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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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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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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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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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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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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3쪽

2장 첫 번째 수호자(10)

DUMMY

“대성전 수리 경과 보고서입니다.”

“그쪽에 두게.”

“부상자들의 상태 보고서입니다.”

“그 옆에 놓고 가게.”


클레하스의 말에 그를 찾아왔던 신관 두 사람은 빈 곳을 찾기 어려운 책상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요 며칠 한 가락이 있다고 용케 빈 자리를 만들어서 보고서를 놓아둔 그들은 곧 한숨 돌렸다는 얼굴을 하고 방을 나갔다.


“......끝이 없군. 그래도 오늘은 오후가 되도록 저 둘 뿐이니 나은 셈인가.”


그들이 나간 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서류와 처리가 끝난 서류를 번갈아 본 클레하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쭉 폈다. 최근 자리에 앉아서 온갖 서류 처리와 뒷정리에 매달렸던 그는 적잖이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뚜두둑


몸에서 나는 소리에 지난 며칠간 수습으로 한 5년은 늙었다 여긴 클레하스는 방에 있는 창으로 다가갔다.


“이래서야 안식 기간으로 이행하는 건 당분간 힘들겠어.”


개인적인 욕심이나 소망을 따른다면 클레하스는 여기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고대 기록 관리실로 가든, 아니면 대신관장을 찾아가든 해서 궁금함을 풀고 호기심을 채웠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님을 분별할 능력에 더해서 무엇이 우선인지 올곧게 판단할 이성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가 한 일은 성일 의식 직후로 예정되었던 안식 기간을 미루고 일하는 것이었다.


똑똑


“이런.”


조금 일이 줄었다 여기며 기뻐한 게 바로 전이건만, 그런 말을 이르다는 듯 그를 찾는 이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문을 열고 싶지 않다. 누가 되었건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감정과 달리 몸은 베인 습관대로 움직여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데일 신관?”


문을 여니 그곳에는 의외의 얼굴이 있었다. 신관 데일, 본래 그가 안식 기간에 들어간 후 후임으로 신관장에 올라 업무 다수를 이어받았을 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면 그가 클레하스 앞에 있는 게 당연하게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 내 일을 좀 도울 생각이 들었나?”

“그럴 수 없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가볍게 건넨 말에 데일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그를 보며 클레하스는 몸을 비켜서며 손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오게. 아무리 바쁘다고는 하지만 차 한잔내어줄 시간은 있어.”

“감사합니다.”


클레하스의 권유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한 데일은 곧 몇 번이고 그가 앉았던 의자에 가서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맞은 편에 앉은 클레하스는 탁자에 있던 차를 직접 타면서 농을 던졌다.


“예전에 비해서 보기 좋군. 드디어 자네도 겸손이라는 말을 알게 된 건가?”

“그럴지도요. 겸손이 몸을 숙이는 일이라면, 그렇겠지요.”


복잡한 감정을 담아서 대답한 데일은 차분히 클레하스가 건네준 찻잔을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좋군요.”

“할 말이 있으면 하게.”


최대한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품평을 입에 담았지만 클레하스의 눈은 속이지 못했다. 사실 클레하스가 아니라 누구라도 데일의 용건이 차나 담소에 있지 않다는 건 알기 쉬웠다.


“이제 신관이라는 호칭만 남긴 자네가 하릴없이 날 찾아오진 않았을 거 같은데.”


직책이긴 하지만 사실상 한번 수여하면 어지간한 일이 없는 이상 신관직은 유지하는 게 보통이라 직책임과 동시에 호칭 그리고 자격이라는 느낌이 강한 신관을 제외하면 데일은 차기 신관장으로서 손을 대었던 일을 모두 내려놓았다.


덕분에 클레하스가 격무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의 동생인 아톨란이 이번 일에 크게 관여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남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일에 크게 관여된 책임을 통감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 아닌가.”

“관여라는 말은 너무 관대하군요. 제 동생은 이번 일의 원흉과 다름없습니다.”


단호한 데일의 말에 클레하스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그때도 이렇게 주장했지.’


고작 며칠도 지나지 않은 일이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모든 일이 끝났음을 알리는 말을 알리러 오는 이를 고대 기록 관리실에서 돌아오는 중에 만나서 대성전으로 들어선 그들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동생을 엎은 데일이었다.


안타깝게도 휘말렸구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데일이 멍청한 동생이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담담히 고하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며칠이 아니라 몇 년, 몇십 년이 지나서 묻거나 말해도 기억할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에는 너무 큰 일이라는 거, 알고 있지 않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한 명은 같이 그 책임을 질 겁니다.”


완고한 말에 클레하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가 아직 용건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걸 떠올린 그는 그 점으로 화제를 돌렸다.


“찾아온 용건이 그거였나? 동생이 나쁜 놈이라고 주장하기?”

“그런 게 아닙니다. 수습도 정리도 아직 끝나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피해 입은 사람들에 대한 파악은 끝났을 거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보상이라도 할 생각인가?”

“예.”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말에 클레하스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무엇을 말해야 좋을까 고민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훌륭한 일이긴 한데, 어딘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올바르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자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건가?”

“프레기우스 가문은 변절하거나 어리석은 짓을 벌여 몰락한 가문으로 기억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프레기우스의 이름은 명예로워야 합니다.”

“!”


곧장 나온 대답에 클레하스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데일을 움직이는 건 도의가 아니었고, 신앙도 아니었다. 하물며 양심과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명예, 명예가 그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리라. 정말 그것만을 원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을 게 분명하다. 그러니 분명 그에게는 도의와 양심 그리고 신앙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속에서 가장 큰 것은 분명 그것들이 아니라 명예였다. 그 명예를 위해 데일은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재산, 직책, 미래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으로 소중한 가족과 저 자신도 함께.


“......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이대로 하고 싶은 대로 두는 건 막다른 길로 달려가는 이를 보며 눈을 돌리는 일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막아보자니 듣고 안 듣고를 떠나서 마냥 옳은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 결정하지 힘든 난제에 고심하던 클레하스는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밟혀 죽은 사람이 없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아마도 신께서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 기회를 주신 거겠죠.


어제 인적 피해를 종합 보고한 신관의 말 가운데 ‘기회’라는 부분이 머리와 입안을 맴돌았다.


“잠시 실례하지.”


데일에게 양해를 구한 그는 곧장 책상으로 가서 이미 처리한 서류들에 손을 댔다. 이윽고 원하던 걸 찾은 클레하스는 곧장 돌아와서 데일에게 그걸 내밀었다.


“여기, 인명 피해에 대한 서류네. 대신전에 대한 것까지 어떻게 하기에는 아무리 프레기우스 가의 자산이 많아도 무리니, 그것만으로 만족하게.”

“감사합니......허.”


어렵지 않게 요약한 부분을 찾아서 본 데일은 자못 놀랍다는 얼굴로 클레하스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입니까?”

“거기에 쓰여있는 건 사실이네.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말이지.”


수많은 사상자 집계 가운데 경상과 중상을 가려서 기입하고 나이나 성별에 따라 다시 분류한 서류 끝자락에서 볼 수 있는 요약 부분에 적힌 놀라운 수치, 사망자 0.


“나는 개인적으로 신께서 우리에게 잘못을 되돌릴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네.”


자신을 보는 데일과 시선을 맞춘 클레하스는 눈에 힘을 주고 진심을 담아서 입을 열었다.


“데일, 서두르지 말게. 그것만이 길이 아니야. 정히 힘들다면 오늘 대신관장님과 논의가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주지 않겠나?”


무언가 더 나은 길, 방법이 있을 것이란 뜻을 담은 클레하스의 말에 데일은 고심하다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늦은 밤.


대신관장의 방을 찾은 클레하스의 물음에 방 주인은 천천히 턱을 쓰다듬었다.


나이에 어울리는 희고도 잘 관리된 수염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걸 보던 클레하스의 귀에 대신관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데일 신관은 그렇게 물러나기에는 아까운 인재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그를 종군시키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대신관장의 결정에 클레하스는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적어도 데일 자신을 위해서는 그게 더 나아 보였으니 말이다. 다만 가슴에 걸리는 일은 있었다.


‘사람들이 이걸 받아들일지, 그게 문제군.’


데일은 그때 딱히 비밀히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중을 향해 외친 것은 아니나, 수도에 소문이 퍼지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들었다.


이점은 대신관장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


“개인적으로 누구나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죠.”

“......말씀하신대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악한 게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죠.”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가르침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이를 역으로 뒤집은 가르침도 있었다.


나약하다면 악함에 물들어 버린다.


“모두가 강하진 못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공표할 때가 된 거 같군요.”

“공표요? 허면?”


예정된 일이었기에 클레하스는 놀라지 않았다. 다만 그 정도가 미정이었기에 조심스럽게 물을 따름이었다.


“모든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괜찮을까요?”


이번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건 불안을 초래하는 일이다. 수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곧 교국 전체가 알게 된다.


“이미 감추고 선별하여 드러낼 일이 아닙니다.”


클레하스의 우려가 섞은 물음에 대신관장은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검은 연기를 두른 짐승을 향해 가지각색의 무기를 든 이들이 맞서는 벽화로, 무기를 든 이들은 하나 같이 몸 어딘가에 빛나는 증표를 지니고 있었다.


“더는 없기를 바라고 봉인했지만 사람의 일은 고작 수십 년의 안정에 불과했습니다. 이건 운명이자 순환이니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말한 대신관장은 눈에는 깊은 안타까움이 담겨있었다.


흉험하고 좋지 못한 것들을 모르고 접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만 살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모른다면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허나 무지와 미지에서 오는 공포와 혼란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 할 이들은 그 틈을 아주 잘 파고들죠.”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대신관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도 그래서 벌어진 셈이 아니던가.


이미 잊혀져 가던 이들이 잘 모르는 청년들을 이용해서 벌인 소동. 이게 이번 일에 대한 클레하스의 평이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공표는 직접 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대신관장의 온화하면서도 물러섬이 없는 말에 클레하스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춘 후 물러났다.


홀로 남은 대신관장은 벽화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신이시여, 저희를 굽어살피소서.”



***



그로부터 며칠 후.


대신전은 수도를 시작으로 잊혀졌던 배교자들, ‘백색 교단’가 돌아왔음이 교국 전체에 널리 알렸다.


종말을 바라는 이들, 백색 교단의 존재가 드러남과 동시에 그들이 과거에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도 함께 상세하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워하고,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 것을 두려워했다.


이런 우려를 안다는 듯 대신전은 이어서 그들에게 맞서 싸울 것이며, 이미 그들에게 승기가 있음을 알리는 존재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날은 첫 번째 수호자의 탄생 그리고 성전의 시작을 알리는 날로 기록되었다.


작가의말

2장은 이걸로 끝입니다.

막간 이후 3장 노병의 찬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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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9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9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4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6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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