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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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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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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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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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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셈블타워 지하 8층

DUMMY

-루비의 공연은 일주일 후 월드컵스타디움이에요.


프리티의 말이 들렸다. 스타에이드... 한때 관심을 가지기도 했던 세계적인 음악 축제다.


“일주일 후...루비..”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 내쉬었다.


프리티가 알려준 대로라면 일주일 후 세계의 스타들이 모이는 스타에이드가 열린다. 이미 50년의 긴 역사가 있는 축제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공연에 이번엔 루비가 초대된다. 안드로이드 스타가 등장한 후 그들은 매번 들러리에 머물렀다. 인간과 가까운 형태로 진화한 그들이지만 결코 인간과 같을 수 없었다.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던 안드로이드 스타가 공연의 정점에 선 건 10년 전 하이릭스사의 파티마 시리즈가 나오고 난 후부터다.


“저 안드로이드군요. 진훈”


드미트리가 멀리 떨어진 전광판을 보며 말했다.


“마음을 들킨 건가?”


“이미 알고 있었어요. 진훈이 어셈블타워에 간다는 걸.”


드미트리의 말에 나는 뭐라고도 하지 못했다. 어셈블타워의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는 마이스터 사이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안드로이드의 선택에 따라 초대된 마이스터.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진 창조자에 관한 이야기.

호사가들의 입에서나 오르내릴 법한 소문은 마이스터 사이에서 회자되곤 했다. 그건 평생 연구밖에 모르는 기계공학자들의 순진한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안드로이드라. 하이릭스는 뭘 만든 거지.”


드미트리의 읊조림이 들려왔다.


“드미트리, 알고 있는 게 있나? 하이릭스사의 파티마에 대해.”


“마이스터라면 누구나 알지만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르겠죠. 거긴 철저한 보안에 가려진 곳이니까요. 연방의 간섭조차 차단되는 곳.”


드미트리의 말대로다. 연방의 손이 닫지 않는 몇 되지 않는 곳. 그것은 애초에 하이릭스사의 기술모토였고 연방이 침해한다면 모든 걸 파기하겠다는 창업주 앤초 하이릭스의 뜻이기도 했다. 혹시나 모를 기술 소멸을 두려워한 건지 연방은 결코 하이릭스사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루머는 많죠. 그들이 연구를 위해 죽어가는 인간의 뇌를 해부한 일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많죠. 안드로이드를 위해 인간을 희생시켰다는 말과 인간을 위해 인간과 흡사한 안드로이드를 만들었다는 말이 싸울 뿐. 무엇이 옮은 것인지는 누구도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인간과 똑같은 뇌 구조를 가진 안드로이드. 정말일까. 인간의 뇌 구조를 점령했다는 말조차 허황되다는 말이 나오는 지금 인간과 같은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을까.


“곧 어셀블타워에 진입해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쿠마르가 돌아보며 말했다.


“착륙장에 내려줘. 나 혼자 갈 거야. 쿠마르,”


“혼자요? 하긴 사적인 일이기도 하죠.”


쿠마르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실 웃는 모습이 쥐어박고 싶은 지경이었다.


“뭐 어차피 가실 거면 아이덴을 데려가는 건 어때요?”


전원이 차단된 채 누워 있는 아이덴을 보며 말했다.


“왜지?”


“그냥, 촉이네요. 이 아이도 인간과 흡사한 안드로이드죠. 그곳에 있는 이들과 공감할 거예요.”


“하긴, 내가 데려왔으니 함께 가는 게 맞겠지.”


여기까지 온 것도 쿠마르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겠지.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나는 아이덴의 의식을 되살렸다. 가벼운 조작으로 깊이 잠들고 깰 수 있는 존재. 인간은 불가능한 능력을 지닌 존재. 또 어쩌면 인간에 의해 쉽게 통제당하는 존재.


잠시 후 나는 의식을 차린 아이덴과 함께 어셈블타워 옥상 비상착륙장에 내렸다. 아이덴은 뜻밖의 상황을 낯설어했지만 또 받아들였다.

옥상 라운지에 착륙하자 경비대가 나를 막아섰고 나는 신분을 밝혔다. 그들은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아이덴과 함께 지하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고속으로 아래로 내려갔다. 귓속이 먹먹했다.

그곳엔 바 마스터가 있을 것이다. 루비는, 없겠지. 하지만 최소한의 정보라도 얻으려면 그곳에 가야 한다. 엘리베이터는 이내 지하 8층에 다다랐다.


어셈블타워의 지하 8층으로 들어가면 작은 바가 있다. 서너 개의 작은 테이블과 함께 손님이 앉을 수 있는 바가 있고 그 앞에 여러 병의 술과 글라스가 놓여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이는 것일 뿐이다. 바의 문을 열면 더 큰 공간이 있고 그곳이 진짜 이 타워의 은닉된 공간인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들의 공간이다.


“이곳은 어디죠?”


“그리운 친구가 있는 곳이지.”


아이덴의 말에 대답했다.


“왜 이곳에 가는 거죠?”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아는 한 이곳은 안드로이드의 쉼터이기도 했다. 왜인지 아이덴을 지키는 건 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이었다.


“너를 위한 공간이 될지도 모르지. 이제부터는 내가 널 인도할 테니.”


아이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나는 아이덴과 함께 지하 8층 바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늑하게 꾸며진 작은 공간이 보였다. 바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바 마스터도 그곳에 있었다. 심벌과도 같던 콧수염까지 모든 게 그대로였다.


“진훈, 오랜만이군요. 오늘은 작은 친구를 데려오셨군요.”


마스터는 옆에 있는 아이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반가움을 표현하지만 표정은 차가웠다.


“오랜만이죠?”


“한동안 오지 않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소식도 들었고요.”


“사라졌다는 소식이겠죠?”


“그래요. 당신이 사라졌고 그것이 연방에 의해서란 말도.”


나는 씁쓸한 표적으로 시익 웃었다. 그간의 일에 대해 모든 걸 늘어놓을 순 없다. 고통스러운 여정과 신상의 변화들. 그것은 하나의 운명일 뿐. 누구도 공감할 수는 없으리라.


“루비를 봤어요. 스크린에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어요. 당신이 여기 온 이유도 그것 때문일 테고.”


마스터는 모든 걸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이 바의 주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곳은 선택받은 안드로이드와 마이스터의 은밀한 장소이다. 그것만이 전부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안드로이드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선택은 그, 혹은 그녀들이 한다.


“루비는 기뻐하던가요?”


“어느 날 담담하게 받아들이더군요. 바이러스가 훑고 지나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이었죠. 며칠간 표정이 안 좋더니 그 애가 그러더군요. 운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스타가 되어 활동하겠다고. 자신의 존재 이유가 거기 있음을 알았다고 하더군요.”


“존재 이유...”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는 처음부터 아이돌 스타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일부는 사교용이 되거나 거물들을 접대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때론 성적인 용도로, 때로는 스파이나 정보를 빼내기 위한 용도가 되기도 하고 MC나 DJ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안드로이드도 있다. 하이릭스사는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건 폐기를 뜻하기도 했다. 게다가 거액의 안드로이드를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하지만 그런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었다.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는 모두 회사의 소유였고 정부와 기업이 원한다면 무기한 대여해 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이곳 어셈블타워에 있다. 초대받은 마이스터는 이곳에서 그녀들을 만난다. 연방에서 내로라하는 마이스터들만이 그, 혹은 그녀들을 만날 수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그들의 존재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라는 말도 떠돌았다.

마치 튜링테스트처럼.


나는 데카르트가 그의 저서 방법서설에서 제시한 튜링테스트의 형태를 떠올린다.


-우리 신체와 닮아있고 도덕적으로도 인간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기계들이 설령 있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인간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낼 아주 확실한 두 가지 수단이 우리에게 있다.

그 첫째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우리 생각을 밝히기 위해 하는 것처럼, 그 기계들은 결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없고, 언어를 조합해서 다른 기호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관들에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적인 작용에 따라 몇 가지 말을 하도록 만들어진 어떤 기계를 생각할 수는 있다. 이를테면 그 기계의 어떤 곳에 손을 대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든가, 다른 곳에 손을 대면 아프다고 소리친다든가, 이와 비슷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기계가, 가장 멍청한 인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앞에서 말하는 모든 것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말을 응용하여 구사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데카르트는 500년 전 이미 이 방법을 제안했다. 그리고 다시 300년이 지나 앨런 튜링이 제안한 인간과 기계를 식별하는 방법이 나왔다.


-1950년 앨런 튜링에 의해 개발된 튜링 테스트(turing test)는 인간의 것과 동등하거나 구별할 수 없는 지능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기계의 능력에 대한 테스트다. 튜링은 인간 평가자가 인간과 같은 반응을 일으키도록 설계된 기계 사이의 자연 언어 대화를 판단할 것을 제안했다. 평가자는 대화의 두 파트너 중 한 명이 기계라는 것을 알고 모든 참가자는 서로 분리될 것이다. 대화는 컴퓨터 키보드와 화면과 같은 텍스트 전용 채널로 제한되어, 그 결과는 단어를 연설로 렌더링하는 기계의 능력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평가자가 기계와 인간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 그 기계는 시험에 합격했다고 볼 수 있다. 시험 결과는 기계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제시하는 답이 얼마나 인간다운 대답인지를 평가한다.


튜링 테스트가 고안된 후 다시 17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곳에서 루비를 만났다. 나는 그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루비가 안드로이드라는 것도. 하지만 루비를 본 순간 나는 반했고 사랑에 빠졌다. 그 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안드로이드이자 나의 루비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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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4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51 드론 떼 23.11.19 10 0 9쪽
50 로드 킬러닌 23.11.12 11 0 10쪽
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8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0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3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5 0 11쪽
43 찹피 23.09.22 18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3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8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8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5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32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7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6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6 0 10쪽
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8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8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8 0 13쪽
25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23.07.03 2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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