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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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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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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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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0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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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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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2쪽

막간

DUMMY

“오늘은 뭔 사람이 이리 없담.”


요 근래 가장 적은 손님을 받은 날이란 생각에 칼뤽은 가볍게 투덜거리며 대걸레를 들었다. 사람이 없다고 멍하니 앉아있다가는 공으로 하루를 날리기 십상이다. 이런 날은 겸사겸사 청소라도 하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딸랑딸랑


대걸레를 들고 바닥을 조금 닦으니 누군가 왔음을 알리는 방울이 울렸다. 그 소리에 칼뤽은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에 들어온 이가 손님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칼뤽은 실망하지 않았다. 되려 더 기쁜 얼굴로 한달음에 문으로 달려갔다.


“여보, 얘들아!”


부인과 아이들이 돌아온 것이다. 가족들은 그를 보고 마찬가지로 반가워하며 안겼다.


“아빠!”

“다녀왔습니다!”

“그래, 그래.”


아이들을 안아주며 함박웃음을 짓던 칼뤽은 고개를 들어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부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품에 안은 아이를 보였다.


“셋째에요.”


부인의 말에 칼뤽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들었다. 팔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칼뤽은 절로 웃음이 피어나는 걸 느끼며 사랑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 거리가 왜 이리 어수선해요?”

“거리? 아, 그렇군. 당신은 모르겠어.”


부인의 질문에 칼뤽은 잠시 고민하더니 애들을 바라보았다. 눈치 빠르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부인은 상냥한 어조로 아이들에게 일렀다.


“얘들아, 집에 왔으면 먼저 씻어야지.”


썩 내키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아직 어린아이들이었기에 어머니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곧장 씻으러 갔다. 아이들이 간 후 능숙하게 안쪽으로 걸어가서 낡은 요람을 꺼내온 부인은 셋째를 거기에 누이고 칼뤽과 마주 앉았다.


“이제 말해봐요.”

“그러니까......”


부인의 말에 칼뤽은 지난 며칠간 있었던 일을 입에 담았다. 성일에 있었던 난리부터 시작해서 그 후에 대신전에서 그들에게 알려준 ‘백색 교단’이라는 존재에 이어서 ‘수호자’라는 이가 있다는 말까지 전부 말했다.


한참 그의 이야기를 듣던 부인은 이야기가 끝나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종말이 오기를 바라는 이들? 하아, 이게 무슨......”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우리 아이들이 전란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는데.”

“......”


미처 생각지 못한 점을 부인이 지적하니 칼뤽은 할 말을 잃었다. 무언가 말을 찾기 힘들었던 그는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개를 돌려서 한쪽 벽을 보았다. 그곳에 걸린 물건들을 본 칼뤽은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의 시선을 따라서 벽을 본 부인은 못 보던 철봉과 갑옷이 걸린 것을 보고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저건 뭐죠? 당신, 설마 나 몰래 이런 걸 샀어요?”

“이건 산 거 아니야. 맡아둔 거라고.”

“외상? 그런 거, 현물로 받아도 곤란한데.”


칼뤽이 해명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시선이었다. 곤란한 오해에 칼뤽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 친구가 맡기고 간 거야. 팔면 안 돼. 날 지켜준, 그리고 이제 우리 아이들을 지켜줄 친구 거라고.”

“예?”

“하하, 그게 말이지......”


부인에게 자기 친구가 대단한 이가 되었다는 걸, 그리고 그 대단한 이가 대신전에서 말하던 이들 가운데 필두라는 걸 말하려니 절로 신이 난 칼뤽은 들뜬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동시에 말을 이어가며 칼뤽은 지금까지 느꼈던 불안이 가시는 걸 느끼며 미소지었다.


그의 친구라면 반드시 해낼 것이다. 이 힘들어질 시기를 이겨내고 우리에게 평화를 선사하리라.


근거는 없었지만, 그런 강한 믿음이 들었다.



***



“메리멀 신관장님, 대신전에서 온 포고문과 편지입니다.”

“포고문?”


대신전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도 포고문이 전달될 무렵, 메리멀 신관장은 동시에 편지를 하나 전해 받았다.


“네, 수도에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신전 기사의 말에 메리멀은 그가 내미는 걸 건네받았다. 차분히 내용을 읽어본 메리멀은 안색을 흐리며 읽은 걸 신전 기사에게 돌려주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군요. 이건 신전에 붙이고, 주변 마을에도 전해서 알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편지는 이곳에 두겠습니다.”


메리멀의 지시에 신전 기사는 포고문을 잘 말아서 들고 나갔다. 그가 나간 후 탁자에 올려진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본 메리멀은 그게 대신관장에게서 온 것임을 뜻하는 직인이 찍힌 걸 보았다.


편지를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개봉하여 내용을 찬찬히 읽어본 메리멀은 때로는 기쁜 얼굴이었다가 때로는 걱정하는 얼굴이 되었다.


“첫 번째 수호자.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으셨군요. 이래서야 보상은 따로 생각해야겠네요. 헌데.......”


말끝을 흐린 메리멀은 그녀 혼자 있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는 안타까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불순한 자들이 더 늘어나다니.”


본래 그녀가 우려했던 일에 대한 내용은 편지에 없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우려한 건 내부에 있는 삯꾼이다.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나, 이건 외부의 대적이 나타난 이상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허나 그렇다고 아무런 언급이 없다니, 아무래도 클레하스가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건 아닌가 싶었다.


“음?”


열어본 편지 봉투 안쪽에 작은 종이가 하나 더 끼워져 있는 걸 발견한 메리멀은 곧장 꺼내어 읽었다.


두 번째 편지를 모두 읽은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사라졌다.


“내가 섣불리 판단했군요.”


겉으로 드러내진 않으나 이미 클레하스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알고 있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성일 의식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물건이 사라진 일이 그리 가벼운 일일 리가 없다. 하물며 이런 지방에 있는 그녀가 알 정도였던 일이 아닌가.


“신께서 그대들을 안위하시길.”


메리멀은 그녀가 보낸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



수도를 떠들석하게 하고 교국 전체에 퍼진 소문과 이야기는 뒷세계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시기를 잘 가늠할 눈이 필요한 곳이니 만큼 더 활발하게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교국 전체에 비상령이 떨어졌어. 곧 외지에 나가서 순방 중이던 기사단 전부를 불러들인다고 하더라.”

“제길, 당분간 장사 접게 생겼군.”

“어쩔 수 없지. 어떻게 살아도 저세상보다는 현생이 아니겠냐.”

“그렇긴 하지.”

“정 힘들면 신전병이라도 하던가.”

“하, 이런 막돼먹은 인생을 그놈들이 잘도 주워주겠다.”


주변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리발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잠시 숙이고 살아야겠다 싶었는데, 강제로 기간이 연장되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왠 미친놈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군.”

“형님, 이거 한동안 몸을 사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렉스의 말에 리발은 잠시 고민하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폭풍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허나 그 보통의 범주에서 한참 먼 리발에게 이번 일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분명 그게 맞긴 한데, 이놈들이라면 혹시.....’

“형님?”


이상한 기색을 느낀 렉스는 걱정스럽게 물었고, 그 걱정은 곧 리발의 말로 현실이 되었다.


“내가 바라는 게 있을 거라는 예감이 팍팍 드는데.”

“.......에이씨.”


리발의 말에 두 눈을 끔벅이며 렉스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한없이 진지한 얼굴을 보고 진심임을 깨달은 렉스는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형님, 형님이 바라는 걸 나도 압니다. 그래도 가끔은 좀 주변도 챙겨주슈. 그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거기까지.”


렉스의 말을 듣던 리발은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그가 말하려던 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고 들은 말이니까. 하지만 그 말은 아무리 그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큼, 죄송합니다.”


리발이 멈춰 세운 이유는 렉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전에도 같은 실수를 한번 한적이 있으니 깨닫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말을 거내지 않았다고는 하나 실수는 실수, 렉스는 곧장 고개를 숙으며 사과했다. 그러나 그뿐, 렉스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수도에서 대신전을 상대로 싸움을 거는 놈들이라고요. 그것도 목적이 세상의 종말을 당기는 거라니, 제정신인 놈들이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게 렉스의 말에 따르겠다는 표현은 아니었다. 함께 지내온 세월이 헛것이 아니라는 듯 곧 대답 이면에 숨겨진 뜻을 읽어낸 렉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이건 진짜 아니라니까요. 형님 소망은 알지만 동반자가 세상이라는 건 아무리 그래도 아니죠.”

“......”


렉스의 말에 리발은 입을 다물었다. 강한 예감이 들었으나 렉스가 말한 건 틀리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 동반자라니, 그건 할 짓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최악은 그가 세상과 동반하는 게 아니라, 세상만 가는 거다.


“여어, 이런 곳에 있었나.”

“......스틸롱?”


고심하던 리발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서 보니 그곳에는 도적 조합 간부, 스틸롱이 서 있었다.


“많이 늙었군.”

“나참, 오랜만에 봐서 한다는 소리가 그거냐. 어이, 여기 맥주 큰 걸로 하나!”


기세 좋게 주문한 스틸롱은 적당히 의자를 꺼내어 앉더니 렉스를 보았다.


“오, 이 친구가 요즘 함께 다니는 그 별종이야?”

“그래.”

“별종이라니, 제 평가가 좀 그런데요.”


리발의 수긍에 렉스는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으나 리발은 물론이고 스틸롱 역시 그의 말에 개의치 않았다.


“그래서, 무슨 용무야. 벗겨진 걸 자랑하러 온 걸 아닐테고.”

“제길, 은근히 신경 쓰고 있으니까 그건 넘어가 달라고.”


근육질인 몸은 자랑스러웠지만 근육이 늘어갈수록 비어 가는 머리에 은근 서러움을 느낀 스틸롱은 얼마 전 머리를 싹 밀어버린 참이었다.


그러나 반쯤 놓았다고 해도 서러운 건 어쩔 수 없었는지 근육질 거한에게 어울리지 않는 울상을 지어보인 그는 이내에 리발의 띠꺼운 표정를 보고 헛기침했다.


“흠흠. 조금 도움을 받고 싶은 일이 생겼어.”

“도움? 실패자에게 조합이 받고 싶은 도움이라. 자살 임무라도 있나 보지?”

“나 그렇게 썩지 않았다. 이런 건 네가 전문이라서 그런 거지.”

“내가 전문?”


한껏 비꼬았던 리발은 그 말에 흥미를 보였다. 스틸롱은 도적 조합 간부이기 전에 전에 그와 함께하던 이다. 그런 이가 이리 말하니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너도 관련이 있다면 있지. 자르달에 관한 일이라.”

“호오.”


점점 더 흥미가 돋는 걸 느낀 리발이었으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렉스는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제길, 이번에는 또 어떤 기괴한 일에 끌려가는 거냐.’



***



“저기가 마하난 평원인가.”


산등성이에서 멀찍이 보이는 목적지를 보며 아레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에 오른 덕에 더 높아진 시야는 주변을 쉬이 둘러볼 수 있게 해주었다.


평원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그가 있는 산을 끝으로 시야에는 끝없는 평야가 펼쳐서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농작물들이 어지간히 풍요로운 곳이라 느껴지게 하는 좋은 장소였다.


전쟁, 분란, 소란, 난리와 같은 단어들과 가장 거리가 먼 거 같은 곳이 있다면 이곳 마하난 평원이 아닐까 싶었다. 허나 그렇기 때문에 아레타의 안색에는 수심이 가득 깃들어있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기는 거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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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장 노병의 찬가(10) 22.04.19 89 3 14쪽
36 3장 노병의 찬가(9) 22.04.18 89 3 12쪽
35 3장 노병의 찬가(8) +1 22.04.17 89 4 13쪽
34 3장 노병의 찬가(7) 22.04.16 88 3 14쪽
33 3장 노병의 찬가(6) 22.04.15 96 3 11쪽
32 3장 노병의 찬가(5) 22.04.14 96 3 12쪽
31 3장 노병의 찬가(4) 22.04.13 93 3 12쪽
30 3장 노병의 찬가(3) 22.04.12 108 3 12쪽
29 3장 노병의 찬가(2) 22.04.11 109 4 12쪽
28 3장 노병의 찬가(1) 22.04.10 132 4 12쪽
» 막간 22.04.09 146 5 12쪽
26 2장 첫 번째 수호자(10) 22.04.08 154 5 13쪽
25 2장 첫 번째 수호자(9) +1 22.04.07 151 4 13쪽
24 2장 첫 번째 수호자(8) 22.04.06 157 5 11쪽
23 2장 첫 번째 수호자(7) 22.04.05 156 5 12쪽
22 2장 첫 번째 수호자(6) 22.04.04 165 5 15쪽
21 2장 첫 번째 수호자(5) 22.04.03 183 4 14쪽
20 2장 첫 번째 수호자(4) 22.04.02 193 5 12쪽
19 2장 첫 번째 수호자(3) 22.04.01 196 6 13쪽
18 2장 첫 번째 수호자(2) 22.03.31 216 6 12쪽
17 2장 첫 번째 수호자(1) 22.03.30 219 4 12쪽
16 1장 좋은 이야기(15) 22.03.29 222 4 13쪽
15 1장 좋은 이야기(14) 22.03.28 220 6 12쪽
14 1장 좋은 이야기(13) 22.03.27 232 5 12쪽
13 1장 좋은 이야기(12) +1 22.03.27 251 6 12쪽
12 1장 좋은 이야기(11) 22.03.26 324 5 13쪽
11 1장 좋은 이야기(10) 22.03.25 288 6 14쪽
10 1장 좋은 이야기(9) 22.03.24 300 6 12쪽
9 1장 좋은 이야기(8) 22.03.23 342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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