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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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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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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DUMMY

그는 하늘이 제 손을 들어주지 않은 이 암담한 현실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전군을 소집해 전투태세를 갖춰라! 또한 지금 당장 사방위, 아니 팔방위 전역으로 척후를 풀어 군영을 벗어난 이들의 행방을 찾아라!”


교묘하게 하늘을 이용한 짐승을 앞에 둔 또 다른 짐승의 발버둥.


복사는 처음으로 제가 의존하던 그 하늘을 내던진 채, 저만의 용단을 내리고 있었다.


* * *


두두두두-


“찾아라, 필경 저들은 그리 멀리 가지 못하였을 것이다!”


사방에서 찰박이는 물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세차게 내리는 폭우 속에서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물안개 속에서도 혹시 모를 흐릿한 잔상 하나, 흐릿한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장백의 외침은 가히 처절하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허나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러한 그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던 그의 수하들이었다.


“근방의 뒤질 곳은 모조리 뒤졌습니다. 허나 적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장령.”


“심한 이는 저 홀로 사 리(약 1.6km)가 넘는 거리를 빗속을 헤맸사옵니다.”


이미 근 반 시진이 넘는 시간을 폭우 속에 행군과 정찰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밑도 끝도 없는 장백의 명령에, 말 그대로 그 어떠한 계획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져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그들이었다.


“으으으으.”


“하아-.”


“스읍-, 후우.”


이미 몇몇은 때아닌 폭우에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추위를 느끼고 있었고 그 외에 그나마 상태가 온전한 이들 또한 그치지 않는 이 축축한 빗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장령, 이만 돌아가심이 어떻겠습니까? 다들 춥고 지쳤습니다.”


“그 무슨 소리!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 아니면 도망치는 그놈을 어찌 잡는단 말이냐! 만일, 그놈이 온전히 병력을 유지해 도망치기라도 하면, 해서 주준을 비롯한 다른 관군들과 합류하기라도 하면 그땐 네놈들이 책임질 것이야!”


허나 이미 그 첫 만남부터 좋지 않다 못해 굴욕에 가까울 대패를 당한 장백은, 막상 자랑스럽게 나선 전장을 내달리는 그의 무용 앞에 절로 움츠러들었던 자신이 싫었다.


막상 칼을 뽑고 앞서 나서려고 해도 용기가 나지 않으니, 고작해야 일백도 되지 않을 기병대의 맨 선두에서 자신들의 진을 돌파하다 못해 이를 반으로 쪼개 그 한쪽을 잡아먹는 그 말도 아니 되는 광경을 목도하며 제게 스며들었던 두려움은, 곧 무능하고 겁먹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자 자기혐오로 이어져 지금까지 저를 괴롭히다 못해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장령, 혹 손 문대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굳이 이러실 필욘......!”


뎅겅-


“자, 장 장령!”


“감히,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느냐?”


쏟아지는 빗속에서, 수백에 달하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 목이 날아간 이의 시신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이는 저와 함께하는 이들마저 더는 함께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인 결과를 불러일으키고야 말았다.


“.........”


“자, 어디 또 내 앞에서 그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릴 이가 있더냐?”


순식간에 벌어진 참사.


자신들의 눈앞에서 시체로 돌변한 이는 바로 그런 자신들의 위에 자리한 상관이었고 이는 지금껏 함께해왔던 공동체 의식이 단 한 순간에 날려버리는 순간이었다.


“도, 도......, 도망치자! 도망쳐라!”


“자, 장 장령이 아군을 죽였다! 장 장령이 미쳤다-!”


푸히히힝-


“멈춰라, 이 잡것들아! 어서 멈추란 말이다-!”


찰나에 모든 것을 무너진 집단의 붕괴는 그렇게 각자도생이자 제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인 본능에 의해 시작되었다.


제 병기고 뭐고 당장에 이 사방이 보이지 않는 빗속에서 어떻게든 탈출하고 도망치기 위해 내달리기 시작한 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와중에 전마 위에 올라 그 통솔이 쉽지 않았던 다른 태평교의 군관들은 이미 벌어진 혼선과 혼란 속에 제대로 된 진압조차 벌이지 못했다.


“이놈들이....., 진정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 와중에 진정 미쳐버리기라도 한 모양인지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제 칼을 휘두르고 있는 장백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기랄! 이거 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음?”


그러던 차에 어디에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두두두두-


제 위에 자리한 상관이고 제 아래 자리한 병졸들이고 그렇게 모두가 미쳐 돌아버린 빗속에서 어찌할 줄 몰랐던 군관들은 마치 기마대가 달려오는 것 같은 그 익숙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그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설마, 아군인건가?”


“양 장령께서도 따로 출병하신다 했으니 어쩌면.....”


사람의 믿음과 바램은 그 무엇보다도 강해서 허상이라도 보이게 만들고, 환청이라도 들리게 만든다 하던가?


모두가 제 모든 것을 놓아버린 이 순간 속, 무의식적인 기적을 갈구하던 이들은 그렇게 저를 향해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다른 이도 아닌 양중녕을 비롯한 이들의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다.


“여기요! 우리가 여기 있소!”


“양 장령! 도와주십시오, 지금 상황이 말이 아니니 장령께서 장 장령을 말려주셔야 합니다!”


오죽하면 말을 타고 앞서 달려가며 양손을 흔들다 못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까?


어둠이 그득한 폭우 속 새카만 그림자와 같이 등장한 그들은 그렇게 저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도 연신 그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뿌연 물안개를 헤치며 점점 이쪽을 향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기요! 여기 우리가......, 커헉!”


허나, 순간 그 빗속을 뚫고 날아든 화살 한 대로 말미암아 그들을 제 동료이자 구원자로 철석과도 같이 믿었던 이들의 희망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절망으로 뒤바뀌고야 말았다.


“여기들 있었구나? 황건의 잡것들아.”


어느새 그 시위를 내려놓은 채, 이쪽을 향해 잔혹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는 그 누구보다도 붉은 두건을 쓰고 있었으니 이는 작금의 전장에 단 하나뿐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일 터.


“소, 손 문대!”


“자, 뭣들 하느냐! 아조(我朝)에 반하는 이 역도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와아아아아-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렁찬 손견의 외침과 더불어 물안개와 폭우로 뒤덮인 어둠을 뚫고 나타난 수많은 관병들이 여전히 혼란 속에 빠져 갈팡질팡하고 있는 황건적들을 덮쳤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제대로 진형은커녕 그 대열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잡졸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향해 칼을 찌르고 창극을 휘두르며 그간에 전투로 쌓여있던 모든 것들을 밖으로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예서 다 죽여야 한다!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그 와중에 연신 전장을 살피던 손견은 제 출세에 가장 필요한 적장의 목을 찾고 있었다.


언뜻 듣기로 미쳐버렸다고 하는데 세찬 빗속이라 말을 탄 이들조차 쉬이 구별이 가지 않는 상황이니 그 속에, 그가 내릴 수 있는 선택지는 아주 빤하면서도 확실한 효과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적장은 어디 있더냐! 손 문대가 여기 있다-!”


세찬 빗줄기와 물안개마저 흔들어버릴 거대한 외침.


마치 짐승이 포효하듯 빗속의 전장을 뒤흔든 그 외침에 한참을 뒤로 벗어나 도망치던 아군을 베어내던 장백은, 이내 그 눈이 뒤집힌 채 말머리를 돌려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손 문대애애애-! 네놈은 절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거기 있었구나! 내 오늘 너의 목을 발판 삼아 출세가도를 달려 큰 칼을 차고 천자를 배알하리라!”


그리고 그러한 그의 등장에 도리어 이를 기다리고 있던 손견 또한 그 입가에 감추지 못할 미소를 드리우며 장백을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하니, 그렇게 빗속에서 칼을 뽑아 쥔 두 사내가 서로를 마주한 순간 휘둘러진 검격은 가히 떨어지는 빗물을 갈라낼 정도로 빨랐다.


서걱-


“호오, 그래도 황건의 무장이라고 칼을 휘두르는 솜씨가 제법이로구나? 물론, 때는 늦은 것 같다만.”


“끄윽......, 끅!”


허나 애석하게도 상대가 너무 나빴다.


힘 하나, 속도 하나, 경험 하나, 그 무엇 하나 장백이 넘어서지 못할 압도적인 기량을 내포하고 있던 손견은, 그리 서로의 칼이 휘둘러지는 자리에서 저를 향해 휘둘러지는 그의 칼을 밀어내다 못해 그 너머에 자리한 장백의 목울대마저 함께 갈라버렸다.


“자, 다음은 누구냐!”


그렇게 제 말등 위에 그 몸을 수그리며 앞으로 고꾸라지는 장백을 뒤로한 채, 다시금 빗속의 전장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말을 달리는 손견을 막아낼 이는 없었다.


순식간에 둘의 성패를 갈라버린 일 합.


고작 단 한 합에 저들을 이끌던 대장의 머리가 날아가 버렸음을 알게 된 남은 이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다 못해 더한 두려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공, 대승입니다! 오백에 달하는 놈들을 거의 다 잡았습니다!”


어느새 신이 난 조무가 제가 베어낸 군관으로 보이는 이의 목을 들어 올리며 목청을 높였다.


허나 이를 마주한 손견은 그저 장하다는 듯 그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이내 제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향해 새로운 명령을 내리기에 바빴다.


“포로는 필요 없다, 모조리 죽여라! 도망치는 것들 또한 붙잡아 죽여라! 남은 이들은 당장 병력을 수습하고 이동할 준비를 마쳐라!”


“주공, 너무 급하십니다!”


“급해야 한다! 이 비가 언제 그칠지 몰라! 그 와중에 부자사 놈이 언제 이곳에 들이닥칠지 몰라! 그리되면 우리의 분전은 이를 위한 그간의 노고는 모조리 무용지물이 된다!”


“하오나.....”


“정신차려라, 조무! 이는 우리의 전장이야-! 마땅히 우리가 취해야 할 전공이자 전리품이며 죽은 이들을 향한 위로와 복수가 될 것인데 이를 저 서쪽 땅에 자리하던 형주 놈들에게 모조리 빼앗길 셈이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허면 되었다. 최대한 빨리 병력을 수습하고 이동할 준비를 마쳐라! 이 비가 그치기 전에, 이 물안개가 사라지기 전에 장백의 뒤를 따라 나왔다던 삼천에 달하는 놈들을 모조리 물어 죽여야 한다. 그놈들만 잡으면, 그다음은 형주 놈들의 지원 없이도 충분히 우리가 상대할 수 있다.”


순간 조무는 제 주인에 대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막상 그 원군이 필요하다 하여 이를 청한 것은 제 주인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도움 앞에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독차지할 기회가 오자 이를 기다렸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물론, 당연히 전장을 휘젓는 장수로서는 승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나 제 주인은 그 외적인 부분에서도 마치 전쟁을 치르듯 사람을 또 세상을 대하는 것 같았다.


“뭐가 그리 급하실꼬. 어차피 주공이라면 절로 오르게 되실 것을.”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제 주인의 출세와 상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디 작금의 이 땅에 이러한 장수가 있던가?


진정 장수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인사가 있기는 하던가?


“그렇기에 나는 주공을 따른다. 한계가 느껴지고 아쉬운 때가 있다고는 하나 어디 결점이 없는 존재가 사람이던가? 무엇보다.....”


스릉-


조무는 제 허리춤에 자리한 쌍칼을 눈여겨보았다.


날카롭다 못해 튼실한 것이 아주 양질의 명검이라 말할 수 있었다.


“수하된 이의 전공을 우선적으로 치하하신다. 이를 그 누구보다 배려하신다. 이마저도 빼앗아가는 파렴치한 것들과 그 그릇부터가 다르다.”


그렇게 혼자만의 독백을 끝낸 조무는 잠시 제 손아귀에 자리하던 모가지를 살피며 아쉬운 입맛을 다시다 이내 이를 내던진 채, 훌쩍 말등에 올랐다.


“이까짓 모가지야, 주공의 뒤를 따르면 수백, 수천 번도 더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복귀를 마친 조무를 비롯한 삼천에 달하는 손견의 병력은 한 차례의 전공을 빙자한 학살을 끝마친 채, 다시금 빗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두두두두-


그 와중에 일백에 달하는 병력을, 남은 기마대의 절반이라 말할 수 있는 전력을 각기 척후로 삼아 이 비와 안개로 점철된 전장의 전체를 향해 흩뿌리는 이들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라! 사방으로 흩어져 겹치는 곳이 없도록 샅샅이 뒤져라!”


복사를 비롯한 오천에 달하는 병력은 이미 군진을 벗어나 그 주변에 자리한 모든 것을 살피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복 장령 여깁니다!”


그러던 차에 빗속을 헤치며 나타난 전령 하나가 장백을 찾았다며 다른 이들을 모조리 불러들였고 그렇게 마주한 오백에 달하는 이들의 시신은 이를 마주한 복사로 하여금 그 이성이 흔들리다 못해 뿌리뽑히도록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짐승 새끼가 감히, 이 빌어먹을 승냥이 같은 새끼가 감히 누굴 죽여어어-!”


우르르릉-


복사의 슬픔과 분노가 덧씌워진 괴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아직도 내리쬐는 빗물에 그 핏기가 다 씻겨 내려가지 않은 것이, 막상 전투가 치러진 지도 얼마 되지 않은 듯 보이건만 그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숨이 붙어있는 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내리쬐는 빗속에서도 마주하게 되는 일그러진 얼굴들.


다들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던 모양인지 전장을 벗어나 등과 배를 보인 채, 저항도 해보지 못한 꼴로 처량하게 쓰러진 시체들.


이를 마주한 오천에 달하는 황건의 병사들의 전의는 실로 내리쬐는 빗줄기와 달리 진노와 울화가 뒤섞인 뜨거운 수증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찾아 죽이시지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비가 그치기 전에 저들을 잡아 죽이지 않으면 양 장령마저 공격받게 될지 모릅니다.”


“그 사지를 찢어 개먹이로 던져줘도 부족할 관군 놈들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다 죽여야 합니다! 모조리, 모조리 토막을 내야 합니다, 복 장령-!”


이미 군관들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그간의 패전에 대한 기억까지 뒤섞인 이 모든 분노를 한데 표출하고 있었다.


쩔렁-


그렇기에 복사는 다시 한번 제 손아귀에 방울을 쥐었다.


두 눈을 감고 방울을 흔들며 전장을 뒤엎는 음기와 사기 속에 절박한 심정을 담아 제게 깃든 신의 발자취를 찾았다.


허나 그럼에도 여전히 신은 제게 그 어떠한 것도 말해주지도 들려주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다만, 어두컴컴한 침묵 속에 떠오른 것은 도리어 이 빗줄기 속에 자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제 과거의 기억이었다.


- 이기적인 하늘 같으니.


- 제기랄, 또 령(鈴)인가?


- 방울......, 급작스레 몰려드는 먹구름과 비.


‘그리고, 그리고 또 뭐였더라.’


마치 머릿속에 포말이 이는 듯하다.


제 머리를 헤집는 기억이 물살 속에 산산이 흩어지고 부서져 내리는 파도와도 같다.


이내 잡힐 듯 하면서도 그다음의 것들을 내어놓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 속을 미친 듯이 헤집던 차에 알게 모를 무언가를 건네주는 느낌이 돌연 제 손이 닿았다.


번뜩이며 그 머리를 스치는 간절한 기적이, 신의 도움이 기이코 제게 도래하고야 말았다.


- 기우제


“그리고, 천신제.”


감았던 눈이 뜨여졌다.


쏴아아아아-


여전히 이 땅을 향해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제 주변을 그득 채운 물안개 또한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방법을 찾았다.”


그렇게 제게 귀를 기울이는 모두의 앞에 복사는 스스럼없이 자신이 찾은 해답을 꺼내놓았다.


“그게,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이 빗줄기를 지워낼 것이다.”


웅성웅성-


허나 그 터무니없는 소리는 소리가 미칠 파급력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작금의 복사는 전심전력으로 하늘을 상대하고자 그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창과 극의 대를 짧게 잘라 칼과 수극처럼 만들고 남은 자루로 제단을 쌓는다. 불을 피울 필요는 없으니 그저 그 안에 흙을 채워 하늘을 찌를 산의 형상을 만든다. 또한 천신제가 시작하면 징과 북을 계속 두들겨야 하니 이를 잊지도 말고.”


그렇게 시작된 명령.


사냥꾼이자 장령이라는 이면에 점을 치는 뱀이요, 신을 모시는 이로서의 족적이 자리하지 않았더라면 작금의 그를 따르는 이들 또한 정녕 이것을 미친 짓으로만 여겼을 터이다.


허나 작금의 자신들을 이끄는 복사는 수없이 많은 시간을 심지어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음에 복수와 기적을 바라는 감정들은 물론, 수많은 이들의 알게 모를 기대마저 그 속에 짙게 녹아들어 있었다.


“복 장령,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렇게 잘린 나무와 물기가 뒤섞인 질척한 흙으로 급히 쌓아 올린 작은 제단이 마련되었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를 빙 둘러 바깥을 지키는 병사들의 원진 또한 함께 완성되었다.


“그런가? 허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지키시게. 행여라도 제단이 무너지면 아니 될 것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를 지키시게. 바람이 불어와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 먹구름의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우리를 비출 때까지.”


“그, 그리하겠습니다!”


믿지 않으려 하였으나 그리할 수 없었다.


믿지 못할 수밖에 없으나 그리해선 아니 되는 것이었다.


제 갑주를 벗어던지고 상투마저 풀어헤친 채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보던 복사의 제례는 그렇게 경건하고 진중한 분위기 속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진행되기 시작했다.


스릉-


제 한 손에는 지난날 양겸에게서 빼앗은 오구를.


쩔렁-


또 다른 한 손에는 애초부터 제가 지니고 있던 방울을.


그렇게 제 양손에 자리할 것들을 굳게 귀고 빙그르르 한 바퀴를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 그는, 이내 그 희한한 몸짓을 지속하면서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 저만의 천신제를 시작하고 있었다.


“북을 두들겨라!”


둥- 둥- 둥- 둥-


“태초에 내 몸에 깃든 나의 신, 비렴(飛廉)이시어! 해동에서 건너온 그대! 몸은 사슴과 같고 머리는 참새와 같으나 그 한가운데 뿔이 있고 뱀의 꼬리를 지닌 채 무늬는 표범과 같은 나의, 천공(天公)의 바람이시어-!”


펄럭이는 장포와 풀어헤친 머리가 돌연 비바람에 휩싸였다.


“나는! 그대의 먹이이자 그릇이며, 그대의 일면을 닮아 그대의 유희 속에, 그대의 보살핌 속에 이생(異生)을 이어가던 복사요!”


그렇게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도 모를 거센 바람은 마치 회오리마냥 준비된 제단을 크게 돌아 어느덧 그 중심에 자리한 복사를 뒤흔들고 있었다.


“크윽! 시, 신이시어 나의 부름에 응답해준 것을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이리 나의 앞에 그 원대함을 느끼게 해주시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오! 허나!”


쏴아아아아-


허나 그러한 바람과는 별개로 급작스레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복사의 주변을 휘감고 있는 바람과 맞물려 이전보다 더 거세게 복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크흐윽! 그럼에도 일생에 단 한 번, 그대의 힘을 빌어 기적을 일으키고자 함이니! 그대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오! 이생의 반평생을 그대의 그릇으로 또 그대의 유희로 살아온 이 비천하고 가련한 나의 바램을, 이 바람을 들어주시오!”


휘이이잉-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그보다 더한 칼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거센 폭풍우는 이젠 제단의 중심에 자리한 복사뿐 아니라, 그 너머에 자리한 이들마저 함께 뒤흔들고 있었다.


“으아악! 바, 바람이 거세진다!”


“신이 강림했다, 진정으로 천신께서 강림하셨다!”


“흔들리지 마라! 병사들은 원진을 두들기고 징과 북을 든 이들은 이를 계속 두들겨라-!”


투구가 벗겨지고 깃대가 뒤로 넘어갔다. 방패를 온전히 세울 수도 없고 그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반신반의하던 것이, 이제는 실로 기적을 보고야 말았다.


오죽하면 그 마지막까지 그의 명을 따랐음에도 그 의구심을 놓지 않았던 군관들마저 이제는 제 투구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이를 유지하고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독려함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이 하늘을 밀어낼 것이오! 일평생을 그 하늘에 기대었으나 그 하늘이 나를 적대한 이상, 나 또한 더는 가만히 있을 순 없소! 하여 내 생에 처음으로 하나로 여겼던 둘을 이제는 진정으로 반으로 쪼개리다. 내 온전히 그대만을 모시고, 저 하늘을 내던지겠소!”


꽈과과광!


“끄하아악! 낙뢰다!”


“겁먹지 마라! 대열을 지키란 말이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광경이었다.


허나 그 미친 광경 속에서도 제 방울과 칼을 들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린 채, 그 어떠한 흔들림도 없이 비와 바람 속에 휩쓸린 복사는 사람의 간절함이 한데 닿아 그 모든 것이 뒤섞인 기이한 광경 그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 무도하고 악랄한 서토의 하늘을 보시오! 저게 어디 제 아래 자리한 이 땅과 그 위에 자리한 사람을 보살피는 하늘이오이까! 저건 악(惡)이오, 저건 탐(貪)이오! 세상 모든 것을 한데 긁어모아 뒤섞어놓고 제 뜻대로 모든 것을 굴리며 가지고 놀다 무너트리는 저것이야말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역천(逆天)이오!”


그렇게 다시 한번 목청을 높인 복사의 두 손이 하늘 높이 들어 올려졌다.


“다시 한번 말하리다! 이 복사는 이제부터 온전히 그대만을 섬기겠소!”


그와 동시에 거센 비바람의 한가운데로 내던져진 그의 칼과 그의 방울이 울음을 토하니, 이로써 그가 모시는 신이 어느덧 그의 몸에 깃들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잉-


“비, 비바람이 한쪽으로 내몰린다! 구름들이! 구, 구름들이 밀려간다!”


꽈과가과강-


“끄하하악!”


하늘이 반으로 쪼개질 듯 거센 낙뢰를 뿌렸다.


허나 그 와중에도 어느덧 불어오기 시작한 바람에 하나둘 흘러가기 시작한 구름은 마치 파도가 밀려나듯 거대한 하늘 바다의 격정적인 파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의 천신이시어, 이제 곧 만인의 숭배를 받게 될 모두의 바람이시어! 이 땅을 제 의지대로 간섭하는 저 간악한 서토의 하늘을 밀어내실 분은 오직 그대뿐이오! 오직 그대만이, 우리를 더 나아가 이 땅의 모두를 구원할 수 있소! 허니 부디, 부디 이 저주받은 서토를 구해주시오! 부족하고 그릇되나마 그간의 그대를 모셨던 이 미력한 몸뚱이를 그대에게 바칠 것이니 그대 또한 이러한 나의 명을 가져가 그대의 원을, 모쪼록 사무친 그대의 원을......!”


실로 신이 강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기도가 진정으로 하늘에 닿았기 때문일까?


순간, 하늘을 향해 솟구쳐 그의 손아귀 안에서 미친 듯이 흔들리며 울음을 토하던 그의 칼과 방울이 그의 손을 벗어나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르르릉-


그와 동시에 하늘이 크게 상처를 입기라도 한 듯, 거센 울음을 토하며 더 이상 일렁이는 격동을 이겨내지 못한 채 밀려나고 찢겨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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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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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9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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