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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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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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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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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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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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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2장 첫 번째 수호자(4)

DUMMY

“이번 성일은 큰일이 나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잘 풀려서 다행이군.”


보통 신관들의 거주지는 대신전 근방 혹은 신전에 붙어서 지어진 기숙사다. 하지만 가족이 있거나 귀족 출신인 이들은 종종 본래 살던 집이나 개인 저택을 구해서 따로 살곤 했다.


신관 데일은 후자에 속하는 이로, 제법 훌륭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데일은 본래 대대로 신관을 지내며 몇이고 신관장이나 신전 기사단 단장을 배출한 명문, 프레기우스 가문의 장남이니까.


그런 위명에 걸맞게 그가 집에 도착하자 반기는 사용인들이 있었다.


“데일님, 어서 오십쇼.”

“오늘도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식사를 준비했는데, 지금 바로 드시겠습니까?”


한 사람씩 절도있게 이어서 말하니 여럿이 말함에도 혼잡스럽지 않고 귀에 쏙 들어왔다.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어린 시절부터 이런 걸 보아왔던 데일은 별달리 대단히 여기지 않고 제 할 말을 입에 담았다.


“식사는 신전에서 간단히 했네. 디저트만 준비해주고, 욕실을 먼저 쓰고 싶군.”

“알겠습니다.”


데일의 말에 사용인 몇이 곧장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둘 정도만 남은 사용인에게 겉옷을 벗어서 건넨 데일은 안쪽으로 걷다가 정원 한쪽에 남아서 바깥을 보는 무리가 보였다.


‘음?’


가만히 보니 동생 아톨란의 수행인들이었다. 그들이 저렇게 서 있는 이유야 뻔했다.


“아톨란 녀석은 아직인가?”

“예. 오늘은 귀가가 늦으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노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야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어울리다니, 다른 집이나 신관장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건 나라고.”


작년에 성인식을 치렀건만 여전히 철들 생각이 없는 동생을 생각하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막상 생각하면 무언가 대단한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저들 좋을 대로 산이며 들이며 골목이며 가릴 것 없이 쏘다니는 것 뿐이니 참 곤란한 동생이었다.


사실 데일은 동생에게 그렇게까지 간섭하지 않는 방침이기에 이리된 거기도 하나, 막상 이런 때에는 좋게 보기 힘들었다.


“하물며 내일은 성일이건만. 안 되겠군. 이번에는 한 소리 해야겠어. 녀석이 돌아오면 바로 내게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사용인의 얼굴에는 다행이라는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리 사용인이라고는 하지만 늦게까지 일하는 걸 달가워할 이들은 없다. 그런데 최근 아톨란이 자주 이리 늦다 보니 피로를 호소하는 사용인들이 늘고 있었다.


‘그래도 데일님이 말하면 며칠은 잠잠하시겠지.’


철들어서 성미가 점잖아지는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며칠, 며칠만 얌전히 지내면 다른 사용인들을 쉬게 하며 달랠 수 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사용인은 데일의 지시를 마음에 새겼다.



***



“어때?”

“으음, 이제 좀 재미를 붙였다고 할까?”


총명한 눈빛이 인상적인 남성, 아톨란은 같이 다니는 친구의 말에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조금만 더 있으면 이 녀석과 한번 붙을 수도 있겠네?”

“끼긱.”


아톨란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자 어디선가 원숭이 울음소리가 들리며 호응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원숭이나 그 비슷한 동물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건만,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의문으로 삼지도 않고 아톨란의 말에 불평하며 고개를 저었다.


“되겠냐.”

“이제 꺼내 볼 수 있는 정도야. 그런데 그런 걸 어떻게 해?”

“이래서 천재라는 것들은.”


불퉁하게 한마디씩 했으나 그 말들에는 친구들이 서로에게 하는 친근함이 담겨있었다. 그래서일까, 아톨란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 역시 얼굴에서 웃음기가 떠날 줄 몰랐다.


이 장소가 즐겁다, 이 시간이 즐겁다고 다 같이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렇게 확신하며 서로를 보던 중, 누군가 초치듯 눈치 없는 말을 꺼냈다.


“이봐, 슬슬 밤이라고. 돌아가야지.”

“하아, 넌 진짜 이런 면에서 재미가 없구나.”

“고지식한 티칼이라는 별명이 어디 가겠어.”


말을 꺼낸 이, 티칼은 그들의 말처럼 딱딱한 인상에 꼿꼿한 나무와 같은 인상이 강한 이였다. 그리고 그 인상값을 하듯 그는 다른 이들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 다시 말을 꺼냈다.


“내일은 성일이다. 늦으면 아톨란이 잡았다는 변명으로도 넘어가기 힘들어.”

“티칼, 넌 진짜 재미없다니까.”

“진짜 무슨 재미로 저렇게 사나 몰라.”

“이것도 안 키우고 말이야.”


크릉


어디선가 맹수가 낮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소리만 들릴 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수상한 걸 왜 키워.”

“재밌으니까?”

“재미 두 번 찾았다가는 집안에 온갖 광대와 동물을 들이고 살겠구나.”


냉소적으로 반응한 티칼은 더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간다.”


티칼은 그렇게 말하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그들이 모여 있는 아지트를 나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나가버리니 다른 이들 역시 그대로 남아있기에는 그리 내키지 않았다. 하물며 나간 이가 말한 이유가 합당하니 더 그러했다.


“쳇, 재미없지만 내일은 성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아아, 가면 또 잔소리려나.”

“아톨란이 부럽다니까. 형님이 한마디하고 '네, 네' 하면 끝이잖아?”

“나라고 편하겠냐.”


부럽다는 듯이 말하는 친구들을 향해서 다르지 않다는 듯 일축했지만 내심 아톨란은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형인 데일은 그에게 이런 일로 크게 혼낸 적이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며칠 얌전히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다른 녀석들이 무슨 벌을 받았네, 숙제가 늘었네, 할 일이 늘었네 하며 우는소리 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처분이었다.


“그러면 내일 끝나고 다시 보자고.”

“그래, 내일 다시 보자고.”

“성일이 좀 재미있으면 좋겠네.”

“재미는 몰라도 지루하지 않으면 좋긴 하겠네.”

“하하, 바랄 걸 바라야지.”


가벼운 대화를 끝으로 그들은 각자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은 각각 집에서 생각하던 그대로 혼이 났다. 아톨란을 포함해서 예상대로 벌어진 일에 그들은 내일도 똑같은 일상이 있으리라 여기며 잠에 들었다.


그러나 일상이 뒤틀리는 건 한순간이라고 누군가 말했듯, 이번 성일은 그들의 생각대로 지루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



“좋은 아침, 칼뤽.”

“여, 좋은 아침.”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온 아레타는 손을 들어 칼뤽에게 인사를 건넸고, 칼뤽 역시 기분 좋은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상당히 조용한걸.”

“그거라면 방금 단체 손님이 나가서 그럴 거야.”

“단체 손님? 성도들인가?”

“그렇지 않을까? 대신전으로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칼뤽의 말을 듣고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보니 아직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다. 그들 대다수의 목적지는 수도 중앙에 아름답고 위엄있게 서 있는 대신전이었다.


“성일은 성일인가.”

“그렇지. 너도 지금 나갈 거냐?”

“그럴 생각인데, 너는?”

“나도 가긴 해야지. 그전에 식사부터 하고. 너도 아침 먹고 가라.”


칼뤽은 그렇게 말하더니 접시 두 개를 들고 와서 하나를 아레타에게 내밀었다.


“든든히 먹어야 성일 의식을 제대로 본다고.”

“고맙다.”


씩 웃으며 음식을 내미는 친구의 말에 아레타는 웃으며 접시를 받아들었다. 아침이라 간단한 빵이나 과일 그리고 염장 소시지 같은 것들이 주였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좋은 식사였다.


“그러고 보니 단체 손님이면 어제 내가 본 사람도 그런가?”

“그럴걸? 우리 여관, 단체 손님 말고 묵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래?”


아레타는 칼뤽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제 보았던 그 이상한 사람을 잠시 떠올린 아레타는 곧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고 아침 식사에 집중했다.



***



“대신관장님, 오늘 성일에 사용할 성표들입니다.”


대신전 가장 안쪽에 있는 엄숙함이 느껴지는 방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던 노인은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클레하스 신관장, 고생이 많았소. 그리고 미리 축하하지.”

“예?”

“고대하던 안식년을 얻은 거 말이오.”

“하하, 감사합니다.”


대신관장의 말에 클레하스는 겸연쩍은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런 클레하스를 보며 대신관장은 자애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미소를 지으며 성표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누락이 생겼다고 들었는데, 모두 있군.”

“대신할 성표를 구했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는 성표입니다.”


클레하스의 말에 따라 시선을 오른쪽으로 옮기니 과연 다른 것과 달리 저번 성일에는 보지 못했던 성표가 하나 놓여있었다. 가만히 그걸 보던 대신관장은 그 성표가 처음 보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허어? 이건 어디서 구했는가?”

“메리멀 신관장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이번 성일에 쓰였으면 한다고 편지하셨죠.”

“그렇군.”


대신관장은 클레하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성표를 살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군.’


벌써 한 세대, 어쩌면 두 세대는 전에 본 성표를 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그가 이 성표를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린 소년이었고, 견습 종군 사제였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대신관장님?”

“아, 옛 생각이 나서 그러네. 이 성표, 아주 오래전에 내가 자네보다도 어리던 시절에 처음 보았던 것이거든.”

“그렇습니까? 귀한 것이라고는 알았지만 아는 것 이상이었군요.”


대신관장의 말에 클레하스는 새삼스럽게 성표를 다시 살펴보았다. 그는 이게 다른 것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을 듣고 보니 다른 것들보다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메리멀 신관장도 귀한 물건을 용케 때맞춰서 보내주었군. 고마운 일이니 나중에 서찰이라도 하나 보내야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이걸 가져온 신전 기사에게 부탁할까요? 어제 도착했으니 오늘 성일 의식에 참석했을 겁니다.”


클레하스의 말에 대신관장은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으나 이내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은 일이나, 미리 부르려고 하진 말게. 성일에 참석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온전히 의식을 치를 권리가 있다네.”

“알겠습니다. 허면 의식이 끝난 후에 연락을 보내되, 없다면 통상 편지로 따로 보내겠습니다.”


클레하스의 말에 대신관장은 그러하는 게 좋겠다는 의미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 쪽으로 시선을 준 대신관장은 가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슬슬 가봐야 할 거 같군. 데일 신관이 우리를 부르러 왔네.”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누가 오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문 쪽으로 시선을 준 클레하스는 의심 따위 하지 않았다.


똑똑


“실례합니다. 이제 곧 의식이 시작될 시간입니다.”


믿음에 보답하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 후 그들의 귀에는 익숙한 데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문으로 향해서 걸어 여니 그곳에는 데일이 공손히 예를 갖추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신관장님.”

“데일 신관, 오늘은 클레하스 신관장의 도움 역이라고 들었네.”

“그렇습니다. 과분하게도 영광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데일의 말과 달리 그가 할 일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클레하스를 따라다니며 보기만 할 뿐인, 대단치 않고 힘들지도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이 일은 그 자체에 상징성이 있었기에 데일은 진심으로 영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면 클레하스 신관장 다음은 데일 신관이 맡는 셈인가.”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클레하스 신관장 다음. 이는 곧 데일이 신관이 아니라 신관장으로 직함이 바뀐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클레하스 신관장의 업무 상당수를 이어받게 된다.


아직 그의 나이가 삼십이 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이는 기록에 남을 정도로 빠른 승급이었다.


“기대하고 있겠네.”


가만히 데일을 바라보던 대신관장은 그렇게 말하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가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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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2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1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6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5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8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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