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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안녕하세요?

적월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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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최근연재일 :
2024.07.02 19:22
연재수 :
5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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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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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글자수 :
3,666,042

작성
23.04.1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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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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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38. 정말로 거지같은 시련

DUMMY

거대한 홀에 무식하게 거대한 테이블과 수많은 의자가 있다.

“ 빨리 와서 앉아라. “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말 그리운 목소리다.

“ ...네. “

아리나는 여기서 얌전히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이것이 가짜라고 해도.. 아리나는 너무나도 그리웠다.

흐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삼키고 자리에 앉자 간단한 수프와 빵, 고급스러운 고기와 채소들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소스와 함께 아리나의 앞에 놓인다.

아리나는 가장 바깥에 있는 포크와 나이프를 자연스럽게 집어 들고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포크를 쥐고 살짝 떨어져 있는 새끼손가락이나 음식을 먹을 때 눈을 감는 모습까지..

사소한 습관마저도 똑같았다.

마치 기억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이 아니라는 듯이 눈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입맛이 없니? “

아리나는 언제나 아침 식사만큼은 열심히 먹었기에 저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걱정하면서 묻는 저 말은 기억 속의 부모님이 재생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 ..아뇨. 먹을 거예요. “

입안에 심심한 수프의 향이 퍼져나간다.

한입 두입 먹을 때마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라티안, 피렌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떠들썩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이런 아무 말도 없는 식사도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만큼이면 됐다.

아리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는다.

“ 더 안 먹어? “

식사하는 와중에도 아리나의 행동을 계속해서 살폈는지 내려놓자마자 물어본다.

“ ...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까요. “

30분.

티아트가 말했던 시간은 30분이다.

그 안에 춘향이 쳐들어올 것이고 아리나는 그 녀석을 상대해야 한다.

과연 춘향이라는 강력한 적을 상대로 라티안도, 피렌도, 앨리스도 없이 1대1로 싸울 수 있을까?

싸운다고 해도 이길 수나 있을까?

30분이라는 시간이 길다고 느끼면서도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짧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광경을 보여주면 이겨야지.

반드시 이겨야지.

이겨서.. 네이렌 가문을 지켜내야지.

엄마·아빠를 지켜내야지.

비록 상상 속에서라도 지켜내는 힘을 길렀다고 자신에게, 돌아가신 부모님께 말할 수 있도록 아리나는 각오한다.

“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낼게요. “

아리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 손에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리나가 사용하는 번개는 분명 춘향에게도 치명적일 것이다.

고로 춘향이 들어오는 단 한순간에 모든 전력을 쏟아 부어내 춘향이 반응하기도 전에 죽일 것이다.

첫 번째 수로 끝내지 않는다면 역으로 아리나의 목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수 없이 끝내야 한다.

“ ..무엇을 지킨다는 거니? “

창문을 바라보며 춘향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아리나는 갑자기 뒤에서 엄마의 말소리가 들려 당황한다.

무엇을 지킨다니..

“ 응..? 당연히.. 엄마랑 아빠를.. “

자연스럽게 다시 엄마와 아빠를 바라본 아리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풍경이 변해있다.

건물의 잔해에 깔려 목이 돌아가고 팔과 다리가 꺾이며 신체가 절단되어있는, 하지만 눈은 아리나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 ...어..? “

시체가 된 아빠의 입이 움직인다.

“ ..우리가. 너에게 우리를 지키라고 했더냐. “

엄마의 입도 움직인다.

“ 우리가 살기 위해서 너를 살린 줄 알고 있니? “

“ 어.. 어... 네... 네...? “

한순간 풍경이 변한다.

아무것도 없는 세상 속에서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서 있다.

아니.. 그 뒤에는 아리나를 따르던 집사와 메이드들도 함께 있다.

모두가 아리나를 바라본다.

“ 복장이 그게 뭐냐. 귀족의 위엄은 다 갖다 버린 것인가? “

“ 언제까지 친구 놀이나 하고 있을 거지? “

“ 어서 우리를 죽여. 그렇게 시련을 통과해서 어서 지구로 돌아가. “

“ 그리고.. 빨리 우리의 가문.. 네이렌을 되살려내라. “

“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우리는 너를 대신해 죽은 것이야. “

“ 가문의 명예를.. 우리의 죽음을 헛되이 여기지 말아주세요.. “

“ 아리나님. 믿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믿겠습니다. “

“ 설마.. 그 녀석을.. 동료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

손에 감겼던 마나가 흩어져 사라진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 그렇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은..

춘향도 아니고..

부모님이 죽은 것도 아니고..

어깨에 짊어진 네이렌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되살려야 한다는 압박감 그 자체구나.

“ ...내 손으로.. 엄마 아빠를.. 죽이라고...? “

“ 나는 너의 엄마가 아니야. 너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기억의 파편일 뿐이지. 어서 나를 죽이고 우리 가문을 살려내는 데 전념하도록 해. “

“ 믿고 있어. “

“ 우리 네이렌 가문의 부활을..! “

“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아리나. “

“ 아리나님 만세!! “

귀가 아파오고 머리가 아파온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 그만.. “

다 알고 있는 말이야.

다 생각하고 있는 일이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 할 수 있어. 아니 해야만 해. “

“ 어서 우리를 죽여!! “

“ 마음을 다잡아라. 너는 네이렌 가문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다. “

“ 그만해!!!!!! “

-콰콰콰콰쾅!!!!!

주위의 소리를 묻어버리기 위해 아무도 없는 허공에 번개를 수십 발 내리친다.

아리나에게 다가오는 압박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세상이 찢어지는 듯한 강렬한 천둥소리였지만 아리나는 오히려 그 소리가 편안하게 들렸다.

천둥소리도 끝나자 잠시 세상이 조용해진다.

눈앞의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

“ ..그래. 그렇게 우리를 다 죽여야 해. “

“ 어서 죽이고 나아가..! “

“ ...뭐.. 라고..? “

아리나는 분명 허공에 번개를 내리친 걸로 알고 있었는데..

번개가 내리쳐진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수십 명의 집사와 메이드들이 번개에 맞고 몸이 갈라지거나, 타들어 가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죽어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 나.. 난.. 안 죽였... “

“ 아니. 넌 이제 사람을 죽일 수 있어. 죽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왔어. “

“ 정신 똑바로 차려라. 너는 너의 생각보다 강인한 네이렌 가문의 장녀다. 할 수 있단다. “

그렇게 상냥했던 부모님이었는데..

영주민들에게도 선뜻 자신이 나서서 일하는 멋진 분이셨는데..

언제나 아리나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친절하신 분이었는데..

아니다. 이것은 꿈이다.

아니다. 이것은 티아트가 만들어낸 환상이다.

아니다. 이것은 마음을 약하게 만들려는 시련일 뿐이다.

“ ..당신들은.. 내.. 부모님이.. 아니야.. “

“ 그래.. 맞아.. 어서 우릴 죽여.. “

“ 잊지 마.. 너는 네이렌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다. “

아리나는 모습을 보지 않도록 힘을 주어 눈을 감는다.

이를 악물고 손을 번쩍 들어 올린다.

“ 진짜.. 너무 거지 같은 시련이야.. “

아리나는 손을 힘차게 내리는 것과 동시에 마나를 쥐어짜내 사방으로 번개를 내려쳤다.

맞췄는지 맞추지 못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그냥.. 어쩌다 이 상황이 빠르게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 아아.. 시련 진짜.. 거지 같네.. “

티아트가 퍼트리는 파장을 보자마자 춘향은 저것이 어떤 것인지 한 번에 이해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내면에서부터 이겨내는 싸움.

강력한 적과 맞서 싸울 용기를 갖추고,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해낼 수 있는 지혜와 자기 자신에게도 지지 않는 마음가짐을 지녀야 용의 심장을 얻는다는 것이었구나..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춘향은 의식을 잃으면 육체를 검은 마나에게 빼앗기는 모양이다.

가끔 현실로 돌아오고 나면 춘향은 앨리스와 싸우고 있었다.

그 부분을 의식하고 나면.. 다시 한번 검은 마나가 춘향의 의식을 잡고 늘어져 다시 한번 내면의 세계에 빠져버린다.

그렇다면.. 이 시련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춘향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이란..

너무나도 많아서 셀 수 없었다.

처음으로 마나를 강제로 몸에 주입 당했을 때에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으며,

눈앞의 박사를 한순간에 죽여버렸을 때도 그 박사가 살아있으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무서워서 죽였으며,

지구가 흙으로 뒤덮일 때에도 어떻게든 살기 위해 흙을 파내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나라를 만들 때에도,

왕이 춘향을 죽이려는 암살계획을 알게 됐을 때에도,

처음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도,

처음으로 망령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도,

앨리스와 마주하는 순간에도,

네이엘레케와 싸울 때도, 크람에서 전쟁을 벌일 때도, 레베른을 만났을 때도, 마나가 부족한 상태로 함선을 움직일 때도..

언제나 죽을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왔다.

그 모든 두려움이 이 짧은 25분간 재현되고 있었다.

춘향은 끊임없이 그때의 공포를 맛보며 다시 한번 그 사람들을 죽여 나간다.

“ 그래 넌 나한테 독을 먹이려고 한 녀석이지..!! “

또 한 명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갑자기 풍경이 변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 앨리스..! 미안하다! 여기선 죽어라! “

잠들어있는 앨리스의 심장에 낫을 휘두르자 또다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주 가끔씩.

이렇게 죽일 때마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현실로 넘어가는 모양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눈앞에 앨리스와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는 티아트의 마나를 놓지 않겠다는 듯이 다시 한번 춘향의 의식을 내면의 검은 마나 들이 빨아먹어 버리는 바람에 다시 한번 내면의 세계에 갇히고 만다.

“ 으으으으 이런..! 제발 날 그냥 놔줘..!! 앨리스! 좀만 더 버텨라!! 내가 여기서 다 죽이고 갈 테니까..!! “

또 한 번 춘향의 말에 반항해 군사를 만들었던 왕의 목을 베어낸다.

몰래 춘향을 암살하려던 녀석의 목을 베어낸다.

눈앞에서 마법진을 펼치고 춘향을 붙잡으려는 앨리스의 목을..

“ 아.. 도.. 돌아왔다..! 앨리스! 나 여기서 계속 붙잡혔어! 아무래도 마나가 내 의식까지 통째로.. 크윽..! 윽..!!! “

-어딜 가려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마치 내면의 검은 마나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의식이 다시 내면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공들였던 마을이 무너지게 된 원인인 여자를 눈앞에서 썰어버린다.

납치했던 모든 시민들을 죽이고, 춘향마저도 죽이려는 엘피아네 드리에린의 목을 쳐낸다.

버블티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던 마을에서 춘향에게 독약을 타 먹이려고 했던 촌장의 목을 베어버린다.

“ 하아.. 정말...! 그래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너에게 도움을 받아서 아직까지도 살아있다는 건 정말 잘 알고 있어!! 그런데 뭐 어쩌라고!!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것도, 너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잖아!! “

춘향은 검은 마나를 향해 소리쳐보지만 마나가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마나는 생물이 아니다.

-더.. 더 마나를 내놔...

-나를.. 나를 해방해...!!

-너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마나를.. 마나를 줘..!

분명 들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들린 느낌이 든다.

환청이겠지..

하지만 그 환청이 계속해서 춘향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다.

“ 아우우.. 시끄러..!!! 마나도 앞으로 듬뿍 먹여줄 테니까..! 제발 놔줘 좀!! 시련 끝났잖아!!! “

처음으로 마법을 사용한 마을 청년의 목을 떨어뜨린다.

과학 문명을 다시 만들려는 과학자들의 목을 베어낸다.

“ 크흐.. PTSD 미치겠네..! 이미 극복했던 건데도 돌아버리겠어 아주..! “

티아트가 말했었지.. 30분 뒤면 깨어난다고..

30분.. 그럼 지금.. 5분.. 아니 3분쯤 남은 건가..?!

그동안만 버티면 된다..!!


작가의말

흠...

흐흠...

흐으으음..

이녀석들 앉혀놓고 상담좀 해야겠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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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142. 가장 익숙한 전략 23.04.14 262 1 12쪽
146 141.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23.04.13 260 1 13쪽
145 140. 조금 과한 휴식 23.04.12 258 1 12쪽
144 139. 용의 심장 23.04.11 262 1 13쪽
» 138. 정말로 거지같은 시련 23.04.10 260 1 12쪽
142 137. 가장 두려운것은 23.04.09 261 1 12쪽
141 136. 힘을 받아들여라 23.04.08 261 1 12쪽
140 135. 마지막 시련 23.04.07 261 1 13쪽
139 134. 이것도 결국 불꽃이잖아 23.04.06 262 1 14쪽
138 133. 용기의 시련 23.04.05 260 1 12쪽
137 132. 용과 용사 23.04.04 260 1 13쪽
136 131. 검과 마법의 결투에서는 23.04.03 26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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