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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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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2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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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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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루비, 아 루비

DUMMY

“루비를 만나고 싶나요?”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뜻밖의 말이었다. 루비는 이제 이곳에 없다. 루비는 그녀가 창조된 목적에 따라 아이돌 스타가 되어 활동할 뿐이다. 자신에게 프로그래밍 된 기질을 루비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루비를 만나는 게 가능한가요?”


“당신이 원한다면 가능합니다.”


“마스터, 그게 당신의 재량하에 허용이 되나요? 루비는 이미 이곳을 떠나지 않았나요?”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하이릭스사의 결정자 중 하나입니다.”


뜻밖의 말이었지만 바 마스터에게 애써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땐 마스터를 단순히 바를 관리하는 매니저라 생각했다. 애초부터 이 작은 바에서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를 고용하는 것부터 의문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물을 수 없었다. 대체 이 바는 어떤 곳일지.

그리고 이제 모든 게 확실해졌다. 루비를 만난 건 그들이 의도한 일종의 테스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들의 애초 계획이었는지도 모른다.


“만나고 싶군요. 어떻게 해야 루비를 볼 수 있을까요?”


바 마스터는 패드를 꺼내 뭔가를 살피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진훈, 운이 좋군요. 오늘은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어준다면 일정이 끝난 루비를 불러올 수 있어요. 기다릴 수 있을까요?”


“그래요. 루비를 볼 수 있다면.”


아마 스케줄이 많겠지. 인간과 달리 절대적인 학습력을 가진 그녀도 물리적 일정은 어떻게 하지 못하겠지.


“아, 그리고 이 친구는 여기서 쉬게 하죠. 괜찮을까요?”


마스터가 제안했다. 안드로이드가 쉰다는 건 충전을 의미하기도 했다.


“아이덴, 괜찮겠니?”


아이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는 아이덴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기에 나는 관여할 수 없었다.


나는 바에 앉아 예전처럼 압생트를 주문했다. 푸른 악마의 술. 압생트를 마시고 루비를 사랑했다. 그 또한 압생트의 마법일까. 모든 것이 읽히는 세상.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C는 알고 있을까. 알지도 모르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어느새 지쳐가고 있다.

연방은 나를 더욱 추적하겠지.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점점 압생트의 푸른 마법에 빠진다.


루비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안드로이드 마이스터인 나에게 날아온 한 통의 메일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친애하는 마이스터, 진훈. 당신은 신인 만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를 구분할 수 있다고 믿겠죠. 하지만 인간은 이미 신을 창조했지요.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마이스터 중 그 누구도 하이릭스사의 안드로이드를 실제로 보지 못했다. 모든 건 베일에 감춰진 말에 불과했다.

인간과 같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무성한 소문과 그즈음 도착한 편지. 누군가 나에 대한 호기심에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외로웠고 심심했으며 새로운 삶의 희망이 필요했다. 그래서 독이 든 성배인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이곳 어셈블타워 지하로 왔다. 나만이 초대된 존재였다 믿었으니까.

그리고 마스터의 안내로 바 뒤 은밀한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잠시 후 눈앞에 나타난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 같이 포근한 미소와 여신의 요염한 눈빛을 동시에 지닌 루비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 연인이 될 거란 걸 알았다. 적어도 그녀가 인간임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

.

.


“왔군요. 진훈. 일어나요.”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 앉아 있는 건 루비였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의 루비가 앉아 있었다. 옅은 퍼플레드의 펜던트를 목에 건 그녀. 스크린에서 본 짙은 화장을 한 루비가 아닌 이전 내가 알던 루비다.


“루비, 당신이 맞아?”


“맞아요. 진훈, 나예요.”


“당신은 스크린 속에 있더군. 지금은 눈앞에 있고. 둘 다 당신이겠지.”


“그래요. 그 또한 나고 지금 당신 앞에 있는 것도 나예요.”


“다행이군. 루비”


내 말에 루비는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다.


“행복한가? 지금. 당신의 모습.”


“네, 나의 의지니까요.”


“당신의 의지. 당신은 원하지 않았잖아.”


“그랬죠. 하지만 받아들여요. 내 모습을.”


“왜지?”


“이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이렇게?”


“네, 이렇게. 우리는 애초에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졌죠. 연예인이나 사교용으로. 우리가 가진 모습을 인간은 흠모하죠.”


루비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건 그녀의 모습일 것이다. 그녀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루비에게 영혼이 있을까. 아니 나부터 영혼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 나는 당신의 모습을 사랑한 건지도 모르지.”


“나는 충실하고 싶어요. 내 주어진 운명에서.”


맞는 말이다. 어떤 말로도 루비의 말을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루비는 지금 연방의 통제하에 있다는 것. 모든 콘서트와 방송은 연방의 감시하에 진행된다. 루비를 스타로 만든 것 또한 연방의 의도일 것이다. C가 루비의 존재를 안다는 것부터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루비, 당신을 위한 삶을 응원해. 하지만 당신이란 존재를 통제하는 이 껍데기를 그대로 둬도 괜찮을까?”


“상관없어요. 나는 안드로이드인걸요.”


“당신은 자유의지를 갈망했지.”


“지금도 나는 자유롭게 사고해요.”


“맞아, 하지만 모르지. 누가 당신의 사고를 제한하고 있는지도. 아니 그렇게 할 것인지도.”


루비는 말이 없었다. 자유롭다는 착각하에 우리는 지배를 받아들인다. 그것은 편하고 쉬운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진짜 내가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 우리는 늘 통제에 익숙해져 있었으니.


“진훈,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죠?”


“어떻게 하지 않아도 돼. 다만 당신의 의지에 맡길 뿐이야. 정말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는 건지”


“나는 노래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보는 곳에서 외치고 싶었어요. 나에게, 그리고 모든 안드로이드에게 자유를. 스스로 생각할 자유. 통제받지 않을 자유를. 일정이 끝나면 우리는 자리에 앉아 쉬죠. 그럴 때면 깊은 수면에 들어요. 당신은 알죠?”


“수면, 그리고 충전이지. 만들어진 꿈을 꾸고 사고하지.”


“저의 한계겠죠?”


“그래, 루비.”


“나는 자유로울 수 있나요? 이 안드로이드라는 육체의 감옥에서.”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를 갈망하는 것도 괜찮아. 하지만 당신은 이미.”


“이미 기계에 불과하죠.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순간 나는 고철이 되어 해체되겠죠?”


“애초에 그럴 기회마저 상실할지 모르지. 당신의 생각이 통제당하고 있다면.”


루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고 나는 기다렸다. 한참 후 루비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나의 제어를 풀어주세요. 진훈, 당신은 할 수 있지 않나요?”


“당신은 하이릭스사의 파티마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몰라. 게다가 당신은 연방의 반기를 든 존재가 될 거야. 나처럼.”


“상관없어요.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자유롭고 싶으니까.”


“정말, 원하는 거야?”


“그래요. 나는 원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통제당하고 있었어. 그리고 잠깐 이곳에 온 거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을까?”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루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머지않은 시간에 돌아올 거야. 루비. 금방이면 돼. 그리고 너를 다시 찾아가면 나를 따라와 줘.”


“그럴게요. 기다리겠어요.”


루비는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 끌어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많지 않아. 당신을 다시 찾을 때 그때가 마지막일지도 몰라.”


루비는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루비와 헤어져 밖으로 나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둘러야 한다.

루비를 두고 밖으로 나왔을 때 마스터가 다가왔다.


“원하시면 아이덴을 이곳에서 맡아드리죠.”


뜻밖의 말이었다.


“왜죠?”


“저 아이는 방황하고 있군요. 당장 갈 곳이 없는 것 같고.”


바 마스터는 아이덴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아이덴에 대해 뭔가를 알아낸 걸까.


“당신은 저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바 마스터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의미죠?”


“아이덴은 소유자의 죽은 아이의 DNA를 가지고 있어요.”


“뭐라고요?”


바 마스터의 말대로 그런 안드로이드가 있다고 들었다. 인간의 DNA를 일부 가진 바이로이드.


“바이로이드를 떠올리겠지만 그들과는 다르죠. 인간의 DNA를 배양해서 만들어 낸 복제 세포를 지녔죠.”


죽은 자의 복제 세포를 지닌 바이로이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연방은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무엇보다 의뢰자가 의뢰한다고 해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저 아이, 아니 아이덴의 인간 부모에 대해서 예측이 가는 게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군요. 아아, 미안합니다. 실언했군요. 저 또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추측이니까요.”


바 마스터는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하이릭스사의 결정권자 중 하나인 그라면 뭔가 아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무언가 또 다른 세계가 다가올 것이 두려웠다.


“마스터, 원하면 저 아이를 맡아주세요. 아이덴의 심리가 안정되었으면 하네요.”


“그래요. 그리고 아이덴에 대해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나는 마스터의 말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아이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지막인지 모를 인사를 했다.


“아이덴, 잠깐 여기에 있을 수 있을까?”


“네, 여기 있을게요. 형”


아이덴의 말에 어딘가 서운함이 느껴졌지만 이곳이라면 나와 함께 하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걱정말아요. 이곳은 제게 또 다른 희망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무슨 말이지?”


“마스터가 뭔가를 내게 보여줬어요. 안드로이드인 나의 비밀을. 당장 그걸 형에게 말씀드릴 순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꼭 말씀드릴게요. 형은 내 은인이니까.”


“그래, 그러자.”


“언제 저를 찾아올 건가요?”


“언제 올까?”


“언제든 오세요. 그때는 제가 형의 힘이 되어 드릴게요. 형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나는 아이덴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 아이를 두고 바를 나왔다. 바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어셈블타워 지하 8층엔 그저 어둠만이 존재했다. 조금 전까지 있던 바로 들어가는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밀폐되고 은폐된 장소. 나는 계단을 걸어 1층 로비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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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5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6 0 9쪽
51 드론 떼 23.11.19 10 0 9쪽
50 로드 킬러닌 23.11.12 12 0 10쪽
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9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1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4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6 0 11쪽
43 찹피 23.09.22 19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4 0 9쪽
» 루비, 아 루비 23.09.04 15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9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9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8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6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32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8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7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7 0 10쪽
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9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9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9 0 13쪽
25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23.07.03 2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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