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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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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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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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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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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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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2화-새로운 가족

DUMMY

웃으면 복이 오는 건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머리를 좀 비워주는 효과는 있는 거 같다. 웃음이라는 구토로 감정이라는 토사물을 해결한 덕에 한결 속이 개운해졌다.


그런데 내가 웃는 모습이 그렇게도 이상했나. 다들 표정들이 많이 얼떨떨해 보였다. 멋쩍은 기분은 일단 차치해두고, 우선은 유키네의 손을 잡고 그대로 일으켜 세웠다.


힘은 담피르인 유키네가 나보다 훨씬 세겠지만, 의외로 쉽게 일으킬 수 있었다. 내 팔에 무리가 안 가게 배려라도 한 건가?



"아. 저기...."


"됐어. 넌 아무 말 마."



난 잘못한 당사자만 족치지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해를 끼칠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유키네를 경계하지 않는다.



"어.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도 아직 엄마가 살기를 바라는 거니?"



유키네는 힐끔 엄마를 돌아보고는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그렸다.



"....아주 가끔씩 엄마가 과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영유아 관련 기관에 왜 빚을 져가면서까지 기부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살았으면 좋겠어?"



유키네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죄인인 건 처음부터 지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이 이상 죄가 더 있다고 해도.... 엄마를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에스프레소 같던 미소에 샷이 추가돼서 두 배는 더 씁쓸해졌다. 난 커피 써서 싫어하는데.



"역시 저도 정상은 아닌 거 같죠?"


"그렇네.... 그래도 말하는 거 보니까."



손으로 유키네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그녀는 놀랐는지, 몸을 흠칫 거렸지만 이내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내 딸은 맞네. 확실히."



나도 내가 정상적인 인간이라고는 생각 안 하거든.


내 손의 온도를 느끼던 변호사를 뒤로 하고,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있는 피고인 앞에 퍼질러 앉았다.


지금 내 자세가 판사치고는 좀 불량하긴 하지만, 그걸로 민원 넣을 사람은 여기엔 없다.



"내가 널 죽인다고 해도, 아무 말 않는다 했지?"


"네.... 저승에서 제가 죽인 아이한테도 용서를 빌어야죠."


"같은 곳에 갈 수 있나 생각하나보네?"


"...."


"뭐, 그건 됐고. 내가 집을 둘러보면서 계속 생각해봤는데, 역시 용서는 못하겠다."



수연의 의견대로 길게 생각하지 않고 감정대로 내린 결론이다. 당사자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용서가 무슨 용서냐.


세츠나는 사형선고를 듣고 올 것이 왔다는 듯한 얼굴로 올곧게 무릎 꿇고 앉았다. 유키네 역시 이미 예상한 결과라는 것처럼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각오는 되어있습니다. 다만 유키네는...."


"용서는 안 하지만, 죽이지도 않아."


"네?"



두 모녀의 목소리가 악기처럼 화음을 이루고 눈은 나라는 지휘자를 쫒았다. 한편, 수연은 말 그대로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팝콘을 씹으며 흥미로운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냥 무게를 좀 재봤을 뿐이야."



내가 세츠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의 무게와 유키네가 조금이라도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의 무게를.


그 결과.



"유키네에게는 엄마가 필요해."



이가라시 세츠나라는 절대로 좋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창부들의 집단인 이자요이바라 같은 정신 나간 환경에서 자란 유키네의 모습을 보니까 최소한 좋은 엄마는 맞는 것 같다.


가족이 있고 없고가 얼마나 다른 지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 유키네가. 만난 지 몇 시간 밖에 안 됐지만 내 딸이 엄마가 살기를 바란단다. 내가 저 애한테 약한 건 가족력이니까 별 수 없다. 원래 우리 가족이나, 지금 입양된 가족이나 다들 그렇다.


거기다 그 때 죽은 아이 생각에 내 딸이라니까 괜히 잘해주고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넌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 목숨을 유키네를 위해서 써.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평생 동안 속죄하면서 저 아이를 위해서 살고, 저 아이를 위해서 죽어."



지금은 용서할 마음이 안 든다. 말을 하는 지금이 순간에도 마음만 먹으면 망설이지 않고 이 여자를 죽일 수 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빌어라.


혹시 모르지. 계란 수백만 개를 한 곳에 던지면 바위도 부숴버릴지도.


판결문 낭독이 끝나고 법원은 정적에 잠겼다.



"아아...."



사형은 면한 피고인은 내 발밑에 엎드려서 고장 난 라디오처럼 울먹이면서 같은 말만 내뱉었다.



"과분한 처사에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평생 속죄하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피고인이 나인지 하늘인지 모를 대상에게 사과하는 동안,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변호인의 손을 잡았다.



"둘이서만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아, 네. 저야 좋죠. 근데...."



유키네는 고개를 숙이고 수연이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새빨간 눈을 부릅뜬 채 우리 둘을 향해 레이저를 쏘고 있다. 따갑다.



"그...."


"허락은 받아놓을 테니까, 시간 너무 많이 쓰지 마요."



의외로 바로 허락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일일이 설득해야할 줄 알았는데.


설마 내가 너무 마음대로 굴었다고 화내는 건 아니겠지?



"아빠랑 딸이 처음 만났는데 서로 할 얘기도 많잖아요. 다른 사람들한테는 내가 말해 놓을게요."



그러고 보니, 수연도 해외출장 나간 아빠 못 본지 꽤 오래됐다. 나름 사정을 이해하고 우리를 배려해 주는 모양이다.


그렇게 해준다면 나야 고맙고.



"가자. 그럼."


"네. 아...."


"아빠라고는 부르지 마. 부담스러우니까."


"그러면...."


"그냥 오빠라고 불러."



6살 차이에 아빠는 무슨.



**



진과 유키네가 둘이서만 얘기를 하러 집을 나간 사이, 세츠나와 둘만 남은 수연은 어마어마하게 어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기 중에 질소보다도 어색함이 더 많아졌다.



"저....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끄덕.


뭐라도 마시면 좀 괜찮을 거다. 이 숨 막히는 분위기라든가, 무전기를 통해 짹짹 댈 예정인 아나를 상대하는 거라던가.



"별로 상관없는데?"



쿨한데?



"또 어디 가냐고 바락바락 우길 줄 알았는데. 유키네를 믿나보네요."


"우리가 인간불신 걸린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보고도 그 애를 의심할 수는 없잖아. 거기다...."



갑자기 말을 끊고 우물쭈물 하고 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드리는 거지?



"네가 딴 건 몰라도 매혹 하나는 확실하니까."


"....날 칭찬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요?"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아?"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를 두 여자들이 티격태격 하는 사이, 진과 유키네는 구름 뒤에 숨은 달 대신 가로등을 달빛삼아 어두컴컴한 밤거리를 서성였다.


슬슬 열대야가 몰려오고 있어서 조금 후덥하다.



"학교는? 다니고 있어?"


"일단은요. 엄마가 다른 건 몰라도 학교는 다니라고 하길래."


"그건 잘했네. 어느 학교?"


"영산중학교요. 여기서 뛰어가면 20분 정도 걸려요."



누가 들으면 몇 년 만에 돌아온 기러기 아빠가 오랜만에 만난 딸의 근황을 묻는 모습인줄 알겠다. 전혀 아닌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좀 많이 달랐다.



"친구는 있고?"


"....그게..... 저.... 아무래도 제 출생이 출생이다 보니까."



왜 아니겠냐.



"누가 막 괴롭혀?"



티는 잘 안 나지만 목소리가 조금 격양됐다. 그게 자신을 걱정하는 것임을 알아챈 유키네는 웃으며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아서요."


"그럼 됐고."



이후로도 둘 사이에는 서로의 근황을 묻는 이야기꽃이 여러 송이 피어났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만, 새로 생긴 가족에게 궁금한 게 많은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꽃이 져야 할 시간. 약속 시간이 끝나간다.



"있지. 유키네. 하나만 물어볼게."


"유키.... 라고 불러주시래요?"



나름의 애칭인가 싶어서, 그냥 그렇게 불렀다.



"그럼 유키. 너, 나랑 살래?"


"네?"


"네가 원한다면 내가 어떻게든 네가 살 곳은 마련해 줄게."



진에게 유키네를 책임질 의무 따위는 없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이라도 유키네가 괜찮은 환경에서 살기를 바랐다. 어차피 집에 남는 방도 넘쳐나니까.


유키네의 얼굴에는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히 보였지만, 그 배경엔 난감함이 존재했다.



"저는 정말 좋지만, 엄마는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말해서 데려갈 수는 없겠지. 죽이진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난 아직도 그 여자가 싫어."


"그러면은...."



유키네는 웃으면서 진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여기 남을게요."


"괜찮겠어?"


"딸한테 엄마가 필요한 것처럼, 엄마한테도 딸이 필요해요."


"효녀 나셨네."



비아냥대는 거 아니다. 칭찬이다. 진짜다.


유키네도 그걸 이해하고 살짝 웃어보이다가, 이내 손가락을 비비며 분위기를 다 잡았다. 무척이나 어려운 부탁을 할 느낌이 들었다.



"있죠.... 아.... 아니. 오빠."


"왜?"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어려운 부탁이라 생각하는지 유키네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데는 조금 긴 시간이 걸렸다.



"둘만 있을 때만이라도.... 아빠라고 불러도 되요?"



상당히 낯 뜨거운 부탁에 진은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볼을 긁적거렸다. 그렇지만 고민이 길지는 않았다.



"둘만 있을 때 만이라면. 딱히 상관없겠지."



유키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열대야에 들어서기 한 발짝 전날 밤. 진에게는 6살 차이나는 딸이 한 명 생겼다. 구름 뒤에 숨어있던 달빛과 별빛이 새로운 가족의 만남을 축복하듯 쏟아져 내렸다.


관객이 없는 어두운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두 사람이 주인공임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오전 수업뿐이었던 진은 일찍 학교를 마치고 영선중학교 앞에서 유키네를 기다렸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려고 했는데 유키네가 휴대폰이 없다길래, 오늘 같이 사러가자고 약속을 잡았다.


유키네와 만난 진은 곧장 매장에 가서 그녀에게 최신형 휴대폰 하나를 선물했다. 처음에는 너무 비싼 선물이라고 어버버거리며 한사코 거절하려는 유키네에게 진은 단호히 말했다.



"돈 때문에 곤란해본 적은 없어서."



평생 체질 때문에 곤란했지만, 돈이 없어서 문제인 적은 없었다.


오다 주운 것처럼 휴대폰을 선물하고 번호를 교환한 후, 저녁이나 같이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수연이 알바하는 식당이었다.


유키네의 손에 선물 상자 같은 게 들려있는 걸 본 수연은 애써 웃으며 가장 안쪽 자리를 권했다. 부럽고 질투가 나긴했지만, 부녀 관계라서 납득은 또 가는 게 엄청 이상한 기분이다.



‘나도 선물....’



애써 웃는 수연의 안내를 받으며 자리로 향하던 진에게 낯익은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어? 언니 같은 오빠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현이 그녀의 친구인 오영과 밥을 먹고 있었다. 이십면상 사건의 피해자였던 오영은 진을 보자마자, 격하게 고개를 숙였다.



"밥 먹으러 온 거면, 우리랑 합석해요. 전에 밥 사드린다고 한 거, 오늘 사드릴 게요. 유키네도 앉아요."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그냥 서로 학교도 가깝다 보니까 이름은 아는 사이죠. 우리 둘 다 나름 유명인이거든요. 아무래도 처지가 조금 비슷하다보니."


"다른 이유도 뻔하네."



그나저나 합석이라.


진은 돈 때문에 곤란해본 적은 없지만, 아낄 수 있으면 아끼는 편이다. 또 사냥꾼에 관해서 묻고 싶은 것도 있고.


유키네도 고개를 끄덕이자, 진은 자현의 테이블에 앉았다.


뒤에서 쏟아지는 수연의 레이저가 따갑긴 하지만, 그녀 역시 사정을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자현은 자리에 앉은 진과 유키네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근처 고등학교에 소문이 날 정도로 음침하고 말이 없는 유키네가 이렇게까지 잘 따른다라....



"오빠랑 유키네는 무슨 사이에요?"


"친척 사이."



1촌도 친척이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그래서 닮은 거구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오영은 진과 눈이 마주치자, 우물쭈물하며 가방에서 선물 상자 같은 걸 꺼냈다.



"이. 이거. 그 때 구해주신 거에 대한 감사 선물이에요. 정미 언니가 오빠 피아노 치신다길래."


"요새는 잘 안 치는데."



받아서 열어보니까 소형 제습기다. 피아노 관리에 있어서 습도 관리는 중요한 일이다. 당연히 집에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거절할 정도로 매몰차진 않다.



"고마워. 잘 쓸게."



이윽고, 주문한 음식들을 먹으면서 네 사람은 가볍게 잡담을 나눴다. 일상적인 대화로 가볍게 긴장을 푼 진은 합석을 한 이유를 꺼냈다.


유키네를 찾는데 사냥꾼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제법 유용했다. 덕분에 그들에 대한 흥미가 티끌만큼은 더 생겼다.



"정미한테 물어보니까 사냥꾼들 바쁜 거 같던데, 넌 괜찮아?"


"네네.... 바빴었죠. 엄청."



수저를 내려놓고 물을 들이키면서 한숨을 내쉬는 게 어딘가의 커리어 우먼이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신세 한탄 하는 거 같다.



"그 놈의 여우는 어디 갔는지 꼬리도 못 잡겠고, 흡혈귀 살해까지 터진 탓에 바빠 죽겠다고요."



휴대폰이 신형이라 그런지 전화가 안 왔음에도 유키네의 전신이 진동했다. 눈도 뺑글뺑글 돌고, 물도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전자파 알레르기?



"그래도 이번 사건이 다른 팀으로 이전돼서 좀 살겠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오빠. 2달 정도 있다가 선발 시험 있는데 경험이라도 해보면 안 돼요?"


"흐음.... 선발 시험?"



전과는 달리 진이 약간의 흥미를 보이자, 자현은 눈을 반짝이며 영업 사원으로 돌변했다.


진은 선발 시험의 A부터 Z까지 일타강사에게 강의를 들어야만했다. 잡상인이라고 쫒아내기에는 강사의 에고가 너무 강했다.


결국 강의가 끝난 건 수연의 알바가 끝날 때가 된 후였다.



**



"설마 이렇게까지 오래 잡혀있을 줄이야."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어요. 외식하는 것도 처음이기도 했고."


"처음? 아니, 한 번도 안 해봤어요?"


"한국에서는...."


"그래서 포장을 그렇게 많이 한 거예요?"


"네! 엄청 맛있었어요."



유키네의 양손에는 식당에서 포장해준 음식들이 가득이었다. 수연은 저 해맑은 미소를 한 유키네가 왠지 측은해졌다.



"배고프면 그냥 와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내 돈으로 사줄 테니까요."


"저. 정말요? 고마워요. 그.... 언니."


"어. 언니요? 네. 그래요. 언니에요. 언니만 믿어요."



난생 처음으로 들어보는 언니라는 호칭에 수연의 얼굴에는 뿌듯함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어제는 그렇게 경계를 했는데, 하루 만에 이럴 수가 있구나.



'내가 할 말은 아니네.'



유키네와는 집 앞에서 웃으면서 헤어진 후, 진은 수연을 데려다주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남매들과 합류하기로 예정됐으니, 지금은 진과 수연 둘 만의 시간이었다.


단 둘이 걷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거의 매일 보는 사이임에도 살짝 어색함이 맴돌았다.



"유키네한테 휴대폰 사준 거죠?"


"그냥 선물한 거지."


"나는.... 없어요?"



아까부터 왜 그렇게 뾰루퉁한가 했는데 선물 때문이었구나. 생각해보면 생일 선물 말고는 딱히 선물 같은 거 한 적이 없었다.



"입단식 때 줄 테니까, 삐지지 마."


"누가 삐졌다고 그래욧!!! 애도 아니고.... 진짜 줄 거예요?"


"너무 큰 기대하진 마."


"에헤헤. 싫어요. 기대할래요."


"그러던가."



전에 루인의 의견대로 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가지고 있는 목걸이와 비슷한 태엽이 새겨진 반지였다.



"받고 나서 불평이나 하지 마."



열심히 만들었는데 받고나서 이게 뭐냐는 말만 안 나오면 좋겠다. 아니. 기왕이면 지금처럼 평범하게 좋아해주면 더 좋겠다.



"처음으로 진이한테 받은 선물이니까 평생 동안 제대로 간직할 거예요."



평생은 좀 부담스럽지만 그래준다면 더 고맙고.



"아. 집에 다 왔다. 그럼 내일 봐요."


"응. 내일 봐."



조금은 더 같이 있고 싶은 수연과 선물에 관한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찬 진은 언제나와 같은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



전문 플로리스트로 보이는 한 남자가 솜씨 좋게 꽃을 다듬고 있다. 남자의 주변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화단과 고급지고 화려한 옷차림과는 달리 남자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져있었다.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가위를 이리저리 놀리며 꽃으로 작품을 만드는 그의 뒤로 온몸을 붕대로 감싸고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한 명 다가왔다.



"마리골드네요."



남자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까의 울상은 지워버리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 네디. 왔어요? 오늘 거래는 어떻게 됐나요?"


"예상보다 조금 일찍 끝났지만 거래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원하시던 물건도 조만간 도착할 거고요."



네디의 수완이 나날이 성장하자, 남자는 뿌듯함에 절로 박수가 쳐졌다.



"아주 좋아요. 언젠가 내가 없어져도 당신이 우리 클랜을 이끌 수 있겠네요."


"끔찍한 말씀 마시고. 그나저나 로드시여...."


"네디."



남자는 섭섭한 말투로 네디의 말을 끊었다. 항상 부탁한 걸 그녀가 잊었기 때문이다.



"이름으로 부르라니까요."


"아, 네. 죄송해요. 시크니."



로즈 가든의 로드인 시크니는 만족하며 다시 꽃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의 기분에 따라 다듬는 꽃이 달라지는 걸 아는 네디로서는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왜 마리골드죠? 혹시 무슨 일이 있나요?"



시크니의 가위질이 멈췄다.



"네디. 마리골드의 꽃말은 아나요?"


"네. 분명....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이었죠?"


"아... 아깝네요."



시크니는 다듬던 마리골드 한 송이를 들었다.



"네디가 말한 건 만수국의 꽃말이고, 이건 천수국이에요. 색이랑 길이가 조금 차이가 나죠?"


"그런.... 가요? 몰랐네요. 그럼 천수국의 꽃말은 뭔가요?"



시크니는 코끝에 풍성한 꽃잎을 가져다 대면서 향기를 맡았다. 천수국은 특유의 냄새가 취향이 갈리지만, 시크니는 좋아하는 쪽에 속했다.



"이별의 슬픔이죠."


"시크니.... 당신, 설마...."


"너무 걱정 마요. 이건 선물용이니까."



놀란 네디를 진정시키며 시크니는 웃으면서도 씁쓸한 말투로 말했다.



"그냥 조만간 이별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대신 슬퍼해주는 것뿐이에요."



1주일 후. 백사병의 입단식이 끝나면 헤어지게 될 두 남녀를 위해, 솜씨를 발휘해서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난 비극이 정말 싫은데 말이죠."


작가의말

시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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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꼬리잡기 21.01.02 64 3 14쪽
58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20.12.31 38 3 18쪽
57 57화-집단지성 20.12.29 44 3 15쪽
56 56화-이이제이 20.12.23 39 2 15쪽
55 55화-블러드문 20.12.20 51 2 14쪽
54 54화-소수정예 20.12.18 37 2 16쪽
53 53화-작별 20.12.16 53 2 17쪽
52 52화-상황종료(?) 20.12.14 48 2 16쪽
51 51화-개봉 당일 20.12.11 55 2 17쪽
50 50화-빌드 업 20.12.09 42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3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8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5 2 15쪽
43 43화-최종 합격자들 20.11.25 53 3 16쪽
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50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1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38 38화-첫째날 20.11.17 48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6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50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33 33화-입단식 20.11.05 49 3 19쪽
»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4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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