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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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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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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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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DUMMY

화물트럭은 밤낮없이 멈추지 않고 먼 길을 떠났다. 인도를 기준으로 동쪽 끝에 자리 잡은 반도는 족히 36시간을 내달려야 하는 먼 곳이다.

비행기라면 다섯 시간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다만 더없이 많은 수속과 검문 과정을 거쳐야 할 테고, 자연스럽게 내 정체도 드러나겠지.


“레반트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군요.”


운전기사가 말했다. 짧게 깎은 머리 위로 그려 넣은 정수리의 별 문신이 돋보이는 체격이 다부진 남자였다.


레반트라면 역사적인 분쟁 지역이다. 지금은 단순 민족 간의 분쟁을 넘어 좀 더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이번 반란 사건도 꽤 오랫동안 곪아있다 터진 것이다.

레반트는 라틴어로 떠오르다라는 뜻이라는데. 뭐 그래봤자 해 뜨는 동쪽이란 단순 의미지만 어딘가 멋진 단어처럼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미 200년을 훌쩍 넘긴 기나긴 분쟁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그 지역의 갈등은 이미 수천 년에 걸친 분쟁이기도 했다. 말은 통합이지만 과연 통합일까 할 정도로 연방은 늘 분쟁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연방 통일의 주역이자 배경이라는 유대인의 거점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이 속한 지역이니 레반트 지역의 분쟁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적수가 없을 거라 믿었던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분열되고 연방으로 세계가 통합된 지금 아직 수천 년 전의 갈등으로 국지적 분쟁이 일어나는 레반트가 어쩌면 지금의 혼란을 키워줄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한반도에는 왜 가는 거죠?”


정수리에 문신을 한 트럭 운전사가 내게 물었다. 보조 기사로 등록하면서까지 급히 한반도로 떠나는 내가 이상하지 않을 리가 없다.


“뭐 됐어요. 물어서 뭣해. 말할만한 일이라면 화물트럭을 이용할 리 없겠죠.”


남자는 혼자 말하고 대답하더니 이내 음악에 집중했다. 반 연방 세력이 대륙 간 이동 화물트럭을 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국가 간 경계가 없어졌다지만 복잡한 절차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엔 화물트럭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오랜 시간을 달려야 했기에 남자와 통성명이라도 할까 했지만, 어차피 가명을 알려주는 것에 불과했기에 괜히 뒤탈 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뒷좌석 깊이 등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몇 시간 전의 일을 생각하니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아 괜찮다니까. 그렇게 동정하지 않아도 된대도 그러네.’


‘나랑 같이 가면 지금처럼 호객하며 돈을 벌지 않아도 돼. 쿠마르.’


‘참, 단순한 분이라니깐. 이봐요. 여기가 어딘지 알고 하는 말이야? 저기서 저까지 화물은 전부 우리 집 거예요.’


‘뭐야? 이 화물 터미널 소유주가 너라고?’


‘오버하지는 마시고요. 화물 터미널 전부가 아니라 G섹션만 집에서 운영하는 거라고 말해도 그러네.’


쿠마르의 말에 나는 G섹션의 지도가 담긴 책자를 확인했다. 지하 5층 지상 5층에 이르는 수천 대의 화물이 오가는 마두라이 화물 터미널의 한 섹션만 소유한다고 해도 굉장한 부자였다.

쿠마르를 키운 연구원 부부의 재력이라면 마두라이에서 꽤 영향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인류 프로젝트에 가담했던 과거는 굳이 밝히지 않았다. 정부가 주도하여 신인류를 만들겠다고 나섰으나 창조된 아이들이 모두 기형이나 짧은 생으로 삶을 마감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그 프로젝트는 실패해 폐기된 것이다.

그 실험에서 살아남은 이종욱 박사에 의해 진행된 두 번째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민간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워낙 비밀리에 진행되었기에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정부의 견제와 간섭 속에 마지막 아이인 쿠마르를 끝으로 이종욱 박사는 냉동 상태로 때를 기다렸을 것이다.

두 번째 프로젝트에 투입된 많은 재물의 출처는 어디였을까? 설마 쿠마르 가계의 이 재력과 상관이 있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 많은 연구비의 일부가 이것일까.

많은 생각이 오갔다. 그리고 나는 더욱 궁금해졌다. 이 모든 일의 배경에 있는 건 무엇일까? 단지 내 과거를 찾겠다는 생각은 그것에 가려진 더 큰 비밀의 문에 접근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초고속으로 이동하는 화물트럭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며칠간 피로했던 몸은 해저터널을 통과하며 충분한 휴식에 이르렀다. 깨었다 일어나기를 반복했고 그사이에 악몽도 꿨다. C에 의해 제압된 채 끌려간 나는 온몸을 결박당한 채 실험체가 되었다. 어쩌면 아직도 그 수용소에 갇힌 채 의식만 가상의 공간을 헤매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도 들었다.


눈을 뜬 건 화물트럭이 황해에 인접할 때였다. 운전석 계기판에 놓인 GPS 상으론 머잖아 한반도에 진입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나는 요주의 인물이 되어 네오서울로 향하고 있다. 뚜렷한 죄명을 가진 범죄자는 아니라 해도 반 연방주의자는 범죄자와 비슷한 처지와 다를 바 없었다,

다시 20여 분이 흘렀다. 해저터널을 거의 빠져나온 트럭은 인천 연안부두로 진입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10분 후면 도착이에요. 서류 잘 챙기세요. 괜히 일 터지면 서로 곤란하니까.”


운전사가 말했다. 퉁명스럽지만 이런 일에 익숙한지 일 처리가 능숙했다.


“고마워요.”


“뭐, 여하튼 잘 가시고요. 괜히 잡히면 저도 난감해요.”


남자는 퉁명스레 인사했다. 얼굴을 트고 통성명하는 것보단 차라리 무관심이 서로에게 낫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화물트럭이 터미널에 진입할 때까지 아무 말 없던 그와 가볍게 인사 후 차가 검역소를 통과하기 전에 터미널을 빠져나왔다. 늦은 밤, 부산항은 곳곳에 네온 불빛으로 가득했다.


“진훈, 한국으로 다시 온 걸 축하해요.”


해저터널을 지나는 동안 슬립모드로 있던 프리티가 깨어나 말했다.


“축하할 일인가? 조심할 일만 남았겠지.”


말과 동시에 거리에서 경비 로봇이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경비 로봇의 스캔에 걸려 얼굴이 노출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설령 넘어가더라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정보가 연방에 등록되는 건 피할 수 없다.

나는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참을 걷자, 공중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라이에게 받은 얼굴 변형 마스크를 썼다. 피아의 능력을 연구해 라이가 만든 마스크였다. 자신의 특기인 염력을 증폭하는 기계를 만든 것처럼 라이는 피아의 능력을 연구해 얼굴 근육을 변형시키는 마스크를 만든 것이다.


‘신인류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우리의 능력은 먼 미래의 인간이 가지게 될 능력들이죠. 인간은 그 존재의 수명이 다하기 전에 종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들을 만들어 내 신에게 도전할 겁니다. 그것이 옮은 지 여부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겠죠. 우린 그저 만들어진 존재. 판단은 신이 할 겁니다. 살아남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신은 단지 교만함이라 판단할까요.’


라이의 말이 떠오른다. 힌두의 사재, 혹은 중세의 수도승과 같은 기운을 풍기던 라이는 그의 운명에 도전하기라도 하듯 우리의 능력을 복제할 기술을 만들어 내리라 말했다. 나 또한 언젠가 내가 가진 힘을 그렇게 써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여러 생각에 잠긴 채 나는 부산 시내를 걸었다. 배가 고파 가까운 가게에서 음식을 시켰다. 서빙 로봇이 곧 음식을 내어 왔다. 수백 년 전 전쟁을 피해 이곳에 피난 온 이들이 먹었다는 돼지로 만든 음식이었다. 수백 년에 걸쳐 정립된 레시피로 재현한 그 음식들을 맛보고 즐겼다.


식당 한쪽 대형 스크린에선 뉴스가 흘러나왔다.


-안드로이드 법이 개정된 후 평화를 되찾은 거리는 사람들의 가벼움 발걸음으로 가득합니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면은 테크노 스트리트의 한 섹션을 비추고 있었다. 몇 달 전의 혼란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어딘가 경직된 모습의 사람만이 카메라에 비쳤다. 연방은 정말 풍요와 평화를 되찾은 걸까.

잠시 후 신형 자동차 광고가 흘러나왔다. 공중에 떠서 움직이는 차량은 세계 여러 곳을 누빈다. 카드 한 장이면 여권을 대신하는 세상.

광고에 이어 뉴스가 흘러나왔다. 안드로이드의 이상 반응이 보이면 즉시 공안에 신고 후 제어 장치를 수리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레반트에서 발생한 반 연방 무장 단체의 테러는 곧 연방군에 의해 소집될 예정입니다.’


운전사가 말한 레반트의 반란 사건이 짧게 언급되고 있었다.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 간의 분쟁은 인류의 문명과 역사가 말소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다인종으로 희석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앵커는 곧 평화로운 해결이 있을 거라 했다.

이어 남극의 이상 기온으로 높아져 가는 수위를 현상 유지하려면 연방의 강력한 통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나는 한참 뉴스에 귀를 기울이다 말고 음식을 마저 해치운 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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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4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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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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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새벽의 습격 23.10.20 11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3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5 0 11쪽
43 찹피 23.09.22 18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3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9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8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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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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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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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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