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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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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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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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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91,236

작성
22.04.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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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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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3장 노병의 찬가(3)

DUMMY

“이 형님이 드디어 노망이 낫나. 댁이 여기로 보냈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은 사다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용은 물론이고, 대답하는 사람도 그러했다.


중요한 일을 방해하는 철없는 목소리에 사다르가 화내려는 찰나, 다른 목소리가 그를 막았다.


“예전이야 몰라도 지금은 젊은 친구들도 종종 자기 갑옷에 새기고 다니드만.”

“뭐?”

“몇 년 전에 온 락번 분들도 팔이나 어깨에 문양을 새기고는 자랑하듯 말하더랍니다. 그걸 보고 생각했지.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어느새 방을 다 정리하고 돌아온 헤이슨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건넸다. 그러나 말하는 얼굴에는 아쉬움과 씁쓸함이 담긴 게 정말로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세월, 세월이라.”

“에이, 세월은 무슨. 우리도 소싯적에는 흉내내서 그려넣었는걸. 요즘 애들은 아예 새기는 거 같지만.”


조금 전만 해도 한대 얼굴에 세게 때려주고 싶던 콜타스의 목소리가 이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사다르는 기운이 빠진 듯 아레타의 팔을 놓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내 나이 먹고 추태를 부렸소.”

“대단한 일은 아니니 괜찮습니다.”


사다르의 사과에 아레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그런데 사다르는 무엇이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떠올랐는지 말없이 아레타를 바라보았다.


“......”

“크흠, 방이 준비되었습니까?”

“예, 올라가서 오른쪽 두 번째 방입니다.”


이유는 몰랐지만 어딘지 부담감이 느껴지는 시선에 일단 피해야겠다 여긴 아레타는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가 자리를 떠난 후, 헤이슨은 슬며시 사다르에게 다가가 물었다.


“거, 사람 불편하게 그리 빤히 보십니까.”

“.......비슷하게 느껴지더라고.”

“예?”

“라렉시안 경과 비슷하게 보여서 계속 봤다고.”


사다르의 말에 헤이슨은 물론이고 옆에서 같이 말을 들은 콜타스도 시선을 돌렸다. 아레타가 있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본 두 사람은 곧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디가요?”

“안 닮았는데?”


그들의 기억 속에서 미화된 부분이 있는 걸 감안해도, 라렉시안과 아레타의 인상은 그리 닮지 않았다. 눈 둘, 코 하나, 입 하나 있는 걸 닮았다고 우기면 할 말이 없지만 그들이 아는 사다르는 그런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겠거니 여기며 바라보았으나, 그는 딱히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설명하기도 힘든 일이기도 했다.


그저 그렇게 느꼈다, 그게 다였으니까.


“......후. 됐다. 온 김에 오늘은 여기서 지내야겠다.”

“대낮부터 한잔하시게?”

“아, 그러면 나도 같이......”

“아직은 생각 없어. 그리고 넌 내가 왔으면 응당 내 나귀 좀 챙겨야 하는 거 아니냐? 이래 봬도 손님이다.”

“쳇.”


입맛을 다시며 은근슬쩍 농땡이 피려던 콜타스에게 사다르가 핀잔을 던지자 그에 동조하듯 헤이슨이 말없이 시선을 보냈다.


두 사람의 반응에 가볍게 혀를 찬 콜타스는 다시 바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저놈은 대체 언제나 철이 들련지.”

“죽었다 깨어나도 힘들 겁니다. 그 고난을 함께 넘어왔지만 저나 저 친구는 물론이고 형님도 안 변했잖아요. 사람이라는 거, 근본은 바뀌지 않더라고요.”

“근본이라.”


헤이슨의 말에 사다르는 무심코 자신의 근본이 무엇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방앗간지기? 그런 건 그저 그 날이후 먹고 살기 위해, 그리고 마을과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에 불과하다. 먹고 사는 수단이자 겉모습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다르의 내면이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근본은 무엇일까? 답은 정해져 있다.


아직도 그 때에 구애된 젊고 혈기 넘치던 신전병, 그게 사다르의 근본이었다. 동시에 사다르는 자신이 이렇게 달려온 이유를 깨달았다.


“하.”

“형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뭐라도 하나 주게.”


뭐라도. 그 말이 뜻하는 게 바로 조금 전 그가 생각없다고 말한 것임을 안 헤이슨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떠오르신 겁니까?”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줘.”


부인이 떠난 후부터 공허함에 시달린 탓인가, 사다르는 종종 예전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있었다. 헤이슨과 콜타스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곧장 그를 위로해주곤 했다. 다만 두 사람은 가족이 근처에 있어서 그와 달리 그리 빈번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평상시라면 그런 그들을 부럽게 여기며 농이라도 한마디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라렉시안 경, 이 멍청한 놈은 그 끔찍했던 순간이 잠시나마 돌아오길 바랐던 거 같습니다.’


은인을 향해 참회하듯 고개를 숙인 사다르는 그렇게 고개를 숙인 상태로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



끼이익


“에휴, 이게 무슨 꼴이냐.”


헤이슨의 술집 창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아레타가 한숨과 함께 뛰어내렸다. 갑옷을 차려입은 상태이니 소리가 울려야 하건만, 상식을 무시하듯 아레타는 가볍고 조용하게 바닥에 내려섰다.


“그냥 말하고 나올 걸 그랬나?”


가장 간편한 해결책을 입에 담은 아레타는 곧 그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계시와 직감은 그만으로도 충분함을 고했다. 그리고 이곳은 거리가 있어서인가 대신전의 포고문이 아직 닿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굳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어서 불안함을 불어넣는 것보다는 알아서 해결하고 나중에 알면 알게 되는 식인 게 나았다.


무엇보다도 대신전에서 알게 된 사실, 마하난 평원에 있는 이들은 저번 성전을 수십 년 전에 겪은 이들이자 그 후손이라는 사실이 그걸 주저하게 했다.


이미 한번 고난을 겪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다시금 그 끔찍함을 떠올리게 하다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어디로 가면 되려-.”

“어이쿠, 이분 생각보다 재주가 있으신 분이었네.”

“-으헉!?”


찾아갈 장소, 라렉시안 락번의 묘지가 근방에 있다는 건 알고 있으나 초행인 곳에서 정확히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문도 아닌 곳으로 나와서 지리를 알기 힘든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 의문을 풀기도 전에 들려온 말소리에 아레타는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사다르 형님이 조금 그렇긴 했지. 그래도 그냥 문으로 다니는 게 좋아. 경우가 없는 형님은 아니야.”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이, 콜타스의 얼굴을 보며 아레타는 저도 모르게 쥐었던 주먹을 폈다.


“크흠.”

“어디로 가시나? 말, 내어드릴까?”

“어, 그러니까.....”


콜타스의 말에 아레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적지을 입에 담았다.


“라렉시안 락번 경의 묘지가 근방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그렇군. 그러고 보니 자네도 신전 기사니 관심 있겠지. 그렇지 않으면 뭐하러 이런 풀때기뿐인 동네에 오겄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콜타스는 곧장 몸을 돌려서 아레타가 맡겼던 말을 끌어왔다.


“걸어서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타고 가는 게 나으실 거요. 거리가 좀 되거든.”


그리 말한 콜타스는 곧장 묘지가 어디있는지 알려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아레타는 곧장 감사를 표하고 말에 올라서 라렉시안의 묘지로 향했다.


“잘 다녀오시오!”


멀어져가는 아레타에게 손을 흔들며 외친 콜타스는 곧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잊히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



***



“여긴가.”


잘 정돈된 묘지를 보며 아레타는 감탄을 흘렸다. 마을을 나오면서도 느꼈지만, 이들은 진심으로 이곳을 아끼고 묻힌 이들을 존경하는 거 같았다.


‘내게도 대부분 호의적인 시선이었지.’


신전 기사를 향한 시선은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물론 싫어하는 이는 그리 없지만, 관심이 없는 이들은 굉장히 많다. 오히려 가장 많은 부류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런 면에서 이곳 사람들처럼 반기며 인사라도 건네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음, 그러고 보니.....’


문득 전에 수도로 향하던 중 만났던 가게 주인이 떠올랐다. 영주보다 신전 기사가 더 낫다고 하며 편의를 베풀던 그를 떠올리니 미소가 지어졌다.


“오오.”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라렉시안 락번의 묘지를 보며 아레타는 작게 감탄을 흘렸다.


묘비 자체는 평범했으나, 그곳에 새겨진 문양은 유려하니 세월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면 어디.....”


말에서 내려 가슴에 손을 올려 예를 갖춘 아레타는 곧 묘비로 가다갔다. 그의 눈에는 기대감과 의구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가능할 거라 듣기는 했으나, 막상 하게 되니 믿기 힘들었다.


“선배님, 제게 기억을 빌려주시기 바랍니다.”


의구심, 아니 불안감을 털어내듯 읊조린 아레타는 천천히 묘비의 성표 문양에 손을 댔다. 그러자 시야가 일순 흐려진다 싶더니 곧 고즈넉한 묘지가 아닌 다른 풍경이 보였다.



***



황금빛으로 물든 평원은 어디 가고 잿빛 가득한 황야가 끝없이 펼쳐진다.


화창하고 푸른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검은 구름과 회색빛으로 물른 하늘이 보인다.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보니 그것만이 달라진 게 아니다. 곳곳에는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과 야수, 아니 마수들의 시체가 널려있다.


산 사람은, 아니 사람은 고사하고 살아있는 생명이 있기는 한 건지 의심스러운 광경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처참하게 싸웠다고?’


동시에 이 처참함이 곧 자신들의 몫이며, 그 선두에 자신이 선다고 자각한 순간 이쪽을 보라는 듯 굉음이 울렸다.


쿠우웅


“뭐지?”


고개를 돌리니 멀리 마을이 있던 곳을 더 넘어서 거대한 구름 기둥 같은 게 보였다.


무엇인지 잘 모르는 현상에 가늘게 눈을 뜨고 보던 아레타는 문득 그것과 비슷한 걸 전에 보았다는 기시감이 든 순간, 머리를 스치는 광경이 있었다.


바로 수도에서 벌어졌던 소동 가운데 돌연 마수들에게 스며들어서 그들을 강하게 해주었던 검은 연기였다.


“저만한 크기라면 대체 어떤 것에게 깃들었다는 거지?”


의아함을 품은 순간, 그걸 풀어주겠다는 듯 아레타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더니 곧 연기가 모여서 생긴 구름 기둥 바로 근처로 이동했다.


“마하난 분지......”


구름 기둥, 아니 연기 기둥인가. 어떻게 부르던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건 생각보다 더 길고 컸다. 평원보다 낮은 분지에서 나오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근원을 보기 위함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가 시선이 절로 그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분지 가운데를 본 순간, 아레타는 생각지도 못한 것을 보았다.


실제로 보진 않았으나 계시를 통해서 본, 그 물건.


가시와 같은 것들이 뒤덮고 있어서 조금 달라 보이긴 했으나 틀림없이 그 물건이다.


퀜달렌이 가지고 간 그들의 ‘비보’라 불리는 수정 구슬이 이 불길한 기둥의 근원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본 순간, 마치 시간이 되감기듯 풍경이 움직였다. 연기는 도로 구슬로 빨려 들어가고, 사람들은 당황하며 뛰고 있으나 몸은 뒤로 간다.


이윽고 비보를 손에 든 누군가가 손을 들고 분지 한가운데 내리찍듯 놓기 직전으로 되감긴 풍경은 곧 빠른 속도로 잃어버린 것을 되찾겠다는 듯이 움직였다.


백색 교단으로 추정되는 이가 수정 구슬을 바닥에 놓고 자결한다. 그리고 그걸 보고 막기 위해 수호자로 생각되는 이들을 필두로 수많은 신전 기사와 신전병들이 달려들었다.


개중에는 어딘지 낯이 익은 듯한 신전병도 있었으나, 아레타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여기며 뒤로 미루었다.


곧 구슬이 만들어낸 기둥은 그 속에서 마수를 쏟아내었다. 그에 수호자들을 제외한 이들이 상대하고, 수호자로 생각되는 빛나는 이들은 곧장 구슬을 향해 달렸다.


누군가가 쓰러지고, 누군가가 대신 막고, 하나씩 쓰러진 가운데 구슬에 도달한 이는 거대한 전투 망치를 든 수호자였다. 그는 곧 온 힘을 다해 망치로 구슬을 내리찍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


불길한 기둥의 샘솟음도, 성전도, 그리고 망치를 내리쳤던 수호자의 일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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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9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9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8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4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6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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