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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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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7
글자수 :
4,187,164

작성
21.10.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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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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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21쪽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DUMMY

쪼르르륵-


답답한 속을 달래기 위함에 시작된 것이 이내 책임을 묻기에 앞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한 자리로 바뀌었다.


“마셔라.”


눈앞에 놓인 술잔을 그득 채운 맑은 청주의 향기에 조홍도, 황충도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일찍이 제 주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어 자리한 것이 도리어 이리 한 상 그득히 자리한 술상일 줄은 몰랐기에 어쩌면 그 부담이 더해졌을지도 모르나, 제 주인이 그저 술 먹고 이로써 때우고 넘어가자는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그 부담이 더해진 것도 있었다.


“아니 마실 것이냐?”


“송구합니다.”


“송구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송구할 것 빤히 알면서 송구할 짓을 하면 내가 이를 어찌 받아들이나?”


충성이 앞선 황충은 저 스스로를 낮추며 말을 아끼기에 바빴다.


턱-


허나 그 반대편에 자리한 조홍은 여전히 그 얼굴에 많은 것을 담은 채, 더 이상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이를 제 입으로 털어넣었다.


“후우.”


“한승이야, 그렇다 치고. 너는 그래도 할 말이 제법 많은 모양이지?”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답답해?”


“예, 사실 제가 그 돌아가셨다던 양겸의 무덤 뒤에 있었습니다. 주공을 염탐한 것은 아니었고 정확히는 제 복수를 위해 따로 스승의 뒤를 밟은 것인데 실로 거기서......”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 이면을 봤겠구나.”


“예, 참으로 유약하시더군요. 그러한 작자에게 패한 제가 이해가 아니갈 정도로, 순간 원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사람 앞에 진심을 다하는 그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여 그냥 있었습니다.”


“인연이라 생각했다, 많은 것을 배웠고 소중한 내 사람이 되었다 생각했지.”


“허나 그럼에도 이해가 아니가는 것이 있으니, 어째서 허 자원과는 그 대우가 다릅니까?”


“이 또한 이기심일지도 모르나 그와 허유는 경우가 달랐다. 당시 허유는 본초를 이미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몸이었고, 그 와중에 잠시 고향 땅에 내려오던 것을 내가 낚아챈 경우지. 어쩌면 이는 욕심이었다, 알면서도 남의 사람을 빼앗으려고 했던, 그러면서도 이용하려고 했던 게지. 하여 2년의 유예기간을 약속했고 그 속에 그의 마음을 훔쳤다, 물론 이는 진심이었지. 허나 그 이별에 앞서 내 그릇이 작아 막상 그를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다.”


“그런 분이, 정작 이미 한 차례 끊어진 관계 속에 우연이 인연이 닿아 스승을 품은 기도위는 그리도 욕하십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참, 모순적이지. 그럼에도 나는 그리 산다. 내가 세상 다 버려도, 이 세상이 나를 버려선 아니 될 것이니.”


탁-


한 차례의 침묵이 흘렀다.


조홍의 얼굴도 떨떠름했고 도리어 솔직한 제 사고를 털어놓은 자신은 후련했다.


“의외로 완전하신 분은 아니십니다? 그래서 껍데기가 그리 단단해지시는 겁니까? 이제야 방향을 정해서?”


“그게 무슨 소리더냐?”


“마치 거죽 같고 또 비늘 같고. 사람이 그 내면은 말랑한데 마치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겉을 자꾸만 단단하게 만드시는 것 같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


- 부디 탈각(脫殼)하시길 바라겠네. 자네는 탈각(脫却)보다는 이쪽이 더 어울려.


순간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것은 다름이 아닌 죽은 여강이 저를 두고 한 소리였다.


- 태를 가진 짐승이 스스로의 그 형을 완성시켰을 때의 이야기요. 해서 나는 용이고 그대는 사람이지.


- 사람이 짐승마냥 탈피(脫皮)를 한다고 보는 모양이로구나.


- 그렇소. 바로 탈각(脫殼)이지.


거기다 또다시 떠오른 것은 작금의 제 눈앞에 자리한 이 조홍을 길들이고 품을 적의 대화였다.


“그래서......, 그래서 그때의 네놈이 내게 그러한 소리를 했던 게로구나.”


“이제 좀 감이 오십니까? 지금 주공께서 거닐고 계신 길, 그 길은 거진 사람이 아니라 짐승에 것에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나를 도와준단 핑계로 멋대로 일을 저질렀다?”


“그 과거가 저와 같으니까요. 뭣 모르던 유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사람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세상이 휘둘려 억지로 강해져야 함에 그 본질과 바탕을 바꿀 수 없으니 일단 그 껍질이라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겉을, 형을, 태를 바꿔 나중에는 그 본질마저도 뒤바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겁니다. 더 강해지고, 더 커지고, 더 단단해지니 세상 모든 것이 이에 두려움을 느껴 더는 함부로 대하질 못하지요. 어디 이뿐입니까? 그 뒤로는 인정은 물론이고, 더한 숭배와 복종 그리고 찬사와 경외를 받습니다. 그토록 사람일 때의 내가 바라던 것이 도리어 짐승이 되어서야 내게 찾아듭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허유가 저를 청류로 내몰 적과 같았다.


남을 위함에 그 만족과 옳음, 그리고 저만의 정의구현과 실현을 위함은 실상 저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


세상엔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음에, 타인을 위한 이타심을 내세우며 모두에게 득이 될 공익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막상 그 속에선 저를 위한 이기심을 충족시키고 그 포장 속에 자리한 사익을 원한다.


물론, 모든 것이 이익이란 직설적인 표현에 부합하진 않겠으나 자신의 이념과 사상 그리고 주장이 옳았다는 확답을 받고자 하거나 저만의 무언가로 세상이 물들길 바라는 이들 또한 제 바라는 것을 얻은 것이니 결과적으론 이는 제게 찾아드는 이라 말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행위 자체를 만들어내는 의도였다.


이 모든 것을 행함에, 진실로 그것이 충정이자 이상이며 옳음이라 믿고 또 타인을 위한 것이라 믿고 행하는 이들은 어쩌면 제게 잡아먹힌 사고 자체를 제 이기심이라 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름에, 이 또한 제 과거에 잡아먹힌 희지재와 같은 이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이를 판단하고 구분 지을 수 있다고 우쭐하거나 아직 선택을 내리지 않은 이 또한 언젠가 이러한 선택지 앞에 그 운명이 내몰려 자신의 방향을 택해야 함에, 결국 이들처럼 그에 휩쓸리거나 집어 삼켜져 그 길을 가게 되면 더는 돌아오지 못하게 됨은 예견된 일.


어쩌면 실 역사 속에 자리했던 수많은 군웅들도 다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각자의 운명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도.


“이타적인 것, 배려하는 것, 남을 돕겠다는 그 좋은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


“구원의 길을 알려드려도 그리 이를 거부하십니까? 사람들은 언제고 꼭 그러지요, 우리 모두가 가야 할 길이 있음에 이를 알려주어도 제가 이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서, 남이 발견한 길이라서 괜스레 고집을 부리며 이에 반발하고 그 길로 가지 않는다고.”


“네 뜻이 진리고 이치라 정의하는 네놈의 사고가 위험하단 생각은 안 해봤더냐?”


“이는 저 홀로 터득한 것을 저만을 위해 내달릴 적과 다릅니다. 저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루었고 그다음에 떨어져 나왔으니 그에 관련한 욕심은 없습니다.”


“이기심의 발호는 곧 이타심의 발호가 된다. 그리고 이타심의 발호는 또한 이기심의 발호가 되는 게지. 황충에게 들었다. 네가 자리한 이 용연,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면서? 그 또한 이타심에 기반한 네 이기심이 아니냐?”


“실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런 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낫겠군요.”


결국 이리 넘어가나 저리 넘어가나 제 모순에 걸린 저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조홍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또 무슨 반응이야? 아직도 할 말이 많다는 게냐?”


“예, 많습니다. 많아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대체 언제까지 그러고 사실 겁니까?”


“무엇을?”


“원영이라 했지요, 주공의 가장 가까이에 자리한 그가 흔들린다면 주공께선 이를 어쩌실 겁니까?”


“뭐라?”


한데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건 조금 전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게, 지금 무슨......”


“이뿐만이 아닙니다, 저와 가장 먼저 대면을 했던 누규 그놈도 그 바탕이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자질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 속에 품은 것이 문젭니다.”


누규라, 누규.


그래, 정사 상엔 제 야심을 감추지 못해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하니 필경 그만한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모도 그렇습니다. 그 어린 것 벌써 하늘을 보고 있습니다. 딴에 부자사께서 길을 보여주셨다고는 하나, 그 어린 것이 고작 그 한마디를 들었다고 벌써 그러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 자체가 그 자질이 보통이 아님을 내보이는 반증입니다. ”


“허나 하모는.....”


“그 어린 것이, 자질을 보인다 하여 좋아하지 마십시오. 때 묻지 않은 순수하고 여린 것, 그것이 세상을 알면 저와 주공처럼, 그리 제 껍질을 단단히 뒤바꾸며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제 형과 태를 뒤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자라난 그 아이가 얼추 머리가 굵어지고 몸이 커지게 된 그때래도 이전처럼 순수하리만치 주공의 명만을 따르며 주공, 그 하나만을 볼 것이라 생각합니까?”


조홍은 심각하리만치 이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제 앞에 풀어놓았다.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어쩌면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 먼 미래의 일들이라 여겨지는 개념들을 그는 작금의 상황에 제일 문제라 꼬집어 그것이 만들어낼 여파를 제게 진중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공, 주공께서 자리하고 계신 용연입니다. 주공께서 마땅히 오르셔야 할 못이고, 주공께서 몸담고 계신 오직 주공만을 위한 보금자립니다. 한데 주공께선 이를 지금 내외라는 핑계로, 작금의 제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한다는 핑계로 들이지 말아야 할 이들을 자꾸만 그 안으로 들이시고 계십니다.”


“허나, 그 안에는 너도 있었다.”



“예, 하여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실로 감읍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한데, 막상 이렇게 저도 그 안에 들어와 보니 그제야 바깥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군요. 이 못, 이 소, 이 용연은 실로 위험합니다! 대저 주공게서 올라서야 할 하늘, 주공께서 승천하실 그 물웅덩이 속에 제가 몸을 담그며 각기 몸집을 불리고 제 몸에 갈기와 발톱 그리고 비늘을 돋아나게 하는 이들이 자꾸만 생겨나고 있습니다!”


“흥분하지 마라, 조홍.”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더 격정적으로 치달았다.


“어찌 흥분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주공은 저 위를 보고 위를 향해 나아가시는 분입니다! 한데 작금의 그 충성심에 정신이 나간 원영은 그런 주공과 자신의 거리를 가늠하며 어떻게든 주공의 가까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하늘에 올라야 할 용이 승천하여야 할 짐승이 하나인데, 이 빌어먹을 것이 자꾸만 그 가까이에서 저도 어떻게든 그 끝을 붙잡고 헤어지기 싫다는 핑계로 주공을 타고 함께 하늘에 오르려 합니다!”


“그건 원영에 대한 무례야! 네 걱정은 너무 과하다!”


참아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작금에 드러나지 않은 위협이자 저만의 가정에 불과한 과신을 넘어.


“여기 옆에 자리한 한승 또한! 주공과 똑같은 언사를 내뱉었지요, 허나, 나중에 수습도 못할 큰일에 대비하여 작금에 이를 일찍이 정리하고자 하는 게 뭐가 그리 과합니까? 이 용연이 이전투구의 장이 됩니다! 하늘에 오를 진정한 짐승을 가리기 위한, 혈사의 한복판이 됩니다! 용연이 피로 물들고 짐승의 시체가 그 주변에 마를 날이 없을 것입니다! 함께 하늘을 보았던 이들이 그렇게 저들이 하늘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깨닫고 저 하늘에 오르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영수가, 영물이 되려 할 겁니다! 허나 자리는 결국 하나지요. 그땐 어쩌시렵니까?”


“그래서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내 사람들을 다 죽이라고? 내가 애써 받아들여 놓고 이제와 내가 그리 힘들게 함께하게 된 이들을 다 죽이란 말이냐?”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허나 그건 최후의 가정입니다.”


가장 극악의 상황마저도 서슴지 않고 논하게 되는 자리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다.


쩌저적-


“네놈이 진정 선을 넘고자 하느냐?”


“내외 속에서도 나와 남은 별개여야 합니다, 주공. 저들이 보고 자란 주공이니만큼, 저들 또한 언젠가 스스로가 또 다른 주공이 되기를 꿈꿀 것입니다. 사람의 열망은 멈추지 않습니다.”


“네 가정은 최악이다, 그리고 설사 그 최악이 언젠가 내가 도래한다고 해도 이는 실로 나중이 될 것이야.”


“예, 알지요. 압니다. 허나 그럼에도 제게 있어선 이것이 작금의 주공에게 가장 큰 위협이자 걱정거리로 보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시작한 자리가 더 이상 함께하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고 거슬리는 자리가 되었다.


제 손아귀에 자리한 찻잔은 이미 부서져 그 형태를 잃었고, 그 속에 담겨있던 청주는 굳게 쥐어진 손아귀 사이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주공, 보다 높이 오른 이의 충언입니다. 당연히 높이 있으니 더 멀리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번쯤은......”


그 속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만 있었던 황충은 제 예상을 깨고 안타까우면서도 진중한 표정으로 자리하던 조홍을 거들고 나섰다.


“이젠 너마저도 그의 편을 드는구나. 네가 보기에도 그 정도로 심각하다 여겼느냐?”


“저는 그와는 시각이 다릅니다, 허나 이번 희지재의 일을 겪으며 모두가 함께 영원할 수도 또 영속할 수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겠지.”


“하여 작은 일이라도 조심해보고자 했습니다. 또한 차라리 정리할 것이었다면 보다 확실하게 정리하고자 했습니다.”


“그게 과희였더냐?”


“희지잽니다, 주공.”


황충의 발언이 실로 그의 손아귀에 자리한 박도와 같이 느껴지는 것은 거진 처음과도 같았다.


사람의 관계는 양면성을 띰에, 어느 한쪽만의 노력으로는 유지가 될 수 없다더니 실로 제 바램만으로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제 심간을 후벼 파고 있었다.


“사람만큼은 내 욕심으로도 어찌할 수 없구나.”


“주공뿐 아닙니다, 조공 또한 이로써 자신의 사람을 잃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가 그렇사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러한 저를 비집고 들어온 조홍이었다.


“너는 걱정도 아니 되나 보구나? 자칫 잘못하다간 조가와 틀어짐은 물론, 오천의 기병대와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네가?”


“예, 제가 기도위를 찾아뵙고, 사연을 말씀드리지요. 해서 노기를 보이시면 대신 제 목을 거두시고 주공과의 오해를 푸시라 제가 대신 용서를 빌겠습니다.”


“이 미친놈이 살아보겠다고 내 품에 들어와 놓고 이제와서......!”


쿠웅-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조홍은 제 앞에 덜컥- 두 무릎을 꿇어앉아 진중히 절을 올렸다.


“이 모든 것이, 왜곡되었을지언정 주공을 향한 진심입니다. 허니 받아주십시오.”


“네가 정녕 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충정은 열망이 되어선 아니 됩니다. 또한 감정으로 자리해선 아니 되는 법입니다.”


저라고 그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저리 나오는 이를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은 과연 저이가 제 뱉은 말의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를 두고 보자는 제 간악한 심보였다.


“가면 죽는다. 사람 욕심에 미친 조조 놈이 어디 그냥 동네 뜨내기 사대부마냥 체면치레하고 그칠 줄 아느냐?”


그때였다.


쿠우웅-


“.......!”


“소인, 한승. 자리를 빌어 주공께 청하옵니다. 막상 일을 벌인 것은 이 옆에 자리한 조홍이나 그에 앞서 허락을 내어주고 또 그러한 그의 행보에 동조하려 병력을 움직인 것은 소인의 책임이오니, 소인 또한 스스로의 잘못을 느끼며 그 죄를 청합니다. 이에 함께 조공을 찾아뵙고 주공에 대한 오해를 풀려 하나니 소인 또한 이 목을 내어주고서라도 이를 종식 시키고자 합니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아니 될 우렁찬 소리와 더불어 황충 또한 제게 절을 올리며 간곡히 청을 올리고 있었다.


“미친놈들, 제 주인을 위한다며 그런 제 주인을 무시하고 멋대로 설치는 것은 여전하구나.”


그렇기에 저는 여전히 진노가 가시지 않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공! 제 조언을......”


“충정을 받아주시옵소서!”


“그리 진심이니 책임이니 말은 쉽지, 오냐. 내 직접 기회를 주마.”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굳게 닫힌 전각의 문을 좌우로 열어젖혔다.


“가라. 그리도 원했던 바이니 가서 뜻대로 해보거라.”


휘이이잉-


거센 바람과 더불어 찬 공기가 안으로 들이쳤다.


그와 동시에 막사 내의 촛불은 흔들거려 제 빛을 잃었고 열린 장막과도 같은 전각 너머의 풍광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이었다.


그럼에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조홍과 황충은 다시 한번 목례를 올린 뒤, 이를 열어젖힌 저를 지나치며 전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부탁하신 요청 사안을 가져왔습니다.”


닫혀있지 않은 전각을 의아하게 여긴 하모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와 제게 작금의 양성현에서 벌인 모든 공무 기록이 적힌 문건을 가져왔다.


“아, 그래. 내 아까는 깜빡하고 이를 확인하지 못했군. 그건 그렇고, 따로 부탁한 양겸의 칼은 잘 묻어주었겠지?”


“예, 봉분을 다시 드러내는 작업이 있긴 했습니다만, 어차피 가묘라 흙더미를 단단히 쌓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하여 쉬이 그 흙더미를 치워낸 뒤, 자리를 만들고 칼을 감싼 목함과 그를 추도하는 축문을 적어 이전보다 더 단단한 봉분을 만들어두었습니다.”


“고맙다, 늦게나마 내린 부탁이라 힘도 들었을 터인데.”


“아닙니다.”


제 칭찬에 얼굴을 붉히는 것이 여간 귀엽고 싹싹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착하고 순수한 이가 자라나 변하게 된다는 것이 쉬이 상상이 가질 않거늘, 어째서 조홍은 이러한 이를 그래도 봐주지 않고 저만의 시각에 취해 이를 경계했던 것일까?


그 또한 차별이라면 차별일 터.


도리어 스스로가 택한 것도 아닌 저에 의해 내몰린 운명인 것을, 거기다 그러한 이가 실로 그리 되건 말건 아직 내보이지 않은 모습을 멋대로 가정하는 것 또한 무례이며 그릇된 망상이자 착각이라 생각한 저는 그 인상을 찌푸리며 조홍에 대한 좋지 않은 마음을 삼켰다.


‘잠깐, 내몰려?’


“.......!”


순간, 저는 제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자리한 하모를 다급히 바라보았다.


‘어린 것, 스승과 제자, 내쳐짐, 내몰린 운명. 그래, 어쩌면......’


언뜻 보면 놀라고 충격을 받은 것 같은 그러한 제 표정에 도리어 당황한 하모는 그러한 시선이 저를 향해 있는 것을 알고 두 눈을 껌뻑거라며 도리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아니야.”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자신의 뇌리를 스쳤으나 막상 제가 그런 하모를 버린 기억이 없는데 어째서 희지재와 조홍의 일이 제게 겹쳐서 보인단 말인가?


거기다 막상 그 운명으로 내몰렸다고 한들, 애초에 저를 찾아온 것은 하모였다.


그러니까 내몰린 것이 아닌 그 운명을 그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


“하아, 제기랄.”


그리고 이 와중에 속에 품은 상념이 깨어졌다.


제멋대로 끼워 맞춘 것을 또 아니라며 멋대로 변명하고 있는 제 자신 또한 우스웠다.


한 번 피어나기 시작한 의심의 싹은 그 어떠한 결과를 제가 가져다 주건 작금의 제게 있어 불필요하고 불편한 것이었다.


‘이게 다 그 뱀 새끼 때문이야.’


과연, 이래서 성경에선 뱀을 위험한 존재로 묘사했던가?


실로 사람 하나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물론, 그 심간 속에 어떻게든 빈틈이라고 보이는 곳을 파고드는 것 자체가 가히 이제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반대로, 도리어 그 충정이 제게 가 있던 것이 문제였다.


저리 저를 위함에, 제 목마저 내놓겠다고 밖을 나섰음에, 최소한도 지금까지 그가 내보인 모습에 거짓은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 문제다.


“물론, 황충이 있으니 걱정은 없다만.”


만일 그가 조조의 앞에 굴종하거나 제게 거짓을 담은 것이 드러나게 된다면 황충은 이를 용서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그의 목을 칠 것이다. 허니 그가 내보일 변수 따위 별다른 걱정이 들진 않는다.


“막상 저지른 일과 별개로 거슬리는 문제는 따로 있지.”


작금에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그 누가 뭐래도 조조였다.


특히나 조홍이라면 또 몰라도 황충은 저리 타인에게 이끌려 함부로 그 운명을 결정지어져서는 아니 될 인물이었다.


“아니 되겠다, 하모.”


“예, 주공!”


“누규에게 일러 지금 당장 전 병력을 움직일 준비를 하라 이르라.”


“예?”


“조조가 아무리 장사현을 향해 올라섰다고 해도 벌써 그와 합류하진 않았을 터. 어쩌면 작금에도 상경하지 않는 희지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거기에 필경 말을 타고 나선 황충과 조홍이 조조를 따라잡게 되면 혹시라도 모를 위협 속에 그를 마주하게 될지 모르니 전군을 움직여 그 뒤를 따라야겠다.”


“주, 주공! 하오나 이는......”


“상관없다, 어차피 이럴 생각이었으니. 수하 된 이에게 모조리 떠넘기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지. 아니, 차라리 잘된 일이다. 아예 어찌할 수 없도록 병력으로 밀어붙여 압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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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2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9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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