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도 어처구니가 산다
이곳에도 어처구니가 산다
1.
느닷없이 붙들린 뒤 오 년간은 줄기차게
수로부인 잡아가던 신물 몽타주로 알리바이 꾸몄다, 전생의 죄 끄나풀 삼아
고리채 빚쟁이같이 닦달하는 위인아
삼십 년을 하루같이 비상구 스칠 때마다
고질병 사랑 엿 바꾸고서 취조실이 시달리는
실성한 구직 전단지 날건달 취업대책,
출근 한번 안 하시는 방구들 사장 체면에
지아비는 아내의 생각조차 통제하다 하다
소설 속 ‘나쁜 그림’*에서 몇 번이고 죽었는데
2.
아내에게만 눈을 박던 전생 원수 지겨워
어느 날 주문하였다 집 한 채 지어볼래요?
거 좋지, 좋아라 하고 걷어붙인 옷소매
기네스북도 손들어버릴 시행착오 끄트머리
정겨운 오막살이는 앞뒤 추녀 차양만 남았다
처자식 몰라라 하던 낙천가의 작품1호
삼대구년만의 내조도 할 겸 페인트 깡통을 든다.
놀 속에 후두두둑 빠져드는 참새 떼를 구름바다에 너울지는 백로를 백로의 그림자를, 기암절벽에서 곤두박질하는 폭포를, 어디선가 본 듯싶은 돌담을 빽빽이 이끼를 달아, 빗방울 깜박 조는 새벽에
장마철 웃어넘기며 미친년인양 붓을 놀린다.
불현듯 솜사탕 냄새가 둥실 두둥실
내 유년 어느 담벼락의 돌에서 나와 방실방실 춤춘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사랑 꽃을 피우며 제 그림자에 놀라 팔짝팔짝 뛰다가
도무지 갈피 못 잡고 주저앉았다, 사랑의 미로
*주영숙 소설집『나쁜 그림』,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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