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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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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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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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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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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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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8화-첫째날

DUMMY

진은 혈액팩을 이용해 유키가 데려온 흡혈귀들과 나름의 동맹을 맺었다. 흡혈귀들은 군말 없이 그의 말에 응한 후, 감사하다면 계속 허리를 숙이며, 객실을 나갔다.


혈액팩을 분배하고도 아직 7팩 정도가 남아있었다.



"가져가."



데려온 사람 중 유일한 인간 남자에게 아이스박스 채로 넘겨줬다. 남자는 진에게 고맙게는 여겼지만, 이 이상하리만큼 호의적인 태도에 의구심이 느껴졌다.



"이걸 저한테 다 주신다고요?"


"필요 없으면 말고."


"아. 아니요. 필요해요."



의구심은 의구심이고, 필요한 건 변함없다. 이유는 어떻든 간에 우선은 가져가야 한다. 인간인 본인은 몰라도 피가 대량으로 필요한 사람이 있으니까.


남자가 떠난 후, 객실에 남은 세 사람은 시험에 대비해서 슬슬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볍게 워밍업을 하던 유키에게 미오가 말을 걸었다.



"아까 그 사람. 배 출발 전에 유키네가 가리켰던 그 사람 맞지?"


"구체적으로는 저 분 옆에 있던 여자 분이였지만요."



저 혈액팩도 아마 그 여자 분이 먹을 용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빠. 저 분. 아는 분이세요?"


"일단은."



꼭 이럴 때만 세상이 좁다고 덧붙일 때쯤, 스피커에서 거슬리는 잡음이 잠깐 들리고 곧바로 최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 것이 왔다. 섬에 도착했으니, 전원 갑판으로 집결하라는 내용이었다.



"짐 챙겨."



**



해가 지기 직전의 붉은색이 하늘이 뒤덮은 무렵. 흙먼지 냄새가 가득하고 황량한 폐도시에 있는 빌딩들 중 가장 높은 빌딩 앞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미리 가장 높은 건물 앞에는 두 사람과 합류하기를 기다리는 진이었다.


1024명의 참가자들 중 기권을 선언한 128명을 제외한 이들은 무작위로 8명씩 조를 짰다. 그 조가 함께 고속단정을 타고 섬에 올 이들이었다.


고속단정은 4척, 섬에는 사방위마다 선착장이 하나씩 있으니, 한 번에 32명씩 섬에 도착한다.



'하긴 동시에 다 내렸으면 그 자리에서 피바람 불었겠지.'



10분간의 간격을 두고, 출발한다고 했으니 전원이 이곳에 도착하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다행인 건, 진과 두 사람 사이에는 크게 시간차가 안 나고, 두 사람이 같은 조라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진은 출발 전에 최하나가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물건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폈다.


평범한 나침반과 간략한 지도. 대충 선착장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중도 포기든 3일을 꽉 채우든 간에 선착장에는 다시 가야하니, 이건 잃어버리면 절대 안 된다.



"근데 얘들은 언제 오나?"



1시간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나? 라고 살짝 걱정이 되던 순간 제 발 저린 호랑이들이 왔다.



"늦었네?"


"....하하. 그.... 다른 분들이 오빠를 두고 자기들 쪽에 합류하라고 저희를 붙잡고 고집을 부리시길래, 좀 떼어놓고 오느라."


"어쩌고 왔어?"


"그냥 뛰었죠. 선배가 합류할 때까지는 최대한 싸움은 피하라 했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그냥 패버려도 뭐라 안 했을 텐데. 뭐, 무사하면 됐다.



"여기가 보는 것보다도 넓은가 봐요. 이쪽으로 오면서 사람 몇 명 못 만났거든요."


"어디 뭐 자기들끼리 연합해서 숨어있나 보지."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우리는 뭐부터 할까요? 바로 흡혈귀 탐색부터 할까요?"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내일로 하고, 오늘은 길이나 좀 익히자. 지형은 익혀둬야 유리하니까. 어차피 나랑 미오가 있어서 흡혈귀들 낚는 건 일도 아니잖아."


"저. 그럼 2층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유키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진의 너머에 있는 건물을 힐끔 가리켰다. 아까부터 저곳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대여섯 명 정도의 흡혈귀의 기척을 감지했다.


진도 눈치 채고 있었지만, 덤벼오지 않는다면 굳이 부딪히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탐색만 하자. 시간은 아직...."


"선배!!!!"



미오가 진의 팔을 붙잡아서 잡아당겼다. 거의 날려버리다시피 진을 당긴 미오는 건물에서 크게 거리를 벌렸다. 그 직후에.


쨍!!!!


유리 깨지는 소리가 한 차례 귀를 찢고 난 후, 진이 서있던 곳에 육중한 6개의 인영이 떨어졌다.


죄수복을 입고 눈을 붉게 물들인 거한의 여섯 남자들. 최하나가 말한 미리 섬에 풀어놨다는 흡혈귀들이다.



"맛있어 보이는 애들이네. 냄새도 끝내주고."


"난 저 남자 같은 애랑 놀래. 너희는?“


"야. 멋대로 순서 정하지 말라고. 공평하게 가위바위보다."



헛소리하는 걸로나, 진의 냄새에 취해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으로나, 손목을 돌리며 몸을 푸는 소리로나, 절대로 친해지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는 확신을 줬다.



"오빠."


"선배."



유키와 미오는 자리를 유지한 채 진의 지시를 기다렸다. 결코 저들의 압도적인 체구에 위압감을 느끼고 얼어버린 게 아니었다.


오히려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목소리로 언제라도 저들을 제압할 준비와 자신감이 있음을 표했다. 단번에 저들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알아챈 후였다.



'상관없겠지.'



오늘은 좀 사릴 생각이었지만, 걸어온 싸움까지 피할 생각은 없다. 진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딱 두 글자를 입에서 내뱉었다.



"조져."



그 말이 흡혈귀들의 고막을 때리는 순간, 그들은 유키가 갑자기 사라졌음을 알아챘다.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주위를 둘러봐도 교복을 입은 검은 머리의 소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그녀의 위치를 알게 된 건 그들의 뒤쪽에서 칼이 칼집을 벗어나는 소리를 들리고, 동료 한 명의 다리 두 개가 하늘을 날게 된 후였다.



"끄아아아악!!!!"



다리가 잘려서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를 돌볼 틈도 없었다. 얼굴에 피를 묻혔음에도 일체의 동요도 안 보이는 저 괴물이 자신들을 노려보며 또다시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의 자신감은 어디 갔는지, 흡혈귀들은 죄다 패닉에 빠졌다.



"제. 젠자아아아아아앙!!!!"



두려움에 휩싸여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유키에게 달려든 두 명은 앞으로 내디딘 다리부터 시작해서, 내지른 주먹 순으로 차례차례 땅에 떨어졌다.


만약 본능적으로 머리를 뒤로 빼지 않았으면 목숨까지 함께 떨어트렸으리라.


유키의 간결하지만, 정확한 칼솜씨를 본 미오의 입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유키네. 엄청 세네요?"


"칼질 가르친 스승 실력이랑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재능 생각하면 정도는 당연한 거겠지."



사실 진도 미오와 마찬가지로 유키가 싸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그다지 놀란 티는 내지 않았다. 그저 흐뭇한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것도 여기까지다. 유키는 못 이긴다고 판단한 흡혈귀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눈에서는 살기 위한 간절함이 엿보였다.



"어째 레퍼토리가 매번 똑같네."


"선배. 뒤로."



미오는 진을 본인의 뒤로 물린 후, 몸의 중심을 낮추며 가볍게 품을 밟았다. 손녀바보인 할아버지 때문에 반강제로 배운 택견이었지만, 그래도 재능은 있었는지 몸을 지킬 만큼은 충분히 배웠다.



"개짓거리를."



저런 식으로 미오의 원체 작은 체구를 보고 방심한 놈들의 입은 항상 미오의 발이 한 방에 틀어막았다.


체구 때문에 유술은 잘 못하지만, 흡혈귀의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발질 하나만큼은 굉장한 위력이었다.



"크헉!!"



깔끔한 발따귀가 정확히 흡혈귀의 뺨을 가격했다. 머리에 가해진 강한 충격으로 흡혈귀가 무릎을 굽히자, 미오는 그 무릎을 밟고 그대로 자신의 무릎으로 턱을 완전히 돌려버렸다.


거의 시범단에서만 볼법한 달치기로 적을 완벽히 제압하고 땅에 착지한 미오를 향해 또 다른 흡혈귀 하나가 달려들었다. 미오보다 3배는 커 보이는 흡혈귀는 미오의 팔을 붙잡고 다리를 걸었다.


힘에는 자신 있었기에 그래플링을 걸 생각이었다. 근데 미오는 체구가 작은 거지, 힘이 약한 게 아니었다.



"꼬. 꼼짝도 안 하잖아."



아무리 팔을 당겨도 다리를 강하게 걸어도, 발이 뿌리박힌 것처럼 전혀 넘어질 생각을 안 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이내 힘으로 그녀의 몸을 들어 올려서 업어치려했다.


미오가 다른 팔로 그의 정수리에 팔꿈치를 찍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쾅!!!


사람 머리에서는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났다.


곡괭이로 바위를 부수는 것처럼 힘 조절도 안하고 진짜 죽일 기세로 냅다 꽂아버린 탓에 흡혈귀는 비명도 못 지르고 자리에 기절해 버렸다.



"불쌍한 놈."



기절한 흡혈귀에게 연민을 보내던 진의 곁에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뻗어있는 흡혈귀가 있었다.


진에게 싸움을 걸었다가 거의 전신의 관절이 다 꺾인 흡혈귀는 말할 기운도, 정신도 남아있지 않았다.


골절이나 탈구는 단순한 열상이나 타박상에 비해 흡혈귀의 회복력으로도 회복이 많이 더딘 편이었다.


1분도 안 되서 흡혈귀 6명을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죽이려거든 얼마든지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판단했다.



"수고했어. 두 사람 다."


"아. 아니에요. 이 정도는 별 거 아니죠."



조금 전 무참하게 사람을 썰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다시 평소의 순딩이로 돌아온 유키였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칼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뭐가 본성인가 싶다.


유키와 미오는 옷차림을 정돈한 후, 흡혈귀 앞에 쪼그려 앉은 진의 뒤로 접근했다.


흡혈귀를 쓰러트린 증표를 수확하기 위함이라 여겼는데, 그런 것치고는 진의 표정이 구겨지는 게 이상했다.



"선배? 왜 그래요?"


"뭐 이상한 거라도 발견...."



유키와 미오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을 멈췄다. 진이 잡고 있는 건 흡혈귀의 오른팔의 손목에 그들이 찾는 증표라는 게 있었다. 두 말할 것도 없고, 의심할 필요도 없다. 이게 증표라는 절대적인 확신이 들었다.


흡혈귀의 손목에는 그 손을 잡고 있는 진의 손목에 있는 팔찌와 같은 게 채워져 있었다. 문양, 크기, 형태까지 죄다 똑같았다.



"미친 건가? 진짜."



이건 뭐 대놓고 참가자들끼리 싸우다 죽기라도 바라나? 진짜 무사히 돌아가면 확 인성논란 만들어버릴까 보다.



"쩝. 그건 그거고 일단 수확은 해야지."



계속 주변에서 울려 퍼지는 총소리와 비명소리 때문에 귀가 따갑다. 빨리 끝내고 가야겠다.


진은 두 사람에게 쓰러트린 흡혈귀들에게서 팔찌를 떼어내라 시킨 후, 기절한 흡혈귀를 살폈다.


분명 흡혈귀 전용 감옥인 케스켓의 수감자들은 도주 방지로 목에 폭탄을 심는다고 한다. 목 쪽에 손을 대보니까, 진짜로 작은 구슬 같은 게 느껴졌다.



'이걸 어떻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강제로 꺼내려했다가는 터지고, 그렇다고 죽이면 폭탄은 영구히 작동 정지. 특수한 기계 없이는 이용하기는 힘들 물건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팔짱을 끼고 머리를 굴려봤다.


다른 곳에 집중한 데다 계속 오감을 괴롭히는 다른 냄새와 소리들. 그 때문에 세 사람 모두 누군가 기척을 숨기고 몰래 다가와서 진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게 평소보다 늦었다.



"오케이. 다들 동작 그만!!!!"



진 쪽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미오와 유키는 팔찌를 든 채, 그대로 멈췄다.



"오. 오빠!!!!"



유키가 칼을 뽑으려하자, 칼을 쥔 남자는 진의 목에 닿을 정도로 칼을 가져다 댔다.



"크윽."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된 두 사람은 자리에 서서 당장이라도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런데 유키의 눈에 그 남자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아까 전에 혈액팩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 중 한 명. 그것도 리더인 안경을 낀 남자였다.



"히야. 싸움 구경 잘 했다. 정면으로 붙었으면 그냥 깨질 뻔했네."



진은 목에서 느껴지는 찬 금속을 쥔 채로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남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작은 눈에서는 감정을 읽기가 힘들었다. 잠시 간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도착한 안경의 동료들이 진과 일행들을 둘러쌌다.


안경은 한층 더 오만하게 한쪽 입꼬리만을 올리며 웃었다.



"원하는 게 뭐야?


"맞춰봐. 그럼 넌 살려 줄게."


"이거냐?"



진은 흡혈귀에게서 빼낸 팔찌를 들어보였다. 그러자 안경이 가소롭다는 듯이 웃기 시작했다.



"큭큭. 그건 그냥 전리품일 뿐이야. 저 여자애들처럼 말이지. 내 목적은 그냥 네 목숨이고."


"뭐?"


"너. 혈액팩으로 흡혈귀를 낚니 뭐니 했는데, 지금 그 혈액팩은 다 어디 있는데? 흡혈귀들에게 나눠줬지? 더러운 새끼. 그딴 괴물들한테 꼬리나 흔들면서 살고 싶냐?"


"뭘 어쩔 생각이야?"


"죽일 거야. 너부터 시작해서 괴물 새끼들은 죄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흡혈귀를 혐오하는 인간은 지금까지 많이 봐왔으니까, 일단 행동의 동기는 납득이 간다. 죽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나저나 한 가지가 궁금하다. 아까 분명 싸움을 봤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미오나 유키의 정체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근데 왜 쟤들은 죽이지 않고 전리품인 거지?"


"저 애들은 정화될 지도 모르니까."


"정화?"


"그래. 정화가. 더러운 흡혈귀들에게는 인간의 정화가 필요해!!!! 그러니까 인간의 아이를 낳다보면 언젠가는 괴물에서 벗어날 지도 모르지. 아니면 말고."



안경의 미소가 기분 나쁜 이유가 있었다. 가식으로 만들어진 가면이어서였다.


이제 보니, 그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의 눈에는 온갖 새까만 탐욕에 차있었다. 괴물 눈에는 괴물만 보이는 모양이다.



"....말을 말자. 그냥."



진은 미오와 눈을 마주쳤다. 손을 두 번, 쥐었다 폈다. 그 수신호의 의미를 알아챈 미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키."


"말씀만 하세요."


"이 주변에 있어?"



주변에 흡혈귀가 감지 되냐는 말이었다. 진이 등지고 서있는 건물에서 흡혈귀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유키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럼."



그러자 진은 곧장 돌아서서 안경과 눈을 마주쳤다. 안경은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생명의 위기 속에서도 아무것도 못 느끼는 양 자기를 보는 이 남자는 흡혈귀와는 다른 종류의 괴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진이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거기다 목에 칼까지 댄 상태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죽을래? 가만 안 있냐?"


"가만있어도 죽일 거잖아. 내가 지금부터 너한테 할 것처럼."


"무슨 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소리를 내지르려던 안경의 성대는 차마 움직이지 못했다. 진이 손으로 목에 댄 칼을 잡고 밀어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날이 있는 곳을 움켜쥔 채로.


날에 손이 베여서 피를 줄줄 흘리는 와중에도 진은 덤덤한 얼굴로 칼을 힘껏 밀어냈다.



"이런 미친 새끼가!!!!"



경악을 분노로 승화시킨 안경은 칼을 진에게 힘차게 휘둘렀다.


진은 가볍게 손목을 붙잡고 피를 흘리는 손바닥으로 안경의 면상과 복부에 가격했다.



"크흑. 이 개새...."



안경이 자리에 주저앉은 사이 진은 손에 있는 피를 안경의 동료들을 향해 뿌렸다. 이미 두 사람은 빠져나왔기에 정확히 적들에게만 피가 튀었다.


진은 가방에서 회복용의 노란색 펜 주사기와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회복용 주사기로 상처를 말끔히 지워버렸고, 손수건으로 묻어있던 피도 깔끔히 다 닦아냈다.



"휘말리기 전에 튀자."


"아까 봐둔 곳이 있어요. 오늘은 거기서 쉬어요."


"알았어. 그 쪽으로 가자."



모든 조치를 끝내고 진과 일행들은 무리들에게서 재빨리 떨어져 나왔다. 저기 있다가는 휘말릴 지도 모른다.



"뭐해!!! 빨리 가서 잡아 죽....!!!"



윽박지르던 안경은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건물 위에서 뛰어내린 흡혈귀들이 그를 밟고 착지해서, 내장이 다 망가지고 말았다.



"끄으으으윽... 어어어억!!!“



인간의 말이 아닌 동물의 신음을 내던 안경의 눈에는 자길 보며 침을 흘리는 흡혈귀들이 들어왔다.



"하. 하지 마. 저리 가. 이 괴물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



유언치고는 너무 비참했다. 얼굴과 배를 집중적으로 파먹히고 있는 그의 모습만큼은 아니겠지만.


흡혈귀들은 이미 진의 피 냄새. 악마의 피에 취해 이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악마의 피를 입에 넣는 것만이 삶의 이유이며 인생의 낙이 되어버렸다.


지금껏 맛본 적도, 맡아본 적도 없는 풍미에 흡혈귀들은 행복하기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뼈를 들어낸 안경에게서는 더 이상 그 풍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서 그 피 냄새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진이 피를 뿌린 것에 맞은 동료들을 향해 흡혈귀들은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끄아아아아아악!!!!!!!“



**



“지금 뭐라고?"


"정찰 팀은.... 나 빼고는 전멸이야."



정찰 보냈던 부하가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와서 하는 보고를 들은 리오의 얼굴은 해가 진 밤보다도 어두워졌다. 동시에 바닷바람보다도 차가운 공기가 아지트 안을 감쌌다.



"절대로 다른 놈들과 충돌하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바늘 같은 살기가 몸을 찌르자, 부하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해. 했지. 우. 우리도 감시 중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인간을 덮치고 있었어. 그러다, 지나가던 사냥꾼들 손에 정신을 차린 나빼고는 다 죽었고."



그녀는 오로지 진실만을 말했지만, 리오의 귀에는 이도저도 아닌 변명으로 들렸다. 그는 적당한 유리파편 하나를 주워들어서, 그녀의 눈 바로 앞까지 가져다댔다.



"지금 나랑 장난하냐?"


"지. 진짜야. 믿어줘. 난 당신한테 충성한다고 맹세했다고. 마. 맞아. 그. 그 남자. 여자같이 생긴 남자가 피를 흘린 이후였어.“


"피?“


"그 남자. 피 냄새를 맡은 후에 우리 모두 이상해진 거야. 냄새가 뇌를 찌르는 기분이었어. 진짜야. 나도 그 이상은 몰라. 제. 제발 살려줘."



거의 울먹이는 말투로 애원하는 부하를 뚫어져라 보던 리오는 이내 유리를 던져버렸다. 이 상황에서까지 거짓말하는 간 큰 여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작전의 불안 요소는 빨리 없애두는 게 좋겠지. 그 놈들 어디 있는지는 알아?"


"으. 응. 혹시 몰라서 어느 쪽으로 가는지는 확인해뒀어."


"안내해. 내가 간다."



그렇게 말한 리오와 부하들은 옷을 갈아입었다. 섬에 도착하는 놈들을 잡아와서 먹어치운 덕에, 그의 근처에는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이루고, 내장이 숲을 이뤘다.


당연하게도 옷가지는 널리고 널렸다. 피가 안 묻은 건 찾기가 힘든 수준이었지만.



"가자."



리오와 세 명의 부하들은 어두운 밤거리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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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화-프로파일링 21.01.05 37 3 16쪽
59 59화-꼬리잡기 21.01.02 64 3 14쪽
58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20.12.31 39 3 18쪽
57 57화-집단지성 20.12.29 45 3 15쪽
56 56화-이이제이 20.12.23 39 2 15쪽
55 55화-블러드문 20.12.20 51 2 14쪽
54 54화-소수정예 20.12.18 37 2 16쪽
53 53화-작별 20.12.16 53 2 17쪽
52 52화-상황종료(?) 20.12.14 49 2 16쪽
51 51화-개봉 당일 20.12.11 56 2 17쪽
50 50화-빌드 업 20.12.09 42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3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8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5 2 15쪽
43 43화-최종 합격자들 20.11.25 53 3 16쪽
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50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1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 38화-첫째날 20.11.17 49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6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50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33 33화-입단식 20.11.05 49 3 19쪽
32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4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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