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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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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조회수 :
16,576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13 19:05
조회
92
추천
3
글자
12쪽

3장 노병의 찬가(4)

DUMMY

사명을 다하고 스러진 라렉시안 락번.


그 장면을 끝으로 아레타는 다시 그가 잠든 곳으로 돌아왔다.


“기억을 공유할 수 있다.”


멍하니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본 아레타는 곧 양손으로 제 얼굴을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본인에게 직접 하고 싶은 말이나 그건 나중에 신의 부름을 받은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대신해서 아레타는 무덤을 보며 짧게 감사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뭘 해야 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는 알겠어.’


할 일은 아직 확신하지 못하나 다음으로 갈 곳은 정해져 있다. 마하난 분지, 라렉시안 경이 보여준 그곳이다.



***



“......이게 무슨?”


마하난 분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묘지와 달리 기억으로나마 어느 방향에 있는지 보았으니까.


헌데 도착한 마하난 분지는 그의 생각과 상황이 조금 달랐다.


“어이, 여기 수레 가져와!”

“갑니다!”

“제길, 이놈의 삽은 도무지 하루를 못 가나. 누구 여분 없어?”

“이 사람들은 대체 뭐야?”


아레타가 예상한 마하난 분지는 사람들이 꺼리는 구멍이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비웃듯 상당히 많은 사람이 마하난 분지에 있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보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신전 기사님이 이런 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고개를 돌려서 보니 젊은 청년 하나가 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친절함이 느껴지는 웃음에 아레타는 일단 말에서 내려서 인사를 건넸다.


“전 아레타라고 합니다. 근방 순례 중인데,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아, 이거요? 하긴, 요 며칠 사이에 벌인 거니 모르시겠죠.”


사내는 그렇게 말하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슬쩍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사실 영주님 지시 때문입니다.”

“영주?”


그 말에 아레타는 다시 분지에서 열심히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듣고 보니 다들 복장이 일관된 게 어딘가에 소속된 이들로 보였다.


“영주가 개간이라도 하는 겁니까? 이런 지형은 그리 좋은 지형이 아닐 텐데요.”

“그렇죠.”


쉽게 수긍한 사내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어딘가를 보았다. 그가 시선을 주는 방향을 보니 홀로 그늘막을 치고 앉아서 매섭게 분지를 노려보는 중년 사내가 보였다.


가만히 그를 보고 있자니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이쪽을 보곤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그는 곧 옆에 있는 이에게 무어라고 말하니 곧 사람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런, 영주님이 보셨나 봅니다.”

“그런 거 같군요.”


별 생각 없이 맞장구를 치니 처음에 그에게 말을 걸었던 사내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곧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저희 영주님이 조금 사나우십니다.”

“사납다?”

“신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거든요.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권위라는 말에 아레타는 이곳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 거 같았다.


오래전이라면 모를까, 교국에서 영주는 지방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아니다. 전통에 따라 인정된 지역 관리자 혹은 지주에 가깝다.


교국 초기부터 반발하지 않은 영주는 없으나, 이제 와서는 너무나도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그런 오래된 것에 매달리며 동경하고 바라는 경우가 있다.


곤란하게도, 이곳 영주가 그런 사람인 모양이었다.


“신전 기사님, 저희 영주님이 잠시 뵙고자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



“이런 곳까지 무거운 발걸음을 하느라 고생이 많군그래?”


내용이야 듣기 나름이나, 영주의 표정을 보건대 방금 한 말은 절대 좋은 뜻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 표정을 짓는 일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자기소개도 없이 대뜸 말한 것이라면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그거 순례길에 들렸을 따름입니다.”

“순례? 아아, 저기 말이군. 그런데 여긴 왜 왔어?”


아레타의 말에 영주는 곧 멀찍이 시선을 두더니 곧 관심이 없다는 듯 추궁했다.


“여기도 순례지에 해당합니다만.”

“뭐?”

“모르셨습니까?”


영주는 두 눈을 끔벅이며 정말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잠시 그러던 그는 곧 옆에 있는 향해서 손짓했다.


그와 몇 마디 귀엣말을 나눈 영주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험험, 이거 내가 몰라서 실수했군. 최근 이곳을 넘보는 쥐새끼들이 많아서 말이오. 설마 고결한 신전 기사님이 그러진 않겠지만,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 날 오해할지 몰라서 대응이 거칠었소. 여기에는 세속적인 내게 중요한 게 있어서 말이지.”

‘에휴.’


말은 정중했으나 속뜻이 뻔히 보여서 그리 정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여긴 내껀데, 끼어들지 마. 설마 신전 기사라는 놈이 물질적인 걸 탐하냐? 그러면 신전 기사가 아니지.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나 여기서 화를 내거나 같이 빈정거려도 좋을 게 없다 여긴 아레타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영주는 웃으며 몸을 돌렸다. 꼴을 보니 여기서 무슨 일이 있는지, 무엇을 바라고 이리 사람들을 동원했는지 말해줄 거 같지 않았다.


‘알 방법이야 없지 않지.’


이만한 규모로 움직였으니 주변 마을에서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마을 청장년들을 돈 주고 데리고 왔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무얼 하는지는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별거 아니지만 순례 중이니 아래에 내려가서 한번 둘러보고 가도 되겠습니까?”

“으음.”


아레타의 말에 영주는 잠깐 고민하더니 마뜩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감사할 일도 아니고 허락받을 일도 아니나, 이런 자와 엮여서 귀찮게 되는 것에 비하면 이게 몇 배는 편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아레타는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분지로 내려갔다. 이들이 내려가기 위해 설치한 가도가 있기에 내려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지에 발을 내디딘 순간, 아레타는 이곳이 무언가 특별함을 깨달았다.


‘이적이 깃들어 있다.’


수호자가 된 후 성스러운 기운과 사이한 기운에 대한 감각이 크게 높아진 덕에 아레타는 그가 밟은 흙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금세 알았다. 그와 동시에 라렉시안 락번을 비롯한 수호자들이 쓰러지며 지면으로 빛이 조금씩 스며들었던 게 떠올랐다.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일까, 걷는 동안 어쩐지 좋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신전과도 같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의문이 하나 고개를 치켜들었다. 바로 이곳이 방치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주변에서 땅을 파헤치는 이들이 있으니 방치되어있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어느 의미 이들이 더 확실한 증거이기도 했다.


무엇도 하지 않은 장소가 아니라면 이렇게 마구잡이로 파헤치진 않을 테니까.


본디 이적이 깃든 땅이라는 건 은총을 입은 땅이라는 소리다. 무엇을 길러도 훨씬 잘 자랄 텐데 이곳이 아무리 분지라도 방치된 상태인 건 이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레타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흙 아래 뭔가 있다.’


천천히 걸어서 그가 본 장소, 라렉시안 경이 마지막 일격을 날린 곳에 선 아레타는 발밑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불길함이 감도는 게 지면 아래에 있었다. 뭔지는 모르나 거슬리고 불길한 감이 드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잠시 아래를 보던 아레타는 아래에 있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것의 근원이군.’


구슬을 이 장소에 내려놓자 그 검은 연기가 나왔다. 아마도 그 검은 연기의 본체라고 할 무언가가 이 장소에 묻혀있었다.


그런 게 있다면 아무리 이적이 있어도 식물에게 그 은총을 나눠주기란 힘들다. 말라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헌데 그가 기억을 통해 본 것보다는 약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건 봉인이었다. 수호자들이 남긴,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곳에 정착한 자들을 위한 봉인.


아니, 어쩌면 의도한 걸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전처럼 그들이 이곳에 그 구슬을 내려놓더라도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다못해 이곳의 흙을 모두 파헤치고 걷어내기라도 하지 않으면......잠깐만.’


아레타가 고개를 돌리니 주변을 바쁘게 파헤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위에서 여전히 작업하는 이들을 바라보는 영주도 보였다.


“빌어먹을.”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



“거슬려.”

“무엇이 말입니까.”

“저놈.”


아레타의 시선을 느낀 건지, 영주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턱짓했다. 그에 슬쩍 그 끝을 따라가 본 집사는 쓰게 웃었다.


‘여전하시네.’


그의 주인이자 이 근방을 관리하는 영주, 그리독은 신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좋아하지 않다고 말하면 에둘러 표현한 셈이 된다.


까놓고 말해, 싫다를 넘어 증오에 가깝지 않을까.


“감히 우리 가문의 유산을 넘보려 든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어쩌다가 이렇게 자라신 걸까.’


속으로 씁쓸한 감상을 품던 집사는 문득 자신이 방금 품은 감상이 옳지 않다 여겼다. 분명 소년기나 청년기에는 이렇지 않았다.


‘허어, 으극!?’


언제부터 그가 모시던 이가 이리 변했던가, 그렇게 세월을 거슬려보려는 순간 집사의 머리에 통증이 달렸다.


“음? 어디 몸이라도 좋지 않은겐가?”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저도 나이를 먹은 거 같습니다.”

“이런, 그러고 보니 자네는 나로 벌써 3대째였지.”


통증에 머리를 쥐고 인상을 찌푸리니 그리독이 안쓰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평균 수명을 이미 한참 넘어선 집사다. 하던 일만 하며 몸조리 잘해도 저절로 몸이 축날 판에 근래 이곳으로 오가며 자신을 보좌했으니 몸이 성하기 힘든 게 당연했다.


“내일부터는 저택에 남게. 이미 후임도 잘 키워두지 않았나.”

“아직은 괜찮습니다. 제 자리는 언제나 영주님을 모시는 자리입니다.”


그리독의 말에 집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이가 보면 자신의 자리에 대한 집착이나 후임에 대한 견제로 보일지도 모르는 태도였으나, 그건 정말로 잘 모르는 이의 생각일 뿐이다.


후임은 집사의 아들이고, 집사는 순수하게 평생하던 대로 영주를 모시다가 마지막을 맞는 게 소원이었으니까.


“......무리하진 말게.”


집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영주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욕심에 어울려주고 있으니 미안함이 아니들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벌인 일을 접을 생각은 없었다. 이게 그의 가문에 중요한 일이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그랬다.


‘선조의 유산이 여기에 있다. 찾아야, 그래야.....어라.’


선조의 유산을 찾는다. 이상하게도 그다음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벌써 나이 먹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걸까 싶었다.


“실례.”

“......아직 있었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애써 머리를 굴리던 중 마음에 들지 않아 하던 방문객, 신전 기사가 도로 그의 앞에 서는 게 보였다.


말로 충분히 기분 나쁨을 드러냈건만,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개의치 않는 건지 신전 기사는 한 걸음 더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선조의 유산을 찾고 있지.”

“유산? 무슨 유산이 여기에 있다고요.”


신전 기사의 질문에 영주는 돌연 짜증이 치솟는 걸 느끼며 몸을 돌렸다.


“당신에게 말해줄 의무는 없소. 여기에 있는 건 내 것이고, 내 가문의 것이요. 그게 다지. 일 봤으면 그만 가보시오. 이곳을 파보는 건 이미 근처 신전에도 양해를 구한 일이니 괜한 참견 말고.”

“......신전에서?”


신전에 양해를 구했다는 말에 신전 기사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데.


“후우, 하루나 이틀은 어떠려나.”


종잡기 힘든 말을 중얼거린 신전 기사는 두 눈을 감더니 조용히 서 있었다. 이상하게 느껴지는 모습에 말을 걸까 했지만, 이내에 신전 기사 눈을 뜨며 몸을 돌리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뵙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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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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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장 노병의 찬가(11) 22.04.20 89 3 13쪽
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8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8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8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7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5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7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1 4 12쪽
27 막간 22.04.09 145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3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5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5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5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8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1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0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3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7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299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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