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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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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87,164

작성
21.08.2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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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9쪽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DUMMY

“우중랑장 휘하 좌군사마의 전보입니다.”


수만이 넘는 병력이 자리한 대군영의 중심.


좌중랑장 황보숭이란 군기가 펄럭이고 있는 거대한 막사의 안에 자리한 수십에 달하는 이들은 이미 다들 그 인상을 굳힌 채, 작금의 파재가 내보인 전략에 대한 무거운 무게감을 느끼고 있었다.


스윽-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중심이자 저 홀로 자리할 수 있도록 구비된 상석에 자리한 황보숭은 무심한 얼굴로 손견이 보냈다던 서찰의 내용을 훑어보고 있었다.


“그렇군, 그렇게 된 것이었어.”


황보숭의 끄덕임에 손견의 서찰이 그 휘하의 이들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렇게 한 차례 모두의 순번이 돌았을까?


그간 입이 달아있던 별부사마인 장초가 조심스레 앞으로 나섰다.


“이것으로 쉬이 수습되지도 않을 전선의 변화를 자초한 이가 손 문대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애초에 그가 저리 나서 우중랑장을 달달 볶지 않았더라면 어찌 가만히 있던 파재가 돌연 이러한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문에 이리 전선에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가 도리어 우리의 옆구리와 발목을 조여오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무장의 판단입니까? 사고가 되지 않으면 그저 충실히 기존의 명을 따르면 될 것을 애초에 되도 않는 욕심을 부리니 애먼 이들이 자꾸만 피해를 보는 겝니다!”


후한 시대 그 마지막을 장식할 이름난 문장가이자 명망이 드높은 인사인 것은 물론, 그 핏줄마저 장량의 후손이었던 청류계 인사인 그가 무부인 손견을 질책하고 나서니 이내 그 곁에서 눈치를 보던 다른 관료들 또한 은연중에 손견을 욕보이기 시작했다.


개인의 욕심이 앞섰다는 것은 물론, 애초에 저 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해 굳이 제가 모시는 상관인 우중랑장을 꼬드기다 못해 모두에게 큰 피해를 끼쳤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문인들의 목소리가 한 차례 커지자 본의 아니게 그 반대편에 자리한 채 이를 듣고 있는 장수들의 표정 또한 심히 좋지 못하였다.


막상 제가 손견도 아니었건만, 정작 손견으로 시작된 그들의 비판과 힐난은 어느덧 은연중에 무부들과 장수들에 대한 지적과 비난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허나 그의 전략은 실로 그럴듯한 것이었소. 난세에 그것도 전장의 승기를 가져올 장수의 전략을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오. 또한 파재가 이를 눈치채고 움직이지 못했다면 도리어 이는 우리의 포위망을 완벽히 다듬을 수 있는 최선의 수였소. 그대들은 이제와 파재가 움직였다 말하나 파재는 그보다 앞서 여남에 황건적들을 불러들인 전력이 있소. 그리고 이는 좌중랑장께서 세우신 포위망에 위기를 느낀 그의 대처였소. 허니 이는 그대들의 주장이 어긋난 것 아니오이까?”


“뭐라?”


그렇게 참을성에 한계에 달한 무장들 중 몇몇의 입술이 들썩거리던 차였다.


막상 그 목숨을 걸고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자신들이었건만, 그 외에 자잘한 공무니 행정이니 또 민생의 안정과 사찰 등을 핑계로 따라온 저들의 언사는 실로 무례하였기에 도저히 이를 참지 못하였을 찰나였다.


“이보시게, 염충! 자네 어찌 자병(子竝) 어른 앞에서 그러한 지적을 일삼는가?”


모두의 고개가 돌아간 곳엔 염충이라 불린 한 문사가 있었다.


문인임에도 무인들의 입장을 대변한 그는 이내 저와 같은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으나, 그 속에서도 제 할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긴 그는 이내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뒤 몸을 돌려 황보숭에게 날이 선 직언을 표했다.


“신 군리 염충, 부족하나마 중랑장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자고로 전쟁이란 필경 승리를 목표로 그 전란의 종식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바, 어찌 이를 위해 노력하는 장수의 판단을 그 결과만 놓고 비난하고 비판하며 모든 책임을 물으려는지 소신은 이를 이해할 수 없사옵니다. 작금의 중한 것은 저들을 징치하고 토벌하는 일이지, 이미 지난 일을 그것도 전황을 뒤집으려는 장수의 노력을 이때다 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승냥이처럼 물어뜯으려는 그 행보는 이미 청류, 탁류로 갈라져 서로를 물어뜯는 신물이 난 조당의 썩은 모습과 닮아있사옵니다. 하오니 부자사께선 부디 이곳이 조당이 아닌 전장임을 상기하시고 최대한의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주시옵소서. 전장을 수행하는 이는 장수이지, 관료들이 아니옵니다.”


“저, 저! 저 한양 땅 촌구석의 되먹지 못한 자가 정녕-!”


때아닌 파란에 막사 안은 그 분위기가 이분법적으로 변했다.


그 얼굴이 붉어진 청류의 이들과 관료들은 이러한 염충의 발언에 노골적인 노기를 보이며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 반대편에 자리한 장수들과 군관들의 경우 피식거리며 이를 비웃거나 통쾌하다는 듯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앙-


“지나온 뒤안길을 되짚을 여유가 없다. 우선은 파재다.”


그렇게 한 차례의 마찰이 일어날 법할 찰나, 제 지휘봉을 때려 모두의 시선을 한데 집중시킨 황보숭은 이내 제 옆에 마련된 지도를 가리키며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가장 중한 우선 사항을 확정 지었다.


“파재의 전략은 달라진 것이 없다. 비록, 직접 본군을 움직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하나 앞서 염충이 지적했다시피 그는 이쪽의 포위망을 무너트리기 위해 여남의 황건적들을 불러 전장의 변화를 꾀했다. 허면 그 목표가 무엇이냐? 이는 바로 군병의 소모다. 그것도 아예 이 땅에 모여든 각지의 관병들을 예서 모조리 소모시켜 더는 자신들의 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웅성웅성-


“그는 전쟁을 안다. 전쟁의 우선 목표를 알고 그 목표가 어찌 자신에게 승기를 가져다 주는지 보다 확고히 깨우치고 있는 작자다. 어차피 저들에 비해 병력이 열세인 것은 우리요, 이미 그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긁어모아 더는 충원조차 쉽지 않은 우리다. 허나 저들은 다르다 주변에서 호응하는 신도들도 있을 것이고 여차하면 근처에 자리한 도적들을 비롯한 불온한 무리를 끌어들여 제 휘하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이를 알기에 그는 최대한의 소모전의 양상을 띨 수 있도록 전장의 전선을 여럿으로 나누었고 그 속에 동서남북 네 갈래의 전선을 만들어 지금껏 수많은 관군들을 희생시켰다.”


“하, 하오나 저들 또한 그 피해가 적지 않음은.....”


“똑같은 소리를 또 하게 만들 생각이더냐? 애초에 수적 우위를 가진 저들이니 이쪽에 자리한 하나를 죽인다는 가정하에 저들의 두셋이 죽어도 이득이 된다는 소리다. 물론, 그 외에 이름난 명망을 가진 이들이 각기 문관과 무관으로서 이번 토벌에 참여한 만큼, 그 위명을 무너트려 더한 혼란을 일으키려는 얄팍한 노림수 또한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하여 처음에는 우중랑장을 패퇴시켰고 그다음으로는 이름난 문장가였던 장초 그대를, 그다음으로는 전장에서 뛰어난 영명을 쌓은 손 문대를 노렸다.”


황보숭의 지적에 하나둘 머리가 깨이기 시작한 이들이 제 느낀 바를 가지고 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이해가 부족한 이가 잠시 분위기를 흐렸으나 막상 그에 뒤이어진 설명에 알아서 수그리게 되니 그렇게 막사 내의 모두는 어느덧 기존의 분쟁을 잊은 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리며 그 의식의 흐름에 따른 설득을 당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서 병력을 잡아먹고 점차 힘을 빼게 만든 뒤, 수적 우위를 빌미로 상대를 위축시킨다. 다른 변수조차 만들어낼 수 없도록 상대를 말라 죽여 점점 질질 끌도록 만든 뒤, 그 명성대비 그럴듯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알아서 그 내부로부터 그럴듯한 비난과 힐난을 받게 만든다. 그리되면 절로 군의 수뇌는 내부로부터 분열될 것이고 무능한 이들이 도리어 유능한 이들이 깨지는 것을 보며 막상 그들이 상대한 저들이 별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착각 속에 자신들이 이를 해낼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을 품게 될 터. 그리되면 결국 한 차례 패전을 비롯해 승패가 나지 않은 지지부진한 전장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그들 대신 무능한 이들이 대신 전장에 그 병력을 이끌고 나오게 되니, 파재는 바로 이를 노린 것이다. 기다렸다 이를 단번에 섬멸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차례 모든 것이 정리된 요약으로 기존의 분란이 사라진 막사 내의 분위기는 가히 놀랍다 못해 경탄을 자아낼 정도였다.


모두가 하나되어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그의 손짓과 동작을 따라 그 시선이 우르르 이동하고 있었다.


“하여 이러한 그의 전략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부족한 무력이나 통솔과 조직력에 기반된 전술적 불리함을 전략적 우위로 뒤집고자 하며 또 병력 차에 기반한 상대적 우위로 이쪽을 어떻게든 찍어누르고자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발현된 것이, 그의 노림수와 포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그가 만들어낸 작금의 전장인 것이다. 허니 앞으로 본관은 저들을 상대하는 전략과 전술 그리고 포진에 변화를 주고자 한다.”


특히나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염충으로서는 가히 제 앞에 자리한 황보숭이라는 이의 뛰어남에 가히 매료되다시피 한 모습이었다.


섞이지 않을 이들의 분쟁을 다스리며 다시금 이를 공통된 목표를 제시하고 다독이며 하나를 만들어낸다.


사람이 사람을 다스리고 이끌어감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화평이고 탕평임에 이를 해내는 자는 군왕이 갖춰야 할 덕목과 자질을 갖춘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임에도, 그는 이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해내고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거기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 중 가장 중한 것을 우선 선점하여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물론, 그 문제 제기에 이어진 해결 방안 또한 남들은 한세월이 걸려도 내놓지 못하는 것을 눈앞의 이는 금세 내놓으려 하고 있다.


실로 천하에, 당면한 난제들이 즐비한 이 난국 속에 과연 이러한 인물이 있었던가?


한동안 그를 호종하며 그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막상 이리 그에 진가를 마주하게 된 이상 염충은 급격하게 뛰기 시작한 제 심장의 격동을 부여잡을 수 없었다.


다스릴 수 없었고 주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나라에도 아직 희망은 남아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희망을 품은 염충의 눈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황보숭을 향해 있었다.


그 초롱초롱한 눈빛들 속에 다시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 황보숭은 자신보다 먼저 대국적인 포석으로 전장을 뒤흔든 파재에 맞선 새로운 수와 행보를 내보이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좌중랑장의 명이시다! 지금부터 서북면에 자리한 이들의 통솔을 별군사마 장초에게 맡긴다! 또한 그대들은 지금부터 남하하여 서남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는다! 이상!”


한 차례의 흙먼지와 더불어 황보숭의 명을 전하는 전령의 행보는 바쁘기 그지없었다.


기존과는 다른 판의 설계를 위한 그의 행보는 그렇게 서북면에 자리하던 이들을 서남으로 남하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빈 서북면에는 새로이 기도위 휘하 오천의 기병을 배속시킨다! 물론, 그 통솔은 기도위 조 맹덕이 맡을 것이며 서남에 자리한 이들과 연수 속에 실질적으로 서쪽의 포위망을 책임진다!”


장기판에 자리한 말들이 움직이듯 혹은 슬라이드 퍼즐이 움직이며 새로운 그림이나 형태를 만들어내듯 그만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던 포석이 그렇게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쪽에 자리한 형주군에게 좌중랑장의 명을 전한다! 그대들은 지금 당장 남쪽으로 이동하여 손 문대와의 연수 속에 여남에서 올라온 적도들을 토벌하라!”


한 번에 한 차례씩, 그렇게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옆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이들의 움직임은 하나의 거대한 포위망이자 뱀이 제 목표한 바를 물어 죽이거나 사냥하기 위해 크게 반원을 그리며 그 퇴로를 차단하는 것 같은 묘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북에서 서로, 서에서 남으로, 남에서 동으로.


그렇게 한 차례씩 밀려난 이들의 포위망은 이미 변화된 전장의 무게추가 쏠린 동쪽의 전장을 향한 황보숭의 의지가 돋보이는 결단이기도 했다.


* * *


“실로 놀라운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도를 펼치고 나무를 깎아 만든 장식으로 작금의 황보숭이 그려낸 대국을 마주한 하모가 한 말이었다.


“적장 파재가 전장의 균형을 기울여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 이상 그에 비견될 전략은 물론, 그에 걸맞은 배치와 포진이 필요한 건 모르는 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한데 이를 그대로 들이받을 줄이야.”


하모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다시 한번 경탄을 자아내며 지도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저들이 중심을 움직여 본대를 동쪽으로 이동시켰다는 건 그에 반대되는 이곳, 서쪽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물론, 이는 그에 앞선 우중랑장의 패배와 관련이 되어 있으니 거진 그 반응을 보고 우선순위에 대한 가치판단을 내린 적장 파재의 의중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나,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우리가 자리한 서쪽에는 저들이 그다지 큰 힘을 발휘하기는커녕 원군조차 지원받기 쉽지 않다는 사실은 매한가지나 다름없으니 우리의 전력이 오히려 과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모두가 빙 둘러앉아 지도를 보고 있는 지금, 전장의 판세를 읽어내는데 몰두해 신이 나 있는 하모는 한때 자신들이 자리했던 서쪽을 가리키며 얼마 전까지의 상황을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변화된 전장에 발맞춰 좌중랑장께서는 동남으로 또 안팎으로 포위된 위치에 자리매김한 우중랑장과 좌군사마를 동시에 구원할 수 있는 묘책을 내시니 이는 기존의 좌군사마가 실패한 전략의 조건을 다름이 아닌 우리를 이용하여 충족시켜주려는 의도입니다.”


어느새 그의 손가락이 서쪽을 지나 손견과 여남에서 올라온 황건적들이 자리한 남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치가 외부로부터의 압박인 만큼 큰 틀에서는 저들이 동쪽과 남쪽에서 협공을 벌이고 포위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지도를 가까이서 보고 전장을 따로 떨어트려 놓는다면 이는 그저 많은 병력 차를 두고 있는 두 세력의 대치국면에 불과합니다. 즉, 남쪽의 전장은 좌군사마와 여남의 황건적들이 또 동쪽의 전장은 적장 파재의 본대와 우중랑장의 본 군이 말이죠.”


스윽-, 스윽-


대체 언제 이를 준비한 것인지 품에서 죽통과 작은 붓을 꺼내든 하모는 죽통을 열고 그 안에 자리한 먹을 적신 붓으로 지도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넓게 펼쳐진 지도 위에 거대한 X자가 생기며 붓으로 만든 대각선의 사이에 자리한 너른 구역이 각기 다른 사방위의 전장이 되어 하나의 구역마냥 정해지게 되었다.


“해서 이곳, 남쪽에 자리한 전장 내에 상황을 보시면 결국 1대1의 대치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전장에 바로 우리가 난입하게 됩니다.”


하모의 붓은 서쪽의 전장을 지나 X자가 쳐진 교차점을 그대로 통과해 남쪽의 전장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물음표를 그리듯 반원을 그리다 가운데로 쭉 내려가는 형국.


과연, 이것이 황보숭의 노림수가 맞을까?


“파재가 보다 거대한 이곳 예주 땅을 바둑판 삼아 대국적인 포석으로 우리를 압박했다면 우리는 그보다 작은 전장인 이곳, 정릉현과 언현 사이에 자리한 전장에서 이를 재현해야 합니다. 어차피 남방은 여수가 있어 막혀있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우리는 마치 동쪽에 자리한 우중랑장의 군대를 직접 지원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번양까지 북상하다가 그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돌아 방향을 잡고 쉬지 않고 내달릴 것입니다. 그리되면 저들의 정찰은 물론, 이쪽의 행보가 노출된다고 해도 저들의 허를 찌를 수 있을 터. 그리되면 좌군사마와 대치 중인 적의 옆구리를 찔러 들어감은 물론, 지도 위에서 보더라도 여수가 자리하여 더는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는 적들을 위와 우측에서 두들겨 물가로 내몰아 수장시키거나 동쪽으로 밀어버려 아예 전장을 벗어나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허나 최선의 방책을 위해서라면 강변으로 밀어버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 자리에서 몰살을 시키고 와해를 시켜야 더는 골칫거리로 자리매김하지 않는단 소리군.”


그 찰나의 의문은 추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인 하모로 인하여 금세 해소되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거기다 이미 저희가 한 차례 그 병력을 소모시킨 서쪽의 잔당들은 그 통솔이 떨어지는 청류의 인사인 장초와 애초에 우리를 돕기 위해 서북면에 내려와 있었던 예비대를 붙여 최단시간의 효율과 군사적 재원의 낭비를 최우선으로 막았으며, 그 서북면에 빈자리를 기병대로 구성된 기도위 휘하 오천 병력으로 막아두었다는 것은, 혹시라도 그 예상보다 훨씬 더 무능하여 서쪽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경우를 방지하는 대비책임은 물론, 행여라도 북쪽에서 좌중랑장의 본대와 직접적으로 대치 중에 있던 병력의 일부가 급선회를 하여 하남윤으로 내달리는 말도 아니 되는 경우에 수에 대한 대비도 겸하고 있는 조치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단 말이지?”


“예, 실로 놀라운 전략입니다. 이미 전장의 판도를 뒤흔들기 위해 그 무게추를 기울인 파재의 포진과 포석을 무위로 돌리게 되면서도 그의 노림수 그대로를 그가 바라던 전장에서 그대로 돌려주려고 하는 겁니다, 작금의 좌중랑장은.”


소름이 돋아나다 못해 전율이 느껴지는 모양인지 턱하니 그 숨을 내쉬며 제 고개를 뒤로 젖힌 하모는 제 위에 떠 있는 하늘을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과연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은 것일까?


그렇게 잠시 하모가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슬쩍 지도에 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가 있었다.


“저, 한데 그리되면 어찌 되었든 좌중랑장의 본대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병력이 빠져나가는 것 아닙니까?”


어느덧 남들이 시선을 두지 않은 지도의 북쪽을 가리키며 제 의문을 표하는 이는 다름이 아닌 조홍이었다.


일찍이 교에 들기 이전부터 천하를 주유했고 또 교에 든 이후에도 남쪽으로 내려오며 중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닌 몸이었기에 그는 얼추 이곳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겠지? 아마 일만 정도가 빠지지 않을까 싶다.”


“허면 좌중랑장께선 일만오천의 군대로 적병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허나 장사현의 군영은 예서 훨씬 멀리에 자리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에 앞선 예주의 전장에 자리한 2만에 달하는 저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대로 저들의 북상을 허용하기엔 장사현이 수비에 유리한 지형이 아닙니다.”


“그건......”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그 위로는 좁은 협곡도 늪지대도 우거진 삼림도 굽이 흐르는 강도 없는 평야에 가까운 지역이었다.


그 넓게 트인 곳에서 어찌 저들을 막는단 말인가?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이들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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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소설에 관하여 +4 20.01.30 2,839 0 -
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90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7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3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8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3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3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0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0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3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6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8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8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6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2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2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6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7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1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1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3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7 7 23쪽
»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8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1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9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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