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마스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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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마스터는 나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상징처럼 길러온 콧수염을 매만지던 그는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하이릭스사의 아이들은 일반 안드로이드와 다르죠. 인간과 거의 같아 쉽게 사고를 제한할 수도 없죠.”
“알아요. 기존 안드로이드의 설계구조와 완전히 달라 마이스터인 저조차 접근할 수 없다는걸. 그래서 하이릭스사와 관련 있는 당신에게 요청하는 거죠.”
“그렇다면 의심해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루비는 애초에 마인드컨트롤에서 자유롭다는 걸.”
뜻밖의 말이었다. 마인드컨트롤을 받지 않은 안드로이드는 연방법 위반이다. 그것은 인간보다 우월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를 제어하기 위한 최소이자 가장 강력한 장치였다. 그렇기에 안드로이드의 마인드컨트롤을 해제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연방은 그토록 경계하는 것이다. 모든 안드로이드의 생산은 연방 정부에서 관여했기에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라도 마인드컨트롤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마인드컨트롤을 받지 않은 안드로이드라니.”
순간 나는 루비를 쳐다봤다. 그녀 또한 놀라는 표정이었다.
“정말인가요? 마스터.”
루비가 바 마스터에게 되물었다.
“그래. 루비. 넌 처음부터 마인드컨트롤에서 자유로운 아이다. 그래서 널 이곳에만 두었던 거다.”
불과 일주일 전 이곳에서 루비를 만났을 때도 루비는 내게 자유를 말해왔다. 자신에게 걸린 제한을 풀고 자유롭길 바란다고 했다.
“나는 어리석었군요. 애초에 내게는 어떤 제약도 없었는데.”
“아니 너는 어리석지 않다. 루비. 네가 마인드컨트롤이 걸리지 않았다는 걸 눈치채게 할 수 없었기에 너 스스로 제어되고 있다고 느끼도록 한 것이다.”
“왜죠? 대체 왜. 루비를..”
나는 소리치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수염을 매만질 뿐이었다.
“이제 진실을 알려줘요. 처음부터 왜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거죠? 게다가 루비를 만나게 했고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 마치 당신이 의도한 것처럼요.”
흥분한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당신은 모든 걸 계획하지 않았나요? 사막의 수용소에서 돌아온 후에도 당신은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죠. 아이덴을 이곳에 데려왔을 때도 그랬죠. 그리고 몇 시간 전에는 아이덴을 시켜 내가 월드컵스타디움에 있을 거란 걸 알고 티켓을 전달했죠.”
바 마스터는 묵묵히 내 말을 들을 뿐이었다.
“전부터 당신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적어도 나를 해칠 존재는 아니라고 믿었어요. 그럴 거였다면 진작에 나를 연방에 신고했겠죠. 애초에 당신은 모든 걸 알면서도 이 모든 걸 계획하고 지켜보고 있었죠. 마치 게임판의 절대자처럼요.”
나는 쉴 새 없이 말했다. 묵묵히 듣고 있는 그의 옆에서 루비만이 슬픈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 이종욱 박사의 복제인 바이로이드라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에게 유전자를 준 이종욱 박사 그의 바이로이드라니.
“당신이 이종욱, 박사의 바이로이드?”
인간의 세포조직을 가진 기계 인간인 바이로이드라면 그는 이종욱 박사의 신체 일부를 가졌거나 그의 신체를 배양한 몸을 이식받은 것이다.
“진훈, 당신 또한 신인류 프로젝트의 첫 번째 아이인 그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겠지. 이 모든 시작에는 이종욱 박사가 있지. 그 또한 여성에게서 채취한 난자에 유전자를 조작한 핵을 이식하여 만들어진 아이야. 첫 번째 신인류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례지.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체세포를 가진 바이로이드네.”
“이종욱 박사, 그는 어디 있죠? 남극기지 어딘가에 그가 냉동인간인 채로 깨어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들었어요.”
나는 바 마스터에게 되물었다.
“그가 죽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는 냉동인간인 채로 영원한 동면에 빠져 있어.”
“영원한 동면? 그럼 깨어나지 않는다는 건가요? 왜죠?”
“신인류 프로젝트의 유일한 생존자인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까.”
“알아요. 인간보다 빠른 노화.”
들은 적이 있다. 신인류인 그를 두려워해서인지 그는 일반인보다 두 배로 빠르게 성장하고 노화를 진행하는 육체를 가진 채 태어났다.
“그래, 첫 번째 신인류 프로젝트의 생존자인 그도 자신에게 걸린 제약인 급격한 노화의 진행은 막지 못했지.”
“그는 깨어날 수 없나요?”
“그는 상징적인 존재야. 동면에서 깨어나도 금방 다시 노화가 진행되겠지.”
“그렇다면 이종욱 박사를 되살리는 건 불가능한가요?”
“그에게 죽음과 인사하게 할 거라면 그를 깨우는 것도 방법이겠지. 하지만 그는 이미 자신의 기억을 복제했지.”
뜻밖의 말이었다. 어딘가에 그의 복제된 기억이 있다는 걸까?
“그게 사실인가요? 그의 기억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내가 이종욱 박사의 기억이야. 나는 그의 유전자를 배양해 만든 육체를 일부 지니고 있네. 그렇게 만들어진 내게 그의 기억이 주입되었어.”
나는 마스터를 한동안 바라봤다. 짙은 눈썹과 또렷한 이목구비. 그걸 감추기 위해 그의 얼굴을 덮은 콧수염과 외눈 안경. 그가 이종욱 박사의 기억이라니.
“나는 애초에 그의 정신과 지식을 가지도록 만들어졌지. 하지만 강제되지는 않았어. 이건 나의 자유의지야. 하지만 많은 부분 그의 기억이 내 자유의지와 뒤섞여 있는지도 모르지.”
“그럼, 당신은 이종욱 박사로 살아가는 건가요?”
내 말에 그는 힘겨워하면서도 빙긋 웃어 보였다.
“아니야, 나는 나로 살고 있어. 하지만 이 어셈블타워 지하의 바에서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를 보살피는 건 이종욱 박사의 뜻이기도 하지.”
“이종욱 박사의 뜻?”
나는 낮게 되뇌었다.
“내가 가진 기억의 상당수가 빠른 노화를 막기 위해 스스로 냉동인간이 된 그의 기억이란 걸 알았을 때 나는 고민했네. 바이로이드인 내게 그는 자기 뜻을 강제하지 않고 선택할 기회를 주었던 거지. 그것이 내가 그의 유지를 이어받는 선택을 한 결정적인 이유야. 반 이상 기계 몸을 가진 채 반영구적 수명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게 된 것 또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그의 의지일 테니.”
“이곳에 있는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도 이종욱 박사의 계획하에 이곳에 있게 된 건가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릭스사가 생겨나기 전 그는 자신의 모든 걸 걸어 기존 방식과 다른 안드로이드를 설계하려 했지. 그리고 그 첫 번째 안드로이드가 나였지.”
이종욱 박사 그의 의지 또한 만들어진 존재인 우리를 처음부터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진훈 당신과 다른 아이들이 연방의 감시를 피해 이곳에 있다가 때가 되면 나가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바랐네. 그것이 이종욱 박사의 뜻이기도 했고.”
“그래서 저를 이곳에 오게 한 거군요.”
“그래, 루비. 저 아이 또한 새로운 인류가 될 거로 생각했기에.”
“그럴 수 있나요? 하지만 루비는.....루비는 생명체가 아니잖아요.”
“나는 안드로이드에게도 생명이 있길 바랐네. 하이릭스사는 인간의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안드로이드를 연구했지. 연방의 감시와 통제를 알지만 과학자의 순수함으로 이겨냈지. 그건 이종욱 박사의 유지를 이어받은 결과이기도 했어. 나는 그 실험의 책임을 맡고 있었지.”
마스터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왜 루비를 이곳에서 내보내 활동하게 한 거죠? 스타에이드의 희생양이 될 걸 알면서도...”
마스터는 잠깐 생각에 잠긴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완벽하게 연방을 속이려면 어쩔 수 없었어. 루비가 마인드컨트롤 되지 않은 것부터 연방의 뜻과 다른 하이릭스의 연구 성과까지 모든 걸 의심받지 않게 하려면 가장 최신형인 루비를 세상에 공개했어야 했으니.”
그제야 나는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세상에 의문을 던지는 동안 세상 또한 누군가의 희생으로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뭐죠?”
“그건 진훈 너의 의지겠지. 너의 세상에선 너의 의지만이 너를 다스릴 거야.”
“나의 의지?”
나는 낮게 읊조렸다. 한 번도 의지란 걸 가져보지 못했다. 어느 날 작고 하얀 방에서 눈을 떴을 때부터 나는 그저 주어진 대로 각인된 대로 행동했다. 그것은 대부분 어린 시절 주입된 기억과 사상이었다. 그 후에도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나의 의지는 프리티에게 물어보거나 그녀에게서 들은 것이었다.
“투쟁.”
나는 낮게 읊조렸다. 순간 내가 떠올린 건 그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세계가 분열되어 있음을 경고했던가. 그리고 내가 겪은 세상 또한 대부분 연방에 의해 지배되어 가고 있었다. 새벽의 기습과 스타에이드에 침투해온 보안국 요원들. 연방 시민들의 반발. 그리고 조금 전 찹피에 탄 우리를 기습한 에어크래프트 편대.
나는 기억해냈다. 투쟁에 가담했던 무수한 이들에 대해. 블라디미르이자 레조토프, 에릭 아서 블레어와 그의 부인, 락샨, 드미트리, 전사 란쵸와 피나, 레 박사와 쿠마르...그리고 아이덴에 이어 시위에서 희생되고 망가진 무수한 이들. 그들 중 상당수는 안드로이드였다. 안드로이드는 대부분 자아가 통제된 채 생각을 제한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각한다는 면에서 나와 같았다. 때론 누군가가 주입된 생각이었지만 생각한다는 사실만은 다르지 않았다.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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