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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773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08.26 19:48
조회
168
추천
7
글자
23쪽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DUMMY

“그러니까 장사현에서 수비를 벌이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한편, 좌중랑장인 황보숭의 명을 받들어 예주의 서북쪽으로 병력을 이동시킨 조조는 이내 제 앞에 자리한 희지재의 설명에 본의 아니게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사방이 탁 트여있음은 물론, 진군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식수를 구할 곳도 많습니다. 못, 소류지는 물론, 강이라 부르기는 하나 실제론 개천과도 같이 깊이가 낮아 쉬이 건널 수 있는 두 갈래의 강이 앞뒤로 흐르고 있음은 이 근방 출신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지요. 그 덕에 고을이 자리한 평야는 곡식의 향연이 이어지며 그 너머는 거진 사람보다 더 큰 갈대와 수풀이 우거진 너른 평야가 지천에 깔려있습니다.”


확실히 과거에 과희라는 이름으로 양성현에서 근무하며 근방의 지리를 익혔던 탓일까?


새하얀 백지 위로 스스럼없이 간략하게나마 근방의 지형지물을 표기하며 지도를 그려내는 그의 능력은 가히 이를 지켜보는 조조로 하여금 경탄을 내보이게 만들 지경이었다.


“그대의 재능은 실로 기재 그 이상이로군. 이제는 병서나 경전뿐 아니라 땅도 외우고 다니나?”


“작금의 중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요. 지도야, 이를 관리하는 전문 행정 관료들이 따로 있으니 그들의 전문성이 더 높습니다. 그보다도......”


진심이 서린 조조의 상찬이었으나 도리어 이를 거추장스럽게 여겨 가벼이 넘겨버린 희지재는 이내 다시금 제 하고픈 주장에, 제 추론에 더한 집중을 보였다.


“결국, 그 방어에 용이함은 물론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사현에는 어떻게든 저들의 진입을 허용하면 안 됩니다.”


“그 말은, 그보다 앞선 곳에서 저들을 틀어막을 것이다?”


그리 그러한 그의 설명 속에 어느덧 그의 손아귀에서 지도를 뺏어간 조조는 이내 그의 설명과 제 시선 속에 자리한 장사현 인근의 예주 땅을 바라보며 그의 추측을 따라가고 있었다.


“예, 그렇다고 하남윤으로의 길목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군영을 비워둘 순 없으니 아무래도 적잖은 병력이 그에 매이거나 묶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많아 봐야 오천 내지는 그 언저리의 병력밖에 끌고 나올 수 없다는 말이겠지. 그것도 무려, 2만에 달하는 황건의 정예를 상대로 말이야.”


짝-


한 차례 동의를 표하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그리고 전장은 필경 그에 앞선 영음현 근처에서 벌어지게 되겠지요.”


“저들이 본진이 동쪽으로 이동한 이상, 이만에 달하는 이들이 자리하기엔 적당한 곳이지.”


“허나 반대로 공세의 입장을 취하기에 그리 좋은 곳만은 아니지요. 사방으로 또 대각으로 뒤섞인 물줄기가 마치 거대한 천혜의 방벽을 만들어주는 듯 하나 이는 애초에 물을 구하기 쉽고 대병이 머무를 널찍함을 갖춘 군진으로서의 용이성을 알기에 파재가 본군을 두었을 뿐, 반대로 북진을 해야 하는 저들이 진군을 하기엔 거추장스러운 크고 작은 물길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반대로 저들이 북쪽으로 진군할 목적이 없다면?”


“그저 황보숭의 주군(主軍)만을 묶어둔다? 어차피 일만에 달하는 병력이 빠졌으니, 그의 발을 묶어두고 자리를 지키며 수비를 해 시간을 벌고 훗날 그의 본대가 다시금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둔다는 말씀이십니까?”


“파재의 행동이 예상외의 대담함이 녹아있는 것은 사실이네. 허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가 급작스럽게 움직인 것이지, 엄청나게 많은 거리를 여러 차례 이동한 것은 아니란 소리야. 만일, 최대한 빨리 주준을 잡아먹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면?”


“그리된다면, 그의 포석은 보다 완전하다 못해 완벽한 성공을 이룬 꼴이 됩니다.”


“맞아, 하지만......”


“하지만, 좌중랑장께선 그저 이를 두고 볼 분이 아니시지요.”


조조는 바보가 아니었고 이는 희지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좌중랑장인 황보숭이 직접 부담해야 할 위협 그리고 그에 대비해 그가 내보일 수 있는 총력에 변수에 대한 계산마저 모조리 확인하고 있었다.


“애초에 가장 이름난 정예이자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북중랑장을 막기 위해 포진했던 일만에 달하는 군대야.”


“거기에 그에 비견될 이름값을 지닌 우중랑장을 지금껏 여유롭게 상대했던 또 다른 일만의 정예가 북상해 합류했습니다.”


“한데 모여든 이만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병력과 그 질은 그들 내부에서도 전투 경험이 풍부한 정예 중의 최정예. 과연 고작해야 오천 밖에 되지 않을, 그것도 보기(步騎)가 뒤섞인 기존의 관병들을 가지고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그도 아니라면 시간벌기인 저들을 뚫어내거나 치워낼 수 있을까?”


“하오나 기도위께선 제게 그분을 명장이라 소개하지 않으셨습니까?”


“명장도 명장 나름이야. 이는 거진 미친 짓이네.”


네 배에 달하는 전력 그리고 그보다 더한 차이를 만들어낼지도 모르는 병사의 질.


조조는 아무리 그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 그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좌중랑장께선 직접 이를 짊어지기로 하셨습니다.”


“아네, 허나 애초에 이곳에 자리한 이들 중 그 짐을 누구에게 떠맡길 수야 있나? 이를 감당할 이들이 없으니 원하든 원치 않든 스스로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짐 아닌가?”


“그럼에도, 딴에 방도를 찾으신다면 기도위께선 어쩌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좌중랑장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겐가?”


“예, 그분의 입장에서 한 번 그 답을 찾아보십시오. 무엇이 가장 이상적인 길이고 무엇이 가장 현실 가능성이 높은 길인지 말입니다.”


마치 희지재는 그런 제 주인을 도발하기라도 하듯 일부러 그를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가장 이상적인 길이야 동쪽에서 또 남쪽에서 벌어지는 전투와 상관없이 이곳, 북쪽에 가해진 부담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지워내는 것이 최선이겠지. 허나 이는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나마 현실 가능성이 높은 길을 꼽자면 남쪽의 전선에 이변이 생기길, 부자사와 좌군사마의 군대가 승리를 가져오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네.”


빤하지만 정확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그의 대답에 희지재 또한 그 고개를 끄덕이며 절로 동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남쪽의 전장이 빠른 시일 내로 정리가 되어야 동쪽에 숨통이 트이며 아군에게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허나 빤한 대답의 한편으론 그 반대되는 생각 또한 얼추 희지재의 머리를 스치고 있었다.


만일 저라면, 만일 좌중랑장이 저라면 실로 이리 타인에 의존하는 편한 길만은 찾아가지 않을 것 같다는 찰나의 직감이었다.


* * *


와아아아아-


서쪽에 큰 개천이 흐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메마른 평야가 있는 너른 저지대에서는 뿌연 흙먼지가 그칠 줄 모른 채 자꾸만 주변을 뒤덮고 있었다.


“좌군의 균형이 흔들리는 군. 보군(步軍) 이백을 나눠 줄 터이니 백인장 이고와 주성을 불러 지원토록 하라.”


“전방의 일군을 좌우로 나누어 불러들이고, 후방에 대기하던 이군(二軍)과 삼군(三軍)을 일자진(一字陣)의 형태로 중앙을 향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밀어붙이도록 해라. 너무 빠를 것도 너무 거칠 것도 없다. 중병(重兵)의 묘리는 무게와 위압이다.”


“좌군에 지원이 됨과 동시에 중앙군이 저들을 천천히 밀어내며 갈게 늘어진 전선의 고착화를 시키고 나면 우군에 명을 내려 중앙군과 달리 빠른 기세로 한 번에 저들을 몰아붙이도록 하라고 전해라. 저들이 퇴각과 함께 흩어지게 되면 후방에 위치한 기마대를 다시 우측으로 이동시킨 후 기마대 또한 우군을 크게 돌아 우군과 함께 저들을 수확할 흉포한 겸(鎌)의 날을 만들도록 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방에서 일어나는 모래 먼지가 더더욱 넓게 퍼져나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도 좌중랑장인 황보숭이 내리는 명령은 마치 안개 속에 등대처럼 홀연히 빛을 발하니, 마치 천리 앞길을 내다보는 천리경처럼 정확히 모든 것을 보고 문제가 생긴 상황에 그를 가장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최적화된 수를 내보였다.


영음현 내에 자리한 황건적들의 총공세는 아니었지만 관군과 황건 모두 합쳐 일만 오천에 달하는 병력이 서로를 죽이려 병장기를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는 이 전장에서, 일전에 다른 문사들과 마찰이 있었던 염충은 더는 군리가 아닌 행군과 진군을 독려하는 관리인 최진사(催進使)로서 새로이 그를 따라 전장에 종군하고 있었다.


“회전에 가까운 도발을 자행하였음에도 전장에 그 모습을 드러낸 적병의 수는 일만. 그리고 남은 일만은 파재의 본대가 자리하던 후방의 군영에 틀어박혀 있으니, 결국 시간을 끌겠다는 좌중랑장의 예측이 맞았던가?”


지금까지 이루어진 전투에 대한 감상.


이는 이를 지켜보는 염충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것들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작금의 벌어지고 있는 도합 오천인 관군과 일만에 달하는 황건군의 전투상황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그 진용(陣容)부터가 확연한 차이가 있다.


황보숭이 이끄는 관군은 좌군에 오백 그리고 우군에 일천을 배치하고 중앙에 이천오백에 달하는 병사를 배치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중군과 우군의 후미에 지휘관들과 일천에 달하는 기마대를 배치하는 형태로 중앙을 매우 두텁게 쥐고 좌보다 우가 더 큰 기묘한 형태의 진용을 취했다.


이와 반대로 황건적들은 좌우에 이천씩의 병사들을 배치하고 남아있는 육천의 병력을 중앙에 후군도 두지 않고 모조리 배치시켰는데, 마치 병력의 수로 일제히 밀어붙이려는 듯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진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황건적들의 기마대는 있으나 마나 한 수준이었고 그 수도 일천은커녕 오백도 되지 않는 적은 숫자였는데 이들은 전부 좌군과 우군에 나뉘어 포진해 있었다.


부우우우-


“쳐라!”


그러던 찰나, 긴장감이 흐르는 뿔나팔 소리와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고 그에 반응하며 제일 먼저 치고 들어온 것은 수적 우위를 앞세운 황건적들이었다.


양측에 위치한 기병대를 필두로 좌군과 우군이 돌연 아군의 양 끝을 공격했고 이에 맞서 아군 또한 좌군과 우군이 나서 저들과 충돌했다.


“애초에 그 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병력으로 밀어붙여라! 수적 우위로 두들기란 말이다!”


푸욱-


“정해진 자리를 지켜라! 밀리지만 않으면 우리가 승리한다!”


서걱-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들의 중군 또한 아군의 중군과 전투가 시작되었고 상황은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아무리 무장상태가 좋은 관병들이라 하나 좌군은 상대인 이천에 비해 그 수가 너무나도 적었다.


그러다 보니 침착히 저들에 밀리지 않고 맞서고 있는 우군과 달리 점점 그 기세가 식어가며 조금씩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고, 이에 황보숭은 백인장 둘을 불러 이백의 중앙군을 따로 중앙에서 차출하여 좌군으로 지원토록 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좌군을 구원한다! 모두들 나를 따르라!”


우오오오-


그러다 보니 좌군과 가까운 쪽에 있던 중앙군이 점점 늘어나듯 길어지게 되며 좌군 측에 도달했고, 졸지에 좌군과 중앙군이 이어져 버려 기다란 막대와도 같은 긴 전선이 만들어졌다.


“때가 되었구나. 명적을 쏴 올려라.”


삐이이익-


전장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던 황보숭의 눈의 번뜩임과 동시에 옆에서 그를 호위하던 무장 중 하나가 재빨리 제 활을 꺼내 시위에 효시를 걸고는, 이를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이에 수적 우위에 밀려난 좌군과는 달리 그간 백중세를 보이며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우군은 그의 신호를 인지한 채, 그동안 숨겨두었던 힘과 기세로 순식간에 저들을 밀어붙이며 저돌적으로 돌진했는데 아까와 달리 더할 나위 없이 강성해진 관군의 기세에 황건적들은 기가 죽었는지 그 구심점을 잃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한 발 더.”


삐이이이이익-


그렇게 한 차례 상대가 무너지는 것을 확인한 황보숭은 다시 한번 준비된 신호로 명적을 쏘아 올릴 것을 종용했다.


“좌중랑장의 신호다! 자, 다들 가자-!”


두두두두-


이에 후미의 우중간에 위치하고 있던 기병대 일천이 빠른 속도로 말을 달리며 전장을 빙 돌아 우군의 측면 쪽으로 가세하자 양면에서 협공을 받게 된 저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줄행랑을 칠뿐이었다.


흔적도 없이 흩어지며 사라진 좌군이 위치한 자리엔 일천의 기마대와 일천에 달하는 우군이 동쪽에서 개천이 흐르는 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렇게 중앙군과 좌군을 노려보는 형식으로 우군이 방향을 선회하자 유선형으로 갈퀴와 비슷하게 휘어져 길게 늘어진 진은 마치 가을 추수에 볏단을 우습게 베어내는 날카로운 낫의 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거기다 중앙군과 좌군은 길게 늘어져 나무막대와 같았으니 이제 관군은 온전히 하나의 겸(鎌)으로 변해버렸다.


“추겸진(秋鎌陣)이 완성되었습니다. 추수를 위해 베어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제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중랑장! 가을걷이 확실히 해보이겠나이다!”


황보숭의 주위에 있던 부관들은 그새 혈기를 참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였다.


염충 또한 그의 옆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황보숭은 아직 때가 아닌 것처럼 전과 마찬가지로 흥분하지 않은 채 차분히 자신이 내려야 할 명령만을 내렸다.


“좌군이 꽤 오랜 시간 미끼가 되어 선전했으나 이 이상은 버텨내기가 힘들 터, 좌군이 무너져 흩어지게 되면 좌군 쪽에 자리한 중앙군들도 천천히 후퇴하라고 전해라. 추수를 하려면 적어도 낫이 움직일 공간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좌군과 중앙군이 후퇴하여 공간이 비게 되면 그때 일격에 저들을 쓸어버리도록. 서쪽에 흐르는 개천까지 단 한 번에 걷어내도록 해라.”


그의 말대로 좌군이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질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버텨왔다는 것이 더 대단한 것이다.


그것도 황건의 정예를 상대로 네 배에 달하는 적을 맞이하여 버텨낸 성과니, 그 오랜 시간을 과연 제대로 버틸만한 군대가 이 땅에 얼마나 될 것인가?


허나 안타깝게도 더는 저들의 기세를 누르지 못해 퇴각하며 흩어지는 좌군들이었다.


그리고 그 신호에 맞추어 좌군과 이어진 중앙군들 또한 저들에게 밀려 도망가듯 연기를 펼치며 후방으로 후퇴했고, 황건적들은 자신들의 좌군이 관군의 우군에게 받은 피해를 되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 저돌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며 그것이 미끼인 줄도 모르고 달려들었다.


“왔구나.”


때를 기다리던 황보숭의 손이 전장을 향해 펼쳐졌다.


“우군에게 신호를 보내라. 전마를 타고 내달릴 평원이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조리 쓸어버리라고.”


황건적들의 움직임에 때가 되었다고 여긴 그의 명령이 절묘한 상황에서 떨어지자 전장의 형태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두두두두-


추수를 위해 황건적이라는 볏단을 감싼 낫이 드디어 움직임을 보였다.


농부가 손잡이를 쥐고는 안쪽으로 끌어당겨 볏단을 베어내듯 단번에 좌군과 중앙군이 농부의 손아귀에 쥐어진 낫의 손잡이가 되어 뒤로 빠지자, 총 이천에 달하는 우군과 기마대가 날카로운 낫의 날이 되어 흉포한 기세로 적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쳐라! 단 한 놈도 남기지 말라는 좌중랑장의 명이시다!”


“눈앞에 자리한 역도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와아아아-


일천에 달하는 기마들이 일진(一陣)이 되어 적들의 중앙군과 어마어마한 기세로 충돌하며 황건적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기마의 속력이 줄어들게 될 즘 뒤이어 달려온 사천에 달하는 우군이 무너져버린 진을 수습하려는 저들을 다시금 도륙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낫이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마치 검사가 검을 휘두르듯 서슬 퍼런 기세로 내려오는 동안 황건적들의 중군과 대치를 했던 관군의 중군 또한 두 패로 나뉘어 우군에 가까웠던 자들은 우군의 뒤를 따르며 저들을 공격했고, 나머지 절반에 달하는 무리는 중무장한 중병임을 상기시키듯 다시금 무거운 기세로 저들을 압박하여 마치 위와 옆에서 협공을 가하는 형세를 취했다.


스억-


“크아아악!”


그들의 움직임은 날카롭고 빠르지 않았다.


쿠웅-


“어헉!”


느리지만 단단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황건적들은 자신들을 향해 안쪽으로 휘어진 날과 그 옆을 막고 있는 막대와도 같은 관군들 때문에 전, 좌, 우 그 어떤 곳으로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퇴각을 시도했다.


기세가 꺾이는 것은 물론이요, 흐트러지는 진형 또한 수습하지 못한 채로 그저 살기 위해 무기로 버려두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나 아무리 재빨리 도망을 친다 해도 그들이 내몰린 서쪽엔 꽤 큰 규모의 개천이 흘렀고 개천에 뛰어들고 건너는 동안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많은 자들이 뒤이어 달려온 기마대들의 창칼과 말발굽에 모조리 죽임을 당한 후였다.


그렇게 일만에 달하는 황건적은 죽은 자들만 오천이 넘었다.


포로로 잡힌 자들이 이천, 나머지 확인된 도망병들만 해도 이천에 달한다고, 하니 온전히 개천을 건너 도망친 병력은 채 일천이 되지 못했다.


결국, 정예 일만이란 숫자 중에서 오직 십분지일의 병력만이 황보숭의 지휘 아래 겨우 전력을 보존하여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다.


“충(忠)-!”


전투가 끝난 후, 임시로 세워진 중랑장의 군영에선 이미 수많은 무장들이 도열하여 복귀를 알리고 있었다.


한데 모여든 이들의 앞에 전투를 끝마친 이들에 대한 황보숭의 논공(論功)이 끝나자 군영의 막사에서는 작게나마 조촐한 연회 아닌 연회를 열어 그간의 고생과 전쟁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허나 그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한 바깥의 분위기 속에 일찍이 자리를 비운 황보숭은, 제가 기거하는 막사로 돌아와 곧바로 전투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것으로, 이것으로 하나의 짐은 덜어냈는가?”


짙은 한숨 속에 나온 그의 독백은 이내 씁쓸한 애석함으로 돌변해있었다.


“보군(步軍)들의 희생이 컸지.”


펄럭-


“허나 승리를 담보로 하기 위한 최소한의 희생이었습니다.”


“음?”


그러한 와중에 한 인영이 따듯한 차 한 잔을 가지고 그가 자리한 막사의 안으로 들어섰다.


“부탁하신 박차(薄茶)입니다.”


“아, 누군가 했더니 염 최진사인가?”


황보숭은 제 앞에 가지런히 차를 내어놓는 염충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간 군리로 빼어난 활약을 했으나 막상 그간의 전장에서 그가 딱히 언사를 높이거나 자신의 의견을 크게 개진했던 적은 없었다.


허나 지난날, 청류파에 몸담은 문사들과 딱히 정치색에 때가 묻지 않은 무장들의 충돌이 거슬리던 차에 제 눈앞에 자리한 이자가 제 대신 욕을 먹어가며 굳이 무장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그에 뒤이은 그의 첨언으로 말미암아 황보숭은 그의 재주가 고작해야 군리로 끝날 것이 아님을 인지했다.


‘그래서 따로 군사들을 독려하고 감독하는 최진사의 직을 주었지.’


최진사라고, 주로 문관에 해당하는 관료들이 전장에서 맞게 되는 관리직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제가 이를 다른 이도 아닌 그에게 맡긴 것은, 바로 문인임에도 그 시야가 문인에 틀에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애초에 그 성정이 체면이나 이상, 옳음과 바름에 점철되어 기이하리만치 변질된 이들과는 그 바탕부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청류의 이들을 품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 또한 탁류의 이들에 비견될 정도로 문제가 많다. 전장을 모르는 이들이, 기본적인 전쟁 수행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이들이 기존에 그릇되게 배운 제 어긋남이 뭔지도 모르는 것은 물론, 또 제 읽던 병서의 진의조차 모른 채 멋대로 이를 해석하고 함부로 그 입을 놀리기 마련이니 그 미련함을 차마 입으로 뱉어낼 수 없고 글로도 다 담아낼 수 없다. 제아무리 난립하는 정국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지만 이는......’


본래는 작금의 별부사마로 자리하고 있는 장초와 같은 이들이 도맡아야 하는 직이 맞건만, 그 명성이 어쩌고 청류의 이들 또한 군부 내에 자리하여 그만한 군공을 세워야 함에 어쩌고 여러 정치적인 영역에 점철된 결과였다.


제아무리 변경인 북지에서 건너온 저라고 하나 조당에 들고 군부에 들어 제 직위를 제수받을 적의 일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님에 청탁으로 갈려지다 못해 그 청류 또한 하나의 무리가 아니라 두엇으로 찢겨 저만의 행보를 보이는 이기적인 모습은 가히 나라의 안위가 걱정되다 못해 그 머리마저 지끈지끈하게 만들 정도였다.


“신경 쓰이십니까?”


“뭐가 말인가?”


“미간에 손을 올리시는 것이 혹, 파재가 움직인 동쪽을 비롯해 형주군을 움직인 남쪽의 전장에 신경이 쓰시는 것이 아닌가 하여......”


딴에 제 재주를 자랑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이미 이쪽의 눈에 들었음을 알았기에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헛다리를 짚고자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도 아니라면 저를 따라 참관한 이번 전투에서 따로 깨닫게 된 것이라고 있기 때문일까?


‘설마? 아니, 꼭 그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지.’


순간,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난 믿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또 막상 사람의 재주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그의 성정이 제 이성을 설득시키고야 말았다.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야?”


“송구하오나, 오늘의 전투. 그 실상은 남쪽에 자리한 여수를 염두에 두신 것 아닙니까?”


“.......”


순간, 아무런 말도 없이 염충을 바라본 황보숭이었으나 이것이 본의 아닌 질책이라 느낀 염충은 조금은 굳어진 얼굴로 다급히 자신이 왜 그러한 추론을 했는지 그 연유를 덧붙였다.


“저, 그러니까 정릉과 언 그리고 번양의 사이에 자리한 평야는 가히 전장으로 삼은 이곳의 지형을 그대로 가져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들을 닮았습니다. 그렇다고 손 문대가 동쪽으로 북상......”


“그 직을 바꾸지. 오늘부터 자넨 행군사마(行軍司馬)일세.”


“....., 때문에, 이는......, 예?”


순간, 설명이 앞서던 염충은 제가 이를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뭘, 그리 놀라는가? 행군사마, 오늘부터 자네가 도맡을 보직일세.”


염충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한동안 황보숭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린 뒤, 어째서 제게 행군사마라는 직을 제수하였냐 그 연유를 물으니 돌아온 그의 대답은 ‘실은 내가 생각한 바가 그렇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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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1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9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5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9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5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5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2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1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4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7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11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10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8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4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4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7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9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2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2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5 7 20쪽
»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9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9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3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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