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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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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588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15 19:05
조회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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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3장 노병의 찬가(6)

DUMMY

“저게 그렇게 나쁜 거 같진 않은데요.”

“뭔 소리냐?”

“덕분에 저도 일하고 있잖아요.”


손자의 뜬금없는 말에 되물었던 헤이슨은 이어진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손자, 이발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말했지 않느냐. 마음에 들지 않다고. 우리는 분명 그때 용감히 싸웠고, 많은 희생을 치러서 지금을 손에 넣은 거다. 덕분에 그 끔찍한 시절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세상이 왔지.”

“예, 예.”


헤이슨의 말에 이발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이발트의 모습에 같이 식사하던 헤이슨의 아들이자 이발트의 아버지, 데걸이 나섰다.


“이놈이,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그게 무슨 버릇없는 태도냐!”

“켁, 케겍.”


식사 중 돌연 지른 외침에 이발트는 사레가 들려서 컥컥거렸다. 그 모습에 그의 어머니가 물을 건넸고, 급히 물을 마시고 간신히 진정한 이발트는 데걸을 보았다.


“당장 사과드려라.”

“죄송합니다.”


이발트도 제가 너무 버릇없이 군 걸 알긴 아는지 군말없이 고개 숙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헤이슨은 머리를 흔들었다.


“되었다. 네 아비도 똑같은 녀석이니.”

“예?”

“커험, 그래도 막 부정하고 그러진 않잖습니까.”

“그러면 뭐 하냐. 믿지를 않는걸. 하긴, 그건 나 말고는 다 같겠구나.”


헤이슨은 그렇게 말하며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평화로운 마하난 평원 그림과 한 여성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직접 보지 않았으면 다 그런 법이지.”


입맛이 썼다. 아무래도 아들이나 며느리, 손자에게는 이해받기 어려울 거 같았다.


“식사도 다 했으니 잠시 나갔다 오마.”

“어디 가세요?”

“일하러 가야지.”

“이런 오밤중에요?”


데걸은 그리 말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너머 검은 하늘에는 달이 높이 떠서 제법 늦은 시각임을 알려왔다.


“아무도 없으면 곤란하지 않겠냐.”

“오늘은 콜타스 아저씨가 계시지 않던가요?”


그래서 가는 거다, 라는 말을 삼킨 헤이스는 곧장 채비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거기서 잘 테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들 자라.”


그저 그 말만 남기고 헤이슨은 술집으로 향했다. 헤이슨이 나간 후 데걸이 괜스레 아들 탓을 하며 그 볼을 꼬집는 일이 있었으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



“허어, 분지에 그런 일이 있었어?”

“모르셨소?”

“나야 방앗간에서 죽치는 게 일상이니까. 거기서 분지 안쪽까지는 안 보인다.”

“그러니까 종종 내려오시라고 몇 번이나, 어라?”

“뭐야, 아직 계셨네?”


사다르와 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콜타스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헤이슨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헤이슨은 대수롭지 않은 듯 잔을 하나 가지고 와서 같은 자리에 앉았다.


무어라 말도 없이 곧장 술을 한잔 들이키는 모습에 무언가 있었구나 지레짐작한 콜타스가 슬슬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무슨 일이야?”


콜타스의 물음에 헤이스은 쓰게 웃더니 조금 전 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에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던 중 콜타스는 술병을 들어 따라주었다.


“요는 손자 놈이 하는 짓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그거구만.”

“끌끌, 혈기 넘치던 헤이슨이 어느새 젊은이들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는 꼰대가 돼버렸어.”

“아니, 사다르 형님? 아무리 그래도 꼰대까지는 좀.....”


놀리는 말에 헤이슨은 억울하다는 듯 말했지만 사다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별 이유도 없이 그러는 건데 뭐가 다른가.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게 그거지 뭐.”


퉁명스레 말한 후 술을 입에 댄 사다르는 문득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아까 나도 딱 이 꼴로 보였겠군.”

“그렇긴 했죠.”

“넌 조금 돌려서 말해라.”


못마땅한 얼굴로 불평을 토로한 사다르는 상념에 젖어서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문양은 이제 누구나 하고 그곳은 더는 꺼려지지 않는다. 세월이란 참으로 무상하구나.”

“세월이 무상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그거랑 그게 같은 거라고 받아들이긴 힘든데.”

“응?”


콜타스가 불퉁한 얼굴로 그리 말하니 두 노인은 누가 먼저랄 거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받은 콜타스는 곧 속에 품었던 말을 입에 담았다.


“생각들해보슈. 문양이야 솔직히 놀라긴 했어도 여전히 라렉시안 경을 존중하고 선망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흥미가 돋은 듯 사다르가 추임새를 넣어서 물었다. 그에 콜타스는 고개를 돌려서 술집 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마하난 평원을 그려놓은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지금의 광경과 달리


“저긴 아니야. 내가 볼 때 영주가 하는 건 그 시대를 모르는 이의 무지와 무관심이지. 네 손자 놈도 솔직히 거기서 벗어나진 않을 거다.”

“무지와 무관심이라.”


듣고 보니 확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왜 자신이 답지 않게 손자에게 불편한 기색을 비쳤는지,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세월이란 그 모든 것을 묻어버리는가.”


툭 하니 던져진 사다르의 말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무거워진 공기를 느끼며 애써 웃으며 다른 말을 꺼냈다.


아니, 그리 다른 말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고 보니 아침에 나팔을 꺼내 봤네. 아직 멀쩡하더군. 갑옷이랑 창도 말이지. 자네들은 어떤가?”

“갑옷이라. 마지막으로 꺼낸 건 작년 이맘때였던 거 같은데?”

“쯧쯧, 세월에 잊어버린 놈이 우리 손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난 그래도 달에 한번은 꺼내서 손질한다.”

“헹, 그렇게 하는 건 둘 뿐일 거요.”


어느새 의기투합한 두 사람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형국이 되자 콜타스는 한껏 비꼬는 말로 상황을 넘기려고 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는 거 같았다.


“우리만이라니, 아직 살아있는 친구들은 모두 다 그렇게 한다고 하던데?”

“전에 밀 빻으러 왔던 친구도 아직 손질한다더라. 습관이 되어서 그렇다나.”


헤이슨에 이어서 추격타를 넣는 사다르의 말에 콜타스는 대번 인상을 찡그려트렸다.


“아니, 그러면 나는 무슨 습관도 안 든 불량 신전병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신 거요?”

“불량이라. 뺀질이라는 말이 어울리긴 하지.”

“그것도 보기에 따라선 불량이니 틀린 말은 아닐지도?”

“진짜 나이 먹고 이러기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거, 잊어버리는 게 더 나은 거 아닌가 싶은데.”


잊어버리는 게 더 낫다. 그 말에 헤이슨은 그게 반쯤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는 건 별로지만,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쭉 이어지는 게 이상적이라 생각하며 헤이슨은 조금이나마 남았던 아쉬움과 거부감을 털어냈다.


그 덕인지 헤이슨은 다음 날 아침 분지로 일하러 가는 손자 이발트를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배웅할 수 있었다.


나이 든 이 특유의 걱정과 피붙이에 대한 걱정이 합쳐져서 살짝 긴 배웅 인사로 인해 이발트가 곤혹스러워했으나 그 정도야 대단치 않은 일이다.



***



“진짜로 이런 오전 중으로 가능해지다니.”

“말했잖아?”


본래 비보를 테펠리움에게 넘기고 바로 떠날 예정이었던 팔레삭은 아침에 조금 더 있다가 가라는 말을 듣고 마하난 분지에 동행했다.


동행이라고는 하나 두 사람 모두 몸을 검은 연기로 감싸고 있었기에 그들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이들은 없었다.


“흐흐, 이 정도면 강행해도 될 정도야.”


어제와 같이 검은 연기로 만든 마하난 분지의 형태는 전보다 훨씬 뚜렷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보던 가운데 팔레삭의 이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작 하루로 이리 변하다니, 어떤 비법을 쓴 거지?”

“간단해. 조금 더 자극했을 뿐이야.”


테펠리움은 손을 들어 그늘막에 있는 영주를 가리켰다. 그의 눈에는 어제는 보이지 않던 욕망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대단하군.”

“뭐, 마침 좋은 요소가 생겨서 이용하긴 했지만.”

“좋은 요소?”

“순례하러 온 신전 기사 하나가 영주와 말을 나누었다길래, 그걸 다른 식으로 인식하게 했지.”

“......신전 기사?”

“이 근방에 종종 순례차 들리는 녀석들이 있다는 모양이야. 참 운이 없는 녀석이지.”


테펠리움은 그리 말하며 웃었지만 팔레삭은 선뜻 따라서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럴 리가 없지.’


수도에 있는 ‘빌린 영혼’ 대상자들은 지금도 좋은 정보원이 되어 주고 있다. 그쪽에서 어느 순간 알아채고 대상자들을 격리한 덕에 이제는 써먹지 못하지만 고작 며칠 전만 해도 대신전에서는 신전병 편성과 기사단 소집에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을 견제할 단체가 이곳에 와 있다니, 그야말로 괜한 걱정이었다.


거기에 테펠리움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들린 이는 고작 한 명이다. 단 한명으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막기에는 터무니없이 역부족이다.


‘흐음, 그래도 머리가 제대로 된 놈이라면 바로 알릴 테니 예정된 역할에서 그치겠군.’


테펠리움은 여기서 모든 걸 끝낼 심산인 듯하나 그들이 상대할 이들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


큰 피해를 입히고 시선을 끌어줄지언정, 최종 승리를 여기서 얻기란 요원하다.


‘뭐, 이 녀석이 착각하는 거야 괜찮지만.’


자신에 대한 반발 같은 건 괜찮다. 하지만 최근 보이는 태도를 보면 어쩐지 그것만이 아니라 퀜달렌님에 대한, 더 나아가서는 불경하게도 숭고한 사명과 가르침에 대한 역심을 품은 거 같았으니 오히려 좋았다.


적당히 쓸만하고 아깝지 않다.


미끼로서 이만큼 적당한 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얼마나 더 있으면 되지?”

“정오 직전이면 딱 맞을 거 같은데.”

“그렇군.”



***



가만히 분지를 파헤치는 이들을 보던 중 테펠리움은 거의 모든 부분이 뚜렷해진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분지 형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좋아,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

“난 물러나도록 하지.”

“뭐야, 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지 않겠다고?”


팔레삭의 말에 김빠진다는 듯이 툴툴거린 테펠리움은 곧 몸을 돌리더니 비보를 양손으로 잡아서 분지 안쪽을 겨누었다. 수정 구슬을 통해서 보는 분지는 맨눈으로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한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분지 한 부분이 검은색으로 물들어서 일렁인다는 점이었다.


“탐욕은 매우 좋은 감정이야. 모든 걸 물들이고 흐리거든.”

“......흠.”


막상 가려고 하니 아쉬움이 생기는지 팔레삭은 턱을 쓰다듬으며 테펠리움이 든 수정 구슬을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테펠리움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궁금하겠지. 그리고 너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 순간, 내가 마수 군단을 불러 정점에 오르는 순간을 말이야.’


앞뒤 막혀서 따르기만 하는 놈이 자신보다 윗줄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다. 이 의식이 성공하는 순간, 그는 팔레삭을 앞선다.


‘아니, 그 이상도 넘볼 수 있다.’


쉬이익


“자, 가보자고.”


어느새 연기를 뭉쳐 뱀 마수를 불러낸 테펠리움은 들끊는 야심을 억누르며 마수에 올라탔다.


이제 기다림은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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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9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9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8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4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6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1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300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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