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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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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4
추천수 :
266
글자수 :
493,612

작성
20.12.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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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DUMMY

처음 피셔맨의 실마리를 찾았을 때는 다들 조금 들떴다. 드디어 복수를 하겠구나, 이제야 블러드문 같은 약을 단종 시킬 수 있겠구나.


하지만, 잠깐만 눈을 현실로 돌리면 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인원수가 너무 적었다.


놈들이 있는 3곳, 아니 4곳을 동시에 쳐야하는데, 여기 있는 건 겨우 4명. 한 사람이 한 곳을 온전히 맡아야한다.


차라리 앞뒤 잴 거 없이 눈에 보이는 게 다 적이라면 모를까. 내부 상황도 정확히 모르는데 무턱대고 들어갔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다른 사람들 몰래 수사하는 중이니, 지원요청도 못하고.’



하는 수 없이 백사병에라도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휴대폰을 두드리던 때였다.



"따라와 봐."



강오가 앞장서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진은 그를 따라 본부의 입구로 향했다.


본부 입구 쪽 계단 아래에 대략 70여 명의 사람이 집결해 있었다.



"누구야?"


"지원군이지 뭐긴 뭐야."



인상이 험악한 강력계 형사들이 50여 명, 제복을 입고 있는 사냥꾼들 2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건, 협조 요청을 했다는 거고, 수사 중이라는 사실을 위쪽에서 알았다는 건데.


강오를 쏘아보자, 그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징계야 받겠지만, 일단은 이번 일부터 처리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


"그럼 말이라도 해주던가."


"넌 언제 나한테 전부 다 말했냐?"



진을 대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깨달은 강오는 태연하게 웃어보였다,



"나참."



진은 모인 사람들을 차분히 훑어봤다.


대부분이 상관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군인들처럼 굳건히 자리 잡고 서있었다. 말 한 마디에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투지가 넘쳐흘렀다.


몇몇 짝다리를 짚으며 건들건들 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눈에 흔들림이 없는 건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근데 이 시간에 잘도 이렇게나 모였네."


"너도 알겠지만, 그 뭐냐 피셔맨? 그 놈들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었잖아."


"그랬지."


"저 분들 다 피해자들 동료 분들이야. 그 놈들 잡으러 간다니까, 다 자진해서 와주신 거고."



어쩐지 피곤한 기색 하나 없더니 복수심이라는 카페인 덕이었다.


잠깐. 동료?



"당연히 나랑 정미도 간다."


"언젠 가족들 때문에 빠진다고 하더니."


"그거 때문에 간만에 아부지한테 욕 쳐먹었어. 그딴 각오로 사냥꾼할 거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정미도 비슷한 이유겠네.



"위험한 건 우리가 다하고, 잡으러 간다니까 하나씩 튀어나온 건 아니고요?"



미오의 말은 강오와 정미를 포함한 많은 이의 심장을 후벼 팠다. 틀린 말도 아닐뿐더러, 어쩌면 저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진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은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다. 진은 미오를 달랬다.



"그리고 있지. 명목상으로는 내가 지휘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네가 지휘해. 여기서 너만큼 이번 사건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저 분들 불만이 심할 텐데."


"이제 와서 그깟 자존심 내세울 사람은 여기엔 없어. 미오 말대로 위험한 건 너희들이 다했는데 뭘."



알긴 아네.



"자, 그럼 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비선실세님."



이 인간 갈수록 능글맞아지네.


한숨을 한 번 푹 쉬고는, 진은 본격적으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인원은 넷으로 나누자. 업소 3곳 말고도 따로 가야할 곳이 하나 더 있어."



F&D가 소유한 건물 중 오피스텔이 하나 있었다. 혹시 몰라서 조사해봤는데, 그곳의 입주민들 전원이 신상이 불분명한 인물들이었다.



"조직원들이랑 클랜원들이 지내는 곳이겠네."


"유키랑 자현이를 이쪽으로 보내. 기동력은 이 중에서 제일 좋을 테니까. 경찰도 여기 제일 많이 배치하고."


"20명 정도 붙이면 되겠고, 업소 쪽은 경찰 10명에 팀 하나씩 맡는 게 좋겠지?"



업소 쪽은 흔적을 지우기 위해, 피셔맨 놈들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우리가 펜타닐 맡자. 거기가 제일 빡셀 거 같으니까."


"응? 거기가 빡세다는 건 어떻게 알고?"


"그냥. 감이야."



진이 항상 논리적인 사고로만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



펜타닐로 향하는 차 안.


과묵하게 앉아서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진은 아까부터 계속 태블릿 PC에서 눈을 고정시켰다.


턱을 괜 진에게 강오의 친구인 구유준이 흥미롭다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뭐 보냐?"


"우리가 가야할 곳들 도면이요. 도망치는 놈들 없게 탈출구는 완전히 틀어막아야죠."


"도면은 또 어디서 구했고?"


"알면 다쳐요."



유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오와 눈을 마주쳤다.



"....허. 이 자식 진짜 네가 말한 그대로네."


"큭큭. 그렇지?"



무슨 뒷담화를 했는지는 나중에 털어보기로 하고.


건물들의 내부 구조를 완전히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어두운 차 안에서 태블릿 PC를 노려본 탓에 피로한 눈을 비볐다.



"형. 무전기 열어. 대충이나마 건물 구조랑 진입 통로 알려줘야 하니까."


"이젠 날 스피커 취급하고 있네."



투덜거리던 스피커는 본분에 충실했다. 진이 말하는 걸 고스란히 다른 팀에 전해줬다. 돌입 이후에는 각 팀의 재량에 맡긴다는 말도 함께.


강오가 무전을 끊자마자, 진은 뒤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자신에게 끌어 모았다.


지금부터는 전적으로 이쪽 팀에 대한 지시만 내린다.



"일단 펜타닐에는 출입구가 두 개 있어. 미오랑 정미가 하나씩 맡아. 상황 종료 무전 날리기 전에 그 쪽으로 나오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은 다 날려버려."



미오와 정미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로 진입은 나랑 강오 형, 다른 형사 분들이 합니다. 안에 보이는 놈들은 싹 다 조져요."



이미 폐점해서 손님은 없고, 점원들은 전원이 한패다.


아, 맞다. 접대하는 여자들은 제외하고.



"응? 아가씨들은 왜?"


"여자들까지 같은 편이었으면 지들끼리 지지고 볶았지, 물장사를 시켰겠어요? 무연고자 아니면, 불법입국자겠죠."


"그럼 여자들은 구조하고, 다른 놈들은 다 때려잡으면 된다는 거지?"



강오의 물음에 진은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대며 말했다. 뜸을 들이는 모습에서 강오는 약간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렇게 단순하진 않거든, 이게."


"무슨 말이냐? 그건 또."


"말했잖아? 놈들 지금 자리를 정리하고 있다고. 클랜원도 아닌 여자들을 잘도 데리고 도망칠 생각을 하겠다."



십중팔구는 당장이라도 처리하려할 셈이다.


예를 들면, 술집에 우연히 난 화재를 빙자해서 다 태워 죽인다거나.



"여자들로 장사하는 놈들인데 그렇게까지....“


"놈들 주수입은 어디까지나 마약이야. 물장사는 블러드문의 재료도 얻을 겸, 돈도 벌어서 하는 거지."


"사람을 뭘로 아는 거야. 그 새끼들은."



입술을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강오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강오 말고도 유준이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빡친 건 잠깐만 넣어둬. 도착했으니까."



진을 태운 봉고차는 한 건물 앞에 멈췄다.


2층의 외벽에는 영어로 펜타닐이라는 네온사인이 빛을 잃고 매달려있었다.


보통은 폐점이라 여기겠지만, 새까맣게 메워진 창문의 틈에서 새어나오는 빛은 아직 내부에 사람이 있음을 증명했다.



‘인기척 다수. 못해도 20.... 아니 30은 넘겠네.’



대충 내부 견적을 살피던 진은 미오와 정미를 불러서 출입구 앞에 대기시켰다.


진은 몸을 풀고 주사기를 꺼내서 목에 박았다. 흡혈귀의 피가 몸에 도는 게 느껴졌다.


투혈을 마친 진의 곁에는 강오와 유준, 그리고 흠집이 난 방망이를 들고 있는 형사들이 함께했다.


강오는 다른 팀에게서 온 무전을 확인했다.



"진. 전원 입구 앞에 도착. 돌입 신호만 기다리는데? 언제 들어가냐?"


"10시 정각."


"....10초 남았네."



긴장 풀고, 몸 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



짤랑.


펜타닐에 손님이 왔다는 신호가 울렸다. 누군가 폐점이라는 간판이 걸린 문을 거리낌 없이 연 것이다.


성별이 모호한 얼굴과 키가 크지만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남자였다. 내부에 있던 수십 명의 남자들의 눈이 그에게로 모였다.


폐점 기념으로 온갖 비싼 술과 선홍색 피를 마시고 있던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그 불청객의 방문이 썩 달갑지 않았다.



"어이. 뭐냐? 너."



입에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한 남자가 불청객인 진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멋대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에 대한 불쾌함과 양주 3병이 들어간 취기 때문일까? 불청객이 사냥꾼 특유의 제복을 입고 있는 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라도 방망이를 든 불청객 십여 명이 우르르 들어오는 건 눈에 아주 잘 들어왔다. 눈을 크게 뜨고는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불청객이 하나라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낮은 가능성이라도 있겠지만, 무장한 불청객이 여럿.


적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앉아있던 남자들은 다급히 일어났다. 평소라면 쇠파이프나 방망이를 들었겠지만, 지금 주변에 있는 무기라고는 술병 밖에 없었다.


쨍.


술병을 깨서 날카롭게 만든 남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려던 찰나였다.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두 세력. 진은 사람들의 몸에 감도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문 쪽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일합시다."



마라톤의 출발 신호였다.



“이야아아아아!!!"


"죽여!!!!"



두 세력은 긴장을 잊기 위해, 또 적들을 위축시키기 위해 있는 힘껏 괴성을 질렀다.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두 조직이 충돌했다. 흰색 물감과 검은색 물감이 섞이는 것처럼 복잡하게 뒤엉켰다. 손에 쥔 방망이와 병이 허공을 날아다녔고, 곧이어 피와 살이 튀기 시작했다.


방망이가 뼈를 부쉈다. 깨진 병이 피부를 찢었다.


무기를 놓고 달려들어서, 상대를 깔아뭉갠 후 연거푸 주먹을 퍼부었다. 쓰러진 사람은 마구잡이로 밟혔다.


지금 펜타닐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들을 때려눕힌다. 두 번 다시 못 일어날 정도로.


생각은 같았지만,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수는 적지만, 통솔된 조직인 형사들의 방망이 앞에 등용파 조직원들은 몸을 사리기에 급급했다.


웅크린 자세로 먼지 나게 얻어맞던 조직원들은 이렇게까지 밀린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해?! 새끼들아!!!!"



등용파는 피셔맨이라는 클랜과 손을 잡았다. 지금 이곳에도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클랜원들이 10명 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 놈들은 뭘 하길래, 아까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그들 모두 풀린 눈으로 침을 질질 흘리며, 어딘가로 모여들었다.


진에게 흐르는 악마의 피는 피 튀기는 혼란 속에서도 흡혈귀들을 끌어 모으기에 충분한 마력을 가졌다.



"효과 죽이네, 진짜."



악마의 피의 힘을 직접 본 강오는 감탄을 늘어놨다.


약은 약사에게, 범죄자는 경찰에게, 흡혈귀는 사냥꾼에게.


인간과 흡혈귀의 분류 작업이 완료됐다. 강오는 진과 함께 천천히 그들을 사냥해나가려 했다.



"형. 잠깐만 맡아줘."


"알았.... 뭐? 야. 어디가?!"



진에겐 따로 목적지가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 다른 방과 달리 단순히 닫힌 게 아닌 문틈까지 청테이프로 꽉 막아 놨다.


피에 홀려 자신을 가로막는 흡혈귀들을 적당히 뒤로 던지며,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다.


저 뒤에서 들리는 강오의 욕지거리를 무시한 채 문에 도착했다. 안에서 미세하게 호흡 소리가 들렸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진은 살짝 물러나고는 문을 발로 뻥 차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경첩 채로 떨어져나갔다.


날아간 문짝 너머에서 피어오르는 잿빛 연기가 진을 덮쳤다.



‘이 냄새. 번개탄?"



팔로 코와 입을 막았다. 연기로 가득 찬 방 안으로 들어갔다.


툭.


발목에 무언가가 걸렸다. 자세히 보니 사람.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여자들이었다.


인상착의로 볼 때,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었다. 뒤처리 때문에 죽어가던 찰나에 아슬아슬하게 진이 도착한 것이다.



‘이런 짓을 하고도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구나.’



다행히 정신은 잃었지만, 미세하게 숨은 붙어있다.


진은 재빨리 잠겨 있는 창문을 열었다. 연기가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갔다. 창문 아래에서는 문을 지키고 있는 정미가 보였다.



"정미야. 구급차 불러. 빨리."



무전을 날린 진은 일단 번개탄을 꺼버렸다. 여자들을 어깨에 들쳐 메고 밖으로 빼냈다.


문 밖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유준이 벽에 부딪히지만 않았다면,



"으윽.... 썅."



벽에 몸을 세게 부딪친 충격으로 유준은 몸을 잘 가누지 못했다. 진은 밖으로 나와서 그를 날려버린 자를 응시했다.


매끈한 대머리에 피셔맨의 문신이 새겨져 있는 가느다란 남자였다.



"....저 놈이에요?"


"쓰읍. 다른 놈들이랑은 달라. 제법 세."


"그래 보이네요."



그 흡혈귀는 혼자서 형사들과 강오를 상대하고 있었다. 강오도 상대하기 버거운지, 대치하는 게 고작이었다.



"다 옆으로 빠져."



진은 토마호크를 손에 쥐고, 다른 사람들을 물렸다. 진과 그 흡혈귀 사이에 작은 길이 하나 생겼다.



"호. 혼자서 하게? 그래도....“


"됐고. 안에 여자들이나 빼요. 상태 안 좋으니까."



유준의 걱정은 가볍게 무시하고 진은 발목을 살며시 돌렸다.



"킥킥."



흡혈귀는 발작한 것처럼 허리를 꺾으며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혼자서 자길 이길 수 있다 여기는 저 사냥꾼이 같잖아서일까?


맛있는 냄새를 폴폴 풍기는 먹이가 제 발로 덤벼줘서일까?


아니면 둘 다 일까?


아무래도 좋다.


텁.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흡혈귀에게 접근했다. 흡혈귀가 반응하기도 전에 문신이 새겨진 두피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어?"



머리에 전해진 고통을 느낀 후에야, 진을 발견한 흡혈귀는 짧은 유언을 내뱉었다.


쉭!


흡혈귀의 눈에 마지막으로 비친 건, 피가 타오르는 듯한 진의 붉은 눈이 반으로 쪼개지는 모습이었다.


마치, 토마호크에 의해 갈라진 자기 머리처럼.



**



펜타닐 앞은 경찰차와 구급차로 북새통을 이뤘다. 조직원들은 체포되고, 여자들은 구급차에 실리는 것을 보며 진은 적당한 계단에 앉아있었다.


다른 세 곳에서도 상황 종료 및 제압 성공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하지만, 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어때?"



무전기에 청각을 집중한 강오의 입에서는 진의 기대와는 다른 말이 나왔다.



"못 찾았대."


"쯧."



펜타닐에도, 고메오에도, 카틴에도, 심지어는 마약 제조장이 있던 오피스텔에도 없다.


피셔맨의 로드인 킹핀 브라운은 이미 신뢰하는 부하 몇 명과 함께 자취를 감춘 후였다.



"그거 못 잡으면 말짱 꽝이야. 딴 나라 가서 계속 이 지랄 떨 텐데."


"수배령은 내려놨어. 항구나 공항에도 인력들 배치하고 있고. 이제 경찰이나 사냥꾼 쪽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대."


"참 빨리도 움직인다."



다분히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강오는 할 말이 없었다. 본인에게 한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들렸다.


그 때, 구급차에 실리던 여자들을 살피던 유준이 급하게 진을 불렀다.


무슨 일이냐 하니, 깨어난 여자 중 한 명이 자기들을 구해준 진을 찾고 있었다.


감사 인사면 그냥 됐다고 하려 했는데,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어쩔 수없이 걸음을 옮겼다.


동남아인 여자는 진을 향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일단 그 손을 잡아줬다.



"며. 몇 명...."



말하는 것도 힘겨웠지만, 그녀는 힘을 쥐어짜내서 간신히 전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 놈들이.... 끌려간 애들이 있어요.... 걔네 좀.... 구해주세요."



도망쳐야하는 와중에도 여자 몇 명은 챙겨가고 싶었나 보다. 참 징하다.



"....알았어요. 끌려간 사람들 이름이라도 말해줄래요?"



진은 귀를 가져다대며, 그녀가 힘겹게 말해주는 이름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유준은 내심 진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무뚝뚝하고, 살짝 싸가지 없고, 무섭긴 해도 나쁜 놈은 아니네?"


"야야. 우리 팀원 중에 나쁜 애는 없다고."


"나한테 연락할 때는 맨날 쟤 때문에 힘들다 했으면서."


"아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이 적일 때야 무섭지, 같은 편일 때는 얼마나...."



친구와 잡담을 이어가던 강오는 갑작스러운 진의 돌발행동에 말을 잇지 못했다.


진이 끌려간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던 여자의 어깨를 붙잡더니, 지금껏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미친. 왜 저래 갑자기."


"모. 몰라. 일단 말리자."



두 사람과 구급대원들은 진을 급하게 말렸다. 하지만 진은 어깨를 잡은 손의 힘을 조금도 풀지 않았다.


꼭 확인해야만 하는 게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자기가 들은 이름이 잘못된 게 아닌지.



"방금한 그 말 진짜야?"



두려움에 떨던 여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 맞아요. 송나인."



그 순간, 진은 짜릿한 전기가 발을 통해 뇌를 찌르는 기분이었다.


귀에서는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요동쳤다. 눈에서는 번쩍하는 섬광이 터졌다. 몸에서는 짜릿한 느낌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힘이 풀린 손은 스르륵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송나인.


너무나 듣고 싶었던 이름. 그리웠지만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이름.


거의 한평생을 찾아 해맨 그 이름. 사냥꾼이 된 이유이기도 한 그 이름.



‘누나....?’



진의 친누나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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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끝을 향해 +1 21.01.08 53 3 15쪽
60 60화-프로파일링 21.01.05 37 3 16쪽
59 59화-꼬리잡기 21.01.02 64 3 14쪽
»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20.12.31 39 3 18쪽
57 57화-집단지성 20.12.29 44 3 15쪽
56 56화-이이제이 20.12.23 39 2 15쪽
55 55화-블러드문 20.12.20 51 2 14쪽
54 54화-소수정예 20.12.18 37 2 16쪽
53 53화-작별 20.12.16 53 2 17쪽
52 52화-상황종료(?) 20.12.14 48 2 16쪽
51 51화-개봉 당일 20.12.11 56 2 17쪽
50 50화-빌드 업 20.12.09 42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3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8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5 2 15쪽
43 43화-최종 합격자들 20.11.25 53 3 16쪽
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50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1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38 38화-첫째날 20.11.17 48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6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50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33 33화-입단식 20.11.05 49 3 19쪽
32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4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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