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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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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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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DUMMY

부산의 야경은 밤을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었다. 부산의 상징 같은 광안대교와 도시 중앙의 타워를 부산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공중 도로를 지나칠 때 나는 대형 전광판에서 또다시 루비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것은 루비가 분명했다. 반짝이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활짝 웃으며 노래하는 루비. 이제 세상 어디에서든 루비를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루비는 가냘픈 팔로 마이크를 쥔 채 노래를 불렀다.


이 밤 나는 노래를 불러요.

인간이 된 나비의 꿈을 꿔요.

나는 당신과 거리를 누비며 사랑을 나누죠.

당신의 키스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아요.

하지만 내일은 오겠죠. 그리고 나는 돌아가야 해요.

나비의 꿈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그리워도 찾지 말아요.

때가 되면 돌아오겠죠. 당신의 그리움이 나를 당기면


공중 도로를 지나는 버스에서 내린 후 가까운 바다로 가 해변을 거닐었다.


때가 되면 돌아오겠죠. 당신의 그리움이 나를 당기면

때가 되면 돌아오겠죠. 당신의 그리움이 나를 당기면


루비의 노래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밤 나는 오랫동안 루비의 노래를 들으며 밤의 해변을 거닐었다.


루비는 네오서울의 어느 곳에 있겠지. 곧 그녀에게 갈 것이다. 그리고 물어보리라. 행복한지. 당신이 정말 바라던 길을 가고 있는지.


저녁 내내 안면 변형 마스크를 쓴 채 부산 시내를 배회하던 나는 부산 외곽의 조용한 무인 호텔에 무사히 들어올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온 즉시 마스크를 벗었다. 얼굴형을 변형시켜 주는 마스크는 근육에 피로를 주었다.

욕실에서 나와 창가로 갔다. 바다가 보이는 방을 선택했지만 검은 바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 비친 밤바다는 간간이 네온 불빛만 흘러나올 뿐 검은 파도를 구별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딘가 무겁고 알 수 없는 검은 기운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창가에 앉은 채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나는 곧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 밤 나는 꿈 없는 잠을 잤다. 꿈을 꾸고 싶지 않았다.


꿈없는 긴 잠을 잤고 잠에서 빠져나왔을 때 창밖으로 해가 뜨고 있었고 푸른 바다의 윤슬이 빛났다.


다음 날 오전 네오서울로 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일반 가게와 달리 버스를 타려면 개인정보와 연동된 카드가 필요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연방의 룰이었고 사람들의 일상을 통제하기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순간 망설였다. 카드를 쓰는 즉시 내 개인 동선이 노출될 것이다. 비공식 수용소에서 탈출한 내게 두 번의 기회란 없을 것이다. 개인 크레딧을 쓴다면 네오서울까지 갈 수 있을까?


나는 터미널에 앉아 망설였다. 그때 옆에 앉은 남자의 패드에서 크레딧 바코드가 보였다.


“위조할까요?”


프리티가 말했다. 뜻밖의 말이었다. 늘 내게 필요한 것을 찾아 제안하는 그녀였지만 이건 모험이다. 그녀가 내게 이런 제안을 한 건 처음이었다.


“할 수 있겠어?”


“카피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일회성 바코드를 만드는 정도는 내 눈으로 인식한 데이터를 통해 프리티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 행동은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나는 남자의 전자지갑 바코드를 복제한 즉시 남자의 신상으로 표를 구매했다. 10분 후 나는 곧 출발하는 네오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눈치챈 남자가 공안에 신고하기 전 신속하게 움직여야 했다.

잠시 후 나를 태운 버스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언젠가 남자를 만난다면 반드시 사과하리라고 나는 마음으로 남자에게 사과했다.


이윽고 버스는 하이웨이로 올려 서울로 향했다. 부산을 벗어나자 더 이상 도시의 모습이 아닌 황량한 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00여 년간 20% 이하로 감소한 세계 인구는 급격한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농사짓지 않는 땅은 초목이 무성했다. 고속도로 곳곳에 폐공장과 무너져 가는 관리되지 않은 건축물로 가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심의 인구는 넘쳐흐르고 있었다. 막대한 금액을 지출해 구축한 초거대 기술로 모든 인프라가 도시에 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도시에서 이탈한 자들의 삶이었다. 연방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이탈한 자들에겐 비참한 생활이 기다렸다. 반면에 연방이 통제하고 제안하는 삶에 수긍한다면 연방이 주는 인프라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인간은 삶의 면적을 제한당하고 있었다.

나는 떠나온 사막의 공동체를 떠올렸다. 그곳에 남은 이들은 잘 있을까? 타냐와 미츠가 진행하는 ‘자유의 소리’가 그리워졌다.


2시간 후 버스는 네오서울로 진입했다. 멀리서 바라본 서울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군사 지역으로 경기도가 사용된 후 상당수가 서울로 통합되자 서울의 면적은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버스는 네오서울에 진입한 후에도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얼마 후 멀리 어셈블타워가 눈에 보였다.

나는 어셈블타워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곳 지하에 루비는 없을 것이다. 루비는 이제 데이터를 타고 세상 모든 곳에 있다.

오는 동안 하이웨이 곳곳마다 루비의 얼굴이 보였다. 신인 아이돌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루비는 얼마 후 사라질 것이다. 인간과 흡사한 소비성 연예인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하이릭스사는 그렇게 성장해 왔다. 얼마나 많은 파티마 시리즈의 안드로이드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졌던가. 하이릭스사의 성장과 함께 연방은 얼마나 많은 시민의 입과 귀를 통제하고 있었던가.


“힘을 내요, 진훈. 루비는 잘 있을 거예요.”


생각에 빠진 걸 눈치챈 프리티가 말을 걸어왔다.


“고마워, 프리티”


도심 곳곳에 보이는 루비에게 반응하는 나를 보며 프리티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루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프리티만큼 나를 잘 아는 존재가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단지 데이터. 그녀는 인간일 수 없다. 인공지능을 가졌다 해도 프리티는 단지 로봇일 테니.

하지만 그건 루비도 나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인간은 안드로이드와 다를까?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다를까? 무엇이 그걸 규정하는 걸까.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 또한 스스로 사고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은지도 모른다.


버스는 이윽고 네오서울로 진입했다. 메인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린 나는 테크노 스트리트로 향했다. 라이가 만들어 준 마스크는 효과가 좋았다. 피아처럼 자유자재로 안면 근육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원하는 얼굴 형태를 미리 잡아 놓은 마스크를 쓰면 도로의 카메라로부터 들키지 않고 얼굴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는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한 장은 C를 만나기 직전 사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루비를 만나기 위해 쓸 생각이었다.


테크노 스트리트는 오래전의 혼란에서 벗어난 듯 평온해 보였다.


이따금 공안이 오가곤 했지만 평일 낮의 테크노 스트리트는 한산했다. 모두 고층빌딩 어딘가에서 자기 일에 매몰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스테파니를 떠올렸고 핫산과 블라디미르를 떠올렸다. 그리고 드미트리를 떠올렸다.

멀리서 129층에 달하는 휴머니티테크놀로지 건물을 바라보며 걸었다. 네오서울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거대한 건물은 테크노 스트리트에 들어오기 전부터 눈에 띄었다.


한참을 걸어 나는 그 거대한 빌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모든 것이 시작이다. 나는 낮게 숨을 내쉬었다.


“두려운가요. 진훈?”


“뭐가?”


“안으로 들어가기가요.”


프리티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일 테지. 그 수용소는 내게 경고만 할 뿐이었지만, 이다음은 경고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왜 말리지 않지? 프리티.”


“말려도 갈 거란 걸 아니까요.”


“그렇게 분석했어?”


“진훈이 34년 간 보여주었던 행동 패턴으로는 그래요.”


순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뿐일까. 프리티는 나를 걱정하지 않는 걸까? 34년 전 프리티는 나와 함께 있었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직후였다. 나는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17살 이전의 기억이 내게는 없다. 깨어난 후 처음 들은 프리티의 목소리만이 최초의 음성이었다. 하지만 프리티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 이전의 데이터가 없다. 그렇게 믿었다. 그저 함께했다는 기억만이 그녀에게 입력된 기억의 전부라고 믿을 뿐이다.


“정말 그뿐이야? 프리티?”


“어떤 의미인가요?”


“프리티, 당신은 날 걱정하지 않아?”


“당신을 걱정해요. 진훈.”


“거짓말, 프리티 당신은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게 뭔지도 모르잖아.”


“진훈이 사라질까 봐 걱정합니다. 하지만 두려움이란 감정을 저는 가슴으로 느낄 수는 없어요. 인간은 느낀다지만 전 육체가 없으니까요.”


“내가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질 테니?”


“그렇지는 않아요. 나는 그저 긴 동면에 들어갈 뿐입니다. 진훈이 없는 세상에 저의 존재는 의미 없을 테니까요.”


“정말? 의미가 없을까?”


“그래요. 나는 당신과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당신은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의 프리티일까?”


“아뇨, 그렇지. 않아요.”


“왜지.”


“당신이 내 존재를 인식해 주었으니까요. 프리티란 이름으로 불러준 건 진훈 당신이에요.”


프리티의 말에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눈에 고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생각해 주었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거대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감정의 파도가 걷힐 때쯤 나는 휴머니티테크놀로지, 그 거대한 바벨탑을 향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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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5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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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9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1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4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6 0 11쪽
43 찹피 23.09.22 19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4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9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9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6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8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7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7 0 10쪽
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9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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