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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685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09.02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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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추천
7
글자
20쪽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DUMMY

“방울......”


와아아아아-


사방에서 함성이 끊이질 않는다.


“저, 빌어먹을 방울......”


푸욱! 푹! 푹!


그도 모자라 터져 나오는 핏줄기로 말미암아 절로 그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신도들은 당장 복 장령을 보호하라! 달려드는 저것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라!”


그럼에도 복사의 눈길은 여전했다.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부자사를 향해 있었고 정확히는 그의 오른손에 자리한 도끼에 장식된 방울을 향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내 손에는 없구나.”


허나 그러한 그를 마주한 자신의 손아귀에는 거진 반평생을 함께했던 그 방울이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복 장령! 피하셔야 합니다! 선제공격을 가한 저들의 기세가 보통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말을 끌고 나온 이들이 뒤에서 저를 붙잡으며 지금 당장 후미로 빠질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복사는 요지부동이었다.


대신, 그 와중에 그가 한 것이라고는 제 머리 위에 자리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그 인연이 다한 모양이오. 모쪼록 사무친 그대의 원이란 것이 결국 이것이었소?”


한참을 그 인연이 끊어진 황건의 이들을 위해, 비록 한때나마 제가 진심으로 몸담았던 교를 위해 통한이 눈물을 흘렸던 자신이었다.


그러한 와중에 사라진 제 방울은, 젊을 적 제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신과의 인연을 닿게 해준 비렴의 신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제와 그 신물이 제 역할을 다하여 다시금 하늘로, 비렴의 손아귀로 돌아갔으니 이는 언젠가 또다시 그의 안배 속에 그의 그릇이 될 또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이자 안배를 위해 저를 떠난 것이었다.


“드디어 내게 신이 떠나갔구나. 슬프게도 또 안타깝게도.”


평범해진다는 것이 그 기분이 묘하다 못해 이리 허무할 줄은 몰랐다.


마치 그간의 노력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었고 제가 쌓은 모든 것을 그대로 빼앗긴 느낌이기도 했다.


신인이, 점쟁이가 어찌 제가 받들어 모실 신 없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장령! 정신 차리십시오, 일단 뒤로 빠져야 합니다! 그 뒤, 혼란을 수습하고 병력을 지휘하셔야만 합니다, 장령-!”


그 와중에 제 옷깃을 붙들고 흔들며 저를 물고 늘어지는 이들은, 누군가를 닮아있었다.


신에게 기대어 제게 닥친 현실에 대한 구원을 바라며 매달리는 한때의 저를 보는 것만 같았으며, 그보다 더 나아가 제 간절함에서 비롯된 수많은 감정을 쏟아내는 교인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하여 내게 의존하느냐?”


“장령 밖에 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에 우리를 이끌어주실 분은 복 장령 밖에 없습니다!”


예상을 뛰어넘은 적들의 사기, 자신들과 똑같은 하늘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상회하는 지휘자의 부재와 그 뒤로 이어진 통솔에 대한 방만까지.


그럼에도 이들의 간절함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내어줄 수 없는 저를 자꾸만 흔들고 있었다.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폭풍우를 몰아내시고 무도한 저 서토의 하늘을 물리치셨던 그때처럼, 이 악랄한 한조의 하늘 또한 함께 무너트려 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장령! 장령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시고 우리를 위협하는 저들로부터 구원해주십시오!”


“이미 신을 떠나 보낸 나를 아직도......”


서걱-


“저기 있다! 저기에 적장이 있다!”


그 와중에 최전방에 자리한 이들이 부딪치던 전선의 일부가 뚫렸다.


선두에 자리한 태평교의 이들과 교전을 벌이던 관병들은 전투에 앞서 적들의 사기를 끌어올렸던 그를 아직 잊지 않은 바, 그들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모조리 복사를 향해 있었다.


“제기랄! 막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


“복 장령을 지켜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그 와중에 직접적인 위협을 인지한 태평교의 군관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으니 복사를 살리고자 뚫린 전선을 향해 내달린 이들은 그렇게 저를 향해 날아드는 창극을 미친 듯이 쳐내고 있었다.


푸욱-


“끄흐흑....., 자, 장령.....”


허나 이 모든 것은 중과부적이었다.


아무리 그 의기가 드높았어도, 굳게 다잡은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도 넘어서지 못할 것은 넘어설 수 없는 법이었다.


“다, 끝났다. 다, 끝났어.”


이제는 하늘이 제 의지마저 걷어간 것일까?


모든 것이 무기력해진 복사는 그렇게 제 손아귀에 자리한 힘이 점점 빠져가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 제 명을 바쳐 기적을 이루었던 과거의 기억은 이미 제 스스로가 기적에 대한 결과로 그 목숨값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니, 과연 그 뜻대로 저는 예서 죽을 운명이라 확신한 복사의 눈빛은 그렇게 점점 꺼져가고 있었다.


“이야, 이거 오랜만이로군요.”


“.......!”


허나 돌연, 그러한 그의 운명에 다시금 생기를 불어 넣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것이라 알려진 이의 얼굴이었다.


“네, 네놈이 어떻게.....”


“그야, 처신을 잘한 결과였겠지요? 어이쿠!”


그때와 똑같이 뺀질스러운 얼굴로, 저를 닮은 날카로운 뱀의 독니와 같이 생긴 얇은 칼을 휘두르며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배신자를 보며 복사는 과연 무슨 생각이 들어야만 했을까?


“이 뱀 새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새끼! 감히, 주제도 모르고 신상사를 배신한 배덕자 새끼가 감히 어디라고 그 얼굴을 들이미느냐-!”


뎅겅-


순간, 귀신마냥 되살아난 것 같은 조홍의 얼굴을 가려버린 복사의 앞에 자리한 관병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이에 잠시 놀란 듯 보이던 조홍은 이내 제 머리를 긁적이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제와 저항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신 겁니까?”


“그래, 이 모든 것이 네놈 덕이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계산을 잘못했군요. 차라리 그냥 먼 거리에서 활이라도 당겨 쏴 죽일걸.”


“차라리 그러지 그랬더냐?”


“한데 송구하옵게도, 그럴 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뭐야?”


“아까 못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부자사께서 꽤 쌓인 것이 많으시던데......, 제가 이번에 저분의 밑으로 들어가 몸을 담갔습니다. 그래도 용연이라고 재미있는 것들도 많고 놀랄 법한 일들도 많아 아예 저기에 정착할 예정입니다.”


슬쩍 제 뒤를 가리키며 자신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조홍의 발언에 기가 찬 복사는 화가 치밀었으나, 막상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아까의 저를 향한 눈길과 더불어 이를 뒷받침하는 뒤이어진 조홍의 설명이었다.


“그 지금, 손아귀에 자리하고 계신 그거. 한눈에 보아도 좋아 보이는 그 남방의 보도 말입니다. 오구라고, 기억하시지요? 왜, 일전에 양겸이라고 그 양성현에서 머리 좋은 놈 하나를 죽이셨다고?”


“양겸, 양....., 설마!”


- 서봉을 죽일 참이냐? 허면 비킬 수 없다.


찰나의 번뜩임이었다. 이제는 거진 잊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몇 년 전의 일.


그나마 간혹, 제 손아귀에 자리한 이 칼을 바라볼 때 외엔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 다시금 돌아와 이렇게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아, 이제 기억나시나 봅니다. 한데 그분이 저기, 내 뒤에 계시는 우리 주공의 수하이신데 또 그와 별개로 의뢰를 걸었어요. 해서, 그 의뢰 내용이 뭐냐 함은......”


- 아......, 그랬었다. 그래서 나를 죽인 너도 죽겠구나.


-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저주라도 걸고자 하는 게야?


- 유언이다, 그냥 그렇게 알아. 그러니까 이리 나를 죽일 이의 얼굴이나 한 번 봐두려는 것이니.......


그리고 그 번뜩임은 이제 거진 완벽한 기억이 되었다.


“그랬군, 그랬어.”


“예? 아직 그 의뢰 내용에 대해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만?”


“내 어찌 이를 모르랴, 내 손으로 죽여 없앤 것을.”


예상외로 덤덤한 소회를 내뱉는 그의 모습에 도리어 이러한 사실을 던져 복사를 흔들려 했던 조홍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거 참. 참, 사람 힘들게 하시네요.”


스릉-


그와 동시에 그의 예기가 서린 검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빛을 발했다.


“나를 죽일 셈이더냐?”


“주공께선 그 복수 너머를 위한 한 걸음을 내딛으셨습니다. 허니 꼭 자신의 손으로 이룬 복수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실 것입니다.”


“그렇구나, 허나 나 또한 그에게 볼일이 있으니 차라리 네놈을 제물 삼아 그에게 다가서야겠다.”


“이건 또 무슨 소린지, 혹시 뭐 잘못 드셨습니까?”


과거의 하나의 뱀굴을 두고 탐색전을 벌였을 그때처럼, 때아닌 빈정거림 속에 자리하던 그때처럼 서로가 점점 가까워짐에 서로의 전력을 탐색하던 그때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바닥을 기는 짐승은 굳이 이를 알 필요가 없다. 이는, 하늘에 통달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질문이자 풍경이니 나는 그 답을 얻고자 함이다.”


“멀고도 먼 길을 돌아 그 복수와 의뢰가 이리 맞닿았는데, 거기에 그 인연까지 한데 묶였는데 대저 어딜 가시려고 하십니까아-!”


까앙-


그렇게 그때와 마찬가지로, 마치 고개를 치켜든 뱀이 날아들 듯 재빠르게 내지른 조홍의 첫수는 애석하게도 넓적하고 두꺼운 오구의 검면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땐 최소한도 팔은 베어냈는데 이제는 그조차도 쉽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 이전보다 빨라지신 것 같습니다?”


“세상 변한 것이 어디 너만 변하였겠느냐.”


그와 동시에 엄청난 굉음이 더해진 오구의 칼바람이 찾아드니, 이에 놀란 조홍은 제 몸을 뒤로 젖히듯 뉘어 겨우 이를 피해냈다.


펄럭-


“.......!”


허나 이내 흩날리는 소매가 바람을 가르며 제 팔뚝을 향하니, 그렇게 뒤로 넘어가던 제 몸뚱이는 그의 손아귀에 붙잡힌 자신의 팔뚝에 이끌려 그 균형을 잃고 도리어 그의 품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길! 크흑!”


부웅-


그나마 제 팔 한 짝을 베어낼 각오로 그의 앞섶을 베어내지 않았더라면, 가히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걷힌 제 소매 속에 자리한 얇은 팔뚝을 붉게 물들인 손자국은 가히 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확실히 장령 직을 그냥 단 것은 아니로군요.”


“왜 더 보여주랴?”


급작스러운 그의 도발에 제 칼을 앞으로 세우며 움찔한 조홍이었으나 막상 그를 긴장시킨 복사는 도리어 그 몸을 돌려 냅다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뭐, 뭣......!”


“전군에 명한다! 곧 천신을 불러올 것이니, 모두 북을 치고 징을 울리며 하늘의 기적을 불러일으켜라!”


데엥- 데엥-


둥둥둥둥-


그렇게 정신을 차린 복사가 불러일으킨 전장의 변화.


한 차례 기가 죽어 풀이 꺾인 사기가 그렇게 또다시 믿음과 경험에 의거한 기적을 불러일으킴에 엄청난 징소리와 북소리가 전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천신께서 오신다! 천신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더는 관병 놈들에게 밀리지 마라! 우리에게는 복 장령이 계신다!”


한쪽으로 기울던 정세는 어느덧 백중세를 이루었고, 그 와중에 알게 모르게 그 병력의 여유가 있었던 황건의 이들은 도리어 그간의 제가 입은 피해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관병들을 향해 더 격정적인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더는 뱀이 아니시로군요.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습니다.”


허나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본 것 치고는 딱히 그 정신이 날아갈 정도의 큰 혼란을 겪지 않은 조홍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제 뒤에 자리한 이들이 볼 수 있도록 두 손을 높이 들어 X자를 그렸다.


“그리 자신 있어 하더니 실패한 모양입니다.”


“복사가 후방으로 빠졌다. 그럼에도 도리어 조홍이 밀렸지.”


“일전에 태평교에서 한 차례 엮이고 또 그래도 비슷한 수준으로 칼을 휘둘렀다고 하더니, 아무래도 착각한 것이......”


“그랬겠지, 내 형님의 도끼질에서도 벗어나 양겸을 참살한 놈이 어디 보통 놈이더냐?”


“허면, 이제 저희가 나설까 합니다.”


“적에 기세가 올랐다 가능하겠더냐?”


“어차피 돌파의 기세라고 해봐야, 황 장군만 못하고 저항의 기세라 해봐야 저희만 못할 텐데 무엇이 그리 걱정이시옵니까.”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관망하던 야견과의 대화 속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누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호를 보내라.”


펄럭-


“신호를 보내라-!”


두웅- 두웅-


저들의 시끌벅적한 징소리와 북소리와는 달리 이쪽의 것은 좀 더 묵직하고 드센 울림이 그득했다.


그렇게 전장을 뒤흔든 관병들의 북소리로 말미암아 전장의 변화엔 새로운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두와 이 열을 분리하라!”


“이 열로 빠진 이들은 한데 모여 좌군을 지원하라!”


애초에 그 병력 차가 얼마 나지 않았던 중앙이었던 데다가, 간혹 밀리고는 있다 하나 이쪽 또한 그 사기가 충천한 마당이었다.


그리 쉬이 밀리지 않은 중군 선두의 공방 속에 아직 그 안으로 투입되지 못한 이들이 떨어져나오지 언뜻 보아도 오백은 우습게 넘을 이들이 한데 뭉쳐 신호에 따라 우르르 중군과 좌군의 사이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지원군이다! 거세게 밀어붙여라!”


“우, 우군이 포위된다, 허리가 끊긴다!”


그렇게 세 방면으로 나뉜 전장의 틈새가, 채 하나의 기다란 전선으로 연결되어 메워지기 이전에 중무장을 갖춘 오백에 달하는 정병의 난입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황건적들 사이엔 동요가 일었으나 결국 이미 안으로 들어선 이들을 다시 바깥으로 내보내기엔 너무 늦어버린 상황.


“자, 좌우로 산개하라! 그 허리를 잘라 적의 연결을 끊는다!”


“병력을 둘로 나눠라! 우측에 자리한 이들은 중군의 옆구리를, 좌측에 자리한 이들은 적 우군의 옆구리를 두들겨라!”


두웅- 두웅-


다시 한번 울리는 북소리와 더불어 졸지에 황건적들의 중군과 우군은 양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다.


특히나 우군의 경우, 제 바로 옆이 물가이며 정면과 좌측에서 자신들을 때리니 졸지에 자꾸만 찰랑이는 물결이 자리한 여수 쪽으로 내몰리고 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병력을 나누어 순환을 시키더니 이제는 난전 중에도 병력을 뽑아 다른 곳을 뚫어낼 길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구나. 대단한 일이다.”


한 번 고착화된 전선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어디 한 면이 무너지거나 적 병력의 패퇴가 있어야 가능한 것을, 아직 그러한 전면적인 변화도 없는 와중에 제 휘하의 이들은 이를 이끌어냈다.


“과찬이십니다. 운이 좋게도 저들의 허리가 잘렸음에 그 전선이 양면으로 늘어난 바, 이제는 적장 복사도 강제적으로 내몰린 선택지 속에 저만의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기존의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기병대를 비롯한 한 축의 힘을 실어 적을 무너트린 뒤, 서서히 중앙군이 빠진 자리에 그 한 축에 힘을 실어 남은 적들을 모조리 물가로 쓸어버리는 일은 요원해졌고, 그나마 몇 되지 않는 예비대가 남아있으나 당장에 다급한 것은 중앙에 배치된 이들과 물가로 내몰린 제 우군일 터이니 예서 하나를 고를 수밖에요.”


제 칭찬에 씨익 미소를 보이며 뒤이은 상황을 설명하는 누규의 표정은 실로 얄밉다 못해 가증스러워 보였다.


물론, 그것이 자신들에 의한 유리한 국면을 부르고 있으니 막상 저 또한 기쁜 것 또한 사실이었고.


하지만, 실로 이로써 모든 것이 끝일까?


“변수가 궁금하신 겁니까?”


그런 제 마음이 이내 곧 표정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아니라 하면 거짓이겠지. 보통 놈은 아니니.”


“하긴, 일반인들과 달리 규격을 넘어선 인간이 간혹 자리하긴 하지요.”


가벼운 입맛을 다심과 동시에 누규가 돌연 제 두 손을 들어 마치 사진을 찍듯 네모를 만들었다.


각 검지와 엄지를 펴고 이를 다른 손의 엄지와 검지에 이으니, 그렇게 한 장면이 담길 액자가 그의 손에서 완성되어 앞에 자리한 전장을 담았다.


“이렇게, 채후지 한 장에 녹아들 풍경을 잘라낸다고 하면 그 바깥에 담기지 않는 곳은 우군뿐입니다. 그러니까 저들의 입장에선 좌군이 되겠지요.”


“허나 한데 뒤섞이지 않았나? 황충도 그쪽에 가 있고 말이야.”


“예, 그게 변수인데 이 또한 한 가지 결단과 그에 뒤이은 두어가지 가닥이 있지요.”


“결단과 가닥?”


“아무리 한승 공이 날뛴다고 한들, 저들이 남은 병력의 모조리 투입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하여 우측의 전장으로 들어선 그들이 이쪽의 기마대를 붙들고 늘어진다면, 얼추 난전 속에 휩싸인 자신들의 기마대를 뺄 틈을 엿볼 순 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온 저들의 기병들을 우회시킨다는 가정 속에 전장의 뒤편에 자리한 부자사와 저를 두들긴다는 것이 하나의 가닥 그리고 그 병력을 중앙으로 밀어 넣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남은 하나가 되겠지요.”


그 차분한 설명 속에 저 또한 어찌 전장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허나 그 역시 각기 성공의 가능성을 논하니, 결국 이쪽에 불리한 국면을 가져다줄 수 있는 변수는 거진 하나뿐이었다.


“이미 난전의 상황에 중무장한 접전이 벌어지는 전장을, 고작 경무장 된 기병들이 뚫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맞습니다. 거기다 저들이 딱히 내달릴 거리도 없으니 그만한 돌파력이 생길 리도 만무하지요. 허면 남은 변수는 저들이 우군을 뛰어넘어 그 너머로 빙 돌아 지휘부가 자리한 이쪽을 노린 뒤, 다시금 방향을 틀어 전장에 나아간 아군의 후미를 들이치는 것뿐입니다.”


“뒤에서 들이쳐 협공을 만들어내겠다?”


“그 전에 주공께서 돌아가셔주시거나 도망쳐주신다면 더 감사할 일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변수를 논하며 제게 깃든 위협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누규의 표정은 가히 뻔뻔함 그 자체였다.


“그리되면 나만 위험한 것이 아닐 텐데?”


“송구하오나 이 누 자백,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할 인사는 아닙니다. 거기다 전장을 가리지도 않지요. 지난날, 야견의 호적수였던 노삭을 눈앞에서 밀어붙이고 농락했던 이 사람의 과거를 주공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허면, 나는?”


“알아서 지키셔야지요. 어차피 형주에서도 그리 날뛰시지 않으셨습니까?”


농인지 진담인지 모를 그의 소리에 절로 피식이며 웃음이 나왔다.


“참, 너는 뻔뻔한 놈이다. 아니, 실상은 너뿐만이 아니지. 어떻게 내 밑에는 다들 이리 튀지 못해 안달인 놈들 투성일까?”


“그거야 끼리끼리 논다고, 뭐 다들 주공을 닮은 일면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오가는 대화 속에 도저히 승기를 점치지 못하니 결국 제가 내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백기와 뜻이 같은 항복 의사뿐이었다.


“졌다, 졌어. 네놈이 다 해 먹어라, 아주.”


“하하하! 이걸로 주공을 다 이길 날이 올 줄이야.”


와아아아아-


“음?”


그러던 차에 전장을 뒤흔드는 변수가 생겼다.


“예비대는 지금 당장 좌군을 지원하라! 저들의 발을 묶어라! 아군의 기병들은 당장 뒤로 빠져 공간을 열어라!”


앞서 이야기한 그대로, 중군의 후미에 자리하던 복사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주공!”


“나도 알아! 이럇!”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그만한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내려진 판단은 아주 빠른 찰나에 이루어졌다.


“모두들 나를 따라 좌군을 지원한다! 강변에 자리한 적의 우군을 들이친 뒤, 이를 뚫어내고 그 뒤를 노릴 것이다!”


“크으, 역시-!”


어느새 말 배를 차고 내달리기 시작한 저를 따라 신이 난 누규는 물론, 그 뒤를 따르는 수십 기에 불과한 제 마지막 전력들이 그렇게 강변을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백중세의 전장을 찢어내 그 한쪽을 휘감으려던 것을, 이를 인지한 복사가 그 반대편을 노리며 한 차례 태극과도 같은 순환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허나 막상 그 전장의 실상은 꼬리잡기와 같았으니, 적의 후미에 자리한 적장을 잡으면 승리인 규칙에 따라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내어주지 않기 위한 치열한 접전이 예고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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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0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7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3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8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3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3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0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0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3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6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8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8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6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2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3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6 7 24쪽
»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8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1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1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3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7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8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1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0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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