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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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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594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3.31 16:05
조회
215
추천
6
글자
12쪽

2장 첫 번째 수호자(2)

DUMMY

“클레하스 신관장님,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런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은 그만하십쇼.”

“손님? 소-오-ㄴ-님?”


어딘가 성난 목소리가 들리자 신관은 익숙하다는 듯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 모습에 불길함을 느낀 아레타는 재빨리 그를 따라서 문에서 떨어졌다.


벌컥


“빌어먹을, 이번에는 또 뭡니까!”


두 사람이 문에서 물러나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강렬하게 공기를 가르며 열렸다. 바로 앞에 바람이 들이친 걸 보니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운 없게 문에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사람이군. 신관장답지 않아.’

“클레하스 신관장님이십니까?”


속으로 클레하스로 추정되는 이를 판단하며 고개를 숙인 아레타는 정중한 물음에 대한 대가로 속사포와 같은 불평을 들어야했다.


“손님, 손님이라. 그래, 어떤 불청객이십니까?”

“예?”

“예, 맞습니다. 내가 클레하스입니다. 이번에는 또 뭐가 문제입니까?”

“그, 그게......”


짜증이 가득한 시선과 음성으로 대답한 남성, 클레하스 신관장의 대답은 아레타는 살짝 당황했다. 왜 이 사람이 자신에게 이러한 시선을 보내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아레타는 용건을 바로 꺼내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고, 그 모습을 본 클레하스는 말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또 식기가 모자랍니까?”

“예?”

“보나 마나 그거 아닙니까? 숫자가 생각보다 많아서 성일 의식 참가자에게 배부할 식기가 부족하다고.”

“네?”

“아니면 좌석 문제? 앞자리를 내달라는 철부지가 있습니까? 높은 분이라고 강짜 부리는 그런 일입니까?”

“어, 제가 찾아온 건 그런 용건이 아닙니다만......”


무언가 말이 맞물리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온 목적을 말하려고 했으나 클레하스는 기다리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제길, 그러면 뭡니까? 기도 시간이나 설교 시간 배분? 후원자 명단 추가? 축복 순번? 내부 배치 변경? 장식 재설치? 성구 파손? 뭡니까? 어느 쪽이 문제인지 얼른 말하세요. 안 그래도 이제 막 일단락하고 쉬려던 참인데 또 문젯거리라니, 이젠 지긋지긋합니다. 빠르게 해결하고 쉴 거니 빨리 말하세요. 내 휴식 시간은 귀중하단 말입니다.”


얼이 빠져서 클레하스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던 아레타는 채근에도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 생각과 다른 현실에 얼이 나간 덕이었다. 헌데 그가 정신 차리는 걸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지 클레하스는 곧장 다른 말을 입에 담았다.


“설마 대신관장님의 권유입니까! 어림도 없지! 반드시 다음 해는 안식년을 가지고 말겠어! 적어도 한번은 쉬지 않으면 다음 해야말로 미칠 거 같다고!”

“어? 어?”


어느새 방문을 잡은 클레하스는 곧바로 문고리를 잡고 당장이라고 문을 닫으려는 듯 자세를 취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거 놔! 내가 다음 해 안식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알아? 그걸 위해서 이번 해 최선을 다했어! 다음 해는 내 반드시 성일 의식 준비 담당에서 빠져서 쉴 거야! 말씀이나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낼 거라고! 대신관장님이랑 약속도 했어! 아무리 대신관장님이라고 해도 이것만은 뒤집을 수 없단 말입니다!”

“클레하스 신관장님, 진정하시죠.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당신의 안식년을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말은 다 그렇게 하지!”


보다못해서 아레타를 이곳으로 안내한 신관이 나서서 말을 걸었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된 듯, 클레하스는 곧장 문을 잡아당겼다.


그걸 본 아레타는 이래서야 기껏 온 의미도 없이 급히 다가가서 문고리를 마주 잡았다.


“기, 기다려주세요! 난 메리멀 신관장님의 심부름으로 왔을 뿐입니다!”

“......메리멀 신관장님?”

“우왓!?”


당기려던 걸 막다가 갑자기 상대가 힘을 빼자 혼자 힘쓰는 꼴이 된 아레타는 그 균형이 무너지는 걸 감당하지 못하고 구르다시피 몸을 휘청거렸다.


“클레하스 신관장님, 멀리서 온 손님께 이건 예의가 아닙니다. 도리도 아니고요.”

“......후우, 맞는 말이네. 제가 너무 흥분했던 거 같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신관의 지적에 클레하스는 한숨으로 열을 덜어내며 안으로 손짓했다. 그걸 보며 몸을 도로 돌린 아레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 끝까지 수월하게 가질 않네.’



***



“메리멀 신관장님이?”


아레타에게 차를 내어 준 후 용건을 들은 클레하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멀 신관장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와 메리멀 신관장은 사실상 모자 관계와 같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연이 깊었다.


“성일에 필요한 거라도 보내신 거 아닙니까? 전에 곤란한 일이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안내한 신관, 데일의 첨언에 클레하스는 머릿속에서 대외적으로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거라면 있을 법한 일이기는 했다.


“그거라면 아귀가 들어맞기는 하지.”


무엇이건 일단 어떠한 물건인지 알아야 답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든 클레하스는 곧 아레타를 바라보았다.


“맡기신 물건, 지금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여기 있습니다.”


클레하스의 말에 아레타는 곧 품에서 메리멀에게 맡았던 걸 꺼내서 내밀었다. 천천히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한 클레하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맞군. 참, 어머니께는 언제나 신세를 져.”

“어머니?”

“예전에 그런 줄 알고 어린 시절을 보냈죠. 신전 고아원 출신이라서 말이죠.”


클레하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쪽에 놓인 책상으로 다가가서 작은 주머니를 가져왔다.


“받으시죠.”

“이게 뭡니까?”

“고생하신 형제님에게 드리는 작은 보상입니다.”

“보상? 그거라면 메리멀 신관장님께 받기로 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미 받기로 한 것을 떠올리니 이중으로 받을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사양했으나, 클레하스는 그 사양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먼 길을 오시지 않았습니다. 받으세요. 제 성의입니다.”

“짠돌이라서 정말 얼마 없을 테니 받으셔도 됩니다. 부담될 금액은 아닐 거라 장담하죠.”

“데일 신관, 업무가 남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저는 신관장님과 달리 한가합니다.”

“......다음 해에는 네가 내 후임이라는 거, 잊지 말라고.”


후임이라는 말에 아레타는 새삼스러운 얼굴로 데일 신관을 보았다. 아까부터 일반 신관치고는 당당하고 신관장 직에 있는 클레하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한다 싶었더니,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부럽다.’


자신과 비교하자면 그리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연령으로 보이건만, 저쪽은 곧 신관장이 되고 자신은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형제님?”

“.......예, 감사합니다.”


데일 신관을 바라보며 부러움 그리고 거기에 자연스레 따르는 또 다른 기분을 느낀 아레타는 이곳을 빨리 벗어날 목적으로 클레하스가 내미는 걸 받아들였다.


“그러면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 그전에 메리멀 신관장님의 이야기라도......”

“죄송하지만 긴 여정으로 피로가 심합니다. 내일 성일 의식에도 참석을 생각하고 있으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레타의 정중한 거절에 클레하스는 결국 아쉬움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요. 전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평안한 하루 되시길.”

“평안한 하루 되시길.”


클레하스와 데일의 인사에 아레타는 묵묵히 마주 고개를 숙여 답하고는 방을 나섰다. 가슴이 답답헀다.


“후, 일단 나가......”

“역시, 아레타구나!”

“응?”


지친 표정으로 클레하스의 방을 나선 아레타의 귀에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아레타는 오랜만에 본 얼굴에 놀라며 물었다.


“......펠론? 여긴 어쩐 일이야?”

“그건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펠론의 말에 아레타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여기 있는 게 특이한 쪽은 아레타 본인이었다.


“그게, 그러니까......”


순간 아레타는 대답을 주저했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저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미 끝난 일, 비밀로 해둘 이유도 뭣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했다고 눈앞에 있는 동기에게 말하기는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잘난 모습으로 만나고 싶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펠론은 그다지 깊이 캐고들 생각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지고 물은 건 아니었던지 곧 자신의 용건을 입에 담았다.


“클레하스 신관장님께 정기 보고하러 왔지. 아, 잘 모르겠구나. 클레하스 신관장님은......”

“알고 있어. 방금 물건을 전하고 나오는 길이니까.”

“응? 아아,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나왔지. 나참, 나도 바보 같이 굴었어.”


펠론은 아레타가 말을 끊으며 대답하자 지금 서 있는 곳이 클레하스 신관장의 방 바로 앞이라는 걸 깨닫고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지간히 어리숙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레타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펠론, 정식 이름 펠론 로앙은 아레타와는 다르다. 그저 이름만 받아 로앙이라 불리는 그와 달리 펠론은 ‘진짜’ 로앙이었으니까.


‘예상하지 못한 만남은 이래서 싫어.’


예상치 못한? 아니, 그건 거짓말이다. 속으로나마 무심코 스스로에게 거짓을 말했다는 생각에 아레타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고생이 많았나 보군? 이거 내가 괜히 불렀나 봐.”

“먼 길을 와서 조금 피곤해. 이만 실례하지.”


좋지 않은 기분에 인상을 흐리니 그걸 본 펠론이 양보하듯 몸을 한쪽으로 비켜섰다. 보고 싶지 않던 얼굴이 바로 이렇게 명분을 내주니 아레타는 바로 사양치 않고 수긍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은 순간, 뒤에서 그에게 펠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레타.”

“?”


슬쩍 고개만 돌려서 보니 펠론이 무언가 복잡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조금 전에 반색하며 즐거이 이야기하던 그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뿐, 그는 무언가 더 말하거나 하진 않았다. 한 일이 있기는 있었는데, 바로 말을 내려는 듯 입을 열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입만 열렸을 뿐, 그곳에서는 어떤 말이나 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말은 하지 않고 어물거리는 펠론을 보던 아레타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도로 고개를 돌렸다.


“할 말도 없으면서 부르지 마라.”

“......미안.”


어딘가 기묘하게 느껴지는 사과에 아레타는 한순간 의문이 들었으나, 곧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여기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멀어져 가는 아레타의 등을 바라보던 펠론은 그가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열지 못하던 속으로나마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다만 이것만 알아줘. 그날의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너만이 아니야. 본래라면 네가 더......’

“......후.”


한동안 잊었던 일이나 그래도 당사자를 앞에 두니 다시금 기억이 그를 자극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팰론은 입가에 감도는 씁쓸함을 느끼며 클레하스 신관방의 방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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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9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9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9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8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6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8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4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6 6 13쪽
»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6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2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1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4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8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300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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