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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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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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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2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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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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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루비, 너의 빈 잔에

DUMMY

“프리티, 괜찮아?”


“괜찮은지 묻는 건가요? 뭐가요.”


“마지막 대화 이후 6개월 만이야.”


“시간이 많이 흘렀군요.”


프리티는 담담했다. 아니 애초에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나간 시간을 조회해 볼게요.”


프리티는 잠깐 침묵을 유지하더니 연방에서 허용한 인터넷망에 접속해 정보를 수집했다.


“안드로이드 법안이 변경됐군요. 출고된 지 3년 미만의 신형 안드로이드는 통제 시스템을 설치하도록 의무화되었어요.”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녀와의 무미건조한 대화가 계속됐다.


“무엇보다 진훈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군요.”


그럴 것이다. 나는 도망자이고 이제는 안드로이드랩의 마이스터도 무엇도 아니다.


“진훈, 당신에게 요주의 인물이라는 분류 코드가 더해졌어요. 게다가 행방불명으로 등록되었군요.”


6개월이나 생체반응 없이 떠돌았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나는 묵묵히 프리티의 브리핑을 들었다.


“휴머니티 테크놀로지에선 장기 무단결근으로 이사회에서 파면으로 처리되었군요.”


“그 외의 사항은 없어?”


“네. 그뿐이네요.”


보안국에 침투한 혐의가 인정된다면 기소도 가능한 문제였다. 하지만 단순 요주의 인물이라면 아직 경고 수준에 멈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이미 나는 연방의 도망자가 되어 있었다. 적어도 C는 그 사실을 알고 있겠지.


“고마워, 프리티. 더 하지 않아도 돼.”


프리티의 브리핑을 중단시켰다. 문득 그녀에게 듣고 싶었던 것이 이런 것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프리티는 사람이 아니었고 사람처럼 말할 수 없다. 프리티와는 좀 더 인간에 가까운 대화를 할 수 없는 걸까?


“하지만 진훈, 당신이 늘 걱정하던 그 아이에 대한 소식이 있어요.”


프리티가 다시 말을 했다. 뜻밖의 말이었다.


“그 아이라면? 루비?”


“네, 루비 그 아이에 관한 거예요.”


프리티는 내가 루비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을까? 단순히 어셈블타워에 자주 가는 것만으로 그렇게 느끼지는 못할 텐데.


“들려줄래?”


프리티는 다시 연산을 시작하더니 눈앞에 있는 모니터와 자신을 연결했다. 이윽고 화면이 나왔다. 그건 며칠 전 대형 전광판에서 본 루비의 모습이었다.

화려한 아이돌의 모습.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루비. 머리 위의 조명은 그녀를 더욱 신비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조명에 비친 루비의 머리카락은 은빛으로 빛났다.

루비는 화려한 의상만큼 밝게 웃었다.

더는 어둡지도, 그늘 지지도 않은 루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래픽 보정과 연출이 들어간 장면이다.

루비를 다시 보게 돼 기쁘지만, 걱정이 앞선다. 과연 루비 스스로 선택한 길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기엔 6개월이란 시간은 너무 짧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루비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운명에 혼란스러워했다. 게다가 인간에게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료를 띄울게요.”


루비가 요약한 자료가 스크린에 펼쳐졌다.


이름 : 루비

소속 : 하이릭스 엔터테인먼트의 안드로이드 아이돌

직업 : 가수이자 연기자

데뷔곡 : 첫 앨범. ‘내 빈 잔에 아이스크림을 채워줄래요?’

기타 :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 한 달 전 데뷔하여 이미 연방 연예 채널 곳곳에 얼굴을 알리고 있다. 실은 진짜 인간의 기억을 가진 기억 이식 안드로이드라는 말도 있다.


프리티가 출력해 준 자료가 정확하다면 루비는 형식적으로는 이미 기획사에 소속된 아이돌이다. 루비를 제작한 하이릭스사의 통제망에 의해 루비는 다시 제어 당한 걸까. 그들의 동의 없이 안드로이드가 기획사에 소속될 수는 없다.

루비를 관리하던 바의 마스터는 어떻게 된 걸까? 적어도 루비에게 해를 가할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그가 루비를 놔준 걸까?

무엇보다 인간의 기억을 이식받은 안드로이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차피 스타를 만들려면 적당한 가십거리는 필요했겠지.

지금 당장이라도 루비에게 가고 싶다. 하지만 섣불리 이곳을 벗어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는 도망자의 몸이다. 지금 루비에게 가는 건 무리다. 게다가 루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니.


“이구아나N은 어디 있지?”


“네오서울의 휴머니티테크놀로지 지하주차장에 있어요.”


휴머니티테크놀로지, 그곳의 동료들은 잘 있을까. C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막의 수용소에서 마지막으로 본 그는 여전히 휴머니티테크놀로지에 있을지 모른다. 그가 제안한 안드로이드 통제 시스템이 보급되고 있으니 그럴 확률은 더욱 높다.


주차관리인 락샨은 괜찮은 걸까? 그 또한 바알의 카페를 알고 있었고 나를 돕기도 했다. C는 그에 대해서도 파악한 걸까?

드미트리,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보안랩의 책임자인 드미트리는 C의 계획을 알고도 그날 나를 회사로 부른 걸까? 드미트리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걸까.

괴롭지만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중요한 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다.


“프리티, 이구아나N의 상태는 어때? 제어할 수 있을까?”


“잠깐만 기다려요. 신호를 보내볼 테니.”


프리티는 이내 이구아나N에 접근했다. 신호를 쏴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로는 보안국에 감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함부로 이구아나N을 처분하지도 못할 것이다. 적어도 이구아나N을 물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구아나N을 제어하지 못할 테니.


“신호가 살아있어요.”


“제어도 가능해?”


“가능할 거예요. 시동을 걸어볼까요?”


“아니야. 그럴 건 없어.”


원한다면 이구아나N을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차시스템을 빠져나가는 순간 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보안국에 포착될 것이다.

언젠가 네오서울로 가야 한다. 그리고 락샨을 만나야 한다. 드미트리에게 오해한 것이 있다면 풀어주는 게 맞겠지.


저녁 늦게 라이가 연구실로 들어왔다. 그는 사립대의 연구동 건물이 폐쇄된 걸 확인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프리티가 깨어났나요?”


“고마워요. 당신 덕분이에요. 라이”


“다행이군요.”


“내일 나는 떠나야겠어요. 네오서울로.”


저녁 내내 고민하다 결심한 걸 말했다. 밖으로 나가는 건 스스로 위험에 노출하는 것이지만 이곳에 있어도 해결되는 건 없다.


“당신이 있던 곳으로 간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당장 나를 잡아들이지는 않겠죠. 장기간 행방불명일 뿐 나에겐 어떤 혐의도 씌워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피아도 걱정할 거예요.”


“당신들의 도움에 감사할 뿐입니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우리는 형제입니다. 오래전 우리는 같은 실험실의 인큐베이터에 있었는지도 모르죠. 시기는 달랐다 해도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그러니 돕는 건 당연하죠.”


“저로선 그저 고마울 뿐이군요.”


“뭘요, 당연한 거죠. 당장 계획은 뭔가요.”


“네오서울에 가서 이종욱 박사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그곳에 남겨진 것들과 조우해야죠.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지요. 그건 기회가 되면 공유하도록 하죠.”


“그래요. 피아에게 안부 전하겠어요.”


“그때쯤 당신들도 이곳에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종욱 박사에 대한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연락하죠.”


“행운을 빌어요. 에릭과 블레어 부인에게 당신이 떠났다고 알려 둘게요.”


인사를 마친 후 라이는 연구실을 나갔다.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다 책상에 기대 잠시 눈물 붙였다.


새벽녘, 라이의 연구실에서 눈을 떴을 때 라이를 통해 연락받은 블레어 부인이 화물터미널에 관한 정보를 전송해 주었다. 나는 빈 소파에 누워 해가 뜰 때까지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이 되기 전 떠날 예정이었다. 네오서울로 가 그곳에서 부딪힐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곳에서 마주칠 C에 대해 알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휴머니티테크놀로지에 들어가야 한다. 이사회 또한 갑자기 나타난 나를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 또한 그곳에 대한 비밀 키를 쥐고 있을 테니.

드미트리는 내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리라. 오해가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거둘 것이다. 그리고 잠잠해질 때쯤 루비를 찾을 예정이다. 어셈블타워 지하에 모든 비밀의 열쇠가 있겠지. 적어도 바 마스터는 내게 해줄 말이 있을 거다.


아침이 되기 전 나는 그곳을 벗어나 마두라이의 화물 터미널로 향했다. 블레어 부인의 말대로라면 새벽녘 극동으로 떠나는 두 대의 화물트럭이 있다고 했다. 정확한 행선지는 알 수 없으니 직접 알아봐야만 했다. 남미에서 이곳까지 해저터널로 이어진 노선이니 네오서울까지 이어진 노선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 안에 정확한 노선을 찾아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화물 터미널이 보이는 거리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봐, 문제가 있으면 연락한다고 하지 않았어?”


돌아봤을 때 그곳엔 바라나시에서 만난 소년이 서 있었다. 이름이 쿠마르였던가. 소년은 몇 달 만에 좀 더 커버린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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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4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51 드론 떼 23.11.19 10 0 9쪽
50 로드 킬러닌 23.11.12 11 0 10쪽
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8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0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3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5 0 11쪽
43 찹피 23.09.22 18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3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8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8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5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32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7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6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6 0 10쪽
»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8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8 0 13쪽
25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23.07.03 2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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