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573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14 19:05
조회
95
추천
3
글자
12쪽

3장 노병의 찬가(5)

DUMMY

“골치 아프군.”


일단 신전에 확인을 취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와서 헤이슨에게 물으니 가장 가까운 신전은 3일 거리에 있었다.


걸어서니 말로 달려서 무리하면 아마도 하루에 갔다가 이틀로 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그러자니 감이 경종을 울렸다.


이곳을 떠나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이르는 감의 경고에 아레타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고작 감이라고 무시하기에는 대신관장이 한 충고가 머리를 맴돌았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나, 이번에 한해 계시가 그대를 계속 도울 것입니다. 사소한 일 하나하나, 가벼이 여기지 마세요. 당신의 감을 포함한 모든 것이 도움이라 여겨야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신관장이 진지하게 충고한 말이니 경홀히 여길 수는 없었다.


“어라? 이곳에서 묵고 계셨습니까?”

“음?”


들어 본 거 같은 목소리가 아는체하자 아레타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잘 모르는 청년이 웃으며 그를 보고 있었는데, 목소리처럼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이었다.


이곳은 초행인데 아는 얼굴에 아는 목소리라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를 가만히 바라본 아레타는 어디서 그를 보았는지 기억해냈다.


“영지병?”

“한시적이긴 하지만, 맞습니다.”


분지에서 만났던 그 청년 병사였다. 알아보고 이상함이 가시는 듯하더니 곧 궁금함과 함께 다른 이상함이 찾아왔다.


“일이 벌써 끝났습니까?”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한시적이라고요. 전 정규 영지병이 아니라 임시 모집된 이랍니다.”

“이발트, 전에도 말했지만 영주 같은 놈에게 굽신거릴 필요 없다.”


어느새 다가온 헤이슨은 청년, 이발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런데 그 못마땅함은 청년을 향한 게 아닌 거 같았다.


“영주랍시고 거들먹거리지만 그놈이 이곳에 기여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하하, 그래도 영주님이니 뭔가 하시긴 했겠죠.”

“세금 계산이나 열심히 했겠지. 큼, 죄송합니다. 못난 손자 때문에 흥분해버렸습니다.”


영주를 향한 불평을 계속 늘어놓던 헤이슨은 아레타의 시선에 민망한 듯 헛기침하며 사과했다. 그의 말에 아레타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영주가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까?”

“권리가 없는 만큼 의무도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상 돈 많은 한량이었죠.”

“이었다? 지금은 뭔가 하는 거 같긴 하던데.”

“뭔지도 모르고 그 장소를 파헤치는 일 말입니까. 그런 거, 어리석은 놈의 집착에 불과합니다. 신전도 왜 그런 걸 허가해서.”


신전이 허가했다. 그 말을 들은 아레타의 눈이 빛났다. 곤란한 일 하나를 지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신전에서 허가를 내준 일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제 딴에는 나중에 도로 원상 복귀하겠다고 했는데, 저리 파헤치고 흙이나 적당히 덮으면 누가 알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그곳에는 따로 표식이라고 할 법한 게 없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굳이 이렇게 싫어할 필요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니 괜찮지 않습니까. 분지를 메우려고 하는 거 같지도 않던데.”

“그렇긴 한데, 그곳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그냥 두는 게 답인 거 같습니다. 그 저주받을 놈들을 생각하면 후대에 대한 경고로 딱이지 않습니까.”

“후대에 대한 경고?”


아레타의 물음에 헤이슨은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악한 자들이 있는 곳은 저리 풍요를 빼앗아가니, 절대 상종도 하지 말라. 그런 겁니다.”


헤이슨의 말에 아레타는 분지와 주변 평지 상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풍요로운 주변에 비해 안쪽은 황량한 돌밭이었다.


“헌데 자꾸 접근하면 없던 일 취급하며 저들 맘대로 드나들겠죠. 저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싸웠던 모든 일이 없던 거라고, 단순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려는 거 같아서요.”

“......이해합니다.”


헤이슨의 말에 아레타는 십분 공감했다. 어쩌면 묘지에 다녀오기 전이라면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겼을지도 모른다.


허나 기억으로나마 그 참혹한 몰골을 본 이로서 그곳이, 그때가 잊히지 않기 바란다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제가 말이 너무 많았군요.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뭐라도 드시겠습니까? 이발트, 너도 먹고 들어가거라.”

“고맙습니다.”

“저녁이라, 나쁘진 않은데 그 전에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드리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헤이슨을 보며 아레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분지 일,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글쎄요, 이 녀석이 일하러 가기 시작한 때부터이긴 한 거 같은데......”

“오늘로 열흘 정도 되었을걸요.”

“열흘, 열흘이라.”


기묘하다. 무언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열흘이라는 시간이 어딘가 걸렸다. 그러나 그 걸리는 기분을 온전히 해결할 번뜩임은 없었다.


결국 아레타는 답답함을 느끼며 일단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감에 따르면 길어야 하루나 이틀, 무언가 벌어지니까.


부디 벌어진 이후라도 늦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고생들 했네. 내일 같은 시간에 보자고.”


집사의 말에 영주 그리독에게 고용되었던 이들은 제각각 집으로 돌아갔다. 집사는 곧 먼저 저택으로 돌아간 영주를 보러 길을 걸었다. 분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저택에 도착한 집사는 시큰거리는 무릎에 나이 먹음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거 정말 아들놈에게 다 물려줘야 하나.”


쉬이익


흠칫


영주가 한 말을 다시 곱씹어보던 집사의 귀에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를 혀로 핥는 특유의 소리, 뱀의 혓바닥소리였다.


“어, 어디지?”

“실례합니다.”

“으!?”


독사라면 위험하니 당장 발견해서 처리해야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저택으로 가는 길 옆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고 이리저리 살피던 집사는 기척도 없이 들린 목소리에 크게 놀랐다. 다만 놀란 것과 별개로 오랜 세월 다져진 몸가짐은 그 행동이 크지 않게 해주었다.


“이런, 죄송합니다. 그리독 영주님 저택을 찾고 있습니다.”

“영주님을 찾는다고? 미안하지만 오늘은 날이 늦어서 더는 사람을 보지 않으실 겁니다.”

“아, 괜찮습니다. 저는 영주님이 아니라 그곳에 객으로 머물고 있는 분께 무얼 좀 전해드리러 왔거든요.”

“객?”


누군지 모를 이의 말에 머리를 스치는 이름이 하나 있었으나 집사는 그 이름을 굳이 입에 담지 않고 상대를 살피듯 위아래로 보았다. 경계심 어린 시선에 상대는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하하, 이거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팔레삭이라고 합니다. 테펠리움이라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가 이곳에 있다길래 안부차 잠시 들렸으면 해서 물은 겁니다.”


테펠리움. 조금 전 집사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이름과 같은 이름이었다.


그러나 아직 수상한 자라는 딱지를 떼지 않은 집사는 잠시 팔레삭을 보더니 손짓했다.


“저택은 이쪽이요. 먼저 확인을 한 후에 들여 보내드리리이다.”

“감사합니다.”



***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걸친 후 영주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영주는 대수롭지 않게 만남을 허가했고, 팔레삭은 금세 테펠리움과 마주할 수 있었다.


“팔레삭, 얼마나 더 걸릴까 궁금하던 참이다.”


팔레삭과 마주한 테펠리움은 마치 귀공자라도 되는 양 비단옷에 화려한 장신구를 여럿 걸친 남성이었다. 그는 반갑게 팔레삭을 맞으며 말했으나 그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아 서늘함이 느껴졌다.


알아볼 눈치가 있다면 눈앞에 있는 자에게 경계심을 가질 태도였으나 팔레삭은 그걸 알았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팔자가 좋군? 영주에 집사에 또 누구에게 손을 댔지?”

“그 둘이 다야. 여럿에 술수를 부려보았자 내 부담만 커지고 신전 놈들에게 들킬 확률도 올라. 둘이나 셋이 딱 적당해.”


테펠리움은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따악하고 튕겼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검은 연기가 나타나 뭉치더니 영주와 집사를 닮은 형체로 변했다.


“본래는 영주만 건드려서 밑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집사가 생각보다 감이 좋더라고.”

“퀜달렌님이 누누이 말씀하시지 않던가?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나름의 강함이 있다고.”

“그래, 그래. 그런 말도 들었었지. 하지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가르침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테펠리움은 그렇게 말하더니 웃음을 얼굴에서 지우고 눈에 있던 서늘함을 얼굴 전체로 드러냈다. 냉막함, 냉기 서린 얼굴이라는 말이 마치 그를 위해 존재하는 거 같았다.


“약한 놈은 아무리 강함이 있어도 약할 뿐이야. 대세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지. 그게 열이건 백이건 하물며 천이나 만이 되어도 마찬가지.”

“......쯧, 그러니까 이런 일이나 맡는 거다.”

“이런 일이라니,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그리고 넌 그 중요한 일을 위한 심부름꾼에 불과하고.”


말투 하나하나가 신경을 건들었으나 팔레삭은 익숙한 듯 넘기고 용건을 입에 담았다.


“준비는 어떻지?”

“글쎄, 영주를 움직여서 한지도 꽤 시일이 지났으니 이제 손을 대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어림짐작으로 일을 망칠 생각이냐?”


조금 전에 도발에 가까운 말을 가벼이 넘긴 것과 달리 팔레삭의 눈에는 허튼 소리하면 그대로 처리하겠다는 듯 살기가 돌았다.


“쳇, 예나 지금이나 농담이 먹히지 않는 놈이군.”


그 모습에 항복한다는 듯 양손을 든 테펠리움은 한번 더 손을 튕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사람의 형체 대신 마하난 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 헌데 검은 연기는 그곳을 표현하기 힘든 것처럼 형체가 고정되지 않고 일렁거렸다.


“제법 어지럽히긴 했는데,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는걸.”

“얼마나? 너무 오랜 시간은 곤란해.”

“걱정하지 마. 기껏해야 이틀, 빠르면 내일이라도 가능하게 될 거다.”

“좋은 일이군. 아비톨람 쪽에서 일손을 빼기도 어려운 참이었는데.”

“계획을 알고 있긴 했는데 진짜냐? 거기 불꽃 늙은이가 있지 않아?”


테펠리움의 물음에 팔레삭은 곧 저가 아는 사실을 적당히 읊어주려고 했으나 정작 물어본 당사자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뭐, 퀜달렌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힘도 잃어버린 늙은이 하나, 어떻게든 되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테펠리움을 보고 있자니 팔레삭은 입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굳이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다음 기회를 기다렸다. 이 자만심 넘치는 친구가 우쭐댈 때 말해주면 조금은 겸손과 처지를 알지 않을까 싶었다.


‘고작 이런 일, 아비톨람에서 해야 하는 일과 상대해야 하는 것들에 비하면 대단한 일이 아니지.’


성공하면 대단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테펠리움이 모르는 사실, 수도에서 나타난 방해꾼의 존재를 팔레삭은 알고 있었기에 성공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었다.


“퀜달렌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더군.”


팔레삭은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검은 연기가 모여서 나선 구름을 만들더니 그 속에서 물체 하나가 느릿하게 떨어졌다.


이윽고 앞에 놓인 물체, 수정 구슬을 본 테펠리움을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오, 이게 그건가? 대신전 놈들이 봉인했다는?”

“그래. 고생해서 가져온 거니 잘 쓰라고.”

“흐흐흐, 어렵지 않은 일이지. 아비톨람, 그런 곳에 신경 쓸 필요도 없게 될 거다.”


조심스럽게 수정 구슬에 손을 가져가서 어루만진 테펠리움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 있는 창문 너머, 그곳에 있는 마하난 분지를 그려 본 테펠리움은 자신만만한 말투로 말을 덧붙였다.


“마수 군단이 생길 테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2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1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6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5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2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8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