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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잡가님 님의 서재입니다.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잡가님
작품등록일 :
2023.05.13 09:08
최근연재일 :
2023.12.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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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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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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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킬러닌

DUMMY

한참 동안 무대는 불꽃과 음악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갑자기 웅장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낮고도 무게감 있는 전주. 낯설다. 익숙한 음악은 아니었다.

그 순간 무대의 모든 빛이 꺼지고 무대 한가운데로 세 개의 조명이 나타났다. 조명은 무대 위를 훑듯 비추더니 한 곳에 집중됐다.

그리고 가면을 쓴 한 남자가 무대 위에서 나타났다.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남자는 서서히 조명이 집중된 곳으로 내려왔다. 마치 공중을 날아다니던 초인처럼.

그가 무대에 안착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남자가 가면을 벗자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연방 의회장 로드 킬러닌이었다.


‘로드 킬러닌!’


‘로드 킬러닌! 만세!’


‘구원자. 영원한 지도자.’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남자는 그 환호 속에 파묻혔다.


하지만 나는 느끼고 있다. 연방은 이미 분열되었다는 걸. 누군가는 그가 기후위기로 인해 척박해져 가는 세계를 구할 자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이 세계의 질서에 의문을 가지고 반 연방 조직을 만들었다. 확실한 하나는 세계는 삐걱대면서도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의 혼란은 온전히 연방 시민의 몫이었다.


‘그가 우리 마을을 없앴죠. 하나 된 연방이란 미명하에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목소리를 내거나 반란의 조짐이 보이는 곳은 모조리 초토화시키고 없애버렸죠.’


드미트리의 말을 기억한다. 무수히 많은 마을이 사라지고 많은 사람이 고향과 가족을 잃었다. 연방은 인류를 위한다는 이유로 많은 실험을 자행했다. 나 또한 연방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졌다. 나는 늘 의문을 품었다. 나의 부모는 누구인가. 나를 만든 연방인가. 나는 대체 누구지?


-연방 시민이여 영원하라!


로드 킬러닌, 순간 그가 외쳤다. 입을 열자, 그의 음성이 증폭되어 울려 퍼졌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낮고 무미건조한 음성.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대에 나타난 그를 환호했다. 지지율 95%를 차지하는 그가 정치적 인기를 누리는 건 무엇 때문인 걸까. 사람들의 환호는 무엇을 향하고 있는 걸까.

한동안 지속되던 환호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환호가 끝날 때쯤 그가 연설을 시작됐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이 공존하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이 땅의 지배자였던 인간은 육체의 노동에서 해방되었소.


그는 공존이라고 했다. 안드로이드와의 공존. 사실일까.


-우리는 지난번 안드로이드의 뇌를 공격하는 바이러스에서도 그들과 인류를 지켜나갔습니다.


순간 나는 휴머니티 테크놀로지 지하에 쌓여있던 무수한 안드로이드의 잔해를 떠올렸다. 방송과 언론에도 노출되지 않았던 파손된 안드로이드의 부품들.


-지난 백여 년간 기후위기로 인해 많은 나라와 민족과 그들의 문화가 파손되었습니다. 연방은 그 가운데서도 세계의 통합을 위해 힘썼습니다. 인류는 더한 재난에서도 우리의 유산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가 말을 멈추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너무나 많은 피의 흔적이 세계 도처에 흩뿌려져 있고 연방은 그것을 통제했다. 연방은 인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인간은 이제 우주로 나가야 합니다.


박수가 잦아들자 그가 말을 이었다. 낮은 그의 음성이 이례적으로 힘을 가했다. 로드 킬러닌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에게 남은 건 우주를 개척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때 동쪽 하늘 멀리서 거대한 빛이 반짝이며 다가왔다. 커다란 비행기체. 사람들은 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웅성댔다.


-에어크래프트야.


-어제부터 서울 상공에 떠 있던 기체야. 왜 이곳에 다시.


순간 모든 조명이 하늘로 향했다. 마치 준비한 것처럼 사람들은 먼 하늘에서부터 다가오는 에어크래프트 편대를 주시했다.


-에어크래프트 편대가 네오서울의 하늘에 떠 있소. 얼마 전까지 괌 상공을 부유하던 기체였죠. 지난밤 우리는 반 연방 주의자들이 이번 스타에이드를 기회삼아 반란을 준비한다는 걸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처음으로 이 거대한 기체를 네오서울 상공에 띄웠습니다.


-에어크래프트!

-에어크래프트!


그 말과 동시에 사람들은 에어크래프트를 외쳤다. 뭔가에 홀린 듯 그들은 한목소리로 같은 말은 되뇌었다.


-우리는 저 기체를 타고 우주로 나갈 것입니다. 연방 우주국의 프로젝트 또한 그것입니다.


순간 사람들은 웅성댔다. 우주로 간다니. 누군가 바람을 넣은 것일까. 연방이 우주로 인류를 보내기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하지만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고 유리돔 시티에 초기 화성인 정착지를 만든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더는 우주 진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건 하나였다. 아마 로드 킬러닌은 에어크래프트를 띄울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다. 가까운 근 우주 상공까지 항해할 수 있는 에어크래프트가 화성이나 태양계 내의 우주 기지까지 진출한다고 한다면 명분은 충분했다. 그는 사소한 반란을 막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잡아먹는 에어크래프트 편대를 운용한 것에 대한 불만을 우려한 것이다.


-스타에이드를 즐기세요. 연방이 여러분께 매년 선사하는 축제입니다.


말과 동시에 잔잔한 음악이 들리더니 음악은 곧 경쾌하게 사방으로 퍼졌다. 이어 무대 위로 화려한 불꽃이 튀어 올랐다. 불꽃 사이로 로드킬러닌의 모습은 사라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 새로운 곡이 연주되었다.

칙바이칙스의 노래였다. 지난 10년간 빌보드 차트를 석권한 그들의 곡 ‘굿바이 미스터 먼치킨’이 흘러나왔다.


너는 세계를 주름잡는 용사,

너의 한방이면 지구는 조각이 나지.

네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도 조용해.

네가 나타나자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어.


화려하면서 독특한 의상을 입은 4인조 그룹 칙바이칙스의 퍼포먼스는 무대를 휘어잡았다.


미안해 우린 너를 가둬버렸지.

너의 존재가 너무 거대했거든.

그런데 쫓겨난 네가 없으니 나는 왜 이리 허전할까.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시끄러우면서도 유쾌한 노래다. 사람들은 모두 칙바이칙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열창했다. 같은 후렴구가 반복되며 중독성 있는 리듬이 관중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다양한 피부색과 모습을 가진 이들이 모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음악의 힘이었다.


하지만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 스타에이드는 이미 연방이 장악하고 있다는걸.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진훈, 쿠마르에게서 신호가 왔어요.


그때 프리티가 말했다.


연결해 달란 말에 회선은 곧 쿠마르와 연결 모드로 진입했다.


-형, 이제 곧 스타디움에 도착이에요.


-뭐라고? 언제 나타날 거야? 루비의 노래가 곧 시작될 거야.


-통신 회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 바로 나타날 거예요.


-교착 상태?


-블라디미르 씨가 움직이면 모든 통신이 두절될 거에요. 그게 신호에요.


그 말을 끝으로 쿠마르와의 연결이 끊겼다. 블라디미르 그는 이곳 어딘가에서 EMP 건을 겨누고 있을 것이다.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너는 야 먼치킨, 너의 세상을 지켜줘.


한동안 이어지던 ‘굿바이 미스터 먼치킨’이 끝났다. 강렬한 노래였다. 무대를 휘어잡는 거친 퍼포먼스를 마친 그들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무대를 떠났다.


그들이 떠난 무대는 조금 전의 잔상이 남은 듯 마지막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였다. 10만 명이 넘는 관중은 무대를 떠난 그들의 이름을 여전히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갔다. 곧 장내가 조용해지며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밤 나는 노래를 불러요.

인간이 된 나비의 꿈을 꿔요.


나비의 꿈..


노래와 동시에 스타디움의 모든 조명이 최대 출력으로 무대를 비췄다. 사람들은 빛의 바다에서 시야를 잃어갔다. 그 빛 사이로 하나의 실루엣이 나왔다. 사람의 형체를 한 그것은 서서히 무대 가운데로 이동했다.


루비였다.


천사의 날개를 한 루비. 대천사의 몸을 뒤덮은 두 개의 거대한 날개와 여덟 개의 작은 날개가 루비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당신과 거리를 누비며 사랑을 나누죠.

당신의 키스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아요.


루비의 몸짓은 하나의 우주였다. 루비란 우주 속으로 사람들은 유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내일은 오겠죠. 그리고 나는 돌아가야 해요.

나비의 꿈은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순간 루비의 날개가 크게 퍼덕이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루비는 무대에서 한참 높은 곳까지 수십 미터를 날고 있었다. 와이어도 어떤 장치도 없었다.


-저것이 안드로이드란 말인가?


-사람보다 더 사람 같군.


-아니, 마치 천사 같아. 스스로 날고 있잖아. 날개를 퍼덕이면서.


내가 그리워도 찾지 말아요.

때가 되면 돌아오겠죠. 당신의 그리움이 나를 당기면


내가 그리워도 찾지 말아요.

때가 되면 돌아오겠죠. 당신의 그리움이 나를 당기면


그렇게 루비의 노래는 이어졌다.

에어크래프트 편대는 네오서울의 상공을 떠다녔고 무수히 많은 드론이 어둠이 짙게 깔린 스타디움의 하늘을 반짝이며 수놓고 있었다.


그 사이로 루비의 노래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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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4 바 마스터에 관하여 23.12.10 4 0 10쪽
53 완벽한 따돌림 23.12.03 5 0 10쪽
52 날아오르라, 루비와 함께 23.11.26 5 0 9쪽
51 드론 떼 23.11.19 10 0 9쪽
» 로드 킬러닌 23.11.12 12 0 10쪽
49 위 아 더 월드 23.11.05 7 0 10쪽
48 스타에이드의 시작 23.10.29 8 0 10쪽
47 새벽의 습격 23.10.20 11 0 10쪽
46 그날, 루비의 기억 23.10.13 13 0 9쪽
45 살금살금 기다 23.10.06 11 0 9쪽
44 EMP SHOCK 23.09.28 15 0 11쪽
43 찹피 23.09.22 18 0 10쪽
42 모두가 기다리는 축제를 위하여 23.09.15 15 0 9쪽
41 이구아나N이 향한 곳 23.09.10 13 0 9쪽
40 루비, 아 루비 23.09.04 14 0 11쪽
39 어셈블타워 지하 8층 23.08.30 15 0 10쪽
38 쿠마르 넌 뭐냐? 23.08.24 19 0 10쪽
37 진정한 워게임 23.08.19 18 0 10쪽
36 배신자는 누구인가 23.08.13 17 0 10쪽
35 그의 아이덴티티 23.08.08 20 0 10쪽
34 드미트리, 당신을 믿어 23.08.03 15 0 9쪽
33 바벨탑을 만든자에게 23.07.29 19 0 10쪽
32 누군가를 걱정하는 건 인간만이 가진 능력일까? 23.07.24 17 0 10쪽
31 방황하는 모든 이들이 길을 잃은 건 아니다 23.07.21 16 0 9쪽
30 혁명이 지속될수록, 소년은 자라난다 23.07.18 17 0 10쪽
29 루비, 너의 빈 잔에 23.07.15 19 0 9쪽
28 세 명의 아이들, 그리고 남은 아이들의 행방 23.07.12 19 0 10쪽
27 바알의 암호와 신인류 프로젝트 23.07.09 18 0 8쪽
26 해저터널 저편, 미낙시 순다레슈와라 사원 23.07.06 18 0 13쪽
25 안드로이드는 아이돌을 꿈꾸는가? 23.07.03 2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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