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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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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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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7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3.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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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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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2쪽

2장 첫 번째 수호자(1)

DUMMY

덜그럭거리며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한껏 안도하며 제각각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몇몇은 아레타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로 아레타에게 있었던 일을 목격했던 신전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아레타 역시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왜 이렇게 보는지 모르진 않았기에 무어라 말해서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터무니없는 일이었어. 운도 좋았고.’


동시에 메리멀 신관장이 그에게 맡겼던 물건이 떠올랐다. 대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대단한 물건이라는 건 틀림없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어리석게 굴만한 물건이기는 했지.’

“아레타 형제님은 신께서 보살펴주시는 거 같습니다.”


시선을 보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이, 가르섹이 다가와서 넌지시 말을 건네자 아레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약간 냉소적인 말이 나왔다.


“속된 말로 악운이 좋다고 하셔도 됩니다만.”

“이적으로 살아난 이에게 악운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은혜나 복 혹은 보살피심이라면 모를까요.”

“......실언이었습니다.”


가르섹의 엄중한 말에 아레타는 지금 입에 담았던 게 신전 기사로서 부적절했음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이적은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힘을 가진 귀한 물건에 그걸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가르섹의 말이 백번 옳았다.


“하하, 젊은 시절에는 다들 그런 법이지요.”


젊은 시절.


이 말에 아레타는 문득 그런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리고 그 젊은 시절 대부분이 상당히 허망하게 흘러버렸다는 것도 말이다.


“이제는 그런 게 허락될 나이가 아니지요.”

“이런, 이번에는 제가 실수했군요. 정정하겠습니다. 실수는 실수, 되돌리는 것은 못 할지언정 반성하고 나아가는 건 언제나 허락되는 법입니다.”

“가르섹 형제님......”


가르섹의 말은 뻔하다면 뻔한 말이었으나, 그 뻔한 말에 아레타는 위안을 얻었다.


그래, 바라던 길은 아니나 나아갈 수는 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으니까.


‘이 일을 마치면 신관장의 추천에 더해서 케텔 기사의 도움도 얻을 수 있으니 어디든 가겠지.’


힘겨운 여정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면 어딘지 모르게 속되고 보잘것없게 보일지도 모르나, 무언가 확실히 보장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했다.


이런 아레타의 마음을 대변하듯, 마차는 힘차게 성도를 향해서 달려갔다.



***



그 후 여정은 순풍만범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정도로 평안했다. 그렇게 평안한 여정이 계속되어서 그들을 태운 마차는 빠르게 수도로 향했고,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성일 전날 낮이었다.


“수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으아아, 드디어 도착했나.”


마부의 외침에 마차에서 한껏 지루한 표정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펠사 기사 가운데 하나가 한껏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아레타는 그 자신도 팔을 조금씩 움직여서 몸을 풀었다.


수도로 들어오는 일은 가르섹을 비롯한 펠사 기사단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거기에 아레타 본인도 신분 증명은 확실한 신전 기사였기에 수도로 들어오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성명을 대고 자필 서명을 한 것이 전부였다.


‘이 일도 드디어 끝이구나.’

“모두 장시간 여행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귀향 편은 앞으로 3일 후에나 있을 예정입니다. 꼭 3일 후에 가는 건 아니고, 그 후부터 차례로 운행될 예정이니 상세한 것은 따로 확인을......”


마차에서 내려 몸 상태와 짐을 확인한 아레타는 주변을 살피니 먼저 내린 성도들에게 가르섹을 비롯한 펠사 기사들이 기본적인 사항을 안내해주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해본 듯 안내는 매끄럽고 알아듣기 쉬웠다. 다만 안타까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가 여러 번 말해보았듯 이야기를 듣는 성도들 가운데 반절 가량은 들었던 이야기였기에 그다지 집중하는 모양새가 없었다.


‘뭐, 몇 번이고 왔을 테니까.’


좋은 이야기도 반복되면 건성으로 듣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그런데 몇 번, 몇 십번이고 들었을 저런 말들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럼 몸조심이 가시고, 다들 충만한 성일되시길 바랍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이곳까지 감사했습니다.”


가르섹이 말을 마치자 성도들은 각각 인사를 건넨 후 제각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가르섹은 그들이 어느 정도 멀어지자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매번 하는 일이지만 이게 가장 힘들다니까.”

“고생이 많으시군요.”

“하하, 대단한 건 아니지요.”


가볍게 말하며 지친 표정을 풀어낸 가르섹은 아레타를 한번 살펴보더니 물었다.


“가십니까?”

“예, 성일 전까지 전할 것이 요청이었으니까요. 내일이면 기한이니 오늘 바로 전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설령 기간이 많이 남았더라도 이제 지긋지긋하니 얼른 전하고 쉬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말에 아레타의 표정이 말에 맞추듯 변했지만 이내에 웃음기를 띤 얼굴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에 가르섹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전하시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식사라도 하시지요.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식사라면 제가 사야 마땅하지요. 저의 일에 펠사 분들을 말려들게 했으니 그게 맞습니다.”

“도와야 당연한 일이니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럴 수는......”


가르섹의 말에 아레타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다시 꺼내려고 했다. 그에 가르섹은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러면 나중에 어디선가 보면 내주십쇼. 그걸로 충분합니다.”

“예? 그, 그건......”

“그거면 충분합니다.”

“.......”


거듭된 가르섹의 말에 아레타는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달가운 기분이 들기도 했기에 이 이상 강하게 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었다. 때문에 아레타는 굳게 마음을 먹으며 재차 권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막히고 말았다.


“다들, 아레타 형제와 인사나 나누고 가자고!”

“아레타 형제님, 즐거운 성일되십쇼.”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살펴 가시길.”

“덕분에 이적이라는 걸 직접 보았습니다. 그대의 앞길에 인도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다음에 뵙도록 하죠. 수도에서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저희를 찾아오십쇼.”


펠사 기사들은 아레타가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연이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인사를 마치자 마지막으로 가르섹이 나서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자,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좋은 자리에서 다시 봅시다.”

“어.......”

“그럼 기사님도 살펴가십쇼. 이랴.”


그 말을 끝으로 펠사 기사들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소리를 흘리며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아직 남아있던 마부 역시 간단한 인사를 건네고 마차를 몰아서 떠났다. 졸지에 홀로 남겨진 아레타는 멍한 얼굴로 멀어지는 마차 뒷모습을 보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이만 갈까.”



***



“괜한 오해를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만.”

“오해?”


걸어가던 중 한 사람이 그리 말하자 가르섹이 물었다. 그 물음에 말을 꺼냈던 이는 고개를 돌려서 그들이 온 방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깔보았다고 여길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로앙 쪽 형제에게 뭔가 대접받을 생각은 안 든다. 저 친구 처지를 아는데 그러기는 그렇지 않냐.”

“그래서 그렇게 말을 하고 오긴 했는데, 돌아보니 영 그래서 말입니다.”

“조금 의연하게 있다가 천천히 나오는 게 더 나았을지도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르섹은 걱정할 거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그들의 언행에 오해의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른 이들 역시 걱정을 한 마디씩 보탰다. 이해하지 못할 걱정은 아니었지만 가르섹은 그들과 조금 생각이 달랐다.


“잘은 모르지만 저 친구, 아마도 남들의 행동에 깃든 의도를 악하다고 생각하는 걸 하지 못하는 부류야.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걸.”

“설마요? 그런 고생을 하는 데다가 로앙 출신이지 않습니까?”

“오해가 있을 법한 말은 지금 네가 한 말이 딱이다.”

“크흠.”


가르섹의 지적에 말을 꺼냈던 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헛기침을 뱉었다. 그걸 본 가르섹은 고개를 한차례 저은 후 말했다.


“며칠 오면서 본 행동과 말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적을 보이는 모습을 보니 그럴 거 같다 여긴 거야. 정히 걱정되면 내 나중에 따로 만나서 좋은 자리라도 가질 테니 다들 사서 걱정하지 말고 다음 일이나 신경 써라.”


그렇게 말하고 한번 말을 쉰 가르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수많은 사람이 바삐 오가는 거리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성일 치안 유지라는 중요한 일이 남아있지 않냐.”



***



“하아. 하긴, 슬슬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시기니 잘 되었다고 칠까.”


홀로 남았던 아레타는 아쉬움과 다행스러움을 동시에 담은 말을 내뱉은 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목적한 장소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아레타는 긴장하며 몸가짐을 바로했다.


‘괜찮겠지?’


불안함에 두어번 더 살핀 아레타는 그제야 안심하며 눈앞에 있는 거대하고도 정결함이 느껴지는 건물, 대신전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환영합니다, 형제여. 대신전에는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가? 성일이라면 오늘이 아니라 내일입니다.”


신전 기사임을 알아본 문지기 신전 기사가 웃으며 용건을 묻자 아레타는 긴장이 싹 풀리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아레타 베레스 로앙이라고 합니다. 메리멀 신관장님께 부탁을 받아 클레하스님에게 물건을 전하러 왔습니다.”

“클레하스 신관장님이요? 알겠습니다. 이쪽 명부를 작성해주시면 곧 안내해드리죠.”


어렵지 않은 요청에 아레타는 명부에 이름과 목적을 기입하고는 문지기 기사를 보았다. 그에 기사는 웃으며 한쪽에 손짓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분을 클레하스 신관장님께 안내해드리게.”

“......로앙?”


다가온 이는 신관으로 보이는 이였는데, 그는 아레타의 복색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곧 얼굴색을 고치며 몸을 돌렸다.


“따라오시죠.”



***


“이곳입니다.”


대신전 대회랑을 따라 걷던 중 몇 번인가 꺾어서 길을 바꾼 신관이 멈추어 선 곳은 수수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방문 앞이었다.


“흐음, 지금 자리에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쁜 분이신가요?”


아레타의 질문에 그는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게, 이번 성일 의식 준비 담당자이신 분이라서요. 아마 지금이 가장 바쁠 때가 아닐까 합니다.”


그 말에 아레타는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래서야 운이 없다면 하루 종일 그를 찾거나 기다리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기별해보겠습니다.”


똑똑


신관은 그리 말하고는 곧장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기대하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똑똑


“클레하스 신관장님, 안에 안 계십니까?”


두 번째 두드리며 목소리를 조금 높이니 안에서 인기척이 일어났다. 다행히 안에 있는 거 같았다.


‘휴, 이제 정말로 끝낼 수 있겠구나.’


무사히 일을 마치고 조금은 쉴 수 있겠다 싶은 그때, 안쪽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들려왔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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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1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5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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