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아..안녕하세요?

적월미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이춘배
작품등록일 :
2022.12.01 19:17
최근연재일 :
2024.07.02 19:22
연재수 :
592 회
조회수 :
121,873
추천수 :
296
글자수 :
3,666,042

작성
23.04.09 19:05
조회
260
추천
1
글자
12쪽

137. 가장 두려운것은

DUMMY

“ 큭...! 으.. 여긴.. “

마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가 기억해낸 것처럼 피렌은 울창한 숲속에서 깨어났다.

분명 용의 협곡이었을 텐데.. 티아트라는 용이 손가락을 튕기는 모습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의식을 잃고 눈떠보니 숲속..

동료들이 피렌을 이곳으로 옮겼을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겠지.

티아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보자면 이곳은 피렌의 내면에 존재하는 세계라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의 적을 30분 안에 해결하라고 한다.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냐는 말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쏴아아아아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수많은 나뭇잎을 아름답게 춤추게 만든다.

아니 어떻게 보면 더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처럼 위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자칫 분위기에 휩쓸려 모험하는 기분이 날 수 있었지만, 피렌은 언제나 냉정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진지하게 바람을 깎아두고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한다.

티아트의 말에 의하면 분명 상대는 까다로울 것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만 봐도 그 가장 두려운 녀석이 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슥-

기분 좋게, 혹은 살벌하게 흩날리며 노래하던 나뭇잎들 사이로 바람의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무언가가 있다.

그것도 상당히 빠르며, 주위에 녹아들어 숨을 줄 아는 자다.

쉽지 않은 상대라는 것이겠지.

피렌은 바람을 몸에 둘렀다.

상대가 위에서 피렌을 먼저 바라보고 노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나무 위로 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상대방이 올 수 있는 방향을 특징짓기 위해 방향을 정하고 무작정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달려나가자 역시나 피렌이 유도한 대로 상대는 바로 뒤까지 쫓아온 모양이다.

모든 방향에서 올 수 있는 가능성에서 이제는 피렌의 뒤에서 온다고 확정 지었으니 약간의 빈틈을 보여줘 상대가 노리도록 하고 모습을 확인하기로 계획한 피렌은 마나를 모으면서 조금씩 속도를 줄인다.

바람에 집중한다.

공기의 흐름, 마나의 흐름에 집중한다.

그러자 아주 미세하게 다른 소리의 흐름이 보인다.

“ 지금..! “

피렌은 모아두었던 마나의 일부를 폭발시켜 더욱 빠르게 가속해 달리며 등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한다.

피렌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과 동시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상대는.. 너였냐. “

검은 머리에 검은 낫, 붉은 눈에 대비되는 아주 화려하고 예쁜 한복이라는 옷.

춘향이 잔혹하게 웃으며 피렌이 지나간 자리에 휘둘렀던 낫을 다시 재정비하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피렌이 최대한의 힘으로 공기의 흐름을 꺾는다고 해도 춘향의 낫을 비트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 근접 공격을 할 수단이라도 있었으면.. 달랐을 텐데 말이지. “

가끔 춘향의 속도를 따라잡아 바람으로 지원했던 덕분인지 춘향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 차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오른쪽에서 공간을 잘라내듯 예리하게 날아오는 낫을 피하고 나면 어느샌가 뒤에서 낫을 머리 위에서부터 내려친다.

아직까지는 회피할 만한 수준이지만 결국 피렌이 춘향보다 더 빠르게 지칠 것이기에 반격을 해야 하는데..

역시나 실력 차가 많이 나기 때문일까 반격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 큭..! “

버틸만하기는 했지만, 자꾸 나무 뒤로 숨었다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바람에 피렌에게서 조금씩 빈틈이 보이고 있다.

‘ 이대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먼저 지쳐갈 거야. ‘

피렌은 왼손에 모아둔 바람을 낫을 피하는 타이밍에 맞춰 강하게 폭발시킨다.

그러자 강력한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춘향을 포함한 모든 나뭇잎과 잔가지들을 날려버려 시야가 어느 정도 편해졌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춘향은 나무 뒤에 숨어서 피렌의 빈틈을 집요하게 노릴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수는 왼쪽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오는 공격이겠지.

피렌이 오른쪽으로 몸을 꺾어 바람으로 강하게 내려찍자 그 자리를 검은 낫이 훑고 지나간다.

하지만 바람을 통한 공격은 읽혔는지 춘향이 가볍게 빠져나가 버렸다.

‘ 내가 춘향이라면 이다음은.. ‘

그렇다면 다음 공격은 오른쪽에서 목을 들어오는 공격.. 을 하다가 다시 왼쪽을 노리는 것이 피렌을 갉아먹기에 가장 좋다고 판단했다.

역시나 춘향은 피렌의 생각대로 오른쪽에서 낫을 휘둘러 피렌의 목을 노린다.

피렌은 고개를 숙여 회피하는 것이 아닌 빠르게 앞으로 굴러가 춘향의 사정거리를 완전히 벗어나는 선택을 한다.

“ ...신기하지. 어째서 너의 생각이 다 읽히는 걸까. “

춘향의 움직임에 맞춰 바람을 자주 보내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때보다 지금이 전투능력이 향상된 덕분일까?

..춘향과 계속 다니면서 춘향의 행동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된 걸까.

“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진심으로 춘향과 싸운다면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을 정도로 시작부터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아니면 수많은 토끼를 날려 폭연을 만들어 그 연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는 타이밍을 노린다던가..

지금까지 피렌이 한 예상은 ‘ 피렌 ‘ 이 생각한 가장 효율적인 공격이었다.

“ 그래.. 지금의 나는 사실 네가 두렵지 않았어. 그런데도 네가 두렵다고 해서 솔직히 놀랐지. “

지금은 피렌의 후방을 노리고 달려오고 있겠지.

이곳저곳에서 상대방의 사각, 빈틈을 노리며 갉아먹는 기술, 바람처럼 빠르게 이동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최소한의 피해도 입지 않기 위해 상대를 정확히 예측하고 행하는 공격.

저것은 춘향이 아니다.

저것은 피렌이 좋아하는 방식이다.

“ 난.. 내가 두려워하는 게 뭔지 가장 잘 알고 있었거든. “

라티안도, 아리나도, 앨리스도, 춘향도..

모두의 전투력을 따져봤을 때 지금의 5인 파티에서 가장 약한 것은 피렌이라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최근 피렌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었다.

라티안과 아리나보다 먼저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가장 전투에 능했었던 피렌이 어느새 따라잡힌 것도 모자라 도태된 느낌까지 들고 있다.

이대로.. 계속 격차가 난다면.. 동료들과 함께할 수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피렌에게 있어서는 춘향에게 복수하는 것보다 모두와 함께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피렌이 뒤를 돌아보자 춘향이 낫을 휘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그래. 확실히 내가 춘향이 된다면 그런 식으로 싸우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지. “

그 순간 춘향의 모습이 껍질처럼 깨지더니 피렌의 모습으로 변한다.

“ 역시.. 내가 두려운 건 나 자신이야. “

피렌은 지금까지 큰 반격을 하지 않고 모아뒀던 마나로 거대한 원을 그려 마법진을 만든다.

상대 역시 갑자기 깨져버린 춘향의 모습에 당황하여 뒤로 물러나다가 뒤늦게 마법진을 펼쳐본다.

서로의 마법진에서 수백 발의 날카로운 바람이 쏟아져나와 서로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서로의 바람이 부딪히고 섞이며 퍼져나가면서 태풍이 만들어지겠지만 결국 계속 마나를 모았었던 피렌의 바람이 점차 밀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분명 피렌이라면.. 불리한 상황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광범위한 공격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한 뒤에 뒤로 후퇴해 재정비하겠지..

“ 나 자신을 죽이는 방법은.. 내가 이미 수천 번 생각해본 거라고. “

지금까지 라티안과 아리나가, 앨리스가 믿어준 모든 피렌의 작전은 전부 어떻게 해야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시작으로 구상한 작전이었다.

모두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모두가 죽는다는 수를 피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똑같은 생각을 하는 눈앞의 피렌에게는 어떻게 해야 이길까?

간단하다.

모두가 죽는 수를 선택하면 된다.

피렌은 바람을 날카롭게 깎아 손에 쥐고 서로의 바람이 일으킨 태풍을 향해 달려나간다.

살갗이 찢어지는 것쯤은 무시한다.

마나의 흐름이 요동치는 태풍 속에서 몸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도 무시한다.

날아가려는 몸은 자신의 바람을 컨트롤해 억지로 땅에 붙잡고 나아간다.

태풍에 의해 뽑혀버린 나무들만 의식해가며 최대한의 속도로 또 하나의 피렌의 등을 쫓아간다.

“ ..이런 식으로 해결하라는 시련은 아니었겠지만.. 언젠간 널 극복해줄 테니 지금은 얌전히 기다려라. “

그대로 피렌은 또 하나의 피렌의 등에 바람을 꽂아 꿰뚫는다.





창문 틈으로 햇살이 방안을 따뜻하게 뒤덮어준다.

“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아리나님. “

“ 으음.. 5분만..? “

언제나 메이드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아리나를 깨운다.

그러면 언제나 아리나는 5분만 자고 일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실제로 5분 뒤에는 일어났기 때문에 아리나를 담당한 메이드는 항상 원래 깨울 시간보다 5분 일찍 아리나를 깨우고 있었다.

평범한 일상.. 아니 평범했었던 일상이다.

“ 네. 그럼 5분 뒤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

아리나에게 5분간 뒤척일 수 있는 시간 동안 평소의 아리나라면 정말로 잠들었겠지만, 지금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이 감길만한 기분이 아니었다.

‘ ..이게 뭐야?.. 여기 우리 집이잖아.. ‘

설마 지금까지의 일이 꿈이었나? 싶을 만큼 너무나도 평범했었던 아침이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라티안도, 피렌도, 앨리스도, 춘향도.. 케이아의 모습과 티아트가 손가락을 튕기던 그 순간까지도..

그때 했던 말은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어 30분 안에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상대하라고 했었다.

“ ..꿈이라면.. 이렇게 자세하게 기억할 리가 없어.. “

그때 아리나의 왼손에 차고 있던 팔찌와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앨리스가 만들어준 언어를 담을 수 있었던, 서로 간에 위치를 파악할 때 사용하던 팔찌..

메르티가 만든 아리나의 마나를 담아도 견딜 수 있는 팔찌..

대공방에서 일부 몇 가지 언어를 번역해주던 반지..

이불을 들춰 입고 있는 옷을 보았다.

아까까지 입고 있었던 보호막이 씌워져 있는 경갑 복장이다.

파자마가 아니다.

“ ..그래. 꿈은 아니었어. 여긴 내 내면의 세계야. “

티아트의 마지막 말을 유추해보면 이곳에 아리나가 가장 두려워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나오지 않았는가.

여긴 집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당연히 네이렌 가문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건이었다.

그 모든 일을 일으킨 사람.

그 사람이 아마 아리나의 가장 두려운 상대일 것이다.

“ ...적은.. 그 녀석이구나.. “

어차피 이곳은 내면의 세계이기 때문에 여기서 춘향을 죽인다고 해서 실제로 복수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겨낸다면 실제로도 못 이길 일은 없다.

물론 아리나 혼자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해내야지.

복수를 동료와 함께가 아니라고 못 한다면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

네이렌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아리나는 춘향보다 강해질 필요가 있다.

아리나는 몸을 일으키고 짧게 스트레칭을 한다.

30분이라고 했으니 그 안에 춘향이 저택을 부숴버리며 쳐들어오겠지..

“ 아리나? 빨리 나와서 식사하렴. 벌써 약속한 시간이 5분이나 지났잖니. “

순간 아리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엄마의 목소리.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목소리란 말인가..

물론 가짜겠지만.. 그런데도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눈물이 흐르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내고 문고리를 붙잡는다.

“ ..정말 악질인 시련이네.. “


작가의말

악질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적월미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4 148. 신이라는 존재 23.04.20 262 1 12쪽
153 147. 끝인가? 23.04.19 260 1 14쪽
152 146. 정해진 패턴 23.04.18 261 1 13쪽
151 145. 마왕이라는건 말이지.. 23.04.17 259 1 12쪽
150 144. 복수의 끝에 남은것은 23.04.16 259 1 14쪽
149 143.5 샤를리에의 모험 23.04.16 260 1 11쪽
148 143. 주인공과 악역 23.04.15 262 1 12쪽
147 142. 가장 익숙한 전략 23.04.14 262 1 12쪽
146 141. 이번에는 다른 결말을 23.04.13 260 1 13쪽
145 140. 조금 과한 휴식 23.04.12 258 1 12쪽
144 139. 용의 심장 23.04.11 262 1 13쪽
143 138. 정말로 거지같은 시련 23.04.10 259 1 12쪽
» 137. 가장 두려운것은 23.04.09 261 1 12쪽
141 136. 힘을 받아들여라 23.04.08 261 1 12쪽
140 135. 마지막 시련 23.04.07 261 1 13쪽
139 134. 이것도 결국 불꽃이잖아 23.04.06 262 1 14쪽
138 133. 용기의 시련 23.04.05 260 1 12쪽
137 132. 용과 용사 23.04.04 260 1 13쪽
136 131. 검과 마법의 결투에서는 23.04.03 264 1 14쪽
135 130. 미지의 세계에서 익숙한 사람을 23.04.02 262 1 12쪽
134 129. 말도 안 되는 일 23.04.01 261 1 13쪽
133 128. 마왕같은것은 23.03.31 259 1 13쪽
132 127. 내가 바로 용사다. 23.03.30 261 1 14쪽
131 126. 누가 검을 가져갔는가 23.03.29 259 1 12쪽
130 125. 빛과 어둠과 악마 23.03.28 260 1 14쪽
129 124. 용사의 검을 구하는 방법 23.03.27 259 1 13쪽
128 123.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 23.03.26 263 1 14쪽
127 122. 점점 하나로 모여지는 이야기 23.03.25 263 1 14쪽
126 121. 이세계인 23.03.24 262 1 12쪽
125 120. 새로운 만남 23.03.23 261 1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