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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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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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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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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루비의 기억

DUMMY

안드로이드라 불리는 그들의 민낯을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입학 후 4일째 되던 날이었다. 인간의 뉴런과 똑같은 구조를 가진 인공 존재에 대한 해부학 시간. 거기서 나는 하얗고 투명한 코쿤 속에 누운 한 존재를 봤다. 인간.... 아니 천사 같은 그 존재.


-인간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인간의 얼굴을 섞어 만든 형상일 뿐이야. 현혹되어서는 안 돼.


만트린 교수가 말했다. 튀르키예의 생명공학 천재로 알려진 그였다. 연방 중앙대학에서도 그의 안드로이드 해부학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강의라고 했다.


-인간을 닮은 그것의 마력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너희들이 먼저 배워야 할 과제야.


만트린 교수는 늘 강조했다. 만들어진 존재에 현혹되지 말라고. 70%의 기계와 30%의 인공 생체 기관으로 이루어진 파티마란 불린 그들은 기존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만트린 교수가 강조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 중 가장 뛰어난 존재의 외형을 모두 합성하여 인공 물질로 창조해 낸 또 다른 인조 생명체일 뿐이란 걸.

하지만 나는 한가지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나 또한 자연 상태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 세상에 인간을 닮은 만들어진 존재가 있다면 그중 하나는 나였다. 안드로이드라 불리는 것과 차이가 있다면 인공 물질이 아닌 생체 조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뿐.


만트린 교수의 수업이 있은 지 얼마 후 나는 교정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한동안 교정을 뒤덮은 짙은 스모그가 걷힌 맑은 날이었다. 우연히 교정을 걷던 나는 학교 중앙 시계탑 광장에서 그녀의 모습을 처음 본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아름다움. 만트린 교수의 실험실에서 본 죽은 듯 누워있는 파티마의 생기 없는 아름다움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살아있는 아름다움이었다. 캠퍼스에서 여신과 같은 존재, 그녀의 이름은 루비였다.


루비.

내 인생에서 가슴이 뛰는 첫 순간은 어린 시절 내내 양육되어 진 실험실을 벗어나 처음 눈을 뜬 그 작고 하얀 방에서 바깥세상을 마주했을 때이고 두 번째는 루비라는 이름의 그녀를 연방 중앙대학 캠퍼스에서 본 순간이었다. 초대 연방 의회장인 로드 칼리나, 그녀의 동상 앞에서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던 루비를


로드 칼리나. 연방의 초대 의회장으로 추앙받지만, 또 다른 의미에선 연방의 마녀로 일컬어지는 존재. 그런 그녀의 동상을 바라보던 루비. 나는 그녀를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볼 뿐 그녀에게 다가갈 수는 없었다.

그 후 많은 날이 지난 후에도 나는 그녀에게 말을 붙일 수 없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접점이라곤 없었다. 안드로이드를 연구하는 기관이었지만 그녀는 외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외부 미학과였고 나는 인공두뇌와 실제 인간의 닮음과 다름을 연구하는 내과였다. 게다가 나는 프리티 외에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하거나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외톨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나는 그런 존재였다. creep...


-단지 아름답다는 이유로 한 존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천박한 생각이야.


-맞아. 남자들은 단순한 존재지. 그저 예쁘기만 하면 아무것에나 빠져드니.


사라와 레이첼. 그녀들을 기억한다. 이스라엘계의 두 여자 학우였지만 그녀들은 루비에게 열광하던 남자들, 그중 특히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나는 사라와 레이첼, 그녀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연방 중앙대학은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천재적인 두뇌와 판단력을 가진 자들과 엄청난 재력의 기업가의 자녀들이 오거나. 나 같은 존재만이 올 수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간인 나 같은 존재. 그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홀로 강의실에 남아 있던 루비를 다시 보았다. 지독한 스모그로 인한 기상 악화로 전교생의 등교가 거부 된 그날. 나는 빈 강의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루비가 교정을 서성이는 걸 봤다.

지독하고 짙은 그 안개 속을 루비는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루비를 쫓았다. 루비는 지하 실험실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드로이드 해부실이었다.


“여긴 왜 온 거지?”


해부실 앞을 서성이던 그녀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가..”


“뭐?”


“엄마가.. 저기에..”


나는 그 말을 금방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뭔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말을 유추하던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루비를 다시 보았을 때 그녀는 한동안 실험실 문만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기...”


나는 그녀에게 뭔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루비는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후 그녀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한 학기가 그렇게 가고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소문을 들을 수 있었다.


“루비는 안드로이드였다더군. 튜링 테스트를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례라 교정에서 실험을 진행한 거라더군.”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넋이 나간 채 로드 칼리나의 동상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라와 레이첼의 이죽대는 것 같은 위로도 내 귀엔 들려오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의 외형을 연구하는 미학과의 학생으로 알려진 루비였다. 그런 루비가 안드로이드였다니.

안드로이드였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나는 처음 마주친 그녀의 눈을 잊을 수 없었다. 정말 그것이 만들어진 생명체였다고? 그렇게 이지적인 눈빛을 가진 존재가?


거기까지가 그녀에 대한 기억이다.


어셈블타워 지하에서 루비를 만났을 때 나는 묘한 감정의 흐름을 느꼈다. 이미 10년도 훌쩍 넘긴 어느 날.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똑같은 이름을 가진 존재를 만났다. 하이릭스사에서 만든 파티마 시리즈. 나는 루비란 이름의 그녀가 10여 년 전 교정에서 만난 그녀라 믿었다.


밤이 깊어 간다. 나는 오래전 스타에이드에서 흘러나오던 백여 년 전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creep을 들으며 그날을 떠올렸다.


.

.

.


이른 아침 하늘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항공모함 같은 기체가 서쪽 하늘에 떠 있다. 수십 킬로 떨어진 곳에 있어 전체 크기가 가늠되지 않지만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행체다.


“에어크래프트No1이군요.”


드미트리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는 조금 전부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네오서울 도심 한복판이군.”


드미트리의 말대로 거대한 항공기체는 네오서울의 상공에서 머물고 있었다.


“누군가 VIP를 태웠겠죠?”


“No1이 움직였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의전용과 동시에 과시용이기도 할 테고.”


나는 조심스럽게 드미트리에게 말했다. 스타에이드를 앞두고 반 연방 세력이 모인다는 말이 있으니 거대한 항공기체 전단을 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용을 과시할 수 있다.


“문제는 자금이겠죠.”


“그렇겠지. 이미 연방은 재정적으로도 고립 상태니. 저런 기체를 띄우는 것만으로 큰 비용이 요구될 거야.”


실제 항공전단이 다 보이지는 않았다. 연방에 맞설 세력이 전무한 지금 모든 전단을 갖출 필요는 없었다. 반 연방 세력이라 해본들 다크넷에서 입으로 떠들거나 해적방송을 하는 게 전부였다. 실제 무장한 단체라 해도 한때 전 세계를 초토화하던 연방의 무기체계에 비하면 가벼운 무기가 전부였다. 그 또한 자신들의 세력다툼용일 뿐 연방 자체를 위협할 만한 화력을 갖춘 세력은 없었다.


기체는 한동안 네오서울 상공에 떠 있다가 서서히 사라졌다. 아마 스타에이드에 참가할 연방 의회장이나 A.F.C나 보안국의 고위급 장성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의미에선 연방을 대표할 만한 누군가의 방문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날의 퍼포먼스는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이제 내일 저녁이면 스타에이드의 시작이다. 에어크래프트를 본 것만으로 스타에이드가 얼마나 큰 기회인지 짐작이 갔다.


오후에 쿠마르와 블라디미르에게 연락을 받았다. 쿠마르는 내일 바로 월드컵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블라디미르 씨 또한 계획대로 진행할 거라 알려주었다. 그가 준비한 EMP 무기라면 화려한 불꽃 쇼를 기대해도 좋다. 각자의 계획대로 움직이되 신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제 내일을 기다리면 되겠군요.”


락샨이 말했다.


“이제 이곳도 이별이군요. 낡은 리조트였지만 당장 머물만한 시설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죠.”


그는 제법 적응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이미 수십 년 가까이 버려진 건물 사이에서 예전의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멀리서 스타에이드 전야제를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는 걸 지켜봤다. 월드컵스타디움에서 불과 50킬로 정도 떨어진 네오서울에서 벌어진 불꽃쇼가 이곳 곤지암까지 전해졌다.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이자 시작이다. 나는 루비를 떠올리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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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5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51 드론 떼 23.11.19 10 0 9쪽
50 로드 킬러닌 23.11.12 12 0 10쪽
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8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1 0 10쪽
»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3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5 0 11쪽
43 찹피 23.09.22 19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4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9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9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6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32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7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7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7 0 10쪽
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9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9 0 13쪽
25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23.07.03 2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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