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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엔 마약이 흐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도모지
작품등록일 :
2020.08.21 00:57
최근연재일 :
2021.01.08 13:51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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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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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글자수 :
4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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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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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33화-입단식

DUMMY

클랜의 입단식은 각 클랜마다 다 다른 형식이다. 작은 잔치만하거나, 그냥 평범하게 임명만으로 끝나는 곳도 있고, 아예 없는 곳도 드물지 않다.


그럼 백사병의 입단식은 어떠냐면. 뭐라 표현해야 하나. 외국 영화에서나 나오는 엄청 규모가 큰 파티 같은 느낌?


평소 많은 수의 사용인들이 있음에도 넓게만 느껴지던 저택이 초대한 손님들로 가득 차서 그런지 유독 좁게 느껴졌다.


몇몇 사람은 진이 알 정도로 대중적인 유명인사였고, 그들이 흡혈귀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내 입단식 때는 안 이랬는데...."



진의 입단식은 클랜원들끼리만 간략하게 진행한 거에 반해, 오늘은 거창하게 제대로 판을 벌였다. 덕분에 사용인들은 정말 쉴 새 없이 손님들의 시중을 드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용인들은 전부 다 바쁘고, 남매들은 다른 손님 겸 친구들이랑 있고, 수연과 가람은 위층에서 대기 중.


항상 곁에 있던 사람들이 없자 한없이 북적북적한 군중 속에서도 진은 외로움을 느꼈다.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갈증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악마의 피 때문에 그에게 관심을 쏟는 이들도 많았지만, 진의 눈에는 피 냄새에 혹한 그냥 상어 떼로 보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떠들어대는 하이드와 다른 클랜의 후계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아나를 쳐다봤다.


두 사람 다 자기 얘기하기에 바빠, 진의 시선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휴우...."



구명보트에 타기를 포기한 진은 간식이라도 먹기 위해, 적당한 테이블을 찾았다.


그러던 중, 진의 소매를 누군가 붙잡았다. 입에 호흡기를 문 미오가 절대로 놓치지 않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소매를 꽉 쥐었다.



"미오? 아니, 네가 여길 왜?"


"서. 선배 보고 싶어서."



손님 중 한 명인 미오는 저택에 오자마자 약혼자부터 찾았다. 대인기피증이 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미오에게 있어서 진은 우거진 사람의 숲에서 찾은 모닥불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미오는 자신의 혈주 때문에 흡혈귀의 집단을 많이 두려워한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진은 그녀의 떨리는 손을 살며시 부여잡았다.



"할배는? 같이 안 왔어?"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랑 인사한다고 선배 손 꼭 붙잡고 있으래요...."



저 멀리 하얀 턱수염이 성성하게 자란 노인이 한 명 보인다.


미오의 할아버지이자 대쾌의 로드인 유정학이 다른 클랜의 노인들과 호탕하게 웃으며 잡담을 나누다가 미오의 손을 잡고 있는 진을 돌아봤다.


미오를 울렸다가는 죽일 거라는 말을 눈으로 했다. 속없는 손녀바보의 타오르는 눈이 손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지만 미오의 차가운 손이 떨리면서 식혀준 덕에 괜찮았다.


진은 모른 척 적당히 목례를 한 후, 미오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두 사람은 좀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고 싶지만, 지금 저택 내에 그런 곳은 없었다.


방에 갈까 했지만, 행사가 끝날 때까지는 2층으로 올라갈 수도 없다.


결국엔 단념하고 어디 구석에라도 짱박혀있으려던 찰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진의 눈에 들어왔다.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수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적당히 엿들어보니 남자들이 세상 느끼한 얼굴로 자기 스펙을 줄줄 읊고 있었다.


이 세상 누가 봐도 소심한 여자한테 남자들이 열심히 작업을 거는 모습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갈까했는데, 안타깝게도 여자가 진이 직접 초대한 손님이었다.



"유키. 뭐해?"



난생 처음이던 상황에 당황해서 얼어붙었던 유키의 귀에 구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니. 오빠. 거기 있으셨네요.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키는 남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그곳에서 빠져나와 미오가 잡은 손의 반대 팔을 붙잡았다. 해님달님의 오누이들이 동아줄 잡듯 아주 꽉 쥐었다. 그래서 아팠다.


이미 한 쪽에 매달려 있는 미오를 보고는 살짝 움츠러들긴 했지만, 적어도 저 남자들보다는 나았다.


한편 먹이를 뺏긴 호랑이들은 사나운 눈빛으로 동아줄을 노려봤다. 아까부터 철벽을 치던 여자가 저렇게 반갑게 다가갈 줄이야.


심지어는 이미 한 명이 딸린 남자에게!!! 자존심이 좀 상했다.


다행히 이들은 이미 임자가 있는 여자에게까지 껄떡댈 정도로 개념이 없지는 않았다. 그냥 아쉽다는 투의 말만 남긴 채, 다른 사람을 찾으러 갔다.


남자들이 물러나자 안도하는 유키에게 진은 태연하게 물었다.



"설마 마음에 드는 사람 있었어?"



유키는 목뼈가 탈구될 만큼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부정을 표하니까 괜히 저 남자들만 불쌍해진다.



‘그래도 다행이네.’



혹시라도 있었으면 조금 기분이 안 좋아질 뻔했다. 누가 보면 팔불출이라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진은 유키가 좋다면 딱히 신경 쓸 마음은 없었다.


단지 유키의 짝이 최소한 외모만 보는 문란한 놈팽이는 아니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질 뿐이었다.



'그 정도야,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진과 초면이라 어색하게 눈빛만 교환하던 미오와 유키는 순간 한 곳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저택 내에 있는 손님들과 사용인들까지 자리에 멈춰 서서 시선을 2층으로 모았다. 오늘 입단식의 주인공들이 멋들어지게 치장한 채,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오오오오오."



군중들의 감탄 섞인 탄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럴 만도 하다.


사람의 외모에 한해서는 평가가 극도로 엄격한 진도 저 세 사람의 미모는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였다.


우선 성훈은 주름 하나 없는 회색 정장과 부스스하던 머리를 보기 좋게 정리한 덕에 전신에서 엘리트스러운 면모를 가감 없이 뽐냈다.


가람은 평소 학교나 저택에서도 입만 다물면 미인이라는 소리가 사실이라는 걸 몸소 증명해냈다. 장난기 넘치는 얼굴에서 표정을 빼고 경박하지 않고 가볍고 단아한 움직임에 양갓집 규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요조숙녀처럼 보였다.


가람과 성훈 모두 난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단장을 한 덕에 잠재되어 있던 미모가 꽃피었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그 둘이 아니었으며, 그건 두 사람도 이해하고 있었다.



"우와.... 수연 언니.... 인형 같아요."


"그거 조금 실례인 표현 같긴 한데, 나도 그거 말고 다른 표현이 안 떠오른다야."


"....성격은 몰라도 예쁘긴 하네."



어느새 다가온 남매들과 유키가 수연을 보고는 놀라는 것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감탄사만 기계처럼 내뱉었다.


관리가 모자라서 조금 푸석하던 백발과 종잇장처럼 창백하던 피부는 밤을 먹은 흑색의 드레스 덕에 마치 밤에 달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관능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몸매와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는 정말 잘 만들어진 하나의 인형을 연상시켰다.



'여자 외모보고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대단하다면 대단한 일이다.


군중 속에 섞여 경탄을 담은 시선을 느꼈는지, 수연은 어느 누구도 모를 정도로 미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모두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세 사람이 계단 아래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렌이 마이크를 잡았다.



"자!!! 오늘의 주인공들께서 도착하셨으니까 가볍게 선물 증정식부터 시작해 볼까요?"



저택에 있는 요리들을 죄다 준비하느라 일주일은 못 쉬었을 텐데, 목소리에 떨림 하나 안 보인다.


저 괴물 같은 체력에 놀랄 새도 없다.


이미 클랜원들을 포함한 손님들까지 준비한 선물을 하나씩 저 세 사람에게 건네주고 있었다. 초면인 이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도 멋졌지만, 진은 미오가 수연에게 주는 선물이 유독 인상 깊었다.


마리골드로 만들어진 멋진 꽃바구니. 저런 걸 어떻게 준비했나 싶었는데 물어보니까, 한 남자가 수연에게 주라고 건네줬다고 한다.



"그러면 메인이벤트!!!! 우리 도련님 두 분과 아가씨를 모시도록 하죠."



남자의 정체는 일단 미뤄두고, 진은 하이드와 아나를 따라 세 사람 앞에 섰다. 선물은 남매가 각각 한 사람에게 주기로 했다. 하이드는 성훈, 아나는 가람, 그리고 진은 수연이다.


가장 먼저 아나가 큰 액자 하나를 가람에게 전해줬다.



"받아."



아나는 준비한 선물은 가람의 초상화였다. 최근 두 달 정도 손목에 물감이 좀 묻어있어서 숙제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저거였구나.



"우와. 이거 그리는데 안 힘들었어?"


"나한테는 별 거 아니야. 이틀이면 충분하지 이 정도는."



다시 말하지만, 물감은 두 달 동안 묻어있었다.


그래도 시간을 들인 보람은 있었다. 사진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똑 닮은 그림에 가람은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난감해했다. 절대로 이 정성이 가득 들어간 그림이 싫은 게 아니었다.



'이거 어디 걸어두지?'



머릿속으로 숙소의 공간을 창출하는 가람을 지나, 다음은 하이드가 성훈에게 사각형의 선물상자를 건넸다. 안을 열어보니까 짙은 색의 팬이 3개 달린 그래픽 카드였다.


그걸 본 손님들, 특히 젊은 계층의 남자 손님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난생 처음 보는 기종인데, 최신형보다도 훨씬 좋은 성능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건 아직 미출시 된 상품을 하이드가 인맥을 총동원해서 몰래 얻어온 것이었다. 그걸 받고 기뻐하지 않는 남자를 남자라 할 수 있는가?


역시나 성훈은 그답지 않게 눈이 동그랗게 떠진 채로 선물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어쩐지 기쁨과는 거리가 조금 멀어보였다.


주변 상황이 전혀 눈에 안 들어오고, 긴장으로만 가득 찬 게 마치 9회 말 만루 상황에 마운드로 올라온 신인 투수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후우!!!! 좋아!!"



무언가 다짐한 것처럼 아주 강하게 숨을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하이드는 입가에 짙은 미소를 그리며 열심히 분위기를 띄우던 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렌! 마이크!!!"


"네?"


"빨리!!!"


"아, 예."



영문을 모르는 진을 포함한 모든 이의 시선이 마이크를 든 하이드로부터 그가 마이크를 전달한 성훈에게로 이동했다.


긴장 때문에 땀으로 범벅된 손으로 마이크를 쥔 성훈은 굳은 얼굴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마운드인 가람의 곁으로 올라갔다.


그게 그가 준비한 무기. 기사의 검이었다.



"오. 오빠? 그거.... 뭐야?"


"....4년 쯤 전에 같이 드라마 보면서 네가 그랬지?"



공주를 향해 기사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서 준비한 무기인 반지를 꺼냈다.



"프러포즈는 저기 나오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받고 싶다고."


"....어?"



얼마 전까지는 두 사람 다 학교를 다녀야 해서 반지만 사두고 고민만 할 뿐 실행에 옮길 생각은 전혀 못 했다. 하지만 이제 학교도 그만뒀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성훈은 지금껏 쌓아두던 부끄러움과 용기를 한 곳에 담아 소리쳤다.



"그러니까 저.... 그게.... 에이씨!!! 가람아!!! 나랑 결혼 해주라!!!!"



예상치 못한 공개 프러포즈에 손님들은 물론 같이 지내던 사용인들까지 얼떨떨했다. 딱 한 명, 미리 알고 있던 하이드만은 이 상황을 재밌게 관전할 뿐.


정적 속에서 모두의 시선이 전력으로 강속구를 던진 성훈에게서 공을 쳐야만 하는 가람에게로 향했다.


의외로 그녀의 얼굴은 놀라거나 기쁜 기색 없이 무척이나 덤덤했다.



"오빠. 일어나서 무릎 좀 굽혀봐."



고백의 답치고는 조금 무뚝뚝하긴 했지만, 성훈은 일단 가람이 시키는 대로 했다. 설마 차이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가람이 일어나는 성훈의 멱살을 당기며 입술을 맞부딪혔다.



"신혼 여행지나 생각해 놔."


"오오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객석에서 박수 소리며, 휘파람 소리가 빵 속의 건포도처럼 들어있는 시끄러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가람은 빨개진 얼굴로 마이크와 반지를 뺏어들었다. 그리고는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며 관중들을 보며 당당히 소리쳤다.



"우리 결혼식 때 와줄 거죠?!!!!"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더 커졌다. 진짜 드라마 같은 고백 장면으로 흥분의 도가니가 된 이 현장에서 박수를 치면서도 웃을 수는 없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 다음을 나보고 이어가라고?'



하필이면 진이 수연에게 줄 선물도 반지였다. 그런 진의 속내를 뻔히 읽고 있던 하이드는 입가를 찢으며 마이크를 진에게 던졌다.



"힘내라. 다음 주자."


"자! 모두. 조금만 정숙해주시죠. 아직 한 분 남았으니까요."



렌은 흥분한 군중들을 차분히 진정시켰다. 저 배려심 넘치는 두 놈을 다 패버리고 싶었다.



"하아...."



한순간에 흥행작의 엑스트라였던 배우가 후속작의 주연으로 변했다. 시나리오를 잘못 썼다간 원작 팬들에 의해 진짜 폭동이라도 날지 모른다.


큰 짐을 짊어진 채, 진은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수연에게로 향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니 왠지 긴장이 좀 풀렸다.


진은 품속에서 천천히 작은 상자를 꺼냈다. 성훈의 반지 케이스와 유사한 크기였다.



"어.... 어!!!!"



설마 했던 후속작도? 라는 생각에 수연의 탄성과 비슷한 소리가 관객석에서 차례차례 나왔다.


그걸 보며 흠칫거리며 몰래 부들대는 아나와 미오는 일단 무시한 채. 진은 반지 케이스를 열었다.


특이한 형태의 반지였다. 아주 작은 태엽으로 만들어진 꽃장식이 인상적인 반지. 진이 1달 동안 눈이 빠지게 손수 열심히 만든 물건이었다.


반지를 본 수연은 기대감에 얼굴뿐만이 아니라 손발까지도 빨갛게 물들였다.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천히 왼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모두의 기대감과 긴장이 고조되려던 순간, 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안 되겠다."


"네?"



분위기를 띄우거나 유지시키는 재능 같은 건 진에게 없다. 그러니까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우리 집 가훈대로 해야겠어."



심플 이즈 베스트. 그냥 본심 그대로를 입을 통해 꺼냈다.



"미리 말해둘게. 난 성훈 형처럼 고백할 마음은 없어. 반지를 준비한 것도 순전히 우연이고."


"...."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수연을 본 관객들은 진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터무니 없는 후속작에 원작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우우!!! 그게 뭐냐!!!"


"그러고도 네가 남자냐!!!!"



그딴 건 아무래도 좋다. 진은 그저 반지를 받아서 손가락에 끼우는 수연만을 응시했다.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우려다가 이내, 아쉬운 얼굴로 옆의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그러면서도 얼굴에는 처음으로 진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기쁨이 있었다.



"고마워요. 평생 간직할게요."



반지를 꼭 쥐고 기뻐하는 수연을 보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니냐는 관객들의 비난을 의식한 걸까?



"입단식 끝나면."



진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서서 수연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읊조렸다.



"내 방으로 와."



그냥 둘이서 얘기나 같이 하자는 간단한 의미였다.


문제는 말한 당사자만 그렇게 여길 뿐이었다는 거.



"오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매애애애애앤앤!!!!"


"미친!!!! 개상남자!!!!!"


"이야!!! 우리 도련님, 다 완전히 컸네요!!!!"


"도. 도련님이 저렇게 문란한...."



차갑게 식었던 관중석은 그야말로 폭발 일보직전이었고, 수연은 다른 의미로 폭발 직전이었다. 특히 얼굴 부분이 말이다.



"으어버버버...."


"싫으면 안 와도...."


"갈게요!!! 가야죠!!! 죽어도 갈 거니까, 문이나 열어놔욧."



관객들에게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후속작은 무사히 완결을 맺었다.



**



선물증정식 이후로는 광란의 파티의 연속.


와인, 피, 음식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내리고, 취할 정도로 감미로운 음악은 모두의 정신을 매료시켰다.


중간에 경품 추천 같은 이벤트도 하는 등, 정말 쉴 새 없이 달렸다. 정신없이 놀면서도 의외로 건전한 게 이들이 스트리고이임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그렇게 놀기를 벌써 6시간 째. 손님들 대부분이 흡혈귀들이지만 이제 그들도 슬슬 지쳐갔다.


그 때 쯤 드디어 입단식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교혈식이 시작됐다.


화상 입을 듯이 타오르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가워졌지만, 오히려 그 엄숙함으로 인해 다른 의미로 숨이 막혔다.


주인공 셋 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이들까지 긴장된 얼굴이었다.



"자, 그럼. 주인공 세 분들은 중앙으로 모시죠."



렌의 침착한 진행에 맞춰서 세 사람은 한 개의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홀 중앙에 자리 잡았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이 반 정도 채워진 세 개의 금잔과 그 앞에 놓인 세 개의 단검이 있었다.


스윽.


그들은 단검으로 가볍게 자신의 손가락에 상처를 내서 핏방울을 잔에 떨어트렸다.



"그리고 로드이신 카르밀라님께서도 부디."



샤람은 선망과 공경어린 시선을 받으며 테이블 건너편에 섰다. 세 사람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샤람을 보며 문득 눈앞의 여자가 엄청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셋을 안심시키며 샤람은 손에 상처를 내서 잔마다 피를 한 방울 씩 떨어트렸다.


이걸로 교혈식의 준비가 끝났다. 서로의 피가 든 저 잔을 들이킴으로써 로드와 클랜원 간의 혈족의 계약이 맺어진다. 그것으로 정식으로 클랜원이 되는 것이다.



"그럼 선배는 어떻게 했어요?"


"묻지 마. 이제 보니 내 입단식은 완전히 가라친 거였으니까."



오렌지 주스에 피를 넣는 시늉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불만은 없었다. 피를 냈다간 더 큰 문제로 번졌을 테니까.


7년 전 진의 입단식과 마찬가지로 샤람이 가장 먼저 세 개의 잔에 든 와인을 조금씩 마셨다. 다음으로는 성훈이 잔을 마셨다.



"윽...."



특이한 감각이 머리를 뒤흔들어서 조금 어지러웠지만, 아주 얇은 실로 자신과 샤람이 연결 됐다는 감각이 존재했다.


다음으로는 가람, 그 다음은 수연이었다. 세 개의 잔이 모두 바닥을 들어내자, 샤람은 웃으며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짝짝!!!!


모두의 축하가 담긴 환호성과 박수소리로 장내가 가득 찼다. 무표정하게 박수를 치는 진도 앞으로 저들의 길에 축복만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말로.


그럴 줄로만 알았다.


톡.


겨우 액체 한 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겨우 그 뿐일 소리는 진의 귀에는 백만 대군의 행군의 발걸음을 씹어 먹는 단 한 발의 총성처럼 들렸다.



"수. 수연아. 너...."



샤람과 가람이 수연을 보며 경악 섞인 목소리를 내자, 진은 머리가 이해하기도 전에 계속 바닥에 떨어지는 액체. 피를 향해 달려갔다.



"나.... 왜...."



그 말을 끝으로 수연은 자리에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으면서.


모두의 축복 속에서 끝나야할 입단식은 한 사람의 선홍색 피로 물든 채, 꺼림칙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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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화-프로파일링 21.01.05 37 3 16쪽
59 59화-꼬리잡기 21.01.02 64 3 14쪽
58 58화-우연이라는 이름의 기적 20.12.31 39 3 18쪽
57 57화-집단지성 20.12.29 45 3 15쪽
56 56화-이이제이 20.12.23 39 2 15쪽
55 55화-블러드문 20.12.20 51 2 14쪽
54 54화-소수정예 20.12.18 37 2 16쪽
53 53화-작별 20.12.16 53 2 17쪽
52 52화-상황종료(?) 20.12.14 49 2 16쪽
51 51화-개봉 당일 20.12.11 56 2 17쪽
50 50화-빌드 업 20.12.09 42 3 16쪽
49 49화-시나리오 작성 20.12.07 43 3 15쪽
48 48화-신과 악마 20.12.04 43 3 16쪽
47 47화-선발대 20.12.02 138 3 16쪽
46 46화-영혈교 20.12.01 45 2 17쪽
45 45화-수상한 남자 20.11.30 47 3 18쪽
44 44화-첫 출근 20.11.26 45 2 15쪽
43 43화-최종 합격자들 20.11.25 53 3 16쪽
42 42화-막고라 20.11.23 60 3 15쪽
41 41화-도망자VS추격자 20.11.22 50 4 15쪽
40 40화-탈출 계획 20.11.20 51 4 17쪽
39 39화-한밤 중의 대치 20.11.18 42 3 16쪽
38 38화-첫째날 20.11.17 49 3 19쪽
37 37화-전초전 20.11.15 46 5 19쪽
36 36화-새로운 시작 20.11.13 47 2 16쪽
35 35화-결단 20.11.11 50 2 18쪽
34 34화-마지막 인사 20.11.09 49 4 19쪽
» 33화-입단식 20.11.05 50 3 19쪽
32 32화-새로운 가족 20.11.02 64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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