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웹소설 > 작가연재 > 시·수필

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26,604
추천수 :
1,653
글자수 :
165,582

작성
16.06.18 19:12
조회
391
추천
2
글자
3쪽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DUMMY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랴, 참말로!

소나무 삭정이 따다가 문득 고년을 벼르네.

불나게 나뭇짐 지고 헐레벌떡 내려와


거지반 집에 다다르자 어인 호드기 소리

산기슭 바윗돌 틈새마다 소보록하니 깔린 노랑 무더기를 비집고 앉아 점순이가 청승맞게 불어대는 저 소리, 푸드득 소리도 들리는 걸 보니 필연코 요년이 또 닭을 집어내다가 내가 들 골목에다 닭쌈을 시켜놓고 저는 그 앞에 퍼질고 앉아 천연스레 호드기를 불고 있을 터.

부아가 치밀어 올라 눈물바다에 다이빙하네.


나뭇지게도 안 벗겨져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작대기 뻗치고서 허둥지둥 달려가 보니, 참말로, 내 짐작대로 우리 수탉이 빨간 동백꽃 같은 피를 흘려, 흘리며 다 죽어가네, 닭도 닭이려니와 왼눈 하나 깜짝 없이 고대로 앉아서 호드기만 부는 요년 그 눈깔이 꼭 여우 새낄세, 나는 대뜸 달려들어 까짓 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고 주인집 큰 수탉을 단매로 엎었네. 닭이 푹 엎어지더니 뻗어버렸네. 혼을 빼고 섰다가, 점순이 매섭게 눈을 홉뜨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나는 또 뒤로 벌렁 나자빠졌네. 독 오른 점순이가 왜 남의 닭을 때려죽이느냐고 바락바락 대들기에 그럼 어때? 하며 엉덩이 털고 일어나다가,


짜식아! 누구네 닭인데? 하고 떼밀려 또 벌렁 자빠졌네.


분통터지고 무안스럽고, 걱정도 태산에다

땅이 떨어지고 집도 내쫓길 판이라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닭의 물찌똥, 울음 놓았네. 놓고 있는데 빠알간 동백꽃인지 점순인지가 다가와, 그럼 너, 이담부터는 안 그럴 테냐? 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아, 눈물을 닦으며 뭘 안 그럴지도 모르면서 그러마고 대답하였네. 노오란 동백꽃 흐드러진 내 머릿속으로 점순이가 쫑알거리며 걸어오네.

요담에 또 그랬단 봐라, 내 자꾸 못살게 굴 테니.


닭은 염려마라, 안 이를 테니, 해놓고 뭣 땜에

무엇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픽 쓰러지는 빨간 점순이,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 쓰러지며 한창 퍼드러진 진노랑 동백꽃 속에 폭 파묻혀버리네.

알싸한 동백꽃 향기에 정신이 고만 아찔했네.


너, 말마라. 그래! 그러자꾸나 하는데 요 아래서

점순아! 점순아! 이년이 바느질을 하다 말구 어딜 갔느냐고 툴툴거리며, 어딜 갔다 온 점순엄니가 점순이를 찾고 난리네. 점순이 겁을 잔뜩 집어먹고 노랑동백꽃 밑을 살금살금 기어 산 아래로 내려가기에 나도 새빨간 동백꽃을 마음속 깊이 숨긴 채로 기어서 바위를 끼고 엉금엉금 치빼었네.


샛노란 첫사랑 딱지, 현기증을 패대기치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밀 낙서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1 물무늬 16.06.19 466 2 2쪽
350 테크놀로지 아트 -불감증- +2 16.06.19 585 2 2쪽
» 첫사랑과 김유정표 동백꽃 16.06.18 392 2 3쪽
348 이곳에도 어처구니가 산다 16.06.17 312 2 2쪽
347 민들레 16.06.17 285 2 1쪽
346 식초로 무친 가랑파 16.06.16 460 2 3쪽
345 구두를 먹으며 16.06.15 478 2 2쪽
344 들고양이에게 밥을 16.06.14 290 2 1쪽
343 철쭉꽃 16.06.13 211 2 1쪽
342 들창, 아카시아 뒤에 서다 16.06.13 289 2 1쪽
341 [사설시조] 다시 일어서는 노을 16.06.12 304 2 1쪽
340 연(緣) 16.06.11 426 2 1쪽
339 자화상 16.06.10 410 2 1쪽
338 바위섬 16.06.10 331 2 1쪽
337 한계령 16.06.09 235 2 1쪽
336 빛나는 어둠 16.06.08 337 2 1쪽
335 달은 멀리 있다 16.06.08 418 2 1쪽
334 단풍, 그 추락하는 +2 16.06.06 428 3 1쪽
333 end가 아니고 and에서 +2 16.06.05 448 3 1쪽
332 만남 16.06.05 339 3 1쪽
331 순백의 언어 16.06.05 290 3 1쪽
330 난설헌 +4 16.06.04 385 3 1쪽
329 관촌수필(사진 : 소설가 이문구와 그의 부인과 그의 제자) +1 16.06.03 480 3 1쪽
328 가버린 나날 +1 16.06.02 201 3 1쪽
327 고대 석비를 건지다 +1 16.06.02 206 3 1쪽
326 물결은 비스듬히 드러누워 벙어리 새를… +1 16.06.01 251 3 1쪽
325 상사(相思)‧폭풍 예감 +2 16.06.01 487 5 1쪽
324 해풍 +3 16.05.31 463 5 1쪽
323 바다‧소금‧언어 +3 16.05.31 475 4 1쪽
322 별 꿈 +4 16.05.30 437 3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