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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729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08.26 19:59
조회
173
추천
7
글자
20쪽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DUMMY

“주공,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당혹을 금치 못한 하모가 목청을 높이며 앞서가는 이를 향해 소리쳤으나 이는 소귀에 경 읽기에 불과했다.


너른 평야를 내달리는 전마들의 향연과 별개로 그 선두에서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흑마의 고삐를 쥔 저는, 여남에 자리한 황건적을 이끄는 이가 복사라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타오르는 조급함에 잠을 설치고 그 신경이 예민해지다 못해 행군 시간마저 앞당긴 채, 지금껏 내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제기랄, 내 언제고 이럴 줄 알았지! 이게 다, 양겸인가 뭔가 하는 놈이 죽어서 어쩌고 내 몇 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는데......”


다급한 안색의 누규가 저를 붙잡으려 내달렸으나 그 승마술이 부족한 모양인지 빈번히 저를 놓쳤고, 그에 앞선 조홍 또한 딱히 말을 잘 타는 이는 아니었기에 일찍이 하모와 더불어 그 뒤에 자리한 모양새였다.


두두두두-


그리고 사방으로 비산하는 흙먼지를 튀기며 내달리는 저의 바로 뒤에는 오직 단 한 사람뿐이었다.


황충만이 충직한 모습으로 제 곁을 지키며 그 속력을 높여 최대한 저를 따르고 있었다.


“한승, 그대라면 나를 이해할 테야. 그렇지 않은가?”


“구적(仇敵)에 대한 복수라면 당연한 것이나, 이에 쫓기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옵니다, 주공.”


“이거 서운하군. 그래도 임협인 자네라면 나를 이해해 줄줄 알았는데.”


“임협을 뛰어넘으라 임협의 틀을 깨라 임협을 넘어서라 매양 저를 다그치신 분이 바로 주공이십니다. 이제와 원한 그 하나에 미쳐 평정을 잃는 과거는 최대한 지양하고 싶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제기랄, 거 자꾸 뒤에서 힘 빠지게......”


그렇게 한참을 내달리던 제 말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안장 위에 자리한 주인이 더는 내달릴 의욕이 없으니 그 주인을 태운 흑마 또한 그 속력을 낮추며 서서히 제 달음박질을 멈추기 시작했다.


푸히히힝-


“잘 하셨습니다.”


“그래, 이제는 그 복수마저도 제대로 못 한단 말이지?”


어느새 멈춰선 흑마가 슬쩍 고개를 돌려 저를 본다. 이놈 또한 작금의 내 슬픔을 알고 있는 것일까?


“정확히는 복수 외에 것들도 생각하셔야 함입니다. 수하된 이들의 희생에 너무 휘둘리시는 것도......”


“아니, 나는 충분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내 일전에 말하였을 거야. 제아무리 귀한 수하라 한들, 내 목숨보다 귀하진 못해.”


“헌데도 이리 나오십니까?”


“아, 그래도 인간쓰레기가 될 순 없잖아. 알게 모르게 나도 내쫓기고 내몰리며 내 스스로가 나를 욕하고 채찍질한단 말이지. 그 지랄 맞은 본성 너무하다는 걸 나도 아니까. 내가 조금만 게을러져 버리거나 그 성정이 변모하면 그땐 진짜 이기적인 놈 되는 거야. 천하만민 다 죽여도 나만 사는, 그런 놈이 되어버린다 이거지. 물론, 이미 쓰레기가 되긴 했지만.”


“그래서 의뢰를 받아들이셨군요.”


“그래, 실상은 복수라 하나 거기에 공적인 약속과 의무 그리고 책임감을 더했지. 물론, 지금에 와서야 이리, 때때로 혼자만의 감상에 자책에 잠겨 이해하지 못할 돌발행동들을 내보일 뿐이지. 시간을 거스를 수도 없고 지난 일을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말이야. 때늦은 후회이자 발버둥이지. 새로이 주어진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고.”


“주공께선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을 하십니다.”


“흐하하하! 다른 이도 아닌 네가 내게 아부를 다 하는구나? 놀리지나 마라, 내가 누구냐? 하늘 아래 굽신대며 그 하늘에 오르겠다고 낙양 땅에 자리한 이들 삼천을 황천길로 보낸 사람이다. 그리고 노력도 그만한 결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그 의미가 퇴색되는 법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보다 많은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전란의 종식과 익주의 일을 생각한다면 죽이신 이들보다 살리신 이들이 훨씬 더......”


“그만.”


황충의 진심이 예까지 전해진다. 허나 그럼에도 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모든 게 나를 위함이다. 나를 위해서야 또 내가 자리할 세상을 위함이고.”


“대신 그 안에 주공의 사람들이 자리하게 되지 않습니까? 주공께서 약속하신 내외, 이미 많은 이들이 이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작금의 황충은 저를 위로하고 있었다.


허나 저리 순박하고 우직한 이에게 받는 위로는 도리어 제 폐부를 찌르는 것 같아 고통스럽다.


“빌어먹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난세 속에 자리한 살인자라고 해도 진정으로 그 의미가 다르달까?


일전의 하후연은 제게 살생과 살인에 대한 의미를 두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도 정확히 기억도 나질 않는다.


허나 그 와중에도 뻔뻔스럽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제가 황승의 스승인 무상교두를 죽음으로 내몰아놓고 딴에 그를 위로한다며 그의 사당을 찾아가 되도 않는 뻘소리를 늘어놓았다는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지금, 그것도 그 못난 과거가 제 뇌리를 떠나지 않으니 저는 부끄러워 그 얼굴이라도 어디에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체 너는 이를 어떻게 참았더냐?”


“무엇이 말입니까?”


“지난날의 위로 말이다. 고작해야 이러한 복수 하나에 휘둘리는 주제에, 내가 뭘 안다고 너를 찾아가서 돌아가신 네 스승의 위패 앞에서 되지도 않는 개소리를 씨부렸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


“역시, 그랬어. 듣기 힘들었을 게야, 그렇지?”


“그래도 당시의 주공께선 진심이셨습니다.”


“진심이면 뭣 하느냐? 수하만도 못한 못난 주인인 것을.”


스릉-


“그러고 보면 지나온 것들이 실로 후회스러워. 어느덧 양쪽 허리춤을 차지하고 있는 이 오구 또한 당연하게 여겨진 지 오래임에도 막상 그에 대한 복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잊어버렸고 뒤로 미뤘다.”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못난 과거로 점철된 기억 속을 헤집기에 그만한 과거의 상징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렇게 원영의 도움으로 형주에서 얻어낸 오구 하나를 뽑아들고 스스로를 자책한 저는, 이내 이를 스스럼없이 황충에게로 건넸다.


“주공......”


“받아라. 대신, 한동안 네가 사용하던 형님의 도끼도 이제는 정당히 되돌려받아야겠다.”


그 복수를 다짐하며 이 세상에 더는 존재치 않는 제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긴 의뢰를 수행하기 위함이었을까?


은연중에 이를 인지한 황충은 제가 건넨 오구를 받아든 뒤, 이내 자신의 허리춤에 자리한 패용을 풀어 사슴 가죽과 방울로 치장된 악광의 도끼를 제게 건네주었다.


쩔렁-


“무겁구나, 무거워.”


한때나마 신의 이름을 팔아 신을 농락하며 끊어질 뻔했던 과거의 연을 다시금 이어준 조홍은 이 도끼를 휘두르며 무겁다라는 소감을 제게 밝힌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그저 이를, 그가 이야기한 그대로 하나의 웃음거리이자 실없는 농으로 받아들였으나 막상 이리 그 도끼를 되돌려받고 나니, 어쩌면 여전히 그를 잊지 않은 조홍은 그 자리에서 제게 진심을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히히히잉!


“에휴, 겨우 따라왔네! 그러니까 거 작작 좀 달리라니까, 진짜! 어? 사람이 말이야 제아무리 이제 천화교의 화신이고 이 사람이 모시는 주공이라고 해도 그 정도가......!”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 입에 게거품을 물며 투레질을 하는 말 위에서 제 불평을 토로하다 이를 확인한 조홍이 이내 그 자리에서 굳어져 버렸다.


“알아보았구나.”


“그렇군요, 복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 그럴 셈이다. 내 수하의 죽음을 위로함은 물론, 당시 새로 의를 맺은 형제를 구해내지 못한 형님의 아쉬움까지 더해서 의뢰를 수행할 생각이지.”


“부절이나 다름없는 형님의 도끼를 넘겨받으셨으니 그 소유권 또한 이제는 온전히 주공의 것입니다.”


“알고 있다.”


그들.


운이 좋게도 지난날 제 밑에 들게 된 악광의 수하들.


그들 중 과거의 저를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 와중에 그와 함께하며 중상시 곽승의 밑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이들 또한 부족하나마 보다 많은 수가 살아남았다.


그렇기에 저는 온전히 그들의 죽음과 삶을, 곽승의 그림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그 찰나의 노력을 모조리 듣게 될 수 있었다.


이 또한 연이라고 죽은 양겸과 제 형님의 연은 그렇게 저라는 교두보를 통해 끈끈히 이어졌고, 한 가족이 된 것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위해 서로를 배려하다 그만 어긋난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래, 그래서 형님이 교에 들었던 게야.”


곽승이라는 존재의 밑에서 그 수족이자 도구로 또 사냥개로 살아야만 했던 그 삶이 대저 얼마나 비참했을지 실로 상상이 가질 않았다.


그리 순수하고 착실하며 솔직한 낭만을 품고 이상을 보던 사람이 더러운 진창이자 땟국물 속에 악취가 풍기는 시궁창과 쥐굴 속을 기어 다녔으니 어찌 회한이 들지 않으랴?


허나 그럼에도 그는 이를 통해 구원을 받기는커녕, 그와 같은 형제이자 가족인 제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것도 이토록 제가 아끼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황충의 손에 죽었으니 결국 이 모든 것이 돌고 돌아 제 손아귀에서 이뤄지고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불행을 책임지려면 어찌해야 하느냐? 스스로 내 목을 끊어야 하느냐? 아니면 홀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야 하느냐?”


그래서, 어쩌면 그래서 이러한 저를 두고 서구가 그리 독한 마음을 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실로 나는 해로운 새구나. 그래서 사람과 뒤섞여 살지 못하는 들개고, 짐승들 사이에서도 온전히 뒤섞여 살지 못하는 그 사이에, 그 경계에 자리한 들개.”


사람도 되지 못하고 짐승도 되지 못한 존재.


이도 저도 아님에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이 시대의 이방인.


이 시대의 간섭자.


“모든 것이 후회스럽다.”


그렇기에 저는 고개를 들어 제게 이러한 운명을 점지한 하늘을 원망했다.


우르릉-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그렇기에 저는 일찍이서부터 그 하늘에 가까워지고자 했던 제 과거를 후회했다.


꽈과가광-


“어이쿠! 마른하늘에 웬 날벼락이.....!”


순식간에 지축을 뒤흔든 천둥과 그에 뒤이어 하늘을 찢어발기는 날벼락에 놀란 이들이 제 귀청을 틀어막은 채, 이 땅을 향해 그 몸을 수그렸다.


“주, 주공! 어, 어서 몸을 숙이십시오! 하늘께서 노하십니다!”


오죽하면 말에서 내려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조홍이 천존 행세를 하며 저를 다 다그쳤을까?


허나 그럼에도 말등 위에서 연신 이를 지켜보던 저는 끝내 그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꽈과광! 쾅! 콰앙-!


“주, 주ㄱ.....! 으아아아악!”


“하, 하늘께서 진노하셨다! 천신께서 노하신다!”


사방에서 일기 시작한 벼락과 낙뢰는 이내 하늘과 땅의 구별 없이 천하 각지를 잘게 찢어놓기 시작했다.


“매양 그렇지, 흔들리지 않는다 해놓고서는 언제고 그랬냐는 듯 또 흔들리고 또 나약하고 유약하며 자기비하적인 모순 속에 허우적거리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그나마 이리 살면 이리 힘든 체를 하면 최소한도 이러한 나의 삶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이나 하늘 앞에 조금의 그 양심의 가책이라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야.”


어쩌면 그래서 작금의 저 하늘이 제게 이리 화를 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회를 주었건만, 하여 새로운 삶을 선사해주었건만 막상 이전과 같은 그릇된 선택에 똑같은 우를 범하며 저 스스로가 저를 망치고 자책하는 모솝을 과연 하늘이 반가워하기는 할까?


허나 반대로 내가 나를 죽일 수 없기에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원망한다면 이 모든 것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긴다면 과연 하늘은 이를 어찌 받아들일까?


“누가 예수를 빗대어 말하였다, 너희를 만든 것이 내 죄라고. 허니 내게 기회를 준 하늘, 바로 네가 바로 죄를 지은 게다.”


꽈과과광-!


순간, 하늘이 번쩍였다.


찢어질 듯 거대한 천체가 진노를 표하니 그 아래 번쩍이는 천광(天光)은 가히 하늘이 이 땅에 강림할 전조와도 같았다.


“두려울 것 없다. 겁먹을 것 없다.”


막상 그 하늘을 찢어놓고 있건만 정작 이 땅엔 그 어느 것 하나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 없다.


그렇기에 저는 스스럼없이 하늘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의 삶은 투쟁이요, 집념이며 저항의 끝에선 쟁취다-!”


그도 모자라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너의 배려가 나의 결실이 되지 않으며 너의 선택이 나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다!”


우르르릉-


과연, 제 목소리가 저 드높은 곳에 닿았을까?


하늘의 울음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아니, 이전과는 달라진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답이 없을 정도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 하늘이......, 하늘이 밝아진다! 비구름이 물러간다!”


“더는 뇌락(牢落)이 없구나, 원. 살면서 이러한 경험은 또 처음이니......”


어느덧 구름이 물러가고 모여든 어둠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하나둘 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조심스레 제 고개를 들며 하늘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여전히 그런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 *


쏴아아아아-


“이기적인 하늘 같으니.”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이 뜬금없이 제 앞으로 비구름을 몰고 찾아왔다.


“어디 보자, 부석이 어디......, 아! 여기 있었군.”


어느덧 제 손아귀에 보석처럼 빛나는 검은 돌 알갱이들을 쥔 복사는 자신이 자리한 천막의 입구를 좌우로 활짝 열어젖힌 채,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고 마주 앉아 경건한 자세로 신점을 치기 시작했다.


촤르륵-


하늘에 의존하는 그의 모습은 실로 영험하였으나 그럼에도 알게 모를 유약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험한 세상 홀로 자리할 인간이 대저 몇이나 돼?”


그러한 분위기를 읽어내리기라도 하듯, 그도 아니면 신점을 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은 하늘에 대고 한소리를 하듯, 복사는 뼈 있는 혼잣말을 내던지며 여전히 제 손아귀에 쥔 부석으로 말미암아 점을 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촤르륵-


“제기랄, 또 령(鈴)인가?”


몇 번을 부석을 뿌려도 얼추 그 모양을 이어 글자를 만들면 똑같은 글자가 나왔다.


“허면 이게 그만한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정작 그 의미를 모르겠으니, 참.”


답답한 마음에 그 부석마저 내던진 채, 방울을 쥐고 제가 모시는 신을 찾아도 그 속에 자신이 마주한 장면은 거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야, 이거 또 그 방울이잖아!”


쩔렁-


어쩌면 무언가 착각을 한 것은 아닐까?


다시금 두 눈을 감고 접신을 해보아도 여전히 제 눈앞에 자리한 풍경은 똑같았다.


이빨 자국인지 발톱 자국인지 모를 무언가가 새겨진 방울.


그 정체 모를 방울, 거기다 하필이면 저와 반대되는 들짐승의 가죽과 함께 매여져 있는 방울.


살면서 어디 이토록 똑같은 장면만 반복되었던 적이 제게 있기는 하던가?


“아, 하나 있었지. 상투 그리고 밧줄.”


어찌 된 영문인지 건석을 떠올릴 때마다 제 뇌리를 떠나지 않는 그 풍경은 실로 작금의 방울과 비슷하다 못해 같다 말할 수 있었다.


이쯤되면 거진 하늘이 이미 그 답을 정해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음에 자신에게 깃든 신이 이를 그대로 인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철벅철벅-


“복 장령! 복 장령!”


“음?”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 속에 신점을 보던 막사 앞으로 복사를 찾으며 달려오는 병사 하나가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이야?”


“큰일 났습니다! 적들이, 적들이.....”


“왜, 적들이 뭐?”


“적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뭐라-!”


순간, 저도 모르게 움찔한 복사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헤치며 밖을 나왔다.


주변을 그득 메운 빗소리와 뿌옇게 피어나기 시작한 물안개는 이미 그 주변을 살피는 이들의 시각과 청각을 모조리 차단시키고 있었다.


“장백은? 장백은 어디 있더냐?”


“소수의 병마를 이끄신 채, 폭우를 틈타 도망친 저들을 찾겠다며 방금 전에 군영을 비우셨습니다!”


“허면, 네놈은? 네놈은 양중녕이 보낸 것이더냐?”


“그러하옵니다! 양 장령 또한 본디 오늘의 정찰 임무를 맡으셨던바, 그 척후가 낌새가 이상하다 하여 적진의 코앞까지 자리하였으나 거진 철거하다 만 목책은 물론이고 절반 가까이 사라진 막사는 물론, 그들의 만든 화덕 또한 그 위에 자리한 솥 하나 없이 모조리 비어 있었사옵니다. 하여 장령께 이를 전하니 장령께서 당장 이를 복 장령께 알리라 하셔서.....”


쩔렁-


“제기랄! 손 문대 이놈이 머리를 썼구나! 이 폭우를 틈타 시간을 벌어 도망을 쳤어!”


저도 모르게 힘을 쥔 주먹에 자리한 그의 방울이 울었다.


빗소리와 맞물려 영롱한 울음을 내는 방울은 가히 알게 모를 영험함을 드러내는 듯했다.


“방울, 급작스레 몰려드는 먹구름과 비. 기우제. 천신제. 제길, 그런 것이었나?”


우르르릉-


구름이 부딪치며 갈라지는 하늘 속에, 이제는 확실히 인정을 해야만 했다.


예로부터 신을 받들고 하늘의 도움을 바라는 자는 그 손에 방울을 들고 이 땅에 축복과 축원이 내리길 빌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우제.


이번만큼은 하늘이 저들의 손을 들어주고자 하니 이를 바라지 않았던 제가 모시는 신은 제가 하늘에서 엿보았던 것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설명하고자 끊임없이 그 방울을 눈앞에 각인시켰던 것이었다.


“양중녕은 지금 어디 있더냐?”


“이미 휘하 속군을 이끌고 출진하셨사옵니다.”


“뭐, 뭐라고?”


“걱정하신 바는 알겠사오나 이는 걱정하실 바가 못 되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리 소식을 전하기에 앞서 장령께서 제게 언급하시길, 작금의 장백은 지난날 저들에게 패한 것에 대한 집착 덕에 이성을 잃어 그를 말리고자 함에 출진하신다 하셨사옵니다. 하여 혹시 모를 빗속의 난전에 대비해 그 병력 또한 휘하 삼천을 모조리 이끌었으니, 이 험한 빗줄기 속에서도 퇴각을 자처한 저들과 마주친다 한들 장백마냥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아니라고.....”


“그게 무슨 상관이더냐!”


“예?”


“어리석었다! 이 모든 것이 그릇된 오판이었다!”


복사 또한 처음에는 이를 퇴각이라 받아들였다. 애초에 손견은 이미 한 차례 퇴각을 시도한 전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허나 파재가 본군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했다는 보고가 도착한 것이 얼마 전이었다.


애초에 손견이 주준의 지원을 위해 그쪽으로 달려간다 한들, 그 지원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대병을 이끌었으니 이는 도리어 자신들이라는 외부의 병력을 그냥 자유롭게 활개 칠 수 있도록 놔두는 꼴이 되어버린다.


“안에서 파재가 압박을 가하고 바깥을 돌며 우리가 적을 두들긴다면 작금의 관군이 내세운 포위망은 그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존재의 가치가 사라졌으니 사장되는 것은 물론, 도리어 안팎으로 자리한 이쪽의 유동적인 움직임에 더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지. 허나 어디 저들이 우리에 비해 모자란 이들이던가?”


아닌 말로, 후한 최대의 전력이다.


이미 한 차례 탁류의 이들이 내보인 전력은 자신들이 모조리 깨트린 뒤였고, 이는 그다음에 집권한 청류의 이들이 제 가진 바 모든 것을 쥐어짠 전력이었다.


거기다 일전에 분명 말하였을 것이다.


이미 이름난 황보숭이나 주준 외에 따로 공을 세우며 위명을 날린 봉명도 또 손견도 보통 뛰어난 이들이 아니라고.


특히나 앞으로 자신들이 상대하게 될 손견의 경우는 주변으로 받은 그 평가가 심히 일관적이었다고.


“위험하고 저돌적이며 교활하고 기다림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르르릉-


다시 한번, 세찬 빗속에서 하늘이 울음을 토했다.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나온 장백과 또다시 제 휘하 병력을 이끌고 본대로부터 찢어져 나온 양중녕이 그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이 폭우 속을 헤맬 것을 생각하니 금세 그 답이 나오는구나. 이놈은 퇴각을 빙자해 제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이 빗속에서 우리를 사냥할 생각인 게야. 그것도 하나하나 착실하게 붙잡아 물어 죽일 생각인 게지. 실로 그 성정이 승냥이 같은 놈이로다.”


소름이 돋아나는 그의 추론에 이를 듣고 있던 전령의 전신에 두려움이 서린 오한이 깃들기 시작했다.


허나 이를 마주한 복사의 눈은 이 빗속에서도 이전보다 더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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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0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7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3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8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3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3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1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0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3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6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8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8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6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2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3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6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8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1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1 7 23쪽
»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4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7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8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1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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