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673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08.23 01:52
조회
170
추천
7
글자
21쪽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DUMMY

“가로막는 것들은 모조리 짓밟아라!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모조리 뒤로 떠넘겨라!”


전장을 가르는 우렁찬 목소리와 더불어 붉은 두건을 두른 손견의 칼이 좌우로 휘둘러졌다.


순식간에 팔이 잘리고 목이 베인 이들이 말에서 떨어져 내리며 그의 앞을 터주게 되니, 그런 손견의 뒤를 따르는 조무를 비롯한 기병들은 이에 질세라 그의 뒤를 따르며 사천에 달하는 병력의 한가운데로 삼각형 모양의 추행진을 취한 채 미친 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적병을 반으로 가른다! 4천을 둘로 찢어 2천을 만들고 그 둘 사이로 보병을 집어넣어 영구적인 틈을 만든 뒤, 저들을 돌파한 우리가 그 뒤를 쳐 찢겨진 병력을 한쪽씩 잡아먹는다-!”


손견의 명령에 그 옆을 따르던 조무가 한데 모은 두 손을 하늘을 향해 올린 채, 이를 좌우로 넓게 펼쳤다.


이에 비좁은 삼각 꼴의 형태였던 것이 더한 균열을 만들어내기 위해 이전보다 널찍한 넓이를 가지게 되니, 어느덧 적들의 한가운데를 내달리는 손견의 후미는 거대한 부채꼴 모양을 띤 기병대가 넓은 간격을 유지한 채, 그의 뒤를 받치고 있었다.


“좌군사마의 뒤를 따른다! 저 빈 곳을 향해 힘차게 내달려라!”


졸지에 벌어진 간격에 절로 자신들의 한가운데를 내달리는 손견을 포위하려던 이들 또한 쉬이 그를 포위할 수가 없었고, 그렇게 뚫린 자리의 공백을 뒤로 이제 막 도착한 손견의 보병들이 엄청난 기세로 들이치자 황건의 이들은 쉬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저들 또한 제아무리 훈련된 정예라 하나 애초에 장병기를 들고 방진을 짜 행동하는 등의 군집훈련은 한계가 있었기에 주로 수적 우위, 개별 전투력과 도와 검 같은 짧은 단병접전이 선호하던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다.


거기에 앞서 충돌이 있기 전까지 저들의 돌진을 저지할 궁병의 부재 또한 작금의 혼란을 초래하는데 일조했다.


부족한 저지력은 저들의 전심전력과 전속 돌파를 그대로 허용한 꼴이었고, 이는 순전히 기세등등하던 자신들의 예상 따위 애초부터 뒤집어버린 손견의 엄청난 통솔과 무위를 그대로 맞아드는 격이었다.


쿠웅-


“으억-!”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말과의 충돌은 사람의 뼈가 으스러짐과 동시에 고꾸라지거나 그대로 튕겨져 나와 험한 꼴로 바닥을 나뒹구는 잔혹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퍼억-


“끄하아악!”


어디 이뿐이랴? 운이 좋아 선두에 자리한 기병들을 피했다곤 해도, 그에 뒤이어 달려오는 기병들의 행렬에 짓밟힌 이들 또한 한둘이 아니었다.


다들 제 팔과 다리 그리고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고통이 그득한 신음을 내질렀고, 이는 곧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쉬이 달려들 수 없을 두려움을 만들어냈다.


“적진을 돌파했다! 이제 다시 고삐를 돌려 저들의 후미를 친다!”


두두두두-


그렇게 두려움이 작용한 황건의 군대가 온전히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을 둘로 쪼개며 저들의 후미로 튀어나온 손견과 기마대는 이내 그 몸을 바짝 낮춘 채 고삐를 잡아당기며 크게 선회했고, 이는 곧 좌측에 자리한 황건의 옆구리를 들이치는 꼴이 되어 또 다른 기습의 형상을 띄게 되었다.


“뒤를 막아라! 뒤를!”


허나 어디 그 방향을 돌려 내달리는 손견의 기마대를 신경 쓰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 이미 그에 앞서 갈라진 빈자리를 뚫고 들어와 전방위에서 자신들을 압박하는 손견의 보병대 또한 가히 무시할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푹! 푹! 푸욱! 푹!


“한 번에 한 놈씩 꼬챙이를 만들어줘라! 목이고 앞섶이고 가슴팍이고 얼굴이고 모조리 꿰뚫어 송장을 만들어버리란 말이다! 흐하하하하!”


종교에 미친 정신 나간 이들만큼이나 출세에 미친 이들 또한 가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 양옆으로 창칼이 날아오는 와중에도 제 앞에 자리한 한 놈 어떻게든 죽이겠다고 제 창극을 찔러넣는 손견의 이들은 이미 그 눈을 부릅뜬 채, 저들이 적은 병력인 것조차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찰나의 빈틈과 혼란이 만들어낸 틈바구니 속에서 드러난 그들의 움직임은 가히 자율적이면서도 질서정연했으니, 순식간에 안으로 들어선 병력이 둘로 포개져 각기 한 면씩을 맡아 다시 하나로 합치려는 양측을 동시에 밀어내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 뒤를 압박하던 손견 또한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포진을 방진으로 바꿔라! 여태껏 그래왔듯, 더는 내달리지 말고 후미 전체를 감싸 저들을 포위 후 섬멸한다!”


익숙하고도 익숙한 명령 속에 자연스럽게 부채꼴을 해제한 기병들이 그의 명을 따랐다.


앞에서는 그의 보병들이 뒤에서는 그의 기병들이, 그렇게 4천의 병력을 반으로 쪼갠 2천에 달하는 병력을 고작해야 육백, 그 언저리의 병력으로 잡아먹고 있었다.


“그렇군, 보다 적은 수로도 몇 배의 병력을 잡아먹었던 것이, 승승장구의 비결이 바로 저것이었나?”


어둑한 하늘 사이로 밝은 광채가 자리했다.


그 찰나에 모습을 드러낸 해가 비춘 풍경 속엔 손견의 전술이 만들어낸 처참한 시체들이 그득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전장에서 한 걸음 떨어진 복사를 비롯한 지휘부에 그대로 관찰되었다.


답이 보이지 않았던 불안감은 이내 그 정체를 확인한 이상 안도감으로 바뀌었고, 이내 그 깨달음이 적지 않은 병력의 희생으로 치러낸 것을 깨달은 복사가 퇴각의 징을 치자 장백을 비롯해 살아남은 이들이 다급히 퇴각을 개시했다.


푸르르릉-


다행스럽게도 감정에 치우쳐 엇나갈 걱정이 들었던 장백은 별다른 반발 없이 돌아와 그저 거친 호흡만을 내뱉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견이란 이의 위명이 실제로 겪고 난 충격 때문인지 그 휘하에 병사들이 제법 주눅이 들어 돌아온 상황이었다.


허나 이에 따로 출진준비를 하던 양중녕 또한 직접적인 동원이 없이 그의 뒤에서 합류할 수 있었고 또 절반에 달하는 병사들을 온전히 건져왔으니 딱히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작금의 복사가 놓인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펼쳐진 서전의 전투는 거진 완벽한 손견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손견군 사상자 일백, 그에 반해 황건군의 사상자는 거진 일천오백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는 퇴각 당시 이미 앞뒤로 협공을 받는 이들을 살릴 수 없다는 판단하에 그들을 제물 삼아 남은 병력이라도 온전히 보존하고자 했던 복사의 판단 때문인데, 막상 그리 적지 않은 전력을 잃었어도 복사의 눈에는 알게 모를 이채가 깃들어있었다.


“방도를 찾았으니, 저들의 죽음이 죽은 마원의의 앞에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전을 마친 이후 복사는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이전과 같은 소규모 접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손견군을 도발하는 동시에 손견을 비롯한 일군이 튀어나와 자신들을 쪼개 그 절반을 쌈 싸먹고 남은 절반을 패퇴시키는 전략을 내보일 때마다 새로이 그와 비슷한 규모의 원군을 곧바로 출병시켰다.


하여 장백을 전방으로 내보내 절반이 잘리면 양중녕을, 양중녕을 내보내 절반이 잘리면 장백을 내보내 협공을 당한 형국 위로 다시금 협공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상대적인 병력의 소모 또한 엇비슷해졌으며 그나마 풀이 죽어있던 군사들의 사기 또한 어느 정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뭐라? 후미에 자리한 병력이 모조리 깨져?”


“송구하오나 그것이.....”


허나 손견 또한 바보가 아니었다.


자신의 전략을 두고 상대할 줄 아는 복사를 내버려 둔 채, 야간의 습격으로 말미암아 제 뒤에 거치적거리던 파재의 잔당을 일거에 쓸어버려 후환이 될지 모를 싹을 모조리 뿌리 뽑아버렸다.


“파재는, 파재는 뭐라던가?”


“그것이 소식을 전하였음에도 아직 답신이 없는 터라......”


까드득-


“그놈에게 제대로 얻어맞았구나. 어떻게든 병력의 우위를 점하려 그 뒤를 붙을 놈들을 남겨두려 했던 것인데.”


복사의 이가 갈렸다.


손견의 이들의 전략이 그리하였듯 자신들 또한 저들을 찢어놓고 어떻게든 손견의 전투력을 약화시켜 그 부담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허나 잠시 그에 앞서 치뤄진 여러 차례 소규모 접전 속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 저들의 뒤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크나큰 불찰이 되어 자신들에게 돌아온 이상 이제는 손견 또한 나뉘지 않은 병력을 두고 자신들과 맞상대를 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전장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어떻게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우위를 쥐어야 함인데. 그럼에도 이리 답답한 것은 내 지모가 원체 부족해 신상사나 마 방주만 못하니 이걸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원.”


복사의 고심은 이것이었다.


신이 찾은 자신 또한 이번만큼은 제게 쉬이 답을 내려주지 않으니 되도 않는 발버둥이자 제 머리로 예까지 헤쳐온 것도 어찌 본다면 참 용하다 할 수 있을 터.


오죽하면 그간에 갈려 나간 병력을 채우겠다고 그만한 병력을 또 여남에서 불러들여 전력을 강화하였으니 실로 날뛰는 손견을 상대하는 것은 그만한 위험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짧지 않은 대치가 한동안 지속되었을까?


탁탁탁탁-


“복 장령! 복 장령!”


그러던 차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난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뭐라? 손견군의 진지가 부산스러워? 헌데, 그 꼴이 마치 퇴각을 준비하는 것 같단 말이지?”


다급히 막사를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온 전령이 전한 생각지 못한 희소식.


그것도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정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소식통을 통해서도 교차검증이 가능한 확실한 정보.


“예! 동쪽에서 충돌한 파 장령의 별동대가 우중랑장 주준과의 일전에서 다시금 주준이 패퇴시키니 주준이 다급히 원군을 요청한 모양이옵니다.”


손견의 진지를 살피던 척후는 지금 손견이 퇴각 준비를 한다고 했고 그 배경에 해당하는 주준의 패퇴는 파재에 진영에서 나온 전령이 좋은 소식이라며 지난날의 답신 대신 알려준 정보였다.


“희망이 보인다. 어쩌면 희망이.”


복사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또한 상황이 반전되자 조급해지며 조금씩 승기를 점치며 우위를 느끼게 된 것은 상석에 자리한 복사뿐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기습을 하심이 어떠시오? 부산스러운 와중에 야음을 틈타 기습을 한다면 저들도 쉬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인데!”


“아니외다. 퇴각하는 적을 계속 밀어붙여 저들이 어디 안착할 시간도 없이 두들겨야 하외다. 하여 주준에게 합류하기 전까지 그 병력을 모조리 소진시켜 주준에게 절망을 안겨줘야 하니 계속 물어뜯읍시다!”


그간 손견과의 맞상대 속에 알게 모르게 기가 죽어있던 장백도 양중녕도 그 목소리를 높여 각기 자신의 의견을 제기했다.


어느 쪽이든 좋았다.


이 자리에서 바로 승부를 보느냐 아니면 그 마지막까지 조심스럽고 끈덕지게 괴롭히느냐의 차이였으니 말이다.


* * *


“저들의 척후는?”


“적당히 보여준 뒤, 붙잡을 듯 몰아붙여 쫓아냈으니 지금쯤이면 신이 나 그 입을 털고 있을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군.”


한 편, 군영에 자리한 채 침묵을 고수하던 손견은 저를 보좌하는 조무의 설명에 그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 만큼, 제 뒤를 두들겨 그 후환을 없앴다고는 하나 확실하게 저들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선 여남에서 새로이 올라선 저들을 보다 확실하게 무너트려야 했다.


“주준은? 주준은 뭐라던가?”


“자신들 또한 직접적인 병력의 지원은 불가하다 합니다. 대신, 우중랑장에는 직함과 더불어 그간의 쌓아 올린 명성을 무너트리면서까지 패전을 자처했으니 그 병력의 지원은 다른 곳에서 받으라 합니다.”


“개 같은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해! 예서 그나마 병력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이 황보숭임에 그는 주준보다도 먼 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거늘, 대저 어디서 내가 새로운 관병을 구해온단 말이야! 거기다 여남에서 치고 올라온 저것들, 이미 소릉현에 자리한 태수를 비롯한 이들을 물리치고 올라온 이들이야. 작금의 내 주변에 어디 관병을 비롯한 이들을 구할 곳이 있기는 하던가?”


뭐든지 들어줄 것만 같았던 주준이었다.


제가 잡은 동아줄이자 출셋길이라 하여 일찍이서부터 그의 아래 그 몸을 수그리고 그의 명성을 높여주며 자신의 성장을 준비하고 출세를 기약하던 자신이었다.


한데 고작해야 수백 언저리의 병력을 잃고 그쳤을 패배를 두고 전장의 승기를 뒤바꿀 중한 전략을 거부했다.


대저 언제부터 이 늙은이가 이따위로 변하였을까? 대저 언제부터 전장에 대한 감마저 잃어버렸을까?


그렇게 화가 치민 손견 앞에 그를 말린 것은 정보였다.


“저, 그것이 우중랑장께서도 나름의 사정이 있는 듯 보이셨습니다.”


“나름의 사정? 대체 무슨 사정!”


“정확히 확인된 바는 아니나, 작금의 우중랑장께서 대치 중인 병력이 무려 삼만을 넘어간다 합니다.”


“뭐, 뭣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그 말인 즉......!”


순간, 손견의 안면이 굳어졌다.


그 짧은 찰나의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가능성 중 하나가 도리어


“아마 생각하신 그것이 맞을 겁니다. 그간의 대치 중인 병력을 북상시킨 뒤, 파재가 본대를 이끌고 직접 움직였다고 하니 말입니다.”


터엉-


그와 동시에 그의 손아귀에 자리하고 있던 지휘봉이 바닥을 향해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있나.”


그간 등갑 속에 숨은 거북이마냥 가만히 안에서 자리하고 있던 놈이 이제와 급작스레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짧은 찰나에 전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제게 유리한 국면으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는 이 사실이 손견으로 하여금 더할 나위 없는 충격과 소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지도 가져와, 빨리!”


다급한 그의 외침에 조무가 재빨리 막사 밖을 나가 둘둘 말린 양피지로 된 지도를 가져와 펼쳤다.


예주의 지리가 그려진 지도 속엔 일찍이 기존의 병력이 배치된 현황이 자리하고 있었고 손견은 그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동, 서, 남, 북, 중. 해서 사방위에 약 1만에 달하는 병력들을 배치하고 그 안에서 포위망을 갖춘 관군들을 상대로 가만히 있던 놈이 남쪽이 깨지자 새로이 여남의 이들을 불러들였다.”


널찍한 지도의 남쪽에 자리한 저들의 표기를 손견이 붓으로 지워내고 그 위에 새로이 여남의 이들과 자신의 전력을 적어 내렸다.


그렇게 손견은 병력의 한계에 궁지에 몰린 상황에 그 위에 자리한 동쪽으로 올라 이내 고의적인 패배를 마친 주준과 그에 더불어 급작스레 움직임을 보인 파재의 본군에 대한 행보를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남방이 흔들림을 붙잡아 이쪽의 포위를 약화시킨 뒤, 그놈이 움직였다. 그와 더불어 기존의 주준의 앞에 자리하던 병력을 북상시켜 황보숭을 기존의 두 배에 달하는 병력으로 압박한 뒤, 그 빈 공백을 가운데 자리하던 제 본 군을 재빨리 동쪽으로 움직여 이쪽에 호응하려던 주준을 몰아세웠다.”


그렇게 변화된 전선의 상황을 한 차례 정리하고 나니, 지도 위에 모든 것이 드러난 형국이었다.


전장의 무게추가 동쪽으로 기울었고, 동쪽과 남쪽 사이에 자리한 주준과 제가 도리어 파재의 본대와 여남에서 올라선 이들에 의해 앞뒤로 포위를 당한 형국이었다.


“파재의 포진이 어떻다고 하더냐?”


“세 개의 진지로 나뉘어 병력을 배치했다 합니다. 각기 주준 장군의 서쪽과 서북면 그리고 북쪽을 모조리 뒤덮는 모양새였습니다.”


콰앙-


“제기랄! 이 빌어먹을 잡놈이 딴에 황건의 장수라고 전장을 읽어?”


작은 판의 변화가 생기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큰 판에 변화가 생긴다.


어쩌면 이것이 작금의 주준을 따르며 손견이 해왔던 역할이었다.


제가 노력해 들어간 작은 지점들을 공략해 주변을 뒤흔들어 그 주변의 집을 먹어 치워 보다 큰 판 위의 이득을 챙기니 자신은 제 역할을 다해왔다고 볼 수 있다.


허나 하나의 판을 놓고 서로를 상대하는 기수의 역량의 차이는 때론 무서운 변화를 일으키곤 한다.


한 구역의 해당하는 집들을 내어주고도 더 큰 그림을 그려 그보다 더한 영역을 모조리 제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어가 집어삼키는 이들이 언제고 있기 마련이니, 작금의 상황은 완전히 제가, 주준과 함께 내몰린 형국이었다.


으드드득-


그렇기에 지금 손견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이 준비하던 전략이 읽힌 것은 물론, 제가 전장을 뒤집어 그 명성을 얻고자 했던 계획이 모조리 틀어져 버린 것에 대한 분노.


“내 주준 쪽으로 도망치는 척 그쪽으로 합류하여 주준에게 별동대를 빌려 이를 우회시킨 뒤, 회전으로 끌어들인 여남의 이들을 격파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저들을 회전으로 꼬드겨 동쪽으로 이동시킬 생각이었다. 하여 꼬드긴 여남의 이들을 지워내 그 포위망을 다시금 단단히 한다면, 남쪽과 서쪽은 물론 동쪽에 이르기까지 혹시 모를 저들의 연수와 합공이라는 변수가 모조리 끊어지는 것이니 이로써 전선에 승기의 바람을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모조리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자칫 주준이 제게 병력을 빌려주게 되면 그 순간을 노린 파재가 주준을 공격할 것이고 주준 또한 이를 알기에 제게 병력을 허락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주준의 병력을 빌어 이를 별동대 삼아 양동작전으로 여남에서 올라온 복사의 대병을 앞뒤로 잡아먹으려던 제 전략 또한 그 선결 조건이 맞지 않으니 채 3천이 간당간당한 병력으로 그 세 배수에 달하는 저들을 들이치는 것은, 말 그대로 희생을 전제로 한 의미 없는 바보짓에 불과했다.


“판이 커졌구나. 더는 우리의 손아귀에서 수습되지 않을 정도로.”


“파재가 발을 들였으니 우리도 다른 이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작금의 전장에 여유가 있는 이가 대저 누가 있나? 제아무리 좌중랑장인 황보숭이 이끌고 내려온 병력이 많다 한들, 그 또한 파재가 이끄는 군세에 비해 한참이 부족한데 대저 누구를 끌어들인단 말이야?”


“.......”


아무도 말이 없었다.


애초에 이는 관의 병력이 심히 부족하기 때문이었으며 그에 앞서서도 따로 충원될 외부전력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모조리 불러들여 이미 그 포위망을 완성해놓은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허나 아무리 포위를 갖춘 형국이라도 그 포위망이 얇아 불안정한 이상, 도리어 안에 자리한 이들에게 이리저리 휩쓸리게 될 것이 빤하니 작금의 손견을 비롯한 이들이 형국이 바로 그러했다.


“이 이상의 병력손해는 아니 돼! 이제는 4천은커녕, 간신히 3천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어! 이 상황에서 아직도 팔 천에 달하는 저것들을 어찌 친단 말인가?”


이미 지속된 전투 속에 근 이천이 넘는 적병을 잡아먹은 자신들이었으나 또다시 여남에서 올라온 지원군들의 존재가 손견의 가슴을 저미도록 만들었다.


빌어먹을 개미 떼도 아니고 어디서들 그렇게 기어 나오는지 그 끝도 모를 그들의 저력이 가히 저주를 퍼붓고 싶을 정도였다.


“좌중랑장에게 당장 원군요청을 비롯해 작금의 전장을 분석한 보고서를 보내! 그래도 북지의 명장이니 어떻게든 그 방도가 있을 터. 그때까지 철거하던 목책 다시 세우고 방어에 치중할 수 있도록.”


“하오나 주공, 그리되면 우중장랑께서 위험하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콰앙-


“닥쳐! 그 정도 제 앞가림도 못 한다면 그 자리에서 중랑장 자리 내어놓고 뒷방에서 손주놈들 재롱이나 보고 살라고 해야지! 나라고 어디 우중랑장을 안 구하고 싶은 줄 알아? 허나 내가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그 포위망이 좁아진다! 차라리 각기 갈라져 대처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일이야! 병력도 없고 구원이 약속되지 않으니 알아서들 죽었다 생각하고 살려고 발버둥 치겠지! 그리 사람이 내몰리고 독해지면, 그러면 버틸 수 있어.”


지도가 자리한 탁자를 내리치는 손견의 일갈에 진중 내에는 씁쓸한 적막만이 자리했다.


그리고 손견은 그러한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이내 제 속으로 삼키던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문제는 좌중랑장이야. 개별적인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최소한도 상부의 허락이 있어야 해. 허니 세 중랑장 중 으뜸으로 평가받는 그가 어떠한 전략을 짜고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시금 바둑판 위의 형세가 바뀐다.”


답답한 속내를 숨기지 못한 손견의 시선은 어느덧 지도 위에 자리한 장사현을 향해 있었다.


좌중랑장 황보숭이 자리한 그의 군진에선 과연 이러한 전장의 변화를 어찌 읽어내고 있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새로운 소설이 올라갔습니다. 이 소설 또한 정해진 완결까지 계속 연재됩니다. +6 20.05.11 1,937 0 -
공지 향후 향방에 대하여 +8 20.04.19 1,009 0 -
공지 글의 표현과 서술 방식에 대하여(‘자’ 편) 20.03.14 579 0 -
공지 연재주기에 관하여. +2 20.02.29 316 0 -
공지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추가 날짜별 업데이트] - 11월 12일 20.02.15 461 0 -
공지 소설에 관하여 +4 20.01.30 2,839 0 -
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0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7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3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8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3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3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0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0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3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6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8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8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6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2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2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6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7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1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1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3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7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7 7 19쪽
»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1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9 6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