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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769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11.08 22:32
조회
154
추천
6
글자
22쪽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DUMMY

“뭐라? 지공 장군이라 불리는 장보의 본대가 직접 병력을 움직여?”


“그 병력이 무려 사만에 달한다 합니다.”


“사, 사만! 그러니까 지금 연주방면으로 그 대병력이 이동 중이다, 뭐 그런 말이 말입니까?”


“이미 연주에 자리한 이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크게 신경 쓸 바는 아닙니다만, 전선의 양상을 보시면 거진 연주와 예주에서 모두 사례를 향한다는 것이 문젭니다.”


한바탕 건석이 군영 내를 휘저은 것과 별개로 전쟁의 양상 또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이내의 소규모의 병력들을 사방으로 이동시키며 접전과 난전을 요하는 통에 정신이 팔린 관군들은 본의 아니게 하남윤의 수호에 목을 매며 그 전선 바깥에 자리한 양상이 어찌 변하는지를 잊고 살았거늘, 그것이 또다시 집요할 정도의 포위망을 구축해오는 적의 양상을 방치한 꼴이 될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다.


“이거 큰일이 아닙니까?”


“큰일은 무슨 큰일! 어차피 원래 있던 병력이 연주 족으로 밀고 들어간 것일 뿐, 그 외에 서주와 청주에 여력이 있으니 그들이 뒤를 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일개 지방의 속군들이 쉬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일이고, 그렇다고 그 지휘 체계가 원활할지는 모를 일이지요.”


욕심이랄까? 아니면 능력의 부족이랄까?


서로가 보는 시각이 너무나도 다름에 쓸데없이 크거나 쓸데없이 작거나 혹은 그 방향성이 엇나가는 등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중심을 잡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진 지난 분류와 선별작업에 결과로 전쟁의 양상 외에 별 쓸데없는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이들이 거진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허면 부자사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그러던 차에 상급 군관들 중 하나가 저를 가리키며 작금의 전황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그렇군요, 부자사께선 어떠한 생각을 품고 계신지가 궁금합니다.”


“암요, 우리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넓은 전장을 경영하셨던 분이 아니십니까?”


이에 거진 여럿의 눈길이 제게 쏠림은 물론,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순식간에 우르르 제 편을 들어주었다.


과연, 이것이 건석의 물밑작업이 만들어낸 결과였을까?


마치, 일부러 제게 이러한 질문을 건네 제가 돋보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라도 하듯, 그렇게 제게 호의를 표기한 이들 덕에 졸지에 막사 내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눈과 귀가 움직이니 이를 직접 체감하게 된 도리어 저는 이것이 실로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작금의 전장을 총괄하고 계시는 분은 제가 아닌 좌중랑장이십니다.”


해서 어지간하면 겸양이나 떨며 이를 넘기려 했는데 도리어 그 와중에 그 눈가에 호선을 그리는 황보숭과 그만 눈이 맞아버렸다.


“아니, 나 또한 궁금한 바일세.”


“좌중랑장!”


“좋은 기회 아닌가? 권력에 비호를 받는다, 어쩐다 그대를 모함했던 이들이 사라졌네. 물론,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 이들도 있을 것이니 이는 그대의 능력을 내보여 그 불신을 종식 시킬 수 있는 자리야.”


역시 지난번 건석이 난리를 친 덕에 덩달아 저 또한 함께 밉보였기 때문일까?


그런 건석은 이미 남양으로 튀고 없으니 졸지에 그 모든 화살을 홀로 견디게 된 했던 저는 졸지에 울상을 지으며 되도록 근엄한 척 제가 아는 역사라는 이름의 커닝을 위한 잔머리를 굴리기 위해 지도를 보며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일단은......”


그렇게 제 수그린 몸짓을 따라 졸지에 수십 명이 우르르 저를 쫓아오는데 진짜 그 속에서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무슨,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병아리 새끼들도 아니고 뭔 놈의 고개를 그리 빠짝 내밀고 제 움직이는 방향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단 말인가?


하지만 다행히 그 속에서도 얼추 제 사고를 정리하게 되니, 그렇게 제 머릿속에 저만의 ppt가 얼추 정립이 되자 저는 천천히 자신을 향한 시선 속에 제게 되새긴 역사의 일면을 그대로 가져와 제가 할 수 있는 선의 것들만 끄집어내기로 했다.


“연주는 포기합니다.”


“뭐, 뭐요?”


“아니 그게 무슨......”


“다시금 황건에 봄이 찾아들었습니다. 그 마지막을 바람에 저들에게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거기다 하필이면 병력의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저들 또한 스스로가 중원에 남은 최후의 전력임을 알기에 물러섬이 없을 각오로 아군과 맞설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중원을 차지함에 특히나 도성이 자리한 사례, 하남윤으로의 진입인 것이고 실패하면 어떻게든 다 같이 죽게 되는 거지요. 그러한 상황에 원활한 소통과 위계도 잡혀있지 않는 타주의 전장까지 함부로 신경 쓸 여력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아닌 말로 이곳 갈대와 억새만 그득한 장사현에 평야 전체를 틀어막아도 모자란 병력 아닙니까?”


“흐음, 그건 그렇긴 합니다.”


“원론적이긴 하나 취할 것만을 취한다, 괜찮은 전략인 것 같소.”


실상은 별 것 아니나 그래도 스스로의 무능이자 여력이 없음을 솔직히 인정한 채, 그 안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견이 그래도 얼추 합격점을 얻은 것 같았다.


“해서 어찌 승기를 취할 작정이지?”


허나 그 찰나의 안도도 잠깐이었다.


“맞소, 전장을 국한 시켰으니 이젠 이곳에서 어찌 저들을 이겨낼지 그것이 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의 병력은 끝이 없어요, 십만입니다! 십만! 그에 비해 우리는 그 수가 채 오만도 되지 않으니 이거 부자사께서 내어놓으실 비책이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허허!”


하나의 단계를 넘어갔으니 그다음의 포장을 쓸 차례이건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황보숭의 발언에 졸지에 그 옆에 자리한 이들마저 함께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기대가 그득한 눈길로 저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충신이라고 어떻게든 내가 건석의 밑구녕 핥아가며 자리 지키게 해줬더니 진짜. 아오! 얄미워 죽겠네, 저거? 확 씨, 그 능력만 뛰어나지만 않았어도 내가, 아주 그냥 들이받아 버렸을 것을! 이, 개 같은 거!’


그렇게 찰나에 역한 감정을 남아 눈으로 얼추 얼추 그를 향한 욕을 건넨 저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불량스러운 눈길을 감춘 채 진중한 장수의 모습으로 돌아와 한 차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작금의 상황을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저들이 갈대밭 사이사이를 누비며 서쪽으로 또 동쪽으로 기웃대는 것이 여러 차례. 하여 그간 불특정다수인 저들의 칩입을 맞고자 소규모로 교전을 벌인 것이 벌써 열흘이지요, 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그 출진이 지금까지 총 몇 번이었습니까?”


“거진 스물에 가까웠소. 그것도 군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다른 장수들과 군관들이 돌아가며 병력을 이끌었으니 그나마 전력은 온전하오.”


“온전하다? 제가 알기로 얼추 오천을 깎아 먹은 것으로 아는데 이를 온전하다고 말씀하십니까?”


“그거야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의 병력이 졸지에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갈대밭을 누비며 해가 뜨건 지건 거진 매일 전투를 치뤘으니, 그 교전 중에 사망한 이들만 따져도 그 수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소?”


“바로 그게 문젭니다. 병력의 손실과 소모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지요.”


그래도 이쯤 되고 나니 거진 다수의 이들이 작금의 제가 지적한 문제를 이해하는 눈치였다.


황보숭이야 뭐 빤히 이를 알면서도 방치한 듯 보이는데, 허면 궁금한 것은 과연 그 역사 속에서의 그가 내보인 노림수였던 것을, 작금에도 노리고 있냐는 것이 문제겠지.


그래서 저는 그간 당한 것도 있겠다, 며칠 전 이곳을 떠나간 건석의 화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허나! 부족한 제 눈에도 보이는 이러한 문제를 여기 계신 좌중랑장께서 모르고 계신다 생각지 않습니다. 문제를 알면 대처를 안다고 저는 전장의 승기를 잡을 한 가지 방도를 깨달았사오나 도리어 그렇기에 지금껏 이를 밝히지 않은 좌중랑장에 대한 궁금한 것이 생겼지요. 시간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아니, 실상 연주의 이들이 어찌 되건 상관없이 이미 저들이 북상하기 시작한 기점으로 이곳 장사현에서 예견된 승부를 생각한 것이라면 능히 먼저 밝혔어도 되셨을 일입니다. 한데 좌중랑장께서는 어째 지금껏 이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지요.”


“부, 부자사! 말이 조금 심하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또한 이는 너무 급작스러운 추측일뿐더러, 상관에 대한 예의가......”


“하지만 부자사께서 말씀하신 것이 사실이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 않겠습니까?”


“옳소, 어디 전쟁 사대부들의 예법으로 합니까? 해서 여기 계신 기도위도 지난날 그 늙은이 똥 대신 닦아주느라 고생한 것 아니요?”


웅성웅성-


그렇게 건석이 만들어놓은 판도 위로, 저는 그만큼의 폭발력은 없으나 그만큼의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큰 똥을 일부러 싸질렀다.


어차피 저를 괴롭힐 요량이라면 저는 이미 밀려난 중랑장의 후보라는 자격으로써 또 동정으로 얻어낸 민심의 지지를 활용해 좌중랑장을 압박해볼 생각이었다.


겸사겸사, 역사적 사실 속의 그 해답을 과연 작금의 그가 품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도 있으니 저는 이를 다시 한번 그가 싫어할 법한 건석이 떠오를 말투라는 접시 위에 이를 담아 그의 앞으로 고이 진상했다.


“허니 여쭙겠습니다. 정녕, 이미 다 알고 계심에도 후인들에게 기회를 내려주고자 하신 겁니까? 아니면 정말로 앞으로의 전장의 향방을 어찌할지 몰라 그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이를 되물으시는 겁니까?”


그렇게 졸지에 더러운 냄새를 맡은 황보숭의 미간이 구겨졌다.


허나, 이내 별것 아니라는 듯 그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황보숭은 도리어 건석에 남긴 또 다른 언사로 이를 제게 되돌려주었다.


“이것 참, 전장에 칼보다 더한 세 치 혀를 품고 들어와 난장판을 만드는 것은 똑같은 모양이로군.”


“......!”


“잘 배웠어, 고작 며칠 만에 곧이곧대로 이를 따라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인가?”


“말 돌리지 마시지요, 좌중랑장. 저는 그 연유를 물었습니다.”


“그에 앞서 승기에 대한 전략을 물은 것은 난데, 막상 그리 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자네 또한 이를 몰라 내게 떠넘기는 것이 아닌가? 시간 끌어서 좋을 것이 없을 텐데?”


역시, 어찌 그가 호락호락하랴?


순식간에 치러진 공방에 다시금 빈틈을 찔러 들어온 그 비수와도 같은 일격에 지금까지 저를 믿고 따랐던 이들의 여론 또한 다시금 변곡점을 맞게 되었다.


“허어, 과연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허면.......”


“하지만 부자사께선 이미 형주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그렇고 여러 차례 전장에서 그 능력을 증명해내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렇다고 금세 그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도 우스운.....”


“우습다니요? 그만큼 작금에 상황이 중하니 그런 것 아닙니까? 무려, 십만이에요, 십만! 이름난 장수들조차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을 지금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니 어느 한쪽은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웅성웅성-


그렇게 점수를 내지 못한 채, 지속적으로 주고받은 탁구가 이내 그 사이를 오가는 탁구공을 터질 듯이 키워내며 점점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이 와중에 누구 하나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그 한쪽은 이미 건석이 자리할 때보다 더한 굴욕과 책임 전가 속에 조리돌림을 당하며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릴 것은 빤한 일.


한데 그 와중에 이 혼란을 잠재울 또 다른 구세주이자 변곡점이며 지금껏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구경꾼이 끼어들었다.


“더는 아니 되겠습니다. 이 사람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그 방법을 한번 바꿔보시지요.”


“조 맹덕인가?”


“기도위.”


졸지에 둘 사이를 치고 나온 조조는 이내 슬쩍 그 고개를 돌려 자신의 허리춤에 자리한 칼을 가리켰다.


툭툭-


“내기가 벌어졌으니 이만큼 공정한 것이 또 없지요.”


“아!”


졸지에 황충과 관련된 내기를 떠올린 저는 절로 소리를 내었고 이를 모르는 다른 이들은 다들 뚱하거나 혹시라도 칼부림이 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모래 위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이 아니라 죽간 위에 글자를 적는 것으로 합니다. 동시에 승기를 잡을 전략을 따로 적은 뒤, 이를 동시에 꺼내 모두의 앞에 확인하면 공정하지요?”


부가적인 조조의 설명에 졸지에 주변에 자리한 이들 모두가 이에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이에 조조는 병사를 시켜 먹과 붓 그리고 둘둘 말린 새 죽간을 가져오게 하니, 그렇게 죽간을 뜯는 조조와 등을 돌린 채 글씨를 써 내려가는 저와 황보숭으로 말미암아 때아닌 구경거리와 같은 상황이 펼쳐졌다.


“마음 같아선 각기 내깃돈을 받아 누구 앞에 걸지 장부를 적어 판을 벌이고 싶으나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바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하나, 둘, 셋!”


탁-


타악-


“이야, 이건!”


“두, 둘이 똑같은 답을 내놓을 줄이야!”


사방에선 각기 경탄과 감탄이 뒤섞였으나 의외로 그 중심에 자리한 당사자들을 담담했다.


어찌 보면 빤한 결말이 예상된 구도는 아니었을까?


애초부터 전쟁 그 하나에 몰두했던 황보숭이야 일찍이 이곳에 군영을 세울 때부터 이에 대한 고심이 많았을 터이고, 저 또한 그러한 그의 역사적 행보를 알기에 그 답을 빤히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과연, 지금껏 쌓아 올린 위명이 그저 과하게 포장된 것만은 아니었군.”


그럼에도 자신과 같은 답을 적어낸 것이 조금은 놀란 눈치인지 황보숭은 은연중에 이쪽을 인정하는 모양새를 띄었다.


“어디 북지의 전설이신 좌중랑장만 하겠습니까? 부족한 후배가 겨우 발버둥 쳐, 그 경지 끝에 살짝 매달린 것뿐이지요.”


이에 저 또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그럴듯한 후배의 예의로 말미암아 가벼이 이를 화답했다.


“자, 이것으로 부자사와 좌중랑장 모두 화공(火攻)을 적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사방이 갈대밭인 갈수기이니 비가 오기 직전인 이때가 제일이겠지요?”


“.......!”


“그렇구나! 허면 두, 두 분 모두 이를 염두에 두신 것이......”


“이야, 역시 대단하십니다! 소장들은 이를......”


그렇게 그 자리에선 모두가 하나 되어 승기를 가져올 새로운 희망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리슬쩍 저들의 앞에 쉽게 상황을 풀어 설명한 조조의 언사를 인지한 저와 황보숭은 한 차례 눈빛을 교환하며 은연중에 그를 끌어들일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딸깍-


그렇게 시끌벅적한 소란이 지난, 그날 밤.


“다른 죽간과 비교해보니 알겠더군, 두 쪽이 아니라 세 쪽이 비어있었어. 그리고 자네의 죽간은 바닥 한구석에서 찾았지.”


“이런 죽간이 하나 더 있었군요.”


제가 적어낸 죽간을 보고서도 이를 모르는 체 너스레를 떠는 조조는 가히 조금 전의 황보숭과 닮아있을 정도로 심히 얄밉게 느껴졌다.


아, 물론 이러한 기분은 제가 아닌 황보숭이 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대신해 느끼고 있을 상황이 더 어울리는 형국이겠지만 말이다.


“자네는 왜 이를 밝히지 않았나?”


“이미 구도가 잡힌 판에 딱히 훼방 놓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또 빠지긴 싫다고 제 능력을 드러내놓고서는, 쯧.”


“하하하,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희지재에 일로 한참 마음을 쓰고 있을 조조라 생각했다.


일찍이 건석이 자리할 때도 조용했고, 황충과 함께 자꾸만 전장을 전전하는 것이 희지재의 회복을 기다리며 애써 그 잡생각을 지우려는 발버둥이라 여겨 딱히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회복은 실로 빨랐던 모양인지, 이리 별다른 시간이 흐르지 않고서도 평상시로 돌아온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말이야 쉽지, 그냥 불 하나 싸지르면 다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도리어 비좁은 구석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드넓은 곳에 자리한 적을 원하는 곳곳에서 그에 걸맞은 크기로 태워야 하는데 말이야. 어디 횃불 하나 놓는다고 곧바로 줄줄 타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그 와중에 도리어 앓는 소리를 내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의외로 가장 상석에 자리한 중랑장의 타이틀을 쥐고 있는 황보숭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일 드높은 상관이자 이 나라의 마지막을 장식할 명장인 작자가 정녕 저리 나와도 된다는 말인가?


“다행히 하남윤에 널린 것이 민가입니다. 딱히 장사현만을 쥐어짜지 않아도 징발하면 기름이야 흘러넘칠 듯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희소식이긴 하군. 하지만 반대로 저들이 먼저 화공을 준비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적들에게 있어 최우선의 과제는 이쪽의 병력을 잡아먹는 일입니다. 하여 적게는 세 배수, 많게는 네 배수가 되어야 병력으로 일거에 전장을 잡아먹는 대군의 화전을 선호하는 것이 저들의 전략이지요. 우중랑장이 그리 당했고 말이옵니다. 하오나 낯부끄럽지만 이 또한 현실이니 얼추 이에 대한 설명을 보충하자면, 작금의 좌중랑장을 비롯해 좌군사마 손 문대 그리고 여기 자리한 기도위와 부자사인 저까지 얼추 병력의 열세 속에서도 역전은 물론, 적병을 여러 차례 잡아먹은 전례가 있습니다. 허니 파재는 이러한 부분을 조심하여 최대한의 병력 손실을 줄이고, 이쪽의 소모를 유도하기 위해 사방에 작은 병력들을 풀어 의미 없는 소모전을 만들어내지 않습니까? 그 와중에 가장 중한 것은 퇴각로와 난전을 유도할 수 있는 억새와 갈대숲입니다. 한데 자신들의 몸을 숨겨가며 벌이기 좋은 유격전의 장소를 저들 스스로 태울 리 만무하지요. 차라리 일거에 붙는 대병의 회전이라면 또 모를까 말입니다.”


“좋아, 좋은 답변들일세.”


생각해보니 이거 이 양반이 이쪽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돌아가는 상황을 물어본 듯했다.


그리 한 차례는 조조가 또 그다음에는 제가 각기 답변을 마쳤으니, 도리어 그 답을 듣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그 눈초리는 뭐지?”


“아닙니다, 너무 속이 보여서 말이지요.”


그렇게 찰나의 서운함을 토로한 저였으나 그 또한 실로 찰나였다.


“그러니까 여긴 이렇게 두고, 아예 이를 찢어서......”


“갈수기인데 가능할까?”


“허나 이미 여수 인근에 폭우가 내린 전력이 있으니 이를 저들도 알 것이라 여겨집니다. 또한......”


“도리어 비를 뿌렸으나 이곳과 거리가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한 차례 비를 뿌린 구름은 더 이상의 습기를 품고 있지 못하니 북상하는 동안 이전과 같은 비를 뿌리지 못합니다. 거기다 근방은 평야라 구름을 막아설 산자락도 없지요.”


“동감이야, 도리어 이를 밀어붙여야 하지. 진짜 장마가 찾아들기 이전에, 어쩌면 채 보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를 이 시기가 중하니 차라리.....”


“이번만큼은 우중랑장 또한 이를 반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면 저는 이쪽으로 또 좌중랑장께선 이곳에서 우중랑장은 또 이곳에서......”


“순서가 어찌 되든, 위치가 어찌 되든, 시간이 어찌 되든 간에 그 목적은 혼란일세. 그리고 그리 몰아친 혼란 속에 누군가는 그 최후의 결실을 거두게 되겠지.”


그렇게 황보숭의 설명과 구상 속에 자잘한 여러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며 이런저런 회의를 마친 저와 조조는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막사를 나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다시금 이별을 고할 수 있었다.


“만일 저들을 궁지로 몬다면 그대는 파재가 어느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지?”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어째서?”


“딱히 생각해본 적도 없고 어느 쪽이든 간에 그다지 상관은 없습니다. 단, 운이 좋게 그 목을 취한다면 우중랑장께 이를 넘겨드리려 합니다.”


“막상 좌중랑장께는 덤벼들었으면서 우중랑장은 더한 신경을 쓰는 군, 하지만 어째 그 배려가 우중랑장께 무례가 되진 않을까?”


“그저 빚을 지워두는 것이라면 좋을 터이고 설사 이를 무례하다 여겨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면 그땐 이를 제 공으로 돌려도 그만입니다.”


“허면 그다지 욕심이 없다는 말인데 그럼에도 우중랑장을 챙긴다는 건 역시 황문감과의 접촉 때문이겠지?”


“예, 얼추 맞는 것 같습니다. 허나 그 목적은 조금 다를 겁니다. 너무 눈에 띄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귀찮아서 말이지요.”


“권력 앞에 그리 덤벼드는 자네가 또 막상 전쟁터에서는 발을 빼는군.”


“같은 위험을 감수함에도 권력만큼의 득이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긴 하지.”


“거기다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귀찮은 것은 딱 질색입니다.”


“하긴, 토벌 잘한다고 또 반란진압 잘한다고 뭐 그리 대단한 게 떨어지는 것도 아님에 매양, 불려 다니며 일 잘 한다고 낙인찍혀 이리저리 남이 싸질러 놓은 똥이나 치우면서 천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고행은 이미 어사 시절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예, 열심히 일해봤자 일만 늘더군요. 돈이나 힘이 느는 게 아니라.”


“허나 그 밑에 장기짝마냥 자리한 작금의 우리에게 이는 그저 사치일 뿐이니, 달리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한 차례 자신들이 놓인 현실을 이야기한 대화 속에 저는 그저 그리 대화가 끝났음을 알고 이만 그 몸을 돌려 조조와 헤어지려고 했다.


“아, 내 한 가지 소식을 깜빡했군.”


“예?”


허나 돌연 그리 돌린 등 뒤로 다시금 저를 되돌아서게 만드는 궁금증이 있었으니 이내 그 이야기는 제게 역사의 일면이자 그 흐름이 뒤바뀌는 변곡점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그때의 그 사절, 황문의 인사가 찾아든 것 말이야. 아무래도 우리 측에만 자리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하옵시면, 북중랑장께도 이쪽과 같은 사절이 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분명 소황문 좌풍이라고......”


“쯧, 드디어 재수 없을 일이 터졌군요. 이러다 운이 좋게 저들의 봄이 더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저들의 봄이 길어지다니.”


“아닙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허면 저는 이만 먼저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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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1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8 4 17쪽
»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5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9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4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5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2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1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4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7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10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10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8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4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4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7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9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2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2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5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8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9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3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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