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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076
추천수 :
5,507
글자수 :
4,187,164

작성
20.01.30 01:07
조회
14,155
추천
96
글자
19쪽

1장의 서 – 곽승

DUMMY

장양, 조충, 하운, 단규, 손장, 필람, 율승, 고망, 장공, 한리, 송전 그리고 자신에 이르기까지.


한때 십이성좌(十二星座)라 불리며 천하를 쥐었던 이 열둘에 달하는 별들 가운에 세월의 힘을 견디지 못하여 사그라진 불씨처럼 사라진 이들이 벌써 몇이나 되던가?


다각- 다각-


온전할 것만 같던 제 세상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이 자신들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나 이리 제 곁을 먼저 떠나간 이들을 생각할 때면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터.


이는 권력이란 절대로 영원히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약간의 변화에도 스스로 다른 곳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성질이 있음을 직접 두 눈으로 겪어 보았기에 느낄 수 있는 저만의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벌써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리에게 있어 위기는 우리가 발돋움할 기회가 되었고, 여전히 저 하늘 위에 우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는 사건이 되며 제 주제를 모르고 기어오르던 잡것들을 다시금 짓밟아버릴 수 있는 희열을 제공해 주었다. 언제고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그다음에 벌어지는 반복적인 일이라야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쉽사리 넘어갈 일. 결국 이리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거늘, 그저 앞일에 대한 대비만 철저히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거늘.”


흔들리는 마음에 위안을 삼으려 했던 것일까?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곽승은 이내 그 걸음을 멈추고 제 뒤를 바라보았으니, 천하를 쥔 자들의 표색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환관의 복색을 걸친 자신의 뒤로 무려 수백의 인파가 그 끝을 모른 채 길게 늘어져 그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자신을 호위하는 일련의 군사들을 시작으로 제 휘하의 이름을 떨치는 상객들과 뒤이어 소달구지를 필두로 수많은 봇짐을 메고 따라오는 하인들까지 이어지는 긴 행렬에 주변이 이름 모를 백성들 또한 절로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를 피했고, 공인들과 상인들은 급히 제 점포에 천막을 치며 행여라도 제게 무슨 불똥이 튈까 하는 두려움 속에 다급히 그 문을 걸어 잠그기 일수였다.


이뿐이랴?


간간이 보이는 사대부들의 무리 또한 자신의 행렬과의 마찰을 피하고자 했는지 그 고개를 돌리며 방향을 틀고는 저 멀리 발걸음을 옮겼음이니, 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만백성의 가장 위에 있다는 선비들에서부터 가장 밑바닥에 해당한다는 백성들까지 모두가 자신을 알고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중상시라는 자리.


천하에 단 열둘에 밖에 허락되지 않는 하늘을 나눠 가진 십이상시라는 자리.


저들 모두가 제 말 한마디면 그 자리에서 그 목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일족까지 모조리 잡아다 죽여도 그 누구 하나 자신에게 죄를 묻기는커녕 잘한 일이었다며 아부와 아양을 떨어댈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신이 놓으려 해도 놓을 수 없는 권력의 달콤함일 것이다.


“그래, 그러면 되는 것이야. 곧 죽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 나타난다면 죽여줄 것이고, 권력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다면 언제고 저리 내 존재를 본 것만으로도 벌벌 떨게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며, 충실히 내 사람이 되겠다면 그 밥그릇을 던져주면 되는 것이야. 나는 하나만을 보고 살아와, 그 하나로 지금껏 이 자리에 올랐음이니 언제고 내가 걷는 이 길은 옳고도 옳으며 이 모든 것은 나로 인해 증명된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막연하고 추상적인 권력을 지닌 권력자도 그 본질은 한 개체에 불과한 나약한 인간이었으니, 이리 자신에게 최면을 걸지 않으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할 터.


어찌 스스로의 죄를 모르랴 만은 그보다 더한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놓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이 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겪어온 세월 속에 녹아든 경험이었으니, 이 두 가지가 여태껏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왔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뭐가 그리 눈치 있는 척을 하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아주 별에 별 놈들이 다 모여 들었구나. 개도 아닌 것이 제 주제도 모르고 냄새나 맡을 줄만 알고 있으니, 이를 어이하면 좋을꼬.”


그리 마음을 다잡던 와중, 어느덧 도착한 신야현의 초입에는 벌써 수천의 무리가 북적여 디밀고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일행을 제외하고도 수많은 방문객들이 그 목적이 있어 이곳을 찾았음을 의미하는 바였다.


크게는 상단의 대표와 호족의 인사들로부터 작게는 이름 없는 문사와 그저 피로 그 인연이 엮였던 혈족의 방계까지.


각지 각층의 인사들이 그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이리 한자리에 모인 것에는 자신과 함께 빛나던 열두 빛깔의 별들 가운데 또 다른 별이 그 빛을 잃고 지게 되었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음을 과연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그것은 자신의 고향 선배 격이자 앞선 시대의 인물이라 칭할 수 있는 중상시 조절의 죽음이 생각지 모를 영향을 영향력을 정국에 끼칠 수 있음을 나타내는 바이며, 그의 장사(葬事)가 바로 이곳. 그의 고향인 신야현에서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제 동향 사람이자 고향 선배나 다름없는 조절은 역사 속에서 환관의 길을 개척하는 것에 있어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이었고, 그 권력을 향한 그의 행보 또한 약삭빠르면서도 거침이 없이 내달리는 말과 같았다.


물론 말년에 이르러 그 위기가 잦았으나, 단 한 번도 직접적인 정쟁(政爭)에 의해 온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으며 그 끝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천수를 다하여 생을 마감했으니, 가히 그 모습이 훌륭한 표본이자 본받을 만한 선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삶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자신 또한 이를 은연중에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 이 곽승 또한 그러했지.”


저 또한 황상(皇上)의 옆에 계신 비를 비롯하여 하씨 일족을 밀어주며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며 화려하게 날아오른 자였다.


그 어떤 실패를 겪지 못했고 그 누구도 직접 자신과 적대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제 선배인 조절의 젊었던 시절과는 어느 정도 닮아있는 것일 터.


허나 이 모든 것을 연결시킨 가장 큰 성공의 고리는 바로 출신과 연고를 바탕으로 한 지역주의에 기인하였음이니, 바로 이 모두가 동향인 형주 남양군 출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부정부패를 시작으로 국정의 농단은 기본이고, 법제의 의미가 없으며 관직마저도 그 가치가 무너져 내려 매관매직이 빈번했던 시대상이 보여준 마지막 기준점이자 결과물이었을까?


조정의 위치마저 영원히 장담할 수 없기에, 믿을 수 있는 자를 구분하고 제게 힘을 줄 수 있는 후학들과 제 사람들을 양성하여 끝없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그리고 서로가 뭉쳐 힘을 합하여 이 힘든 시기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 나고 자라는 출생지이자 연고지였으니, 이는 혈연(血緣) 다음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지연(地緣)을 말함이었다.


“허나 이것으로 형주는 온전히 이 곽승의 발아래 드리워지는 것이니, 이 또한 그리 나쁜 결과물은 아닐 터. 생각해보면 이 형주는 풍운이 이는 땅이란 말이지, 조 선배의 일도 그렇고, 하씨 일족의 일도 그렇고, 이 곽승 또한 같은 형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던가?”


조금 전의 묵직했던 불안은 이제는 먼 옛일이 되어버렸던 것인지, 아니면 조만간 자신을 받혀주게 될 이 땅의 영향력을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어느새 미소가 그의 얼굴에 훤히 자리하고 있었음은 진정 거짓이 아니었다.


대저 언제고 가슴을 졸이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삶은 살아가는 이들은 의외로 권력에 가까운 자신과도 같은 자들이 아니었을까?


“중상시이신 곽승님께서 드시옵니다!”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에 바다가 갈라지듯 수천의 인파가 좌우로 갈려 예를 표하니, 순식간에 상이 치러질 준비를 하는 전각까지 하나의 길이 만들어졌다.


만인이 고개를 수그림은 물론이오, 소식을 들은 현의 현령과 관련 인사들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어쩔 줄 모르며 일행을 맞이했고 그 행보를 시작으로 중구난방과도 같았던 상객들이 차례대로 신분에 맞게 그 뒤를 따라 고래등과도 같은 상갓집에 그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어 만대의 영광이......”


“고명하신 대인을 이리 뵙게 되어.......”


“참으로 삼세에 홍복이 아닐 수 없습......”


권력이 무상한 것인가, 아니면 사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일가?


분명, 상을 치루는 곳의 주인은 따로 있었건만 향불을 피우고 죽은 이의 명패 앞에 명복(冥福)을 비는 행위는 잠시였을 뿐, 모두가 단 한 사람과 그의 일행이 자리한 곳으로 모여들었음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이라도 그의 눈에 들어보고자 쉼 없이 눈치싸움을 하며 그 앞에서 인사를 올려대는 것이 참으로 가관이니, 그저 억울한 것은 죽은 이 혼자만으로 충분할 터.


허나 제아무리 가관인 광경이 벌어졌다 해도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한 발버둥이라면 그 평가는 사뭇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제는 온전히 자신이 형주의 주인임을 알기에, 그 누구도 아닌 이 지역을 대표하여 줄 인사가 자신만한 이가 없음을 알기에, 저들도 저리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손을 비비는 것인데 어찌 이를 쉽사리 물릴 수 있을까?


거기다 인사를 오는 이들마다 노골적으로 봇짐 하나는 우습게 넘길 무거운 것들을 자신의 앞에 갖다 바치니, 이는 먼 길을 짊어지고 온 그들의 고생을 생각하고 그 성의를 생각한다면, 어찌 이를 기쁜 마음으로 받지 않을 수가 있을까?


물론 자신 또한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오며 도가 튼 인사였기에 그들의 가져온 양만큼은 못하나 최소한의 성의이자 그들을 잊지 않겠다는 증표로서 물건을 바친 이들의 손에 제가 가져온 것들을 조금씩 풀어주었다.


대저 사람이란 주고받은 것이 있어야 서로를 기억하는 바이며 서로에게 믿음과 신뢰가 쌓인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광경을 두고 하는 말일 터.


그러나 나쁠 것은 없질 않던가?


조문객들 간에 인사를 나누며 안면을 트는 사이에 약간의 오가는 정을 주고받는 것은 언제고 따스하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인데 말이다.


“현령, 신야 현령은 어딜 갔는가?”


“예, 예! 소, 소관 여기 있사옵니다!”


“무얼 그리 얼어있는 게야? 이리와서 내가 내리는 술이나 한잔 받게.”


“아, 아이고......, 이 갑읍하고 또 감읍하여 어찌......”


“내게 있어 가장 중한 분이셨고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선진이셨네. 또 함께 이 형주를 위해 노력하는 사이이기도 했지. 그런 분의 장례를 이리 잘 치르게 도와주었음이니 내 자네의 그간의 노고를 위무하고자 이리 술 한 잔을 내림세.”


그렇게 무려 두 시진이 흐르는 시간 동안을 수많은 떨거지들에게 믿음과 신뢰를 심어주며 제 사람으로의 교분을 나눈 저는 잠시 자리가 차분해 짐을 느끼고 이곳 신야현의 현령을 불러 곡주 한 잔을 내려주었는데, 그는 그제야 초조했던 기색을 풀고 더없이 기쁜 가식으로 자신이 내린 잔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자, 쭈욱 들이키시게.”


“예? 예! 중상시 어른! 실로 감읍하고 또 감읍하나이다!”


벌컥이며 술이 들어가는 소리와 꿀렁이는 목젖이 움직이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 잔이 흘러넘칠 정도의 양이었건만, 어떻게 해서든 단 한 방울의 술도 흘리지 않겠다는 듯 꾸역꾸역 이를 제 목구녕으로 밀어 넣는 그의 모습이 게걸스럽게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여겨졌다.


기실, 현령이 무에 죄가 있겠는가.


그 또한 어떻게든 자신의 눈에 띄고 싶었으나 그럴 능력도 배경도 없으니 그저 하릴없이 차례를 기다린 것일 뿐.


그러나 그러한 현령의 사정을 자신이 생각해준 것은 다 그만한 연유가 있어서였음이니 자신 또한 그에게 볼일이 있어 만인의 앞에 이리 그를 챙겨준 것이었다.


“그렇지, 그렇지! 이거 신야 현령은 술이 장사로구만, 하하하!”


사실 저 떨거지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현령의 자리이다.


의외로 작은 곳을 관리하는 현령은 사실 생각보다 그 값이 많이 뛰지 않아 매관매직용 돈벌이로 시원치 않았음인데, 바로 그 특징을 바탕으로 하여 보다 상위의 직인 한 군을 다스리는 태수와는 사뭇 다른 형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바이며 현령의 가치를 높게 치는 이유였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한 군을 다스리는 태수는 제법 그 벌이가 쏠쏠하다 못해 인기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하여 태수의 직을 놓고 매관매직을 하는 경우가 끊이질 않다 보니 채 일 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리가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러다 보니 엄밀히 자신이 다스리는 군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들이 대다수였던 점이 극심한 문제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제대로 관곡조차 거두지 못해 도리어 매관(買官)을 하고도 그 목이 잘리는 불쌍한 사태까지 벌어졌음이니, 대체 어떤 이가 그 군현에 물을 일이 있다 해도 태수에게 이를 묻겠는가?


차라리 태수를 보좌하는 이들에게 묻거나 그 아래 직급인 현령과 휘하 속관들에게 묻는 것이 더 빠른 편일 것이다.


애초에 현령과 같은 이들의 경우 한 번 직에 오르면 그래도 태수에 비해 그 자리가 제법 오래 보전이 되다 보니 그 지역의 일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전문성을 띠게 되었으며, 명색이 행정직에 자리한 관리다 보니, 어지간한 토박이들보다 정확하고 많은 사실을 아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해서 저도 어지간하면 태수보다야 그 아래 자리한 이들을 되도록 상대하려 했던 것이고.


“후우우......”


그 와중에 생각을 마치고 현령의 안색을 살피니 조금은 붉어져 있는 것이 그 술이 과하긴 과했던 모양이었다.


허나 도리어 저리 긴장과 흥분이 뒤섞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야말로 더욱 수월히 일을 진행할 수 있음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곽승은 이내 그를 불러세운 채 은연중에 본론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내 조만간, 이리 친분을 다지게 된 형주의 지인들과 마주할 자리를 한 번 가지고자 함인데, 현령께선 이를 어찌 생각하시는가?”


“가,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본디 이 드넓은 형주에서 제대로 자리를 가지려면 적어도 완현 정도는 되어야 옳은 것이겠으나, 이곳이 벽촌이라 해도 운치가 있고 풍광이 좋으니 소소히 모임을 가지는 것에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네. 거기다 이 사람을 이끌어주신 은인이셨던 조 상시님에 대한 추모의 뜻이 이에 담겨있으니 현령께서는 조만간 많은 이들이 함께할 장소를 물색하여 주셨으면 좋겠고 말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그 사람을 평가해보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일을 어찌 완수하느냐에 따라 그 대우가 달라짐은 물론 제 인생에 출셋길이 열리기도 한다는 뜻이니 이는 제게도 기회가 찾아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곽승은 지금 그에게 기회를 던져준 셈이었다.


“꼬, 꼭! 이를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당연히 그 반응은 자신이 예상했던 그대로고 말이다.


“그러시게. 하고......, 내, 그대가 자리를 마련할 때까지 잠시 이곳에 머물 터이니, 그동안 이 근방에 풍문이나 구설수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이들이 있거든 그 이름이나 한번 알려주셨으면 해. 선인(善人)을 원하는 것만은 아니니 악명(惡名)이어도 좋고, 그저 그런 뜬소문이라도 좋으니 제법 그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었으면 좋겠네만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렇게 착각 아닌 착각에 빠져있는 현령을 뒤로하고 자신은 진정 묻고자 하는 것을 꺼내 놓았다.


이는 이번에 죽은 조절로 인하여 생긴 빈자리와 그의 영향력을 남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온전히 먹어치우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새로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이 과도기 속에서 어찌 펼쳐질지 모를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연신 실실대는 현령은 잠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지 그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아.”


멀끔하게 생긴 외관(外觀)과는 달리 어지간히 대가리가 나빴던 것인지 그러한 그를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왜겠는가?


바로 저리 멍청한 자들이 가끔씩 큰 사고를 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저들은 그 의도란 것도 파악하지 못한 채 주변에 입을 열어 훗날 화를 초래하거나 오해가 붉어져 다른 이들까지 싸잡아 피해를 보게 만드는 전염병을 퍼트리는 병자들과도 같은 존재들이었으니, 이래서 자신 또한 필요에 의해 만나지 않는 한은, 저리 저급한 것들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허나 어찌하겠는가? 지금 자신은 그 필요에 의해 이 자를 상대해주고 있는 것이거늘.


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란 언제고 그 언행에 명분을 드러내 다른 뜻을 주어선 아니 되며 중의적으로 행동하여도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으니, 언제고 모든 것을 분명히 하라는 말처럼, 자신 또한 이자의 뇌리에 왜 이를 묻게 되었는지에 대한 거짓된 뜻을 자연스레 심어주어야만 했다.


“제아무리 현령이 일개 고을을 돌보는 하직(下職)이라고는 하나, 어찌 나랏일에 고하(高下)가 있으며 어려움이 없을까? 하여 내 여유가 있다면 조금이나마 이를 돕고자 함이니, 다음에 시간이 나거든 한 번 이 사람을 찾아와 이 땅에서 속을 썩이는 일들을 속 시원히 털어놔도 좋다는 소리네. 본디 고관(高官)의 책무 중 하나가 지방관들을 위무하는 것이니, 내 좋은 술 한 병 준비하여 그 안주로나 삼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야.”


그제야 현령은 이를 알겠다는 그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돌아갔으나 막상 이를 받아들인 곽승은 그런 그의 덜떨어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어쩌면 앞으로 이 땅에서 제가 벌일 일들이 생각보다는 그리 쉽게 풀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조짐이랄까?


“그럼에도 내게 다른 대안은 없음이야.”


천하가 요동치고 있다. 세상이 삐걱이고 있다.


조당도 안정치 못하며 하늘도 무심하기 이를 데 없고 황궁 또한 다를 바가 없었다.


“땅이 꺼지고 하늘마저 무너진다면, 그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또 어떻게든 발버둥 치기 위해서라도 날개를 가져야지. 해서 나는 날아오를 것이다. 저 위로, 더 높이.”


그것이 이곳, 남양을 찾은 곽승의 다짐이었다.


작가의말

드디어 시작합니다. 여기까지 오기를 꽤 오래 걸렸네요.


*건의가 들어와 좀 더 문단을 짧게 나누는 쪽으로 수정했습니다.


*3월 6일

또다시 덧글로 이번 화의 가독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수정요청 들어왔습니다. 물론, 저 또한 그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싶어 고심 끝에 이번 화의 글 전문을 전적으로 수정했습니다.


하여 부족하나마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히 글을 보게 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허면 편안한 감상되시길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5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1.10.29 14:49
    No. 31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분들이 추억하시기에 조금은 세월이 흐른 옛 글의 향취와 딴에 비슷할지 모르는데 나름의 진정성있는 부분에서 제 글을 높게 봐주시는 것 같아 저는 감사할 따름이죠.

    저조차도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많은데 그간 많은 글을 읽어오신 분들에 눈에 쉬이 차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마음을 비운채 그저 시간날때마다 조금씩 써 올리는 중이며 그나마 그속에서 나아지는 부분이 있나 살펴보고 있는 중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카놀
    작성일
    21.10.28 23:05
    No. 32

    아 그리고 전개가 극도로 느립니다 참고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1.10.29 14:50
    No. 33

    심히 느립니다 제가 생각하기도로 미칠듯한 장편을 계획한지라 ㅠㅠ 그 부분은 일말의 변명도 없이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딴에 부족한 필력에 계획은 장대하고 실험적인 요소에 거기다 봉합수술에 가까운 짜집기도 밀어넣은 터라 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바질리스크
    작성일
    21.11.25 22:50
    No. 34

    40화까지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네요 10화정도까지는 좀 집중이 안되는 느낌이었는데.. 이후 쭉 몰입하고 있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4 필성필성필
    작성일
    21.12.03 10:08
    No. 35

    어유 아닙니다 많이 부족하고 늘어지고 결국 너무 분량을 늘이다 보니 당장 1부에서 그칠 글인데요. 좋게 봐주시니 제가 다 감사할 따름입니다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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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소설에 관하여 +4 20.01.30 2,839 0 -
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2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9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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