이 되는 거지?’


끼이익


의문을 품으며 문을 미니 칼뤽의 여관과 달리 방울은 달려있지 않은지 대신해서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관리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인가 싶었으나, 조금 전에 본 외관에 더해서 깨끗한 내부를 보니 아무래도 이건 방울을 대신해서 일부러 이렇게 해둔 거 같았다.


‘취향하고는.’

“이런 아침부터 술 마시러 오는 놈은 어디의......어이쿠, 이거 신전 기사님께 실례했습니다.”


혼을 내는 말이었지만 능글거리는 목소리로 보건대 진심은 아닌 듯했다.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상당히 곱게 세월을 지낸 노인이 보였다. 그는 아레타의 복색을 알아보더니 곧 예의를 갖추었다.


‘이거......’

“안녕하십니까. 방을 좀 얻고 싶습니다. 사다르 씨라는 분의 말로는 좋은 곳이라고 하던데요.”

“사다르? 그 방앗간지기 형님? 언제나 그렇지만 오지랖이 넓어요. 그래, 며칠이나 묵으십니까?”

“으음......”


며칠이나.


그 말에 아레타는 고민에 빠졌다. 계시를 보았고 그게 곧 일어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는 정확히 모르니 며칠이라고 확답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마냥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기에 아레타는 일단 적당 기간을 부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방은 곧 치워드리죠. 잠시 여기서 편히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아, 말도 한 필 있습니다.”

“말이요? 콜타스 그 친구가 간만에 할 일이 생겼군요.”


아레타의 말에 빙그레 웃은 그는 곧장 목소리를 높여서 외쳤다.


“어이, 콜타스! 콜타스!”

“시끄럽게, 간다, 가! 하여간 헤이슨 이 자식은 나이 먹고 목청만 늘었다니까. 왜?”


부름에 응해 모습을 드러낸 건 또 다른 노인이었다. 그는 곧 아레타를 보더니 상황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 그것도 말이 있는?”

“그래.”

“이야, 이거 오랜만에 제대로 된 분이군? 오호, 이거 이제 보니 신전 기사셨나? 반갑습니다.”


콜타스라 불린 이는 반색하며 말하더니 곧 예의를 갖추어 고개를 숙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신전에서 일하는 이들이 하는 것처럼 인사하는 모습에 아레타는 묘한 얼굴로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 보니 퇴역한 이들이나 그 자손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했지.’


언덕에서 만난 사다르라 한 이도 그렇고, 이곳 주인이나 이 콜타스라는 이도 그렇고 상당히 신전과 관계있는 이들인 거 같았다.


어쩌면 대신전에서 들은 그들이 이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물어볼까?’


잠시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내에 그 생각은 사그라들었다.


대신전에서 안 바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한번 감내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다시금 끌어들이다니, 할 짓이 못 된다 싶었다.


“정리가 되면 알려주세요.”


짧은 말을 남기고 아레타는 가게 안쪽 창가에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적한 풍경, 그 풍경을 보며 아레타는 천천히 이곳으로 떠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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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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