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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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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09.25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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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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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20쪽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DUMMY

“양성현에 가면 그때 너를 다시 한번 위로할 것이다.”


철컥-


제 손에 자리한 양겸의 칼이 다시금 도집에 박히는 소리였다.


그렇게 찰나의 감상 이후, 제가 마주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의 방문이자 선 연락과 더불어 찾아온 예견된 접견이었다.


“손견......”


“친분도 없고 내 상관도 아님에도 잘도 이름을 부르시는군. 아, 하긴 전장에서 그리 막 부르긴 했었지.”


이걸 기세등등하다고 표현을 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객기는 아닌 듯 싶고.


그래, 그러니까 어떻게든 기세등등하게 보이려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고나 할까?


그러한 그를 따라 다시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조무도 또 정보도 이번만큼은 아무런 말도 없이 당당히 자리한 것이 어찌 본다면 처음이었다.


이렇게 제 사람들과 손견의 사람들이 한데 마주하게 된 자리가 말이다.


“탈영병은 없었나?”


“있었소, 허나 그 수는 적었지.”


손견은 제 고개를 더더욱 뻗대고 있었다.


“아군으로 도망쳐온 도망병이 있습니다. 그자의 말로는 동요하는 이들은 제법 되어도 도망친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를 보좌하기라도 하듯 제 옆으로 다가온 하모가 이를 작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군.”


제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애초에 그 병력이 얼마 남지 않은 이이니 그 속에 동요가 일어도 그 안에서 감당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저는 이를 받아들였다.


물론, 어찌 이를 견뎌낸 것인지 그 방법이야 나중에 따로 알아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잠깐 걷겠나?”


“무슨 속셈이지?”


“물어볼 것도 있고, 이야기할 것도 있어 보이고. 어찌 되었든 볼일이 있으니 이리 나를 찾아오지 않았는가 해서 말이지.”


그러한 제 제안에 잠시 제 뒤에 자리한 정보를 보던 손견은 이내 그의 고개가 끄덕여짐과 동시에 이에 동의를 표했다.


저벅저벅-


군영 내를 걷는 걸음은 가히 말없이 내딛는 산보와도 같았다.


저도 손견도 그저 아무런 말 없이 군영을 빙 돌고 있을 뿐이었으니, 저는 그 침묵 속에 손견을 이끌고 저번처럼 임시로 설치한 분향소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스윽-


“여기는?”


“죽은 이들을 위로하는 자리. 물론, 이번만큼은 나만을 위해 양보된 자리이며, 처음으로 되돌아온 자리다.”


손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천막 안에 새겨진 위패와 향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한 자루의 칼이었다.


“저건, 복사의 칼인가?”


“정확히는, 복사가 나의 수하인 양겸을 죽이고 빼앗아간 것이지.”


“그랬군, 그래서 복수니 은원이니 뭐니를 이야기했던가?”


그제야 손견 또한 조금은 알겠다는 듯 그 고개를 끄덕였다.


“내 사람이다, 또한 나의 고객이기도 했지.”


“수족이면서도 고객이라, 이해를 못할 말이나 그 상심이 크단 것을 알겠다.”


그래서였을까?


어느새 임시로 마련된 향로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 그는 이내 두 눈을 감은 채 그 고개를 숙이며 죽은 이에 대한 예를 표했다.


“.......”


이는 저 또한 예상치 못했던 것이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제가 이곳으로 그를 이끌었으니 어쩌면 이는 그에게 반강제적인 권유라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그의 묵념은 진중했고 저는 그에 알게 모를 고마움을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었고 말이다.


“자, 그럼 이젠 본론으로 들어가 봐야지?”


그렇게 묵념을 마치고 제 몸을 돌린 손견은 이내 다시금 번뜩이는 눈동자로 저를 보았다.


“하고픈 말이 무엇이야?”


“조정에 오를 장계를 좀 맞춰야겠다.”


“장계를? 아, 그렇군. 허면 그리해야지.”


맨 처음에 저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애초에 제가 그의 수하들의 앞에 이미 복사의 목은 가져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긴 하였으나 막상, 조정에 올라갈 장계에서 전투를 치른 후의 보고가 달라진다면 필경 이는 그만한 논란이 생길 것이 빤한 그림이었다.


거기다 저는 황권을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저를 챙겨주거나 제 편을 들어줄 이가 있었고, 그에 비해 손견은 아직 주준 외에는 별다른 연줄이 없으니 아무래도 그 또한 이를 신경 썼던 것이다.


“한데, 실로 괜찮더냐?”


“뭐가 말이냐?”


“복사의 목 말이다. 결국, 네놈의 전공인 것인데.”


“전공이라면 이미 형주의 것으로 충분히 차고 넘친다. 도리어 너무 튀어봤자 그리 좋은 그림은 아니야.”


저라고 어디 조당에 자리한 이들에 대해 신경이 쓰이지 않을까?


이번 일이야, 원체 제 공명심이 앞선 손견이 욕심을 부려 그 뒤를 걱정한 것이기는 하나, 정작 그와 별개로 저는 몇 배는 그에 더한 신경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해 두고 알아서 굴러가도록 했으니 망정이지 그도 아니었다면 아마 저 또한 그 자리에서 뇌가 펑-하고 터져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와중에 또 저들의 과한 관심은 사절이니, 원 역사 속 황건적의 난으로 영웅으로 떠올랐던 황보숭과 주준이 도리어 중상시들에게 찍혀 시달리고, 그 와중에 청류의 이들이 들러붙어 그 사이에서 끌려다니다 정치적 입지를 잃고 무너진 것을 생각하면......


어휴, 저는 되도록 이를 피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갈량은 이걸 어찌 혼자 다 했을까?’


문득, 아주 우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옳은 비유는 아닐지 모르나 사람 위에 자리라고, 벌여놓은 것들을 한 사람이 모조리 처리하는 위치에 선 그의 능력에 가히 경탄을 넘어선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당시 익주의 상황도 어찌보면 지금의 혼란스러운 익주와 비슷했다.


원주민, 한인, 이족, 이전에 정착한 동주사, 또 그 후에 들어온 동주사들까지.


그 와중에 정치적으로 갈라선 입지는 물론, 지역 출신들과 무인과 문인의 갈등 또 관료들 사이에서 나뉜 학파적 성향과 연고주의까지 생각한다면 참,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 확실해 보였다.


‘헌데도 그걸 해냈단 말이지,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야.’


유비가 없는 와중에도 그 대의명분이 희석된 상황에도 그는 이를 해냈다.


그러고 보면 제 전생에서도 제갈량 무용론 비슷하게 해서 너무 거품이 많다고 이를 덜어내는 목소리들도 많았고 막상 그 리더쉽은 유비만 못하다는 이야기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그 모든 거품을 걷어내고 보고서라도 이 정도로 뛰어난 이는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국론 하나도 통일 못 시키는 이들 투성이에, 작은 것 하나에도 네가 옳네, 그르네 하는 세상이었지. 그 와중에 사람 치우고 지워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고.’


제 전생을 돌이켜보면 딴에 거창한 민주주의라는 대의제 속에 그 다양성과 양립성 또한 그리 건전하고 건강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저는 자리 위에 자리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했던 불온한 이였다.


“생각이 많은 모양이군.”


“아, 이거 미안하게 되었다.”


막상 제가 말을 뱉고도 그리 상념에 잠겨있으니 이를 손견이 기다려주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깨어난 정신은 어느덧 다시금 그에게 초점을 맞췄고 말이다.


“여하튼, 그대는 이것저것 재단할 것이 많은 이인가 보지?”


“그럴지도.”


“그래서 그대는 사람을 밟고 올라선 자리가 어울린다. 그 밑에 자리한 사람이 아니라.”


어, 그러니까 이게 인물평인가?


그것도 어떻게 된 게 손견에게 또 이런 소리를 듣게 되니 그 기분이 묘했다.


물론, 저도 그와 만난 이후 잠시 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긴 하였으나 막상 상대 또한 저를 두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지?”


“전장에선 실로 그 모습이 다인 줄 알았다. 허나 그럼에도 기절한 나는 끝내 그대의 손에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깨어난 뒤로도 도리어 굴욕과도 같은 배려를 받았다 여겼지. 허나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보니 또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뒤의 일을 신경 쓴다 뭐 이런 것이겠지?”


“그래, 앞을 보고 뒤를 보지. 그도 모자라 그 너머를 보고. 해서 처음엔 네놈이 약삭빠른 승냥이인 줄 알았다.”


솔직히, 이건 조금 기분이 나쁜 평이 맞았다. 제아무리 제가 권력에 기생한 행보를 보였다 한들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막상 원 역사 속에 저보다 더한 승냥이 짓거리를 한 게 바로 제 눈앞에 자리한 저 손견이지 않은가?


“지는. 권력의 동아줄 하나 잡지 못해 주준 눈에 겨우 들어 그거 하나 부여잡고 있으면서, 그래서 전공에 미친 듯 행동한 것 아니었나?”


“하긴, 그 말도 맞다.”


오, 충분히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막상 이번에는 그답지 않은 시원스러운 인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이 전장을 벗어나 그로부터 해방된 그의 시원스러운 일면이었을까?


수많은 이들이 그를 따른 것도 전장의 압도적인 리더쉽과 무용만 가지고 논할 수 없는 일이니, 도리어 그가 내보이는 이러한 모습들이 사적인 매력으로 다가온다면 지금까지 그 주변에 그 하나만 보고 모여든 수많은 이들에 대한 묘사도 그리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 이해할 수 있을 터.


그래서 저는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자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도와주랴?”


“도와준다?”


“네가 바라던 것, 어쩌면 내가 다 이뤄주진 못해도 조금씩의 도움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를 시험하겠다는 것이냐?”


“하, 이 답답한 게. 그래서, 너를 시험해서 내게 뭐가 나오지?”


“그야......”


“넌 지금 내게 줄 수 있는 게 없는 몸이다. 이를 알고 있기는 하더냐?”


“.......”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온다.


손견이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 있고, 이를 빌미로 그의 면전에서 원 없이 그의 현실을 깔 수 있는 날.


쩔렁-


“.......!”


그러한 와중에 고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이던 손견은, 이내 아주 익숙한 소리와 더불어 품 안에서 아주 익숙한 방울을 꺼내놓았다.


“어쩐지 이를 찾아도 없더라니.”


“그래, 내가 주웠다. 죽은 복사가 이를 쥐고 있었지.”


“방울이라, 방울.”


어쩌면 유치했다.


유치하다 못해 우스웠다.


다 큰 성인도 모자라 제 앞에 자리한 수많은 이들을 그 자리에서 베어 넘겨도 이상하지 않을 장수끼리 고작해야 그 손아귀에 딸랑이는 방울 하나 꺼내놓고 뭐가 그리 심각한 일인 양 이를 본채 이를 두고 고심하고 또 조심하고 있다.


조금이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들이나 무당이나 흔들고 마는 그러한 방울 따위 금세 다른 것으로 바꿔 달거나 아예 떼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방울에는 알게 모를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제게 있어 이는 악광에 대한 그 마지막 기억이자, 그 수하들을 이끌은 부월과 같은 가장 중한 상징이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조홍에게 듣기로 이는 신물이자 운명이라 했다. 복사 또한 이에 집착해 도리어 저를 집어삼키려 했다 한다.


“그래서 네게 이를 내어주려 한다.”


“.......”


“복사는 이것을 쥔 채, 스스로가 용이 된다 하며 죽었다. 죽는 그 순간까지 보주를 쥐었으니 용이 되고, 용이 되었으니 천명을 가진다 떠들어대다 죽었다.”


“한데 왜 이를 내게 주느냐? 가지면 용이 된다는 것인데.”


“이는 나의 천명이 아니다.”


“천명이 아니다?”


“나의 천명은 용을 낚는 것이다. 물수리가 되어 용을 낚는다.”


순간,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제가 받아들이고 이해한 두 가지로 말미암아 저는 제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이를 네게 준다. 그러니까 언젠가 이를 쥐고 죽어줬으면 좋겠다, 인가?’


실로 섬뜩한 말이다.


드러나기로는 이 방울에 값어치는 올리는 말과 다름이 없으나 그 이면에는 이를 가진 자는 죽음에 이른다는 저주의 결말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거기다 자신을 더더욱 소름 돋게 만든 한 가지.


‘물수리가 되어 용을 낚는다.’


어쩌면 실로 저보다도 더 오만하고 광오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말이었다.


남들은 용이 되기 바쁜 마당에, 평생에 이룰까 말까 한 그 꿈 하나를 위해 달려가도 실패하고 무너지건만 정작 그보다 더 높은 곳에서 이를 가져가겠다는 그 말은 가히, 황제보다도 더 위.


어쩌면 난세에 허울뿐인 황제를 쥐고 흔들겠다는 그만의 야욕이 담긴 발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의 품에 옹립된 황제라?’


물론, 당연 이는 저만의 착각이고 망상이며 가정이었다.


그러나 어디 난세를 산 손견이라고 저만의 야망이 없고 저만의 욕심이 없으랴?


당장에 제 새끼를 황제로 만들려는 하씨나 죽은 왕미인의 자식을 황제로 만들려는 동씨만 보아도 나오는 그림이다.


또 훗날에 이를 직접 증명한 동탁과 조조라는 예시는 이미 후대의 기억을 가진 제게 있어 당연히 함께 고심할 선례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는 네놈은 자리보다도 훨씬 더 위에 자리하고픈 사람인 게로구나.’


“뭐지, 그 눈빛은?”


“아니다, 잠시 생각이 깊었다.”


이기적이라 할 수 있을지언정, 저는 제 진심을 밝힐 수 없었다.


사람 위에 자리가 있고 그 위에 다시 사람이 있으니, 이는 곧 손견은 저보다 더 위를 바라며 추구하고 있다는 그 비유를 인정할 수 없었고 인정하기도 싫었다.


“사람 위에 서면 뭐가 그리 보이더냐? 뭐 그리 보고픈 것이 많기에 그리 높이 오르려 함이냐?”


“그러는 네놈은 자리 위에 서서 무엇을 하려 하느냐? 그 위라고 아무것도 없을 것인데 대저 무엇을 위하여 그리 높이 날고자 함이야?”


결국, 돌아온 것은 원론적인 답이자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가 확인할 수 있는 같은 것은 둘, 모두 똑같이 제 위를 바라고 있다는 점이었다.


쩔렁-


“.......!”


“받으마.”


이번에는 도리어 손견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녕 이를 받아들일 참이냐?”


“아, 그래야지. 대신 나 또한 네놈을 신경 써 주는 만큼, 네놈을 부려야겠다.”


“괜찮겠느냐? 너는 아직 우중랑장을 넘지 못한다.”


“전란이 끝나고 그 자리가 얼마나 이어질 것 같으냐? 재물이고 힘이고 뭐고 그 손에 쥐여줬던 것, 일이 다 끝난 후에는 다시 회수해야지.”


“결국, 또 우중랑장이라는 자리를 먼저 보는구나.”


“그러는 네놈 또한 나라는 사람을 먼저 보고 있고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짧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리 길지도 않겠지.”


손견도 저도 그렇게 무거운 눈빛 속에 서로를 보았다.


서로를 마주한 그 눈빛 속에 그 둘이 자리하게 될 그 너머를 보았다.


“........”


“할 말이 더 없다면 이만 전장의 보고와 장계를 작성하도록 할까?”


그렇게 손견과의 연수가 시작되었다.


장백, 양중녕 그리고 복사의 목을 벤 것은 손견의 공으로.


또한 복사와의 마지막 전투 이전의 두 전투 또한 온전히 손견의 공과 노력으로 치러진 전투이자 승전이었으며 그 마지막 전투는 공동으로 참여해 합당한 전과를 이룬 것으로.


어찌 되었건 저도 체면치레는 했고 거기다 손견 또한 지원군에 앞서 먼저 병력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을 그럴듯한 변명거리인 폭우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 이는 서로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각기 승전의 보고는 물론, 각기 상관을 거쳐 조정으로 올라갈 장계가 완성되었고 이를 받은 전령들은 각기 자신들의 직계 상관이나 다름없는 좌중랑장과 우중랑장을 향해 말을 달리며 멀어졌다.


“그리도 돌아온 소환령이라, 많이들 바쁜 모양이지?”


“전선의 변화가 말이 아닙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자칫하면 온전히 장사현까지 밀려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중랑장은 뭐, 병신이더냐? 한차례 꺾인 위명에 죽을 힘을 다해 막았을 것인데?”


“파재의 움직임이 빨랐습니다. 아예 병력으로 밀고 들어간 모양새라 좌중랑장의 부름을 받고 전격적인 후퇴를 결정한 모양입니다.”


“아니, 승전의 보고라고 장계를 올려보낸 지가 언제인데, 참.”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손견과도 헤어진 지 오래였고, 자신들 또한 더는 이곳에 머무를 연유조차 없었다.


이미 주변을 정리한 것은 물론, 자재를 비롯한 천막과 군량 등 짐은 다 쌌고 남은 것은 병력과 함께 이동하면 그뿐이었기에, 저는 더더욱 홀가분한 기분으로 제 앞에 자리한 하모와 편히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조정에서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을 내려보낸다 합니다.”


“허면 소환령이 떨어진 것도 좋든 싫든 그 얼굴을 비춰서 비위를 맞추라는 거네? 저들 딴에는 얼마나 배를 뒤집고 재롱을 부리나 충성심을 보겠다는 것이고?”


“아, 그렇게 너무 노골적이시면 제가 뭐라 답합니까?”


제 답에 미간을 짚은 하모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허나 미안하지만 이는 빤한 일이다.


북중랑장 노식의 경우만 봐도 소황문이 어쩌고 뇌물이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탁류와 결탁을 했든, 황문 내의 독단적인 결정이든 뭐든 간에 이들에 대한 견제가 필연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거진 이즈음일 것이다.


“그렇긴 하지? 내가 생각해도 좀 우습긴 해.”


“그래도 아버님께서 알려주신 바로는 중랑장께는 크게 해가 되지 않을 인물이 오는 것은 아니라 합니다.”


“이야, 우리 하모?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어지간히도 잘나가시나 보다, 어? 이거 되도록 빨리 만나야겠는데?”


그러고 보니 그가 아버지 어쩌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하하하, 아닙니다. 그저 자식이 걱정되어 이리저리 오가다 듣게 된 것을 알려주신 것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무슨 아버지가 하진이나 하묘도 아니고 어떻게 사절에 속한 이들의 신상 정보를 다 알아? 아니지, 잠깐만? 야, 혹시 너......, 설마!”


그러던 차에 최악의 가정이자 소름이 돋아나는 상상이 제 머리를 지배하고 말았으니, 순간 제가 그의 성씨를 확인했던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저는 그대로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아닙니다!”


“아니, 웃기네 이거? 야, 내가 무슨 소리를 할 줄 알고?”


물론, 이와 별개로 발끈하는 눈앞의 하모를 보아하니 괜스레 더 놀리고픈 마음이 들었다.


“허면 빤히 말이 끊겼는데 어찌 이를 모릅니까? 저는 대장군의 자식도 아니고 그 동생 되시는 숙달 공의 자식도 아닙니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성씨부터 다릅니다! 제가 수하가 될 당시 이를 확인도 안 해보시고 뭣하신 겝니까!”


“아이, 깜짝이야! 야, 씨! 그렇다고 빼액- 소리를 다 지르고 그러냐, 임마. 귀청 떨어지게.”


“아니, 그렇게 위험한 인물들 사이에 노출된 양반이 기본적인 것도 안 했으니 화를 내는 것 아닙니까! 아닌 말로 제가 어? 어디 청류나 탁류의 끄나풀이라도 되었으면 그땐 진짜 어쩌려고 그럽니까? 예? 어디 입이 있으면 말을......”


한데 이놈이 언제 이리 머리가 커진 모양인지, 아주 제 주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난리도 아니다.


“어후, 시끄러워. 이러다 내가 제 명에 못 살지.”


“부자사!”


“아아, 그만! 빼액- 그만이다, 임마!”


저는 여전히 씩씩대는 하모를 뒤로한 채, 얼른 두 귀를 틀어막고 막사 밖을 나왔다.


따사로운 햇빛 아래,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이들이 거진 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좌중랑장의 명에 따라 장사현으로 이동한다. 허나 그에 앞서 양성현을 거칠 것이다.”


그것이 사람 위에 자리한 이로써 그들에게 제가 내린 명이었다.


최소한도 사람을 밑에 둔 이상 제 아래 자리한 이들만큼은 어떻게든 챙기겠다는 초심, 그대로의 마음가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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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1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8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4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9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4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5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2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1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4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7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9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9 6 17쪽
»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8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4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4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7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9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2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2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5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8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9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3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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