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함초롬히 피어나
-베 짜는 여인의 방
함수초*같이 수줍은 숨결로
베짜는 소리 텅 텅 들려오데요, 21세기에
짜르르 윤기 흐르는 옷감을 손수 짜려고
는개도 하늘거리며 치마폭 드리운 날
초월해버린 상념에 물들어
여자는 단 한 번 베틀에 앉지 않고도
인생을 수놓고 있데요. 그 옛날 허난설헌인양
이승과 저승사이에 끈을 잇는 베의 길을
롬베르크 증후*에 걸렸는지 아슬아슬하게
사라랑 사랑 치마를 쓸며 이리저리
는실난실 춤추다가 어느새 액자에 뛰어들었느냐고
히뜩 히뜩 보고 또 보며 구시렁거리지 마세요.
방방이 붓질해둔 비밀을 구태여 들추지 마세요.
피부 결도 속눈썹도 건드리지 마시고
어처구니없는 주문일지는 몰라도 그저
나비파* 화풍이거니 하고 들여다보기만 하세요.
*함수초(含羞草) : 콩과에 속하는 일년초. 키 30~50Cm. 줄기에 가시가 조금 있으며, 여름에 잎겨드랑이에 담홍색의 작은 꽃이 밀집하여 피고, 세 개의 씨가 들어있는 꼬투리를 맺는다. 잎은 건드리면 곧 아래로 늘어지고 작은 잎도 서로 다물며 합해지는데 마치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다하여 함수초라 부름. 감응초(感應草). 미모사(mimosa)
*롬베르크 증후(독: Romberg 症候) : 두 발의 발끝을 붙여서 서게 하고, 두 눈을 감기면, 신체의 동요가 강해지는 척수성의 운동실조.
*나비파(Nabis 派) : 19세기 말기에 고갱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젊은 화가들이 추진한 회화의 새로운 운동. 대담한 주관적인 표현을 했음.
- 작가의말
함수초/같이/ 수줍은/ 숨결로//
베짜는 소리/ 텅 텅/ 들려오데요,/ 21세기에//
짜르르/ 윤기 흐르는/ 옷감을/ 손수 짜려고//
는개도/ 하늘거리며/ 치마폭/ 드리운 날//
초월해버린 상념에 물들어
여자는 단 한 번 베틀에 앉지 않고도
인생을 수놓고 있데요. 그 옛날 허난설헌인양
이승과 저승사이에 끈을 잇는 베의 길을
롬베르크 증후*에 걸렸는지 아슬아슬하게
사라랑 사랑 치마를 쓸며 이리저리
는실난실 춤추다가 어느새 액자에 뛰어들었느냐고
히뜩 히뜩 보고 또 보며 구시렁거리지 마세요.
방방이 붓질해둔 비밀을 구태여 들추지 마세요.
피부 결도 속눈썹도 건드리지 마시고
어처구니없는 주문일지는 몰라도 그저
나비파* 화풍이거니 하고 들여다보기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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